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에게 생각날 때마다 쳐맞아가며 알리씨크로 복귀.
─시끌벅적!
며칠에 걸쳐서 돌아온 알리씨크는 저번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자제국가인 만큼 2주일 쯤 전에는 피라미드를 노리고 왔던 외국인 비율이 그나마 높았는데, 지금은 누가 봐도 터번이나 사막의 옷들이 몸에 익은 듯한 현지인들이 많았다.
─끼익, 철컥.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꼭두각시 인형도 자주 보일 지경이다.
강아지나 어린애를 키우게 되면 평소와 똑같은 거리에서도 산책하는 개나 아이 유모차가 눈에 띄게 된다는데, 이번에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겠지.
저들은 기술 경연대회에 참가하고자 온 이들일 것이었다.
이미 예선 선발은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우리는 예선은 프리패스야. 시드 참가 같은 거지.”
영주를 보러 가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라리루라를 불러서 얘기를 나눴다.
장비 조정을 맡은 오드리는 자기 장래 직장의 명망이 달렸다는 생각에 최종 조정 중이었다. 저번에 나타난 미이라들을 상대하면서 찾아낸 문제점을 수정 중인 것일까.
내 무릎에 앉아서 목에 팔을 감은 라리루라는 잔망스럽게 콧소리를 냈다.
“흐응. 정말 안 나가도 괜찮아요? 형평성 면에서.”
“나가는 편이 더 형평성이 나쁘지. 너랑 마주치면 쟁쟁한 우승 후보도 예선 탈락이잖아.”
“그렇군요~♡ 아, 선배. 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머리카락을 좀 다듬어두고 싶은데, 영주님한테 말 좀 전해주실 수 있어요~? 프랑 언니를 귀찮게 하긴 싫어서.”
“흐흐. 못해줄 이유가 있나.”
애교를 부리면서 조르는 라리루라가 존나 귀여워서 뇌수를 거치지 않고 승낙하는 나였다.
‘이게… 꽃뱀에게 홀리는 흑우의 마음…?’
물론 내 손으로 목줄을 채운 꽃뱀이긴 한데, 나를 꼬시는 솜씨가 원체 천재적이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다 든다.
어쩌면 나는 이 한 몸을 바쳐서 세상 남자들을 구원한 메시아가 아닐까? 아마 모태솔로도 인정할 듯.
참을 이유도 없었기에 1시간 정도 라리루라와 살을 부딪히다가 여관을 나왔다.
가는 곳은 당연히 영주관이다.
2주 가까운 멀티 태스킹의 결과를 수확할 시간이다.
《아버지는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새끼들은 왜 이 지랄인 것?
얼이 빠진 나는 영주 대신 나타난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주무시고 계신다고요? 지금 해가 중천에, 몇 시간만 있으면 대회 예선 3차전이 시작하는데?》
우리야 개최자격으로 라리루라를 시드권에 올려놓았지만, 대회는 오늘로 예선전을 끝낸다.
영주가 거기에 참가할 필요는 없지만 서류 일만 해도 해야 할 게 만만치 않을 텐데? 치안 쪽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야 정상 아닌가?
혹시 건강이라도 나빠졌나? 나이가 나이니 그럴 만은 하다.
빠득….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톨리오라고 소개했던 영주의 아들은 이를 갈며 말했다.
《예. 듣기로는 어젯밤 예배가 그리도 격렬했다더군요.》
예배?
존나 무슨 불교의 108배도 아니고, 아무리 지천명의 노땅 틀딱이라지만 예배를 보는 게 빡세서 이 중요한 날에 잠이나 퍼질러 자고 있을 리는 없다.
사전 정보로도 그렇게 신실한 사람이라는 소린 못 들었고.
‘……즉, 그런 의미에서의 ‘예배’ 말이군.’
이 씨팔럼이 진짜.
지랄 났네, 지랄 났어. 할배 고추 서요?
나도 남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공과 사 정도는 나눠 둬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예선은 빠르고 간소하게 치른다지만 이게 무슨 추태인지 모르겠다.
설마 내가 지를 패싱하고 다른 영주들이랑 라인을 뚫었다고 삐졌나? 아니, 대가리가 있으면 지가 나르메르-나일의 판매 독점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을 건데.
그럼 진짜 여색에 빠져서 일을 방치 중이야? 돌아버리겠네.
《허. 그러면 대회는 톨리오 님이 맡으십니까?》
《그렇게 되겠죠.》
《……이해했습니다. 뭐, 남자라면 그럴 수 있죠. 그러면 그, 절 치료해 주실 사제님과의 연결은 어떻게 됐답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화제를 바꿨다.
이마저도 안 해놓고 좆을 놀리다가 퍼질러 자고 있는 거면 알리씨크랑은 손절하는 게 맞다. 적어도 눈앞의 이 나이 마흔 짜리 도련님이 영주에 오를 때까지는 말이다.
《……시다나브 님 말입니까? 그런 건 왜 물으시는지?》
그런데 씨발 이 병신은 왜 또 지랄이람.
갑자기 무슨 연적이라도 꼬라보는 눈깔을 만드는 도련님의 태도에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시다나브가 뭔데 씹덕아.
《그 분이 아버님이 절 위해 불러주셨다는 사제님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그 분은 어제 노인의 추레한 욕망을 상대하시느라 다분히 지치셨습니다. 양심이 있으시다면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자중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적의가 쏟아지네 아주. 누가 보면 내가 니 여친 좀 빌려가겠다고 말한 줄 알겠어.
말로 개기는 게 어이가 없어서 눈에 힘을 주자 쫄린 듯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가리를 숙이는 톨리오.
손을 덜덜 떠는 걸 보면 이 새끼는 그 벤자민인가 하던 그 병신 트롤러에 비하면 생각머리는 있는 모양인데, 뭣 때문에 공포까지 참고 이 지랄이란 말인가?
‘뭔데 씨발. 애비랑 아들이 여자를 두고 싸움이라도 벌이는 거야?’
부자가 2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쌍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씨 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아주 염병을 짝짜꿍으로 떠는군. 무슨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막편인가.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점심, 대회 첫 본선이 시작된 후에 찾아뵙죠.》
《물론입니다. 개최식 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을 보내두겠으니 편하게 기다리시길.》
아, 여기에 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 이거지? 미치겠네.
‘이거 괜찮나 몰라.’
대회는 예선 참가의 휴식기간을 포함해서 순서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 총괄해야 하는 본인이나 그걸 대리하는 사람까지도 저 꼴이면 위험한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에, 나는 인상을 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에는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하는 길에 관광을 하며 느긋하게 왔고, 사티스 교단의 사냥개들도 다들 도시에 숨어들어가 있겠지.’
내 예상대로 잘 숨어들어온 이들은 신분을 숨기고 대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 섞여들어 있었다.
나는 인상미채의 가면을 쓰고 사냥개들의 대표와 만났다. 말할 것도 없이, 흑마법사 사냥꾼 오프툼이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같은 흑마법사 사냥꾼으로서 존경스럽구만.》
그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품에 넣던 나는 픽 웃었다.
《이쪽 업계의 대선배님께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보다 당신이 직접 와도 괜찮습니까? 안 바빠요?》
《나야 숨어 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지 않나. 이런 일이 차라리 어울리지.》
건틀렛을 달그락거리며 오프툼은 말했다. 말투에서 전보다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새 동지의식이라도 가지게 된 모양이다.
〈임모르탈리스〉 낚시 계획이 그렇게 맘에 들었나.
《이미 시내를 샅샅이 색출 중이다. 이미 날 포함한 동지 몇 명은 알리씨크에 숨어든 흑마법사들을 느끼고 있어.》
《여럿입니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나요?》
《직접 보지 못하면 있다, 없다밖에 못 느끼지. 수렵신님의 가호는 진위를 구분하는 힘이지 추격하는 힘이 아니라서. 단, 정보전에서 앞섰으니 오래 걸리진 않아.》
그렇겠지. 나름 포스트 FBI 같은 놈들인데 압도적 이점을 갖고도 일을 말아먹으면 내가 헌금한 돈이 아깝잖아?
《맡겨 주게. 우리 역시 사냥의 프로야.》
《여러분들의 능력을 의심한 적은 없습니다.》
의욕을 복돋아주는 립 서비스를 던져주고, 이제 본론이다.
《시다나브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하토르 교단의 고위 여사제 말인가? 이름은 들어 봤지. 남부에서 유명한 시골 마을의 미녀였는데, 재능을 발견당해 하토르 교단에 징집…… 이크, 세례를 받은 아가씨라더군.》
안다면 됐다. 직접 얼굴을 보러 가게 할 수고를 덜었군.
《……그녀가 흑마법사의 끄나풀일 가능성은요?》
《하토르 교단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지. 나도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네.》
담배를 태우던 오프툼은 회의적으로 말했다.
《1~2달 사이에 흑마법사가 된 게 아니라면, 그 아가씨가 내 눈깔을 통해 발현된 수렵신님의 안목을 속일 정도의 힘을 가졌다는 뜻인데…… 그럴 가능성이 있겠나?》
《본인은 흑마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흑마법사의 수하로서 일할지도 모르죠.》
《그게 그녀에게 어떤 부귀영화를 주지? 1년도 안 걸려서 고위 사제에 오른 신성력의 보유자야. 그 재능과 장래성을 버려가면서 흑마법사와 결탁해서 얻을 이득은?》
《……자신을 억지로 데려간 하토르 교단에 대한 원한?》
《그런 거라면 리스크가 큰 흑마법사보다 더 좋은 방법이 많지.》
오프툼은 담배연기를 뱉고 꽁초를 손에 비벼껐다.
─달칵. 그가 허리에 매직 아이템을 만지자 그로부터 온갖 냄새가 사라졌다.
《자네 반응을 보면 여기 영주도 홀려버린 모양이지? 그것만 봐도 그래. 제 미색을 이용할 마음만 있다면 원수 몇 명 쯤은 팽하기 어렵지 않을 거야. 한 맺힌 여자는 무섭거든.》
《……그건 그렇군요.》
오딘 같은 찐퉁 신도 사냥의 신이라고 불리는 여신한테서 지 정체를 감출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일개 인간이 흑마법사나 그 끄나풀이다?
‘진작에 다 뽀록나서 마녀 처형 풀코스를 타고도 남았겠지.’
애미 시발, 그럼 진짜 발정난 빡통들이 좋다고 풀발해대고 있는 거란 말인가? 대체 얼마나 미인이길래.
판타지 세상답게 무슨 태어났을 때부터 축복 같은 걸 갖고 태어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경국지색이란 말이 칭찬이 아니라 패시브 버프로 적용되도 이상할 것 없는 이세계니까.
《……갑자기 그녀를 만나는 게 무서워지는데요.》
《하하. 그래도 자네 몸에 그득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없애려면 그녀만한 도우미도 없을 거야.》
그래 씨발. 안 그래도 그 얘기도 꼭 물어보고 싶더라, 새꺄.
《제길,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흑마법사라는 의심을 하지 않으신 건 감사합니다만, 알려주시지 그랬습니까?》
《그 정도의 증세는 고대유물 급의 마검이나 마창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자주 보이니 말이야. 그리고 옆에 여자가 여럿 있으니 냅둬도 조만간 눈치챌 거라 여겼지, 뭐.》
《예. 정말 그렇더군요. 썩을.》
《크흐흐. 도구의 힘을 사용하는 흑마법 사용자와 진짜 흑마법사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 수렵신님의 축복으로도 전자는 구분할 수 없지만, 감으로 알아차릴 자신이 있다네.》
축복에도 한계나 단점은 있다는 건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어둠과 음의 마나에 오염당한 사람까지 싸그리 죽이면 그게 마녀 사냥이지.
《그래도 일 처리에 문제는 안 되겠죠?》
《어디 흑마법사만 악인이던가? 사냥꾼은 때로는 몰염치한 도적도 사냥한다네.》
프로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오프툼과 헤어진 내 눈이 뒷골목의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캣 엠페러 타임(Cat Emperor Time).”
“냐으응~. (생선이다~.)”
고양이의 조상은 원래 사막과 생물이라지?
알리씨크는 항구도시라서 생선이 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