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05화 (505/1,009)

일행을 전부 부르고 나서, 나는 마차에 올라탔다.

사막에서도 잘 달리는 마법 마차다. 당연히 무료로 빌렸다. 인맥이란 이렇게 무형의 자산인 것이다.

“베임 씨. 사티스 교의 본교로 가 주시겠어요?”

창틀에 팔을 올리면서 유리창 밖에 대고 말하자, 실드 마법으로 지켜지는 마부석에서 베임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략 이틀 정도 걸리겠습니다만, 아직 해가 뜨거우니 마차의 창에 커텐을 쳐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겠슴다. 지루하실 텐데 밖에 같이 있어 드릴깝셔?”

“하하. 참아주십쇼. 제가 사모님들께 혼납니다.”

베임과 농담을 나눈 나는 마차에 탄 일행들─우리 가족 풀 파티에 티르시와 오드리까지 다 모였다─에게 설명을 했다.

“──해서, 일단 다음 목적지는 사티스 교단이야.”

“자, 잠깐만. 그 얘기대로면 나도 노려지는 거 아니야?”

오드리가 질색팔색을 하며 묻길래 나는 픽 웃었다.

“듀나미스 공방 소속의 대장장이인 오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답니다. 서류로 명시한 것도 아닌 마당에 누가 널 찾아서 노리는데? 아르마알스에 스파이라도 숨겨놨니?”

“이 씨, 그건 그것대로 빡치는데.”

오드리는 합죽이로 만들자 프랑이 팔을 거수했다.

“네, 우리 프랑. 뭐가 궁금하시나요?”

“그게 있지? 말하자면 〈임모르탈리스〉의 은거지를 찾는 게 목표라고 생각하면 돼?”

“응. 하지만 굳이 찾진 않아도 돼. 저 놈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올 엄두를 못 내게 세력을 꺾고, 나대지 못하게 견제할 흑마법사 학대 연합을 이 나라에 만들어두면 그만이걸랑.”

원래 반동세력을 뿌리 뽑는 게 제일 귀찮고 어렵다.

그러니까, 〈임모르탈리스〉에게 물자를 보급해주는 시다바리들만 족쳐놔도 다리 몽둥이를 부려트려놓는 셈이다.

사막이라는 천혜의 방벽은 반대로 자기들이 밖에 나가려면 존나 빡센 장애물이 되니까.

무협지에 나오는 천마신교나 혈교가 본거지 주변의 산맥을 못 건너서 정파 놈들의 비옥한 땅을 질투하며 이를 박박 갈 것이다. 마속의 망령을 데리고 샤먼킹 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을 듯.

“휠체어에 앉아서 인공 미스릴 골렘이 우글거리는 영지에 둘러싸이면 깝치기 전에 한 번 생각하게 되겠지.”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무슨 일이 나더라도 듀나미스 공방을 통해서 귀족들에게 소식이 올 거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 중인 시다바리의 후보는 대략 셋이야.”

나는 손가락을 세웠다.

1. 〈임모르탈리스〉를 선망하는 2류, 3류의 흑마법사들.

2. 금전적 이득 이외의 이유로 〈임모르탈리스〉와 관계를 맺은 조직.

3. 〈임모르탈리스〉가 직접 부려먹는 실질적 노예들.

“이렇게 3종류로 보면 돼.”

1은 말할 것도 없고, 2는 차도살인지계를 노리는 반역자나 테러리스트라면 가능한 일이다.

3은 로마니아의 흑마피아 때처럼 몰래 침투해서 부려먹는 범죄 조직이나, 마법으로 복종시킨 노예 등이 있겠지.

“그리고 이 가정이 모조리 틀려도 상관없어. 어쨌든 지들 나와바리를 박살내려는 나를 돕는 걸 고깝게 보는 범죄조직은 충분히 나올 테니까. 현지 범죄자라면 아는 게 있을 거야.”

“그렇네. 법 없이 사는 놈들은 지들끼리 힘을 겨루고 따로 법을 만든다매? 눈치 보고 살려면 소식 정도는 알아두겠지.”

“여윽시 우리 눈나. 말귀가 빠르셔.”

놈들이 고깝게 볼 듀나미스 공방의 명의는 내 것이다.

주요 장인으로 기재한 클라라도 이 나라에는 없다.

안색이 곱창난 오드리는 ‘그밖의 도제(徒弟)’ 등으로 들어가 있기에 굳이 노려질 이유도 없다. 말하긴 미안한데, 얘가 죽는다고 사업이 멈추지는 않겠다고 여기겠지.

“파티 회장에서도 저희를 막 대하신 것도 그것 때문이죠? 미리 들어두긴 했지만 너무한 취급에 가슴이 쓰라렸어요….”

“그래, 미안했다.”

딱히 가슴이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을 기대며 애교를 부리는 후배님에게는 사과의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라리루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설마 파티 내내 시종 부리듯이 대한 너희를 인질로 삼으려 들진 않겠지.”

“아핫♡ 그건 그렇네요~.”

만약에 납치해서 인질로 삼으려 들어도 〈공간이동〉으로 후딱 구출해 오면 그만이다.

애초에 납치당하게 둘 생각도 없고 말이다.

거기다 이미 내 사업은 기호지세에 들어섰다.

‘귀족이 여럿 얽혔으니 나 혼자 멈추고 싶다고 멈춰지는 건 아니거든.’

오드리는 물론이고 아내들을 죽여봤자 공방이 이 나라에서 물러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소식을 듣고 칼을 갈고 있다면, 노릴 만한 대상은 나 뿐.’

그리고 나를 노리러 온다면── 이번에야말로 우리 가족이 집에서 푹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 씹새들을 해치우고, 장래의 후환을 덜어낼 찬스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나라에서의 최우선 목표는 저 망할 흑마법사 놈들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는 거다~ 이 말씀.”

그렇게 해 두지 않으면, 사업이고 뭐고 이 나라는 커녕 내 집에서도 편히 못 잔다.

‘적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내 꿈과 가정의 안전을 위협하는 씹새들은 〈편찬대대〉와 저 예르나 년 같은 헤니르 광신도들만으로도 벅차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될 무렵이었다.

─쿠르르르륵!

갑자기 마차의 바퀴가 땅에 주저앉기라도 한 듯, 차체가 큰 폭으로 기울었다.

“꺄아아앗?!”

몸을 다루는데 재주가 있는 이들은 알아서 균형을 잡으며 버텼지만, 마법사인 베로니카와 티르시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펼쳐졌다.

─꽈악!!

“어악!”

“햐읏…?!”

바깥에서 난 소리를 듣고 한눈을 팔던 나는 내 쪽으로 넘어지는 티르시를 반사적으로 받았다가, 실수로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와 시발,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네.

억울한 건 하필 붙잡은 손이 촉감이 없는 의수였다는 점이었다.

아니 씨발 그, 아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짜 손도 아닌데 성추행으로 몰리면 억울할 것 같다는 얘기다.

21세기 지구인답게 미투 생각부터 나는 나였지만, 다행히 티르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일어나서 얼굴만 붉혔다.

“무, 무슨 일인가요?”

“제가 확인해 보고 오겠슴다.”

괜히 낯뜨거워서 바로 뛰쳐나간 나였지만, 실제로 바깥은 난장판이었다.

“Kyyyyc!! Kyyyyc─!!!”

벌레를 닮은 몬스터가 마부석에 달려들고 있었다.

─쿵! 베임은 마차의 실드만 믿고 소검을 휘둘러서 벌레를 뒤로 날려버렸다. 이 험한 세상에서 집사 겸 가이드를 하려면 무기 쯤은 쓸 수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 씨팔 뻐킹 레이시스트 새끼가!!”

백인과 동양인도 있는데 흑인인 베임이 죽으면 우리가 PC주의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말 것이다! 기겁한 나는 즉시 모래바닥을 박차고 날아들며 창을 뽑아 벌레를 세 쪽 냈다.

“버러지 컷!!”

“Kyyc──!!”

미스릴 창날이 번뜩이자 놈은 머리 가슴 배로 해부학적인 박제가 되어 모래사장에 쏟아졌다.

“베임 씨! 괜찮으십니까?!”

“예, 예. 죄송합니다. 제 부주의로 조디버그의 함정을 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조디버그? 이 놈 이름입니까?”

나는 뒤져버린 몬스터를 가리켰다.

전갈의 상체와 꼬리에다 모래지옥 벌레의 하체를 붙인 듯한 덩치 큰 몬스터는 그대로 절명해서 움직임이 그쳤는데, 대충 봐도 골든 리트리버 정도의 체구였다.

“그렇습니다.”

베임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듣자하니 이 몬스터는 어미가 사막에 알을 까 두는데, 그 알이 부화하면 지반을 갉아서 함정을 판다고 한다.

“그렇게 판 함정에 빠진 생물을 잡아먹으며 덩치를 불리는 몬스터입니다. 저건 아직 새끼이고 말입니다.”

“……저게 새끼라. 사막의 몬스터는 덩치가 크군요.”

나는 아내들이 나오는 걸 곁눈질하며 말했다.

함정이라곤 했지만 이 황량한 사막의 풍경에서 모래바닥의 높낮이를 구분할 방법은 없을 듯 했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좋아질 듯한 사막의 지평선을 보면서 바닥의 높낮이까지 구분하라고? 무모한 소리.

“죄송해 하실 것 없습니다. 대충 보니까 저 함정을 눈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이는군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바로 대처하겠습니다.”

베임 씨는 프로페셔널하게 대답하고는 바로 대처했다.

그의 성실한 노동자로서의 자세에 감명을 받은 나는 다른 일행들이 전부 내린 마차를 빙 돌아서 푹 꺼진 바닥으로 내려갔다. 마차의 주변에는 찐득한 액체가 흥건했다.

“으, 디스거스팅.”

혀를 차며 그 액체를 피해서 발을 벌린 나는 마차를 번쩍 들어올렸다.

발이 꺼지지 않게 야수회귀의 마나로 바닥에 발판을 만든 건 말할 것도 없다.

“데드 리프트 3000kg!!”

“끄억?!”

낙타 여러 마리가 끌던 마차가 번쩍 들리자, 낙타를 시켜 마차를 견인하려던 베임이 기함을 하며 넘어졌다. 나는 대충 밀어서 모래지옥 밖으로 꺼내놓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오래 걸릴 듯 해서 그냥 제가 꺼냈습니다. 다시 탈까요?”

“아,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로 출발하긴 곤란합니다. 저 진물을 닦아내고 처리해야 해서……”

“……설마 냅두면 냄새를 쫓아서 다른 벌레들도 몰려오고 그런답니까?”

“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미의 무리가 새끼의 알에 담긴 진물을 냄새를 쫓아가서 사냥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확실히 닦아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면 됐죠.”

“저, 그래서 어느 정도 걸리나요……?”

말을 끝내고 거듭 사과하는 그를 만류하고 있자, 빠르게도 이 사막의 더위에 지친 듯한 라리루라가 물었다. 베임은 뭐 자기가 모래지옥을 새로 만들 기세로 머리를 박았다.

“마법으로 닦아내도 2~3시간 정도는…… 진물에는 소량의 마나가 섞여있어서, 제독 포션으로 중화해야 합니다.”

“2~3시간이라……. 일정에 맞겠습니까? 밤에 사막을 이동하는 건 위험할 텐데요.”

얼마 안 가면 밤이다. 경연대회 때문에 일정을 좀 타이트하게 잡아서 출발 시간이 약간 늦어졌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달빛과 햇빛만으로는 이 앞뒤좌우 구분도 안 되는 풍경을 나아갈 수 없다는 건 안다.

아니, 나아갈 수는 있어도 100% 헤매다가 좆 된다.

우리 일행은 이동과 정찰에 특화한 치트키를 상당히 많이 갖고 있기에 조난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헛걸음을 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베임은 이미 해결법을 생각해둔 듯 대답했다.

“1시간 거리에 하룻밤을 묵을 만한 유령도시가 있습니다.”

시발, 뭐요? 유령도시?

나는 훅 들어온 이름에 눈을 끔뻑거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