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12화 (512/1,009)

‘이 시발 종교쟁이 새끼가 미쳤나?’

기껏 헌금까지 했구만, 애먼 사람을 불륜남으로 만들어?

내가 지조가 모자란 하렘남이긴 해도, 뜬금없이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 사람 취급까지 받다니! 격렬한 분노 탓인지 내 안에서 이미 뼈대만 남은 언데드 유교 드래곤이 날뛰어댔다.

“후우우…….”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분노를 억제했다.

오딘도 누차 말하지 않았던가. 분노를 컨트롤하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악용하는 게 문제일 뿐 원래는 이 나라 고유의 신앙이자 문화 아닌가.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면, 여신도들이 그…… 약간 정조관념에서 타국과 인식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오히려 그런 예배를 지양하고 있는 교주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애먼 사람 잡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여신도들은 알몸이나 시스루로 돌아다닌다고 그런다던가.’

예전에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이것도 문화의 상대성인가. 그렇다면 이해하는 수밖에.

산낙지 좀 먹는다고 미개한 새끼라는 소리를 들으면 한국인들도 빡칠 것 아닌가.

반대로 ‘한국인들은 전부 복날마다 개고기를 먹는다면서?’ 같은 인종차별 발언을 하지 않게도 조심하자. 모든 여신도가 그렇고 그런 건 아닐 것이었다.

내가 아는 세크메트 길드의 네페르티티도 처녀감별 결계를 통과한 몸이었으니까.

《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수컷 두 마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고자 연신 실없는 억지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 헛방을 친 탓에 기가 빠졌지만, 오히려 잘 됐다. 나는 뻐근한 표정근 뒤에서 눈을 빛냈다.

나만 진이 빠진 게 아니라, 교주도 헛다리를 짚어가며 정색한 게 쪽팔렸는지 어색한 느낌으로 방심한 상태!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나르메르-나일에 온, 가장 큰 목적을 꺼내들 때였다.

《크흠.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런 의미의 ‘예배’가 아니라, 직접 뵙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직접 말씀이십니까? ……직접?》

웃음 사이에 끼워넣은 예리한 칼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받은 교주는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삼켰다.

한 순간 늦게 무언가 깨달은 듯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예. 교주님께서 섬기는 여신님의 존안을, 예배를 통해서 ‘직접’ 뵙고 싶습니다.》

──예전부터, 의문으로 생각하던 게 있다.

‘라그나로크로 신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사제들은 어떤 원리로 신의 힘을 빌려오는 거지?’

처음부터 저들이 신성력이라고 부르는 신의 마나도 신들이 내려주는 게 아니라, 근육이나 평범한 마나처럼 개개인이 단련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을까?

신들이 사라진 고대 문명에서 인간을 신으로 추대하기까지 했던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신앙은 마음가짐일 뿐이고, 저들이 가진 능력의 핵심이란 기도와 고행으로 마나를 쌓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인디언들이 날씨를 맞추는 게 초능력이 아니라 동물적인 감각인 것처럼, 능력과 신앙은 별개일 수도 있지 않은가.

불의 신이 죽었더라도 세상에서 불의 마나가 사라질 턱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의문스러운 부분이 남는다.

‘사티스 신도에게 내려지는, ‘사냥 대상을 알아보는 능력’은 도대체 어떤 원리와 기준으로 주어지지?’

평생 사냥할 대상을 정해서 기도를 바치고, 그 대상을 잡은 뒤에는 여신 사티스의 곁으로 초대받는다.

말이 좋아서 초대지 그냥 뒤지는 거다.

목표를 판정해주는 기준은 뭐지?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하고 멀쩡한 사람의 생목숨을 거둬가는 건 또 어떤 식으로 실현되고 있는 거고?

사티스가 생전에 남긴 안배가 아직 작동하고 있는 걸까?

사람이 퇴사해도 시스템은 남아 있듯, 수렵신의 사후에도 신도들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으면 우주가 나서서 그들의 눈에 드래곤볼 레이더를 내려주는 걸까?

그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희박하다.

오딘이 개입해서 설계했을 토르의 후계자조차 애먼 병신들한테 빼앗겼는데, 마법의 신도 아닌 사냥의 신이 남긴 안배가 아무런 유지 보수도 없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오프툼이 내가 흑마법사라고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줬을 때, 다른 교단의 성기사들은 그게 빗나갔을 가능성은 의심하지도 않았어.’

사티스 신도가 가지는 ‘사냥감의 진위를 구분하는 능력’은 빗나가거나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애먼 사람을 잡는 일도 없이, 신이 죽은 후에도 수천 년이 넘도록 100%의 적중률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라?

그런데 그만한 시스템이 또 유지 보수마저 필요 없다?

흐으음…. 그게 팩트라면 오딘은 사티스한테 그 머리에다 뒤집어 쓴 마녀 모자도 넘겨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마법의 신이 만든 안배는 죄다 조졌는데 옆집 사냥의 신은 저렇게 개쩌는 안배를 남겼대요. 깔깔깔.

그게 정답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엔 너무나도 적다. 아무리 잘 만든 구조도 천 년 가면 오래 간 거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석연치 않지만, 확신도 없다.

그리고 확신은 없지만── 밑밥을 던져볼 가치는 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막대한 헌금을 내고, 영주들의 백업과 내 명성까지 빌어가며 이 자리까지 왔다.

그리고 그렇게 빗나갈 거라 생각하고 빈 공간에다 휘두른 헛발차기를── 수렵신의 교주는 온 몸을 던져 막아냈다.

《……노르드 님께서는 수렵신을 배알하시고, 대체 어떠한 청을 올리고자 하십니까?》

그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경계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딴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힘이 빡 들어간 어깨와 허리가 훤히 보였다. 내가 꺼낸 말에 긴장했음에도 그걸 티내지 않으려 들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런 반응 덕분일까. 내 가슴 속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환희가 대신하는 것을 느꼈다.

─불끈.

나는 그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결의를 다지듯 주먹을 쥐었다.

이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사실, 도무지 치유하기 힘든 저주가 하나 있어서 말이죠. 부디 수렵신께 청을 올려서 그것을 해주하고 싶습니다.》

《노르드 님의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저희 교단은 해주를 특기로 삼진 않습니다. 물론 저희의 신께서도요.》

교주는 딱 잘라 말했다.

《오프툼의 조언 탓에 착오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만, 혹 괜찮으시다면 다른 교단을 찾아 주십시오.》

이번에는 대신 알선해 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만한 기부금을 쾌척한 사람에게 하는 것 치고는 지나친 단언이었다.

어떻게든 이 화제를 넘기고자 하는 생각일까. 하지만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여기 나와서도 안 됐다.

함정을 파는데 동참하러 온 사람한테 미안하지만, 이곳은 당신을 위한 함정이거든.

《아니오. 제게 걸린 저주가 얘기가 아닙니다. 또한, 한낱 인간이 해주할 수 있는 저주도 아닐 거고요.》

《……노르드 님이 아니라면, 누구의?》

당황한 듯 입을 달싹이며 묻는 교주. 나는 말을 멈추었다.

망설여서 그랬다기보다는,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서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던 것이다.

누구의 저주냐고? 그딴 건 뻔하지 않은가.

《제 아내와, 그녀의 친족입니다.》

베로니카와 바이콘 신족에게 걸린 저주.

그들을 멸망에서 구원하고자 내렸던 타천의 저주를 풀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저주를 건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동격,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의 조력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자면── ‘신’의 도움이 말이다.

《……정 그러시다면, 〈임모르탈리스〉와의 싸움이 끝난 뒤에 제가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겠습니다.》

내 눈빛에서 뭔가를 보기라도 한 걸까.

어쩌면 내가 뭘 하든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교주 씩이나 되서 겸연하게 고개를 숙인 그는, 마치 자기 조직의 최고 관리자와 손님의 약속을 최대한 늦추려고 드는 중간관리직처럼 떨떠름하게 말했다.

《허나 어느 교단에서나 그렇듯이, 신을 뵙고 그 목소리와 계시를 들을 자격을 가진 이는 한 줌의 영웅과 신실한 신자뿐입니다. 그 점은 부디 사전에 알아두시길.》

《하하. 그거야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래도 그 문제는 하등 걱정할 게 못 됩니다.》

나는 발을 돌려, 이쪽에 활을 겨누고 있는 거대한 동상을 보았다.

신대에 만들어졌을 동상은 여전히 비바람에 굴하지도 않고 만들어졌을 당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있었다. 마치 신상이 묘사한 신이 직접 가호를 내려주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게 나의 억지스러운 추측에 확신을 한 줌 더해주었다.

《정말로 수렵신께서 저희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설마 신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저를 무시하진 않으실 테죠.》

저 신상과 교주의 격한 반응 덕분이었을까.

나는 앉은 자리에서 수십 억원에 상응하는 현금을 태운 게 하등 아깝지가 않았다. 확고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저주의 존재를 알고 나서, 더럽게도 오래 걸렸군.’

내 앞에 나타나는 오딘은 분신일 뿐이다.

라그나로크가 다 끝난 뒤에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알 턱이 없다.

로마니아의 신들은 고대문명의 인간일 뿐이다.

살아 있는지도 모를 뿐더러, 진짜 신에게 버금가는 지위와 힘을 가졌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픽트 인 마을의 여신은 망해일 뿐이다.

자기 이름조차 잊고 힘조차 남지 않은 그녀에게는 부탁해 봤자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현대에서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자신을 본뜬 신상을 무너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존재.

태고에서부터 존재하던 나르메르-나일의 진짜배기 신.

‘……드디어 찾았다. 베로니카의 저주를 풀 단서.’

수렵의 여신 사티스는, 이 시대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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