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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26화 (526/1,009)

눈을 찌푸리던 노르드는 일행과 아이 컨택트를 나누고, 그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끼익…….

여기까지 들어온 이들을 상대로 문을 잠그고 농성을 하려 들지는 않았던 걸까. 잠금쇠가 없는 문은 쉽게 열렸다.

내부는 겉모양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화려했다.

도자기나 수채화처럼 알리씨크에 어울리는 미술품에, 술과 담배.

샹들리에마저 붙은 천장의 아늑한 불빛을 배경으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흑마법사들은, 문이 열리지마자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10개를 훌쩍 넘는 흑마법이 전방을 뒤덮었다.

《쉣-!》

노르드는 기이한 말을 외치며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인사 치고는 격렬한 흑마법의 일제 폭격이지만, 문제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끄러워, 방해야.》

─짜악!!

길어지는 마법 세례에 네페르티티가 문과 노르드 사이의 빈 공간을 꿰듯 채찍을 창처럼 휘둘렀다. 공격을 시도하던 흑마법사들의 머리가 비눗방울처럼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만.》

묵직한 한 마디가 울리자 간신히 포격이 멈추었다.

부웅─!! 【게르튀르】의 초식으로 공격을 막아낸 노르드는 바람처럼 창을 X자로 그었다.

흑마법의 흔적이 항마의 힘에 튕겨나면서 속 뻔히 보이던 저주의 술식이 순식간에 파훼되었다.

《호. 첫 인사니만큼 힘 좀 쓰라고 지시했다만, 그걸 잘도 견뎠군.》

숨이 거칠어진 부하들을 물리며, 총 6명의 흑마법사들이 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프툼은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서 건틀렛을 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매직 아이템인 그의 장비는 쇳소리를 일으키지 않고, 단지 그의 악력에 따라 뿌드득 거리는 소음만을 자아냈다.

《〈임모르탈리스〉의 직속 수하들, 전원 위험인물들이군. 제압할 생각은 않는 게 낫겠어.》

100% 확실하다. 오프툼은 사냥꾼답게 살의를 억누르면서 차가운 이성으로 판단지었다.

‘이만한 귀기(鬼氣). 틀림없이 〈임모르탈리스〉의 제 2군 전력이야.’

〈임모르탈리스〉의 직속 수하이자, 조금 더 실력을 쌓기 나름으로는 정규 멤버로도 승격할 수 있을지 모를 자들!

지식과 감으로 오프툼은 이 암실 내에서 제압 지시를 철회했다.

생포하려 들었다가는 반드시 피를 보게 될 만한 실력자들이 즐비했는데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흑마법사 사냥꾼으로 불리는 그와는 안면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오프툼이 차갑게 미소지었다.

《오랜만이군, 친구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나?》

─파츠즈즈즛! 그의 양팔에서 뿜어지는 오러가 챠크람처럼 굳어졌다.

《다시는 헤어지는 일이 없게, 니놈들의 가죽으로 박제를 만들어다 우리 집에 장식해 주지!! 영광으로 알아라!!》

오프툼의 팔에 걸린 오러 챠크람이 20개 가깝게 쪼개지며 암실의 안으로 쇄도했다.

《이 볼품없는 오러와 기술, 여전히 꼴사납구나! 오프툼!》

《크하하하!! 사티스의 개가 용케 또 냄새를 맡았나 보군! 혼자 올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지?!》

─쐐애애액! 6인의 직속 수하들은 종횡무진하는 오러의 챠크람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피해냈다.

격하의 상대가 달인의 오러를 정면으로 막을 만한 수단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쯤이야 막거나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첫 공격 1번에 전멸할 약자는 이 지하실에 모일 자격이 없었다.

오프툼의 챠크람은 벽을 뚫고 가르며 사라졌다.

촤아아악─!

─척!

3명의 습격대 대장과 6인의 직속 수하들이 대치했다.

이죽거리는 미소, 무표정, 빠르게 돌아가는 눈 등. 표정과 얼굴 상태는 각기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머뭇거리지 않고 살기를 뿜어냈다.

《──크하아아압!!》

〈임모르탈리스〉의 직속 수하들은 부작용을 도외시하고서 자신들의 마법 술식을 한계까지 전개했다.

흑마법의 부작용이라고 한들 목숨보다 무거우랴. 거만함이나 자부심과는 별개로, 그들은 자신들 개개인으론 습격대의 세 사람과 맞서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물며 후일 있을 대가를 두려워하며 싸운다면 살아날 수는 없으리란 것도 말이다.

오프툼과 네페르티티는 그들의 마나가 뿜어내는 압박감을 산들바람을 맞듯 흘려보내고서 방심 없이 자리에 섰다.

3대 6. 숫자 차이는 2배지만 전투력의 총합은 가히 10배 이상이다.

노르드와 두 사람도 임시방편의 습격대였기에 협동하면서 싸우는 것 따윈 바랄 수도 없었지만, 그 점은 콩가루나 다름 없는 적들도 피장파장이었다. 습격대의 3인 대장이 질 가능성은 희박했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총 전력을 따졌을 때의 가정이다.

6대 3이 아닌, 6대 1로 공격을 받게 되면 계산이 다르다.

저 6인의 직속 수하는 미스릴 클래스에는 못 미칠 지언정, 인사 차 공격을 날렸던 부하 흑마법사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고위의 흑마법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최소 플래티넘 클래스 이상인 놈들. 저것들의 일제공격을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전부 받게 되면……’

아무리 달인인 그들이라 할지라도 몸이 성할 수는 없겠지. 오프툼은 냉정하게 그럴 가능성을 고려했다.

미스릴 클래스라고 해도 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동일한 수준에서는 마법사가 전사들보다 일격의 위력은 더 높다. 거기다가 흑마법사는 죽음과 인접하는 대가로 더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 아니던가.

자신들도 적들도 첫 발을 내디디는 쪽이 가장 목숨을 잃기 쉽다. 노련한 흑마법사 사냥꾼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새끼들. 바글바글 많이도 모였네.》

─퉷! 노르드는 일부러라도 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니나가 다를까, 꼴에 결벽증이라도 있는지 한쪽 팔만 이상하도록 긴 흑마법사가 곧바로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명성에 비해 품성이 모자라군. 네놈들은 우리를 그리도 추악하고 더럽다고 매도하는 주제에, 속알맹이를 까고 보면 하등 나을 게 없는 종자들이지.》

《엥? 그른가? 내가 우리 아내님들이랑 놀면서 쌓은 실력이 너그들이 애미애비를 다 팔고도 모자라서 벌레한테 똥꼬까지 대줘가며 기른 힘보다 나은 것 같은디?》

도발은 싫어하는 걸 건드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던가.

과연 실력만큼의 지능도 있는지 흑마법사들은 대뜸 소리를 지르거나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한층 싸늘해졌다.

《아내라니, 네가 애지중지 장난감까지 만들어주며 키우던 그 약해빠진 계집애 말인가?》

머리가 휑하니 벗겨진 곳에 문신을 새긴 흑마법사가 그의 도발을 되받아쳤다. 노르드는 눈을 반개했다.

《지금 투기장에 있는 우리 막내? 뭐, 걔도 있고, 그밖에도 많지. 아내들이 늘어날 수록 내 실력도 쑥쑥 크더라? 아마도 흑마법 부작용으로 발기부전 걸린 놈들은 평생 모를 듯.》

그러는 댁도 지금은 비슷한 꼴 아니었나?

오프툼은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열심히 되삼켰다. 동료가 적을 유인하는데 초를 칠 순 없잖은가. 그의 병세를 모르는 네페르티티는 말없이 노르드를 쳐다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크흐. 크흐흐흐.》

그때 6인의 흑마법사들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를 깔보는 듯한 웃음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웃는 그들에게 노르드도 픽 웃음을 지어주었다.

《머임? 흑마법사들끼리는 발기부전 환자도 즐길 수 있는 해피 타임 테크닉이라도 공유하냐?》

상대를 얕보는 듯한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피부에 번개가 친 듯 보라색 혈관이 꿈틀대는 남자가 말했다.

《네가 그리 아끼는 계집년을 투기장에 숨긴 건 나름대로 괜찮은 발상이었다만…… 결과적으로는 큰 실수였다.》

《실수? 뭐가, 씹새야.》

《우리가 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고 생각하지? 너희가 줄여놓은 〈임모르탈리스〉의 빈 자리를 채울 인원을 고르기 위해서다.》

어지간히 도발을 받아치고 싶었던 걸까. 팔이 기이하게 긴 흑마법사는 끌끌 혀를 찼다.

《네놈이 계집질 용 창녀들을 숨겨놓았다는 그 투기장엔, 진작에 〈임모르탈리스〉의 전 멤버가 숨어든 뒤다.》

《인형이나 가지고 소꿉놀이나 하는 머저리지만, 너로서는 다행이겠군. 네 계집들이 죽어도 그 놈에게 대신 놀아달라고 부탁하면 되잖나? 다 썩기 전까지는 뒹굴 만 하겠어.》

말귀를 알아들은 네페르티티는 눈만 움직여서 노르드의 등 뒤에 시선을 주었다.

사실 여부도 모를 발언이다. 조바심을 일으키려는 함정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르드도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듯 눈을 찌푸리기만 하고 별다른 리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쿠와아앙……!

하지만,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폭음이 터져나왔다.

지하인 이곳까지 울릴 정도의 폭발. 투기장 방향이었다.

《시작한 모양이군. 그 놈이 위장한 건 네 계집년의 시합 상대라는데…… 벌써 한 명쯤은 죽지 않았겠나?》

가장 선두에 있던 흑마법사가 입가를 삐뚜름하게 비틀었다. 그의 몸은 비아냥을 날릴 만큼 견고한 실드에 덮여 있었다.

쿠르르릉….

─쿵쾅쿵쾅!!

지상에서 터진 폭발이 희미하게 암실을 흔들었다.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프툼은 노르드의 용태에 신경을 쓰려다가 그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저들의 부하가 뭔가를 처분하고 옮기려는 중일지도 모른다.

정보를 글로 남기지는 않았겠지만, 여기에 있는 직속 수하들과 그 부하인 듯한 10여명의 흑마법사들을 빼면 〈임모르탈리스〉의 핵심 정보를 알 듯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지하실에 있는 이가 누구건, 대치 중인 이들을 돕고자 한다면 이미 올라왔어야 맞다.

‘……최소한 전투 중에 적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는 뜻이군. 저들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속전속결을 바라는 건 우리나 저들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지’

저들도 이 싸움에서 패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능한 빠르게 해치운다.’

오프툼은 3~4가지 쯤 되는 그의 전술에서 적절한 공격을 선별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싸움은 어떻게 아군의 피해를 줄이면서 적들을 해치울지를 겨루는 팀과 팀의 싸움이다.

오프툼과 네페르티티는 그렇게 생각했다.

6인의 직속 수하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노르드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투콱……!!

6인의 직속 수하들이 의식이 잠깐 지상을 향했을 때, 노르드는 바닥을 박찼다. ─우지끈! 대쉬의 스퍼트를 만들어내고 남은 각력이 암실의 돌바닥을 방사형으로 부쉈다.

1개의 빛살이 된 노르드가 창을 낮추며 적에게 파고들었다.

《하하하! 무모하군!!》

목표로 노려진 흑마법사는 기세 좋게 외치긴 했으나, 바짝 굳은 어깨는 그의 긴장을 대변했다.

6대 1. 포위한 상태에서 흑마법을 퍼붓는다면 해치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노르드 1명에게 화력을 집중하면 후방에서 다른 2명의 달인에게 사살당하고 말 것이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실력이 호각일 때나 통하는 것 아닌가.

동귀어진을 강요하는 과감한 첫 수.

이 자리에 모일 자격이 있는 만큼 잃을 것도 많았던 〈임모르탈리스의〉 직속 수하들의 생각은, 노르드의 돌격속도를 본 순간 찰나지간에 보신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1초를 미처 세기도 전에, 안일한 판단력의 대가를 피로 치뤘다.

─쩌억!

노르드의 공격을 받아낸 흑마법사의 두개골이 미간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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