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56화 (456/1,009)

야수회귀에는 2개의 부작용이 있다.

2개 모두 이미 나도 알고, 겪은 내용이다.

하나는 구신의 마나를 쌓는 과정에서 유사 분노조절장애가 된다는 것.

야수회귀는 분노의 신이기도 하던 오딘을 오마쥬하는 마법 아닌가. 내가 빡침을 컨트롤하는 게 힘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후계자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빼놓고서도 이게 야수회귀의 기본 사양인 것이다.

둘은 마나의 파형 자체가 신체에 변이를 일으키는 속성을 띈다는 것.

나는 티르시가 검사해줬던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이름 같은 건 쉽게쉽게 잊어버리는 나라도 내 몸에 관한 얘기니까 어느 정도는 기억 보따리에 담아뒀던 것이다.

─야수회귀의 부작용은 여기서 말하는 ‘적성’에 좌우되는 걸로 보여요. 마나 파형의 형태가 학계에 보고된 BSK형(形)의 변이 패턴을 띄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BSK형이란 ‘베르세르크’ 형의 약자입니다.

반 년 쯤인가 전. 아서 웨인의 신분으로 티르시와 재회했을 때의 일이다.

티르시는 그때 ‘BSK형 마나 패턴’이라는 것과 야수회귀의 마나 파형이 무척 닮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자지가 쥬지드라로 초특급 진화를 한 원인도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베르세르크들이 사용하는 ‘짐승화’ 마법과 동일한 마나 파형을 그렇게 부르죠.

─짐승화 마법은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신체에 동물의 특성을 재현하는 변이마법이에요.

리루아를 시작으로 한 윙글링 인들도 계보는 베르세르크와 같다.

그녀들의 신체 특성은 태어나고 나서부터 몸에 습득하는, 말하자면 옛날 중국의 전족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전사로서 신체와 오감이 강화되는 것은 손을 쓰지 못하는 등의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효과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얼스터 인의 군락에서 야수회귀와 닮은 마법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말했다.

고르갈리아의 얼스터 인들이 발동했던, 손과 발에 짐승의 형상을 띄우는 마법. 나는 동물의 심장을 먹으며 단련한 끝에 발동할 수 있다는 그 마법을 당연하다는 듯 발동했다.

어디 그것 뿐인가?

그렇게 발현한 마법에 야수회귀를 덧씌우자 짐승의 손이나 발은 거기에 덧씌워지듯 사라졌었다.

[근본적으로 같았던 거야. 파생되고 약화되면서 부작용도 사라졌지만, 이 야수회귀의 마법은 얼스터의 선조가 받아서 사용하던 마법이다. 후손들이 구전하면서 왜곡되긴 했어도, 그 뿌리가 사라지진 않았던 거겠지.]

얼스터 인.

트롤과 같은 일부의 몬스터들.

그리고 베르세르크.

이들은 모두 ‘짐승’으로 변해버린 과거의 인류의 자손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전부 에린의 후예인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아마도 야수회귀나 그 파생 마법 때문이라는 건 틀림 없지 않을까.

‘단서는 충분히 있었다. 내가 한 건 그걸 연결해서 하나의 가설로 세우는 것 뿐.’

내 야매 추리는 산개해 있던 퍼즐 조각을 기워 맞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대학원생의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물론 내가 트롤이나 오우거를 얼스터의 고대 문명 국가인 ‘에린’의 후손이라고 여겼던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새끼들은 얼스터의 말을 쓴다.’

브리타니아 어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도 마이너한 에린의 언어를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마치 중국의 패권을 쥐려는 살인 팬더들이 중국어에 앞서 중국 소수민족의 말을 먼저 배웠다는 얘기랑 다를 게 없다.

트롤 킹과 그 따까리들은 대화를 하고자 인간의 말을 배운 게 아니다.

자신들의 뿌리를── 이 암흑 속에 잠들어 있는 얼스터의 방계였던 선조들의 역사를 습득하고자 배웠던 것이다.

[나는 이 섬의 바깥에 대해서는 모른다. 트롤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트롤 킹은 흥미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분위기로 천장으로 막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지성이 없을 때부터 동족들에 비해 무력이 우월했지. 그리고 어느날, 이곳을 발견하고 둥지로 삼으려고 들어왔던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지혜를 각성했다.]

[옥새에 잠들어 있었다는 기억으로 말이냐?]

[내 의동생이 그것도 말해줬나? 아니, 그 녀석이 그만큼 입이 가벼운 놈은 아니지. 과연. 네가 어떻게 해서 이 은거지를 알아냈는지도 알 듯 하군.]

나는 눈을 반개했다. 역시 이 새끼도 지능이 상당하다.

내가 옥새로 페이크를 걸었을 때가 생각났다.

이 씹새도 야수회귀의 부작용 때문에 성격이 불 같이 변한 거겠지. 하지만 작전을 짜거나 군을 운용하는 방식만 봐도 대가리 굴리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기미는 있었다.

[……부하들은 어떻게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만들었지? 옥새를 썼나?]

[내가 질문할 차례다. 순서를 지켜라.]

[대답하기 싫은가 보군. 하긴, 나라도 말하기 싫을 거야. 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한다면 네 군대가 종이 호랑이라는 걸 스스로 시인하게 되니까.]

트롤 킹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은 가끔씩 그 어떤 달변보다 선명하게 진실을 고하곤 했다. 나는 트롤 킹의 물음이 끝나기 전까진 싸움이 시작되지 않을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느긋하게 입을 놀렸다.

[네 따까리 졸병들. 그 병신들이 전부 지능을 갖고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몬스터는 아냐. 만약 그랬다면 귀찮게 2~3번 작업을 칠 것도 없어. 그냥 성채에 들이박아도 이겼겠지.]

하지만 에미넴이 말했듯 현실은 시궁창이고, 보다시피 이 트롤 킹 새끼는 존나게 지능적이다.

‘전술 전략의 기본은 물량과 야바위랬던가.’

내가 나무위키에서 배운 야매 병법에서는 그랬다.

물량이란 탄약이나 병사의 숫자.

야바위란 온갖 작전을 포함한 승리의 계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씹새끼의 야바위는 군단의 전력을 사실 이상으로 부풀린 거였다.

트롤 킹은 자신과 친위대가 몸소 전장에 서서, 저 몬스터 군대가 모두 그들처럼 마나와 무기를 다루고 말을 하는 돌변변이 몬스터인 것처럼 위장했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낚였지.’

이 새끼들이면 브리타니아를 갈아버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실은 좆도 그렇지 않았지만.’

마나로 뻠삥하지 않으면 실버 클래스 몬스터한테도 꺼-억 당하는 것이 우리 좆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좆간도 마나만 쓰면 마스터 클래스가 될 수 있는 싱글벙글 이세계 판타지.

그런데 골드 급의 몬스터들이 마나를 다루고, 그 숫자가 100마릴 넘는데 인간의 소도시 하나를 공략 못 한다? 그딴 개븅신 전개는 섹스씬 보는 맛으로 읽는 야설이어도 쌍욕을 바가지로 쳐먹고 좆망해버릴 것이었다.

[네 부하들은 무장 상태가 멀쩡한 일부를 빼면 죄다 종이 호랑이다. 그에 비해 군기는 바짝 들었지. 그건 왜일까?]

의문이 당연한 만큼, 정답의 난이도도 좆밥이다.

[너희가 야생의 오우거랑 트롤을 어떤 방식으로 조종하고 있어서야. 맞지?]

가장 킹능성 있는 가설이 이거였다.

그냥 힘으로 복종시켰다? 그건 개소리다.

목에 칼을 들이밀면 말귀를 알아먹는 인간들도 잠깐 눈을 돌리면 당나라 군대가 되는 건 순식간이지 않은가.

근데 대가리에 먹고 싸고 아 쎅쓰 하는 생각밖에 몬스터를 조종해? 씨팔 그러면 저 놈들이랑 대화가 되는 나도 진작에 몬스터 테이머 노르드로 전직해서 개꿀 빨았어야지.

[쫄병들한테 투구만 씌운 것도, 무모한 특공에 아무렇게나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번식만 시키면 보충 가능한 진짜 쫄병들이어서 적당하게 부려먹었던 거야.]

얼굴만 가리면 조종당하는 몬스터라는 걸 들키지 않으니까.

지혜를 각성하지 못한 몬스터는 동족으로 여기지 않으니까.

[일이 이렇게 되면 결론은 간단하지. 너나 트롤 주술사의 멱을 따면 졸병들은 지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무지성 덤앤더머 100마리가 상대라면 알윈의 남은 병사들로도 충분해.]

내가 방위전력의 일부를 멋대로 차출해서 이런 특공을 건 이유가 그거였다.

‘존나 시팔 나더러 이걸 어떻게 영주한테 설명하라는 것?’

이 추리를 진지 빨고 회의실에서 나불됐어 봐라.

탈영을 희망하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감옥에 갇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었겠지. 그리고 이세계의 최첨단 정신의과 치료는 대가리를 개쎄게 후려치고 힐을 거는 거다.

구라 같지? 진짜야 씨발.

그야말로 러시아식 최면이다. 양파를 사과로 느낄 때까지 최면 어플(물리)의 무한 루프를 시행하는 것이다. 저는 이세계인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이세계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만 데리고 냅다 적진에 들이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니들을 학대하고 돌아가면 일은 끝난다. 너희의 모가지가 내 추리의 증거가 되어 주는 것이지. 이제 상황이 좀 이해가 되는가? 뇌가 청순한 정예병신들의 왕이여.]

[……심히 감탄스럽군. 그래. 전부 정답이다.]

혀를 내두른 트롤 킹은 진심으로 적을 칭찬하는 장군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옥새로 각성한 전례는 나와 텔츠즈, 그리고 네가 죽인 내 의동생 뿐이다. 나머지는 텔츠즈가 이 지하에 잠든 훌두폴크의 주술로 자질을 가진 이들을 깨워왔지. 그래서 옥새에 큰 집착은 없었지만…… 네놈은 거기서 놓치지 말았어야 했군.]

[칭찬이지? 고맙다 씹세야. 병사의 총괄자는 너냐?]

[아니, 절반은 텔츠즈다.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로군.]

나는 트롤 킹이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구라를 까거나 존나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기다렸는데, 이 씹새가 내뱉은 건 존나 사이비 냄새가 나는 질문이었다.

[네놈. 꿈에서 신을 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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