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55화 (455/1,009)

베로니카에게 부탁해서 〈공간이동〉으로 날아온 나는 이 땅밑에서 벌어졌던 일을 신속하게 파악했다.

좌반신이 녹즙으로 샤워한 오크처럼 변한 코난드. 전투의 흔적과 우리 아내님들의 상처.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이 개씹 트롤러 새끼…… 기어이 정체를 드러냈군!”

역시 코난드도 벤자민과 같은 트롤이었던 것이다!

그 놈은 죽을 때까지 훈련 받은 트롤로서 인간다운 와꾸를 유지했지만, 코난드는 본거지로 돌아온 것으로 마음이 풀린 건지 폴리모프가 절반 정도 해제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 예상이 맞아들어가는 것에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사용한 마법을 막았다고? 어떻게?”

코난드는 고통도 잊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방금 걸 마법이라고 쓴 건가. 나는 픽 웃었다.

“쓰면서 재미 있으셨습니까?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뭐?”

“뭐긴 뭐야, 니기미 하프 트롤 새꺄. 니가 쓴 마법 나한테 좆도 안 통했잖아. 그니까 최소한 쓰면서 니 새끼한테라도 재밌었길 바란다고. 이해가 안 됨?”

“……이 개새끼가!!”

이해 된 모양이다. 어깨에서 에일리언 퀸이 튀어나오려다 뒤진 듯한 꼴로도 눈을 부라리는 코난드.

─쐐애애액!!

분노에 힘 입어 엉거주춤 일어난 놈이 마법을 쏘아냈다. 웬 얼음 송곳이 굵직하게 뭉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존나 어설픈 마법이다.

장모님이 만들거나 계승해 온 주술을 지 좆대로 갈아엎고 만든 게 이딴 똥꼬쇼 같은 마법인가.

‘아니, 그럴 만도 한가.’

얼스터는 문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마법도 대부분 말로 구전될 거고, 감각적인 설명의 비중이 크겠지.

마기마기의 호구들에게 가르치고자 지 나름대로 장모님께 배운 마법을 해석하고, 또 그걸 반반트롤러 상태의 육체에 최적화된 주술로 승화시킨 모양이지만──

그래서인지, 아주 더없이 수준 낮은 술식이었다.

“와, 이게 뭐죠?”

나는 주술의 틈새를 간파하고 마나로 변형해 찔러들었다. 그러자 흡사 달리던 자동차에서 타이어가 자유를 찾아 튀어나오듯 술식이 박살나고, 얼음 송곳은 눈뭉치로 전락했다.

─텅! 눈뭉치는 내 가슴에 맞고 허무하게 바스라졌다.

마나를 마법의 공격력으로 바꾸는 술식이 무너진 탓이었다.

이건 오딘의 눈을 사용하며 마법의 술식 결합과 분석에 적응해 온 내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맨눈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예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오딘의 눈을 켜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가 있을 만큼 코난드의 술식이 조촐했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내 마법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속도도 위력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데!!”

자신의 마법 실력에 자부심이 컸던 것일까. 살점에 침범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코난드의 얼굴에 쩍 하고 금이 가는 듯 했다. 좆도 불쌍하지 않았지만, 나는 일부러 가엾다는 듯 말했다.

“술식에 많은 장점이 보이지만 불균형합니다. 책 공부는 더 많이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닥쳐!! 닥치라고!! 나처럼 일대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에게 고리타분한 틀은 무의미해!!!”

“사장님께서 그런 괴인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닥치라고 했지!!!”

투두두두두─!!

나는 꼴받으라고 입을 털며 날아오는 마법을 하나씩 전부 해체했다. 불의 벼락이, 물의 칼날이, 바람의 송곳이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싸그리 무해한 마나로 돌아갔다.

원래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어설프게 아는 놈이 더 허접한 법이다.

‘트위터 3류 그림쟁이나 명작병에 걸린 감독 같은 새끼네.’

물론 실력이 부족한 건 잘못이 아니다. 충분히 넘어가줄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새끼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잊고 남들에게 좆 같이 구는 것이다. 친히 겸손을 주입해 줄 필요가 있었다.

……뚝.

쏟아지던 마법의 세례가 그쳤다.

그게 코난드의 마나가 오링나서인지, 아니면 다나가 빛의 검을 완성시켰기 때문인지는 몰랐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검을 목격한 코난드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실드를 펼쳤다는 사실이다.

두꺼운 실드였다. 게다가 개량하지 않고 순수하게 픽트의 모사 마법 그대로 발동한 것이었기에, 나도 무턱대고 해체할 수는 없었다.

마나를 아끼지 않으면 부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병신 새끼에게 이 이상 마나를 쓰는 건 논외였다.

“멍청한 놈들!! 너희는 실수한 거야!! 살고 싶었다면 나에게 발을 묶일 게 아니라, 1초라도 빨리 지하로 내려가서 트롤 주술사 놈의 의식을 막았어야 했어!!”

우리를 여기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일까. 코난드는 피를 토해내는 것처럼 고함쳤다.

프랑과 장모님이 암반을 우회해서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코난드의 발악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말씀하는 걸 미뤄뒀던 일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걸 눈치채신 듯, 과거의 제자를 착잡하게 바라보시던 장모님이 고개를 돌리셨다. 그 눈에는 어느 정도 이런 결말을 예측하고 있던 듯한 기색이 있었다.

아마 장모님도 코난드의 본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셨던 건 아니겠지. 나는 혈수마공의 불을 끄고 말했다.

“사실은 말이죠. 다나는 가출한 뒤에도 2년 이상을 알윈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장모님이 자길 찾아와주시길 바라면서요.”

다나를 쳐다보자 그녀는 슬쩍 눈을 외면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나와 우리 눈나는 이심전심이다. 그 행동의 이유를 상상 못할 만큼 이해도가 모자라진 않다.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는 철 없는 이유로 가출했던 다나가 2년 넘게 알윈에 머물러 있던 이유는 그것 밖에 없다.

“……다나가? 알윈에 있었다고?”

“네. 물론 알윈을 떠난 뒤로도 매년 픽트 인 마을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편지를 보냈었고요. 하지만 이야길 들어보니까, 장모님은 다나의 소식을 찾아헤맸지만 마을로 온 편지조차 못 받으셨던 듯 하더군요.”

다나도 장모님이 자기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은 몰랐었기에 숨을 삼켰다. 모녀의 눈이 방어막 안에 두문불출한 녹색 괴물에게로 향했다.

이 총명한 모녀다. 내가 굳이 말을 끝내지 않아도 결론에 생각이 도달한 거겠지.

“회의실에서 나오고 나서였죠. 저를 화내게 만들 생각이었는지 이실직고를 하더군요. 뭐, 사실 두 분이서 잠깐 얘기만 나눠봐도 아실 겁니다. 중간에서 장모님과 다나를 갈라놓을 수 있고, 또 그걸로 가장 득을 볼 수 있던 게 누구인지.”

코난드는 뭐라 변명도 하지 못하고 안색이 파래졌다. 추한 트롤 쪽 얼굴마저 핏기가 움직이는 게 보였을 정도다.

“……하. 그래. 그랬단 말이지.”

장모님의 눈빛이 싸늘해지며 눈꼬리가 치솟았다. 사제장의 위엄을 지키시려던 모습에서 일변하자, 그 얼굴은 정말 우리 다나를 쏙 빼닮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게. 개새끼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다나도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하늘에 뜬 빛의 검이 그녀의 분노를 형상화한 듯 거세게 빛났다.

“아까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했던 건 취소야. 존나 좋은 타이밍이었어. 자칫하면 평범하게 죽여버릴 뻔 했잖아?”

“흐어어어억…!!”

쌍둥이처럼 닮은 모녀의 분노에 노출된 코난드는 자기가 펼쳐놓은 실드에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공포에 떨었다.

저 빛의 검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부풀어오른 종기로부터 대충 상상이 갔다.

다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장모님께 손을 내밀었다.

“……사제장님. 나 더럽게 피곤해. 힘 좀 보태 줘.”

“이 돌에 마나를 보내주면 되니?”

“응. 그렇게만 해 줘. 끝장은 내가 지을 테니까.”

저래봬도 한때 제자였던 새끼다. 장모님은 다나의 배려에 입술을 잘게 떠시다가, 옥새에 손을 올리시며 씨익 웃었다.

“좋아. 대신, 다시 엄마라고 불러주겠다고 약속하면.”

“……망할. 내가 누굴 닮았는지 감이 좀 오네.”

다나는 질색팔색을 하며 미소 짓고서, 장모님의 마나를 옥새에서 받아 빛의 검을 더욱 키웠다.

그리고, 그대로 코난드에게 내려꽂았다.

─퍽.

짧고 굵은 관통음이었다.

마나를 막는 실드를 두부처럼 가르고 들어간 빛의 칼날은 딱 코난드의 머리통에 적중하며 광채를 터트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푸확─!!

빛이 눈을 가리며 코난드의 단말마까지 집어삼켰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빛이 가셨을 때, 그곳에는 저그 건물처럼 암반에 일체화된 녹색의 살덩이만이 남았다.

인간이나 트롤의 신체 부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세포가 싸그리 뒤섞이고 오염돼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꼬라지가 된 것이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암세포 블레이드 존나 무섭네.”

저렇게 살점이 뒤섞였다면 뇌세포도 원형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만약에 누가 저 새끼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거나 영혼을 채취해도 뇌가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밖에 살려놓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었다.

코난드는 20년 어치 악행의 대가를 치룬 것이다.

“뒤질 때까지 그 꼴로 반성하셔. 뒤질 수 있다면 말이야.”

─퉷. 다나는 암반에 침을 뱉으며 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장모님이 조금 눈쌀을 찌푸리셨다.

“……응. 계속 넘어가고 있었는데, 우리 따님 입이 어쩌다 이렇게 거칠어졌담?”

정말 이제 와서? 싶은 말이었다. 다나도 좀 어이가 없었던 건지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장모님이 놔 주시지 않자 난처한 듯 입술을 꿈틀거렸다.

“……이게 거친 거면 사위가 말하는 걸 보면 졸도하겠네. 왜? 도플갱어처럼 생긴 애가 욕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어머? 너 코는 아빠 닮았어. 가슴도 내가 너보다 크고.”

“그건 댁이 잘못 낳아서 그런 거잖아! 내가 그 망할 가슴 크기 때문에 얼마나 속이 쓰라린 줄 알아?!”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살아서 그렇지. 딱 10살 때 가슴 그대로네. 내 밑에서 컸으면 그렇게 안 자랐어.”

나랑 프랑은 대화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 누나가 했던 말대로였다. 장인 어른과 비교해 보면, 다나의 말재간이 어느 유전자에 기인했는지 참 불 보듯 뻔한 광경이었다. 다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 씨……. 나 당신 진짜 싫어.”

“후후. 나는 우리 딸 사랑하는데?”

─포옥.

장모님이 다나를 끌어안았다. 다나는 낯뜨거운 듯, 어색한 듯 몸부림을 치다가 힘에서 당해내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곤 말없이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잠깐 감동적인 광경을 연출한 끝에, 우리는 근처의 멀쩡한 바위─무너진 벽의 파편─에 앉았다.

“다나, 프랑. 포션 필요해?”

“응. 상처 회복이랑 마나 포션 둘 다.”

나는 석판에서 포션을 꺼내서 배급했다. 인벤토리가 있으니 존나 편리하긴 하군. 무지성으로 구매한 포션의 약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아내들이 포션을 과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걸 바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프랑은 다나에게 외투를 돌려받으며 바닥을 쳐다봤다.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도 아무도 올라올 기미가 없네.”

“글게. 인원이 적은 건 둘째치고, 남편 말로는 여기 킹이랑 주술사는 있을 거라매?”

다나는 빨간 포션을 드링킹하다가 말했다.

“왕이랑 마법사라. 존나 뻔한 조합이긴 하네. 옛날 전설에 나오는 사악한 씹새들이 다 그런 식이잖아?”

“딸. 말투.”

“아 씨. 됐고, 엄마도 포션이나 마셔.”

나랑 프랑은 상황에 맞지 않는 부모 자식 간의 개그 씬에 잠깐 웃었다.

나는 마나 포션에 잠깐 입을 댔다가 속이 더 안 좋아지는 기분에 입을 뗐다.

“이 밑에서 각성 의식이란 걸 하고 있겠지. 세 사람은 트롤 주술사 새끼를 맡아 줘. 킹이랑은 내가 싸울게.”

“노르 혼자 괜찮겠어?”

“해 봐야 알 것 같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약빨로 수마와 피로에서 벗어난 우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털복숭이 트롤의 기억을 봤기에 지형은 알고 있었다. 트롤 킹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 층을 내려가자 커다란 문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목처럼 마른 트롤 주술사가 하반신을 안개로 만들고, 유령처럼 부유해 있었다.

[기어이 여기까지 왔군. 열등종의 무모한 특공대 놈들.]

[……좆도 무모할 일 없는데? 졸병도 죄다 차출해서 여길 지킬 새끼라곤 너희랑 니가 납치한 병신 뿐이었잖아?]

원체 입이 가벼운 내가 말이 없자 다나가 말했다. 오딘의 눈을 키고 마나를 읽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대신 나서준 것이었다. 프랑은 얼스터 어를 못 쓰니까 말이다.

‘함정은 없다.’

여긴 물론이고 저 문짝 뒤에도 인위적인 마나는 없었다.

단 하나, 트롤 킹의 마나가 느껴질 따름이다. 트롤 주술사 새끼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왕께서 네놈과의 담화를 바라신다. 이 문을 지나가겠다면 네놈 한 마리 만큼은 보내주마.]

[……아, 그래? 왕님한테 초대받은 경험은 또 처음이네.]

오딘의 눈을 끄고 말했다.

내 알현 아다를 트롤에게 바치다니 심히 유감이었지만, 저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함정이 없다면 바라던 바다. 트롤 킹이 후방의 파티원들을 노리지 않는 상황은 나도 원하던 대치 구도였다.

‘옥새는 다나에게 맡겼다. 어차피 나는 마나 회복을 못 할 몸 상태니까. 지금은 그게 제일이야.’

합의하고 온 내용이다. 서로 믿는 수밖에 없다.

[다녀올게.]

나는 아내들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어차피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건데 뭣하러 말을 나누냐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트롤 주술사는 눈을 꿈틀댔지만 말없이 날아서 문을 비켰다.

쿠구구구구궁……!!

석문을 밀어서 열었다.

존나 무거워서 마나까지 들었다. 매너라곤 좆도 없는 손님 대우다. 자동문은 아니어도 열어주는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좆 같은 트롤 새끼들.

내가 마나량 갖고 찡찡대지 않는 날은 언제 올련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아딱이 시절의 5배는 훨씬 더 되는 것 같은데 아직 모자란 기분. 인생이란 참으로 앰뒤 좆망겜이다.

[……왔군. 소란을 듣고 네놈일 거라 생각했다.]

안쪽은 거대한 전사상이 세워진 석실이었다. 인간 전사의 석상이다. 알몸 남자고, 우람하게 깎은 좆기둥은 중간에 파-킨 하고 쪼개져서 얼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트롤 킹은 갑옷과 사제복을 섞은 듯한 꼬라지로 전사상의 밑에 서 있었다. 로마니아 양식으로 익숙한 판타지의 성기사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드루이드’라는 느낌이었다.

[싸운 건 내가 아냐. 우리 아내들이랑 장모님이지.]

[다를 바 없는 일이지. 이곳을 알아내고, 입구의 함정이나 경보를 빠져나온 건 네놈의 짓일 테니.]

눈치 빠르게 군 트롤 킹은 합장을 하던 걸 멈추고 제단에서 돌아섰다.

그 새끼의 옆구리 뒤로 무기가 보였다. 금속성 재질이 아닌 새까만 대검이지만, 칼날은 시퍼렇게 섰다. 강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예리함이 느껴지는 무기다. 윙글링 인의 유물인 듯 했다.

트롤 킹은 담담하게 말했다.

[잠깐 얘기나 하지 않겠나? 서로 묻고 싶은 게 있을 텐데. 창칼을 겨루면 허심탄회하게 묻기도 힘들 것이다.]

[재미 있는 제안이네. 우리 아내들이 싸우고 있지 않으면 받아들여줬을 텐데.]

[문제 없다. 이 낡아빠진 은신처는 방음이 짜증날 만큼 안 되거든. 네놈의 암컷이 소란을 피운다면 충분히 들리겠지.]

귀를 기울여보자 확실히 그랬다. 문 건너편의 인기척이 딱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럼 됐고. 의자는 없냐? 차는 내올 것 없어. 트롤 취미의 음료수는 마실 기분이 안 들어서.]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건 세 가지다.]

씹새가 대놓고 씹네. 나는 인상을 쓰면서 가만히 들었다.

[텔츠즈가 데려온 인간…… 코난드가 말하더군. 네놈이 이 브리타니아에서 열등종들의 역부 노릇을 한 건 반 년 정도의 시간이라고 말이다.]

[모험가 얘기냐? 그게 뭐.]

내가 시시한 듯 되묻자, 트롤 킹은 몬스터다운 흉악함이라고는 일체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수회귀의 주술은 어디서 얻었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 동안 사용해 왔지?]

[집 근처 유적에서 주웠고, 반 년쯤 썼다. 몸에는 별 이상 없었고. 네 눈에 보이는대로 말이야.]

내 대답에서 그 속의 진의까지 읽은 듯, 트롤 킹은 커다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처음에는 야수회귀를 얻은지 얼마 안 된 것이라 생각했다. 네놈이 뭣도 모르고 저주받은 원초의 주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이야. 코난드에게 듣기 전까지는 그랬어.]

트롤 킹은 자신보다 몇 배는 커다란 전사상을 올려다보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현기마저 어린 눈빛이 묵묵하게 가라앉았다.

[네놈도 묻거라. 믿던 믿지 않던, 확신이 필요하겠지.]

[……뭐, 그렇긴 하군.]

나는 싸늘한 석실에 하얀 입김을 토해내고서 질문했다.

[──너희들, 얼스터 인이지?]

─톡. 천장에 고인 물방울이 내 발끝에 떨어졌다.

입밖으로 말을 내뱉고 나서야 생각보다 성량이 컸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소름 끼치게도 사방이 꽉 막힌 석실에는 메아리라곤 일절 치지 않았다.

마치 이 공간이 내가 뱉은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되풀이하지도 못한 것처럼 말이다.

[……큰 의미에서 맞고, 작은 범주에서 틀렸다.]

트롤 킹은 교전을 읽는 사제처럼 대답했다.

[홉 고블린, 오우거, 트롤── 현대에서 몬스터라고 불리는 몇 종류의 생물들은 각기 비슷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조상을 뿌리로 두고 있지. 내 선조의 고향은 콰르트고니아겠고.]

[그게 몬스터로 변한 뒤, 브리타니아로 흘러들어왔다?]

[순서가 조금 다르군. 기록을 보면, 이 땅에 오고 나서부터 몬스터가 되기 시작했던 모양이야.]

트롤 킹이 굵은 손가락으로 얼스터 인 전사상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천공신께 기도하라(yáǵeswō deiwōm dyēus)’라고.

[네 지혜에 찬사를 표하마. 열등종의 전사여.]

야수회귀를 다루는 망국의 왕은 감탄한 듯 박수를 쳤다.

[네 예상대로다. 우리 훌드폴크의 후예는── 야수회귀의 저주로 괴물로 전락한, 옛 에린 인의 말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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