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동하십시다. 여긴 시다나브 님의 눈이 매섭네요.”
그녀의 허락을 받고 네페르티티와 장소를 옮겼다.
영주 저택의 적당한 응접실을 빌렸다. 긴 이야기가 될 듯 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풀썩.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려고 소파에 앉았다.
─포옥.
네페르티티도 앉았다.
내 바로 옆자리에.
“…………….”
마, 니 똘게이가.
“……즈기요. 바로 옆에 앉으시믄 저어가 얘기를 나누기가 쪼금 불편한디요.”
“…………?”
아니, 대가리 좀 좌로 정렬 하지 맙시다.
얘기하자고 불렀는데 옆자리에 앉는 년이 어딨어.
‘예쁘니까 봐 준다 진짜.’
남자였으면 이미 오만상이란 오만상은 다 쓰고 있었을 것.
하토르 교단인가 하는 곳은 진짜 얼굴만 보고 사람을 뽑나.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아대는 네페르티티에게 세간의 상식이란 걸 가르치려다가, 그냥 관두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시도를 안 해 봤을까.
네페르티티가 아싸 중의 씹아싸라서 이상한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면 또 몰라.
‘……혹시 미스릴 클래스가 되려면 정신상태에 어느 정도 하자가 있다거나, 나사가 빠져 있어야 하나?’
나라는 예외를 빼면 미스릴 클래스를 단 사람들 치고 어디 정상적인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나처럼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상대하기엔 다들 머리가 이상하다니까. 미스릴 쯤 되면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기행이 곧 생활방식인 겁니다.
“어, 그래서 말이죠? 말씀드리고 싶은 게…… 머하세요?”
생각하기를 포기한 내가 말이라도 해 보려고 하자, 네페르티티는 무릎을 짚고 앉아서는 내 머리를 막 헤집어댔다.
뭐지? 모근에 대한 무한한 증오를 과시?
쉴 틈을 주지 않는 이상한 행동에 진이 다 빠지려고 하자, 머리를 쓰다듬던 네페르티티가 대답했다.
“……칭찬.”
“칭찬요?”
“응.”
익숙해질까 무서운 단답을 뱉고서 네페르티티는 내 머리를 승룡권 커맨드 넣듯 계속 휘저어댔다.
그녀만한 달인답지 않게 잡스러운 손길이었는데, 어째선지 나는 그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의 뭐 음모론 수준의 비약이다.
이게 대가리 쓰담쓰담이면 배빵도 애정표현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저씨들 차 앞자리에 붙어 있는 스프링 인형처럼 머리를 띠용띠용 하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칭찬이 되느냐는 논외로 치고, 웬 칭찬입니까?”
“열심히 한 사람은, 칭찬받아야 하니까.”
남한테 배운 지식을 그대로 읽는 듯한 발음이었다.
“어…… 제가 뭘 열심히 했죠?”
겸손이 반, 너무 짐작 가는 게 많다는 생각이 반이다.
그녀는 말을 고르는 것처럼 천장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임모르탈리스〉를, 여러 명 해치웠지?”
“넹? 아, 그랬죠. 우연이긴 했지만요.”
“응…… 하지만 많이 힘들었을 거야. 혹시 운이 나빴으면, 죽었을 수도 있고.”
“그것도 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긴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그 녀석들과 자주 만나게 된 건, 내 잘못도 있어.”
이건 또 참신한 의견이군. 나는 눈을 끔뻑였다.
“그 새끼들이 저한테 복수하러 왔다는 겁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복수는, 아니야. 그래도 내가 아비두스를 몰아세우지 않았다면, 그 녀석도 브리타니아까진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어…… 그러니까, 내가 〈임모르탈리스〉랑 악연으로 엮인 최초의 원인이 자기라고 생각하신다, 이거군.
나는 눈만 깜빡거리는 사차원 미녀에게 되물었다.
“그건 네페르티티 씨의 생각이죠? 그 놈 본인한테 들은 게 아니라.”
“……응.”
“그럼 그런 걸로 미안해 하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네페르티티 씨가 아니었어도 그 애비두스는 사르가디스 쪽에 왔을 겁니다. 거기 있던 지저의 탑을 파내려고요.”
“아비두스.”
“예. 아비두스요.”
네페르티티는 그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 떠났으니 모를 만 했다.
하지만 아무튼 그걸 네페르티티의 탓이라고 하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냥 내가 간 곳마다 그 새끼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우글거렸을 뿐이지.
“그보다 정반대 아닙니까? 네페르티티 씨가 없었으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것 같은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픽 웃었다.
“그러니까 미안해 하실 것 없습니다.”
“미안해서가 아니야. 고마워서야.”
네페르티티는 조곤조곤하게 단언했다.
“내가 해치우지 못한 녀석들까지…… 네가 대신 쓰러트려 줬으니까.”
“흐흐. 뭘요. 무상의 노동이었던 것도 아닌데요. 혹시 제가 네페르티티 씨가 쓰러트리고 싶으셨던 놈들까지 대신 해치워버린 건 아닐지 걱정했을 정도였거든요.”
─끄덕.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 사람의 끄덕끄덕은 용례가 너무 많아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시발, 좀 쫀심 상하네. 저 왕족이나 원로원을 상대로도 말의 속뜻을 간파하던 내 엘리트 대갈통과 상성이 영 안 좋은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보답할 만한 게 없어.”
아, 이번 건 좀 알겠다. 약간 시무룩해 하고 있군.
눈썹의 각도가 살짝 내려간 걸 보면 아마 맞겠지.
아무튼 그녀가 나한테 부채의식이나 고마움을 품고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였다.
“……흐으음. 그러면 제 제안을 좀 들어 보시렵니까?”
이제야 좀 본론으로 돌아왔군.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개를 모로 꼬는 네페르티티에게, 나는 쌉진지한 말투로 정황을 설명했다.
그 이후로 내가 1시간을 들여서 설명을 하는 동안, 네페르티티는 거의 대꾸 한 마디 없었다.
가끔 내가 직접 질문을 던졌을 때나 ‘응’, ‘아니’ 하며 짧게 대답하고 땡이었다.
표정까지 멍하니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면 얘기에 집중을 안 하고 있다고 오해했을 것이었다.
“……응, 좋아. 같이 갈게.”
그래서였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그런 대답이 평이하게 돌아오자 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위치를 찾아내고 도주로나 피해 확대를 막으면서 가능한 생포할 생각입니다. 전력이 많을수록 좋겠죠.”
─휴우. 가슴을 쓸어내린 내가 말했다.
“물론 적의 본거지나 위치를 알아내면, 네페르티티 님께도 한 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이걸로 얘기도 끝인가. 정작 중요한 얘기 쪽은 금방 끝난 느낌이군.
나는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네페르티티는 한 2초 정도 늦게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내 손을 잡았다. 잠에 취한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합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나야말로.”
네페르티티는 내 손과 얼굴을 한 번씩 교대로 보고서 작게 대답했다.
피곤한 대화였지만, 아무튼 든든한 전력이 늘었군.
일상에서는 영 미덥지 못한 느낌이기는 한데, 흑마법사랑 싸울 땐 그녀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도 또 없을 것이었다.
***
석양이 저문지 1시간도 되지 않은, 이른 밤.
알리씨크의 야경은 평소보다 밝다. 밤바다의 칠흑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빚은 불빛으로 몰아내려는 듯한 불야성이야 이 사막의 항구도시에 흔한 일이었지만, 그 날은 유독 더 많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
금발의 여인은 낡은 민가를 부르며 그 야경을 바라보았다.
떨어지면 제 아무리 강인한 전사라도 살아남기 어려울 듯 보이는 높은 건물.
알리씨크에서 가장 값비싼 여관의 첨탑 끝에 앉은 그녀의 눈길은 조금 전부터 투기장에 꽂혀 있었다.
기술 경연대회라는 이름은 명목 뿐이다. 사실상 저곳에선 피가 튀기지 않을 뿐, 골렘 공방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었다.
오늘밤의 알리씨크를 빛내는 자리는 틀림없이 저곳이었다.
〈사람끼리 싸우는 거였으면~ 보러 갔을 텐데~.〉
단지, 돌덩이끼리 부딪히는 싸움에 별 관심이 없는 그녀는 애석하다는 듯 장소에 안 어울리는 와인잔을 손 안에서 빙글거리며 돌려댔다.
기다란 금발은 치렁거리며 그녀의 발끝에까지 내려왔으며,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은하수조차 무색하게 반짝거렸다.
복장만은 귀족과 같은 셀럽들을 손님으로 받는 고급 바의 마담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인의 고귀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을 턱으로 부리는 것에 익숙한 이의 눈이었다.
물론 그녀는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맥주도 좋아하지만, 역시 이런 야경을 볼 때는 적포도주가 취향에 맞았다.
술은 안주 나름으로 더 맛이 깊어지기도, 약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녀는 싸우다 죽지도, 피칠갑을 하지도 않는 골렘의 난투 같은 걸 보고자 이곳에 온 것도 아니었다.
예술미라고는 느껴지지도 않는 졸부 취향의 건물이었지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도 있을 테니까.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그때 여인의 뒤편에 한 개의 그림자가 불쑥 솟아났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하얀 불꽃이 일렁였다. 사람의 실루엣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불덩이였다.
〈싸움 구경 중인데? 취미이기도 하고, 일이기도 하고.〉
여인은 놀라지도 않고 대답했다. 입을 댄 와인잔에 립스틱 자국이 새빨갛게 남았다.
〈흙 인형끼리 투닥댄다니, 참 시시한 여흥이야. 시민들도 저런 것보단 이쪽을 더 재밌어 할 텐데. 안 그래? 대장님.〉
신문에서 읽을 거리를 찾던 것처럼 따분해 보이던 여인은 이번에는 전혀 상반된 표정으로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사티스의 사냥개들과 몇 명의 전사들이 야음을 틈타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정기 보고가 늦어진 이유는?〉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임모르탈리스의 준동이 생각보다 거칠었단 말야.〉
〈조사는 끝냈나. 몇 명이지?〉
〈셋.〉
여인은 금빛의 눈동자를 게슴츠레 뜨고 손가락을 세웠다.
하얀 불꽃의 실루엣이 꿈틀댔다.
〈전원 정규 멤버인가?〉
〈네~.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 셋이에요. 혼자 알아낸 건데 칭찬 좀 해 주지.〉
〈멤버 구성은?〉
〈준 간부급 둘에, 진짜 간부 하나. 우리 대장님께서 영혼 채로 갈아버렸다는 녀석하고…… 누구더라? 그 하이 엘프인 고고학 교수.〉
〈예르나 그라시에.〉
〈아, 맞다~ 맞아. 그 예르나가 망령도시에서 해치운 걸로 보인다는 녀석까지 합치면, 사실상 이 도시에 있는 애가 지금 남은 마지막 간부 아닌가?〉
눈에 띄는 2개의 인영이 대화를 나누는데도 밑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그녀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종종 이상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든 사람들마저 눈을 깜빡이다가 아무 이상을 못 느낀 듯 할 일로 돌아갔다.
하얀 불꽃의 실루엣이 말했다.
〈임모르탈리스에서 말하는 ‘육망성의 좌’는 간부의 개념이 아니다.〉
〈네, 네. 깐깐도 하셔라. 말하고 싶은 건 그게 다야? 나는 이렇게 혼자 와서 땡땡이도 안 치고 열심히 일했는데.〉
〈활동 중에 지원 병력은 필요한가?〉
〈……흐응.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여인은 첨탑 끝에서 일어나서 실루엣을 차갑게 노려봤다.
〈엔리르 같은 반푼이나 실패작들이 좀 죽은 걸로 꽤 신중해졌네. 대장이야말로 게르마니아에 배치할 인원이 비었다고 힘들지 않아? 내 군대에서 몇 마리 떼 줄까?〉
〈필요 없다면 됐다.〉
〈아, 잠깐만!〉
제지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실루엣은 실타래처럼 흩어졌다.
〈하아……. 심심한데 얘기 좀 하다 가면 어디 덧나나.〉
허공을 째려보던 여인은 다시 첨탑에 앉으면서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놓은 와인 잔이 밤의 어둠에 녹듯 사라졌다.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흑마법사들의 은신처를 포위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여인은 문득, 그렇게나 혹평했던 투기장을 돌아보았다.
마치 그곳에도 조금은 봐 줄 만한 볼거리가 있다는 듯이.
〈……‘불멸(Immortalis)’이라. 의외로 잘 지은 이름이네?〉
사신(死神)의 여왕은 그렇게 밤의 하늘에 숨어 키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