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57화 (457/1,009)

[네놈. 꿈에서 신을 본 적이 있나?]

[……신을 만난 적이 있냐고?]

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물론 있다. 여신을 2명 정도 만났다.

그리고 그 중 뿔 달린 쪽은 절찬 암컷타락해서 내 아내가 됐고 말이다.

[……생뚱맞은 질문이군. 꿈에 나온 신이 진짜라는 증명은 누가 해 주지? 네 꿈에 트롤이 나와서 니 애미임을 주장하면 너는 죽은 어미와 재회한 것인가?]

[전승에 의하면 만나는 순간 알 것이라더군. 본인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설파하며 강대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지.]

확실히 그랬었다.

‘도이치 또라이 짝눈신이나 뿔잡 여신님이랑 실컷 설명충 TMI 토크를 했었지.’

특히 야수회귀의 설명이나, 〈인신〉과 맥락을 같이 하는 ‘오딘의 후계자’ 얘기 등은 내가 절대 알지 못하는 이세계의 뒷사정이었다. 대부분 팩트로 밝혀졌고 말이다.

거기다 오딘은 막판에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파워 밸런스를 씹창내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떠나가기까지 했다.

완벽하게 그 전승이라는 것과 일치하는군 그래.

[……뭐, 짐작 가는 바는 있군. 겪어봤다고 한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아니 이 니미 씨팔럼 좀 보게. 쳐 믿지도 않을 거면 뭐하러 물어보고 지랄인 것이지?

나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트롤 킹의 반응은 무척 격렬했다. 야수회귀의 부작용이 드러난 듯 놈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르기를, 짐승으로 영락하지 않는 광전사. 야성과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는 자로되, 몰락한 짐승에게 안식을 주는 왕. 에린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의 존재.]

그는 하늘을 거머쥐듯 펼친 손바닥을 천장을 향해 쥐었다.

[──예언의 【울프헤딘(Úlfheðinn)】.]

슈와아아아악─!!

트롤 킹의 몸을 야수회귀의 마나가 뒤덮었다.

[그게 훌두폴크의 선조가 남긴 마지막 전승이다. 비록 그 글을 쓴 자는 스스로의 야성에 잡아먹혀 짐승이 되었지만, 먼 훗날에 우리를 구제할 존재가 찾아오리라고 말이다.]

트롤 킹의 몸이 저 등 뒤로 자신을 굽어보는 전사상의 그림자에 뒤덮였다. 희번뜩 뜬 눈은 나를 향한 살기와 투쟁심을 극렬하게 뿜어냈다. 부모의 원수도 저렇게 증오를 담아 노려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자야말로 태고로부터 예견된, 새로운 시대를 부를 패왕(覇王)!!! 야수회귀의 저주조차도 초월하고!!! 천공신 오딘의 성좌를 찬탈할 자는 바로 나다!!!!]

……쿵!!

트롤 킹이 강하게 발을 굴렸다.

무참하게 타오르는 야수회귀의 마나는 그의 살갗을 태우고 증발시키듯 벗겼다. 연옥의 상승기류처럼 놈의 피부가, 몸이, 뼈가 재가 되며 꽉 막힌 천장조차 존재하지 않은 듯 하늘의 너머로 빨려들어갔다.

[이 호르샤야말로 훌두폴크의 새로운 왕이다! 나야말로 몰락한 짐승들에게 구제를 내리고, 그들을 이끌어 이 세계의 정점에 오를 자다!! 나야말로 ‘예언의 울프헤딘’이다!! 이 내가 천공신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이다──!!!!!]

전사상이 트롤 킹을 태우는 불꽃에 인화한 것처럼 불길에 감싸였다.

얼스터의 전사를 빚은 동상은 마치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허수아비라도 된다는 듯 타오르며 야만스럽고 사이한 불길을 석실에 피워냈다. 동상을 좀먹는 불꽃은 감옥에 갇힌 사람이 손발을 휘젓는 것처럼 느껴졌다.

콰르르르르르릉─!!

둘렀던 장비와 함께 짐승의 겉가죽이 벗겨졌다.

모든 재는 하늘로 뻗으며 날았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이 시대에는 없는 어딘가로 날아가기라도 하듯 멀리 천공의 바치는 제물과도 같이 사라졌다.

[──하늘이여, 보라!!!!]

─콰아앙!! 트롤 킹의 고함에 맞추듯 불티가 터졌다. 나는 그 불똥을 걷어내며 창을 뽑았다.

불길이 가라앉자, 용암에 두들겨 만든 듯 한 자루의 검과 같은 기백을 뿜는 전사가 나타났다. 두르고 있던 장비들은 그 각성의 재료라도 되었다는 듯 대검과 하의밖에 남지 않았다.

[저주받을 운명이여!!! 과거의 업보여, 보라!!! 훌드폴크의 왕이 이곳에 있나니!!!!!]

고대의 저주를 극복하고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은 트롤 킹은 하늘 높게 대검을 내걸었다.

[저주가 세대를 거쳐 우리의 피를 더럽힐 지언정, 찬란한 패왕의 불길은 이곳에 피어났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의 땅밑에서도 불은 타오르니, 나는 성좌가 빚은 운명이라 할지라도 뛰어넘어 보이겠다!!!!!]

부웅─!! 불타고 남은 듯 까만 대검이 나를 겨냥했다.

[그리고 네놈의 목숨을 그 제일보의 제물로 삼을 것이다, 노르드!!!!!]

[……하.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아주 열성이시군.]

나는 피부를 찌르다 못해서 관통하는 듯한 위압감에 솜털을 곤두세우면서도, 손에 든 창으로 침착하게 전투를 대비하는 자세를 갖추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세상의 진리를 다 안다는 듯 깔보고 비웃으면. 이 녀석은 그저 분수도 모르고 헛된 꿈을 꾸는 어리석은 멍청이로 볼 수도 있었다.

예언의 울프헤딘이라는 말은 처음 듣지만, 그 수식어처럼 장황한 멘트는 나도 들어보았다. 늑대인간이 되서 죽어가던 베르세르크 인 타뷸라가 그런 말을 지껄였던가.

하지만 아마 그 칭호가 가리키는 존재는 이 녀석이 아니다.

오딘의 분신이 앞길을 축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이어주기를 바랐던 존재는 호르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이 녀석은 오딘이 생전에 그리도 바라고 꿈꾸던 존재였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인간.

정해진 룰에 저항하고 맞서는 인간.

헛되고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고통을 감내하며 꿈을 꾸는 인간.

우리는 이미 그런 인간을 가리키는 말을 알고 있다.

[네놈도…… 대학원생이었군.]

나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수긍했다.

그랬다. 트롤 킹에게 운명이란 교수였다.

이 놈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이름의 교수에게 맞서는 대학원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용납되는 일일까?

압제에 저항하고, 품어서는 안 될지도 모르는 꿈을 바라며 기원하는 마음은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정말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호르샤는 스스로의 꿈을 타인의 피로 더럽혔다.

윙글링 인들에게서 유물을 빼앗고, 무고한 알윈의 시민들에게서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 일체의 행위에 조금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뿌드득.

나는 분노와 통탄을 느끼며 창을 강하게 쥐었다.

죄 없는 이들이 눈물과 피와 노력으로 빚어낸 희망은 모두 하나의 논문이다. 그것을 빼앗은 자는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교수라는 멍에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호르샤는, 운명이라는 교수에게 저항하고자 스스로 교수가 된 자다.

그리고 어쩌면.

만에 하나의 미래에서는, 나 역시 그렇게 되었을지 몰랐다.

행운이 없었다면.

아내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르샤 못지 않게 허황된 꿈을 꾸는 나다. 운이 나빴다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오만한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오딘의 후계자라도, 예언의 울프헤딘이라도 같다.

교수가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린 원죄이니까.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말이지 옳은 말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감탄하는 수밖에 없는 세상의 진리였다.

많은 대학원생이 교수와 싸우다 스스로 교수가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짓밟혔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를 짓밟아도 된다는 법은 없어.]

모든 교수는 한때 대학원생이었다.

하지만, 모든 대학원생이 교수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올바르고 건전한 교수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아무 돈도 되지 않는 얼스터의 연구에 일생을 바친 어느 유니콘의 기수에게서 배웠다.

나의 존경하는 지도교수 브람마톤 교수님께도 배웠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말인가.

교수에 대한 원망이 지나쳤기에, 나는 이미 깨달음을 손에 넣고도 그것을 체화할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 눈 먼 분노를 잊고 다스려야만, 나는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가 있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눈을 감으며 기도했다.

이 만남이 나를 올바르게 만들어 주기를.

이 짐승으로 전락한 전사에게──

──교수가 되어버리고 만 대학원생에게, 안식이 있기를.

[트롤 킹…… 아니, 호르샤.]

나는 투쟁심마저 가라앉은 고요한 자세로 선언했다.

[3번째 질문을 해라. 그걸로 이 문답을 끝내자.]

나의 잔잔한 기백을 느낀 것일까.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호르샤는 홍소를 터트렸다.

[쿠하하하!! 그래, 그렇게 하마. 뭘, 마지막 물음이라고 해 봤자 대단할 것 없다.]

망국의 왕이 대검을 비틀었다.

대검의 날이 닿지도 않은 석벽과 바닥을 두부처럼 쪼갰다. 조금의 현기조차 남지 못한 그 눈빛에서 뚜렷한 광기가 묻어나오는 듯 했다.

[──설마하니 네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악─!!!!!!

호르샤의 몸에서 나를 몇 배는 웃도는 야수회귀의 마나가 뿜어져나왔다.

인정하자. 판단을 그르쳤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호르샤는 짐승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서 나와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해졌다.

트롤이었던 때부터 힘에서 밀리고 있던 나다. 승산은 옅다.

슈와아아아아악…….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교수를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교수를 죽일 수 없으니까.

“──오딘, 서원한다.”

나는 창을 세우며 천공신께 기도했다.

“내 영과 육을, 이 세상의 모든 교수를 말살하는 데 바치겠어.”

──길을 엇나간 이에게 심판을.

──죄를 저지른 벗에게 참회를.

이 또한, 교수 슬레이어가 짊어진 업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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