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했습니다. 이 이단의 종자에게서 〈임모르탈리스〉의 정보를 캐내면 되는 거군요?》
어허. 기분은 이해하지만 저를 쳐다볼 때까지 눈을 그렇게 만들진 말아줬음 좋겠습니다?
거 눈빛만 갖고 사람 하나 잡겠네.
《예. 저 놈 말고도 더 많이 생포하거나 죽일 수 있을 듯 하니, 거침없이 심문해 주십시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
원래 중요한 일은 프로에게 맡기는 것이다. 나는 영혼과의 면담이 안 먹히면 고문 같은 거 못 한다고. 마음이 여려서.
《성기사대!》
추기경은 나르메르-나일 느낌이 나는 성기사들에게 생포해 온 놈은 맡기고 싱긋 웃었다.
《오프툼과 만나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영주님께도 대략은 이야기를 전해들었으니,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더 대접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추기경은 그렇게 말하고 물러났다.
돌아서는 순간 눈빛에서 엿보인 살기를 보면, 혹시 고문을 직접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허미 쓰벌 무서운 거. 이 사막나라에는 증오의 연쇄가 뿌리 깊이 박혀 있나.
그래도 그 증오의 연쇄가 내게는 도움이 되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임모르탈리스〉를 꾀어낼 방법이 있다는 말과 아주 작은 인맥과 성의만으로, 보통은 먼 발치에서 얼굴을 한 번 보는 게 고작일 사람과의 만남을 예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몇십 분 정도 기다리자, 다과의 맛에 질릴 때가 되서야 한 사람의 신도가 방에 나타났다.
이집트 교회 오빠처럼 생긴 남자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노회한 태도로 인사했다.
《제가 사티스 교단의 교주인 아흐메드-샬라비입니다.》
《융숭한 환대 감사합니다. 노르드입니다.》
나는 교주와 마찬가지로 겸손하게 인사를 박고서 웃었다.
《매번 있는 일입니다만, 제가 성이 없다 보니 자기소개를 할 때는 조금 곤란하더군요.》
《그거 참 큰일이군요. 저희 교단으로 괜찮으시다면 노르드 님의 성을 작명해 드려도 좋습니다만.》
《감사한 일이지만, 조금 시기상조인 듯 싶군요.》
《그렇습니까? 언제든 말만 하십시오. 앉으시죠.》
신변잡기를 주고받고 착석. 나는 혼자서 털레털레 들고 온 007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교주의 눈이 순간 그쪽을 향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일개 서민이라 시종 같은 걸 데리고 다니지는 못해서.》
《아닙니다. 저야말로 실례했습니다.》
《헌데 실로 겸손하시군요. 신도들의 귀감이십니다. 노르드 님만 못한 졸부들도 노예를 부려가면서 자기 손의 사용법을 향락을 즐기는 데에만 사용하거늘.》
이거 존나 직설적이시네.
성격이 원래 그런 건가? 도저히 교주(=교황) 급의 인사가 될 나이로는 안 보이니만큼 실제 나이는 훨씬 더 많을 텐데.
물론 나로서는 알기 쉬워서 좋긴 하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복잡하거든.
《이쪽은 귀하의 교단에서 좋은 일에 써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헌금입니다.》
상대가 직관적으로 나오는만큼, 나도 바로 상자를 열었다.
미스릴 주괴가 번쩍거리며 세련되게 자기주장을 해댔다.
《저희 사업이 확장하기 전이라면 시세에 큰 변동은 없을 것입니다. 충분한 자금이 될까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하하.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겠습니까? 저희들은 신자님의 헌금을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진짜로 좋은 일에 쓰일지, 아니면 핵심 중추의 권력자들의 포켓 머니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이걸 뇌물 뿌리듯 쓰는 것도 아니고, 사티스 교단도 부정부패가 심한 곳은 아니라고 하니 크게 문제는 없겠지.
평화유지 어쩌구나 뭐시기 보호협회가 돈 없이 굴러가는 것 봤는가?
결국 단체의 운영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 말도 있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던가?’
그리고 전쟁이야말로 가장 끝내주는 돈지랄이다.
왜냐고? 전쟁은 돈 먹는 하마인데, 하마는 생산성이라곤 똥 싸는 거랑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밖에 능력이 없걸랑.
그나마 진짜 하마는 새끼라도 치지, 전쟁이 낳는 건 죽은 병사들의 고아와 황폐해진 터전이라는 사생아 뿐이다.
그런 점에서는 도박보다 더하다. 도박은 올라간 판돈을 다 쓸어담갈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전쟁은 판돈을 테이블에 턱 올리면 상대의 돈이랑 내 돈이 반물질 결합하듯 부딪혀서 뿅 사라진다더라고.
차이점이라면 패가 아니라 판돈으로 승부하는 게 룰이고, 이기면 상대의 지갑을 직접 뺏어도 된다는 점일까.
‘근데 문제는 이 사람들의 전쟁 상대는 흑마법사란 거지.’
나르메르-나일은 365일 흑마법사와 전쟁을 벌이는 나라.
그리고 흑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뺏어갈 게 없다. 죽여서 뭘 뺏을 건가? 개개인의 푼돈? 흑마법 마도서?
시팔 그딴 걸 어따 써. 테러와의 전쟁은 이렇게 좆 같음의 극한이다.
‘확실한 건, 사티스 교단은 흑마법사에게 원한을 가진 신자들이 많다는 점이야.’
다시 말하자면, 교단을 운영하려면 돈이라곤 좆도 안 되는 흑마법사의 섬멸을 염두해 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하면? 게이물로 드리프트를 해버린 웹소설보다 더 망해버릴 걸. 신자들이 손절하고 떠나버린단 뜻이다.
돈을 물 쓰듯 써야 하는데, 돈이 들어올 구석은 없다.
우리 고향 지구의 종교처럼 ‘유일신’이나 ‘너 이단’ 따위의 가불기로 사람들의 삥을 뜯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내 기부금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오르는 것이다. 억 소리 나오는 슈퍼 금괴인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사업 크게 벌린 게 존나 많은 곳에서 도움이 되는군.
《교단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르드 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에 수렵신 님도 감읍하실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듣고 가장 빨리 올 법한 분을 아직 뵙지를 못 했군요.》
《제 신실한 벗, 오프툼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딱히 그 아저씨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 계획대로 굴러가면 〈임모르탈리스〉를 찾아내게 될 가능성은 컸다.
그 새끼들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둔 사람이면 소식을 듣고 바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지금 새롭게 발견된 피라미드에 있습니다.》
《……어디에요?》
너무 의외의 장소라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설마 보물이라도 파밍해서 장비를 더 좋은 걸로 갈아끼려 그러나? 그러면 호오오옥시 미스릴 장비 안 필요한지 한 번 물어봐야겠군. 완전 걸어다니는 광고판이자너.
교주는 쓴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그쪽에서 흑마법사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 해서 말입니다. 보고가 없는 걸 보면 바라던대로는 해결되지 않은 듯 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 하지만 어째서 피라미드에?》
《그 이단의 종자들은 당최가 쥐새끼처럼 숨어 사는 것에 이골이 나서 말입니다. 오프툼이나 추기경처럼 흑마법사를 알아볼 수 있는 자들조차 발품을 뛰어야 합니다.》
함께 들어온 신도에게 미스릴을 가져가게 한 교주는 짐짓 농담을 하듯 창밖의 여신상을 가리켰다.
《수렵신께서도 수십 대 전의 교주에게 말씀하셨지요. 사냥이란 활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피라미드의 보물을 노리고 모여들 흑마법사는 확실히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임모르탈리스〉의 본거지도 미발견 피라미드로 여겨지는 실정이니.》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라미드는 왕의 묘지이고, 발견되면 바로 도굴꾼과 조금 양심적인 도굴꾼─탐험가─에게 털려버린다.
그러니까 안쪽에 함정을 까는 수고만큼, 존재가 발견되는 일 없도록 마법도 걸어둔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사막을 헤매던 사람이 발견해야만 찾아낼 수 있다던가.
《하지만 소식을 들었으니 이미 이동 중일 겁니다. 어디서 소문이 흘러나갈지 모르니만큼 조심하고 있겠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가 제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와 준다면 천군만마 같겠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마쳤다.
이걸로 내가 사티스 교단에 온 목적의 반을 이뤘다. 기술 경연대회에 꾀일 파리들을 찾아내서 축출할 준비는 대충 다 끝났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는 라리루라의 옆에 찰싹 붙어서 마케팅 겸 흑마법사 사냥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이 모든 사업과 가족의 안전을 위한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남아 있다.
《오늘은 교주님을 뵐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나는 교주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틈이 생기도록, 달인의 오감을 풀가동하며 빈틈을 찔러들어갔다.
《그런데, 혹시 괜찮다면 저도 수렵신 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신자는 아닙니다만, 부디 수렵신님게 잠시 기도를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예배라?》
교주는 어쩐지 잠깐 뜸을 들아다가 말했다.
《저희 교단에서는 교리의 성질 상 타국인이나 귀족 분이 선호하시는, ‘그런’ 예배를 도맡는 여신도들은 없습니다. 물론 인근 교단에서 초청을 알선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예?》
《노르드 님이라면 여신도들 사이에서 누가 귀하를 보필할 것인지 경쟁이 일어나고도 남을 것입니다. 특히 하티스 교단에서 활동하는 여신도들은, 음. 정력적인 분이 많으니까요.》
《정력적? 엥? 경쟁요?》
뭔가 약간 말이 안 맞물리는데. 대체 ‘그런’ 예배란 게 뭔데 씹덕아.
내가 어벙한 표정을 짓자, 교주도 내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여신도를 희롱하며 충족심을 채우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어서요. 때문에 저희는 그런 쪽으로는 예배의 도우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어…….》
그러니까, 그거지? 사이비식 ‘예배’?
내 육봉이 메시아니라~ 하는 그거의 나르메르-나일 버전?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 시발 종교쟁이 새끼가 미쳤나?’
기껏 헌금까지 했구만, 애먼 사람을 불륜남으로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