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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27화 (527/1,009)

─쩌억!

노르드의 공격을 받아낸 흑마법사의 두개골이 미간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갈라졌다.

가장 먼저 보신에 내달렸던 자였던 만큼 그의 방어 마법은 여기 모인 흑마법사들 중 으뜸 가는 것이었지만, 오러를 감은 무기를 상대로는 종잇장보다 나을 게 없었다.

《칫, 해치워!!》

머리를 수박처럼 쪼개진 동료가 넘어지려고 휘청거릴 때, 다른 수하들도 각오를 다졌다.

죽는가, 죽이는가.

그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서서까지 망설일 겁쟁이라면 흑마법사의 정점에 선 이들에게 간택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문이 무성한 실력, 어디 보여 봐라!!》

2번째 흑마법사가 공간을 휩쓰는 벼락을 흩뿌렸다.

맹독의 흑뢰를 사용하는 흑마법사, 브롬메어.

실선처럼 뻗어나가는 뇌기(雷氣)는 생명을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악취미를 그대로 옮겨담았다. 스치기만 해도 고문을 대비한 훈련을 받은 성기사조차 비명을 참지 못하고 나뒹구는 맹독의 번개였다.

달인이다 뭐다 해도 결국 본질은 인간.

아픔을 참는 극기와 실력은 하등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브롬메어는 지금까지 증명해 왔다.

《〈부여(Enchant)〉》

하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그물망처럼 뻗은 번개가 그 몸에 닿기도 전에, 노르드의 창날에 엄청난 뇌력이 뿜어졌다.

콰르르르릉─!!!! 턱주가리를 벌린 뇌룡이 암실에 한 획을 그으며 독 번개를 모조리 휩쓸고 불태웠다.

복잡한 세공을 가한 만큼 얇게 뿜어지던 독 번개는 몇 배는 강력한 번개에 파묻혀 증발했다. 손에서 번개를 뻗으며 적의 비명을 예상하던 브롬메어의 머리도 뇌룡의 비늘이 스쳐가자 뜬 숯으로 불타 없어졌다.

─슈칵!!

뇌룡이 지나가며 짙어진 그림자 속에서 노르드의 후방으로 입가를 가린 남자가 뛰쳐나왔다.

어둠과 그림자의 칼날로 암살을 자행해 온 할레온이었다. 태양이 거칠게 대지를 구울 때 생겨나는 그림자도, 별들도 외면하는 오밤 중의 어둠도 전부 그의 무기였다.

흑마법사를 섬멸하겠다며 군을 일으킨 장군들이 다음날에 아침해와 함께 행방불명되면, 시민들은 사막의 악귀로 불리는 그가 산 제물을 데려갔으리라며 공포에 떨고는 했다.

그림자 속이라면 은신까지 가능한 그의 마법은 살상력 하나만큼은 과장 없이 미스릴 클래스와도 겨룰 수 있었다.

동료를 제물로 기습한 할레온의 칼날들이 조금도 지체없이 노르드의 다리를 노렸다.

흑요석 나이프보다 얇은 마나의 날붙이가 노르드의 살갗과 마나의 가죽을 파고들었다. 할레온은 정수리를 창에 꿰뚫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콰득!

노르드가 창을 내려찍으며 밑에서 튀어나온 할레온과 방의 바닥을 관통했다.

흉흉한 어둠의 칼날은 그보다 더 흉포하게 뿜어지는 오러에 갈려나갔다.

할레온의 그림자 칼날은 분명 날카롭기는 했지만, 노르드의 몸이란 몸에서 넘쳐흐르는 파괴의 마나를 관통할 정도로 강인하지는 못했다.

《크아아아아──!!!》

노르드가 창을 땅에 꽂은 순간 세 명의 흑마법사가 호흡을 맞춰 돌격했다.

남부의 아스트레완 연맹을 뒤흔들던 네더로아의 양손으로 검은 불꽃이 모여들었다. 적의 살갗을 불태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주와 병을 퍼부어대는 흑마법이다.

《그러자 신의 권능이 이르길(Dd.in Hm n nTr pn)──》

어둠과 음의 마나에 물든 불꽃은 제 주인의 뜻대로 원무를 추려다가,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황급하게 꺼졌다.

주문을 멈춘 네더로아가 노르드의 수도에서 날아온 바람의 칼날을 막고자 마법을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노르드의 수도에서 날아간 마나가 달빛에게서 숨은 흑마법사들의 코 앞에 초승달을 그려냈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비검 기사단에서 습득했던 비검(飛劍)에 오러의 파괴력을 더한 오의.

바람 계열의 공격을 원한다면 마법을 쓰면 그만이었지만, 마법의 술식은 오러라고 하는 파괴의 마나를 견딜 수 없다. 전사의 기술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무예의 조합이다.

─싹둑! 펼쳐놓은 실드가 무색하게도 네더로아의 허리는 두 덩어리로 토막났다.

달인의 경지를 몇 발짝 앞둔 네더로아조차 바람의 속도와 오러의 출력을 겸비한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찰나에 3~4번의 동작을 취한 노르드는 반 호흡 가량의 빈틈을 드러냈고, 그 틈을 네더로아의 동료가 기적처럼 찔러냈다.

《잡았다! 걸레짝이 돼서 죽거라!!》

노르드의 팔을 붙잡은 왈로키냐가 살의와 뒤섞인 환호성을 터트렸다. 왼팔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그의 주술은 인체를 산 채로 썩게 만드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의 1.5배 정도의 길이로 뻗은 고목나무 같은 손이 노르드의 오른팔에 마나를 쏟아부었다.

까가가가가각─!!

부패의 마나를 퍼부은 오른팔에서 철판에 단검을 긁는 것 같은 소음이 새어나왔다.

《허?》

왈로키냐의 왼손에 잡힌 노르드의 오른팔 가죽이 벗겨지며 은색의 광채가 뇌룡의 스파크가 남긴 빛을 반사했다.

강철 의수에 부패라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막의 대전사들도 두려워하며 오줌을 지리던 저주 받은 왼팔을 역으로 붙잡고서, 노르드는 충격파의 마법을 왈로키냐 체내에 터트렸다.

─콰아앙!!

부패의 마나가 튕겨나가며 왈로키냐의 왼손은 낙뢰에 맞은 나무 파편처럼 터져나갔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보다 먼저 몸을 비튼 노르드의 왼손이 바람을 갈랐다. 마나의 파도가 물 밀듯 뿜어졌다.

왈로키냐의 눈이 부릅뜨였다. 속임수를 밝히자면, 딱 봐도 눈에 띄는 왼팔은 그가 강자를 속이는 데 쓰는 페이크였다.

부작용이 강하기에 사용하는 일은 적었지만, 그의 진정한 비수는 오른팔에서 뿜어내는 진정한 부패의 마나였다. 젊을 적 아즈테카를 서성이다가 얻은 우신의 저주의 힘이다.

노르드의 주먹을 붙잡아 팔을 썩게 만들고, 그 틈에 여길 벗어난다.

화르르륵─!!!

거기까지 생각한 왈로키냐는 갑자기 습격하는 불꽃에 참지 못하고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

불꽃의 밧줄은 그의 어깨를 잡아 천장에 쳐박고 화염으로 휘감았다. ─으직! 위층에 머리를 내민 왈로키냐는 쩍 벌리고 만 입을 통해 기름진 혀와 폐까지 싸그리 불타올랐다.

그의 단말마는 3초도 지나지 않아 멈췄다.

간이 화형식을 끝내고서 노르드는 창을 뽑았다. 낚싯대를 당기듯 그림자에서 할레온의 시체가 딸려나왔다.

노르드는 머리부터 명치까지 관통한 시체를 즉시 휘둘렀다.

─콰앙!!

끌어올렸던 흑마법의 힘도 가라앉힌 채로 허탈한 웃음을 짓던 6번째 흑마법사는 인간 망치에 얻어맞았다.

차원이 다른 실력 차이에 투지를 잃은 그의 사지(四肢)는 대포알에 맞은 볼링핀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피보라가 거창하게 튀고, 얼마 가지 않아 비처럼 쏟아졌다.

후두두둑…….

짙은 적막이 천장에 암실에 무겁게 앉았다.

천장에 샹들리에처럼 박힌 인간 촛불의 다리가 열심히 버둥거리다가 멈추었다. 6인의 직속 수하들을 전멸시킨 노르드는 스파크가 파직거리는 창날을 털어냈다.

《힉, 히이익……! 흐아아아악…!》

─덜덜덜.

그들의 비서 겸 부하였던 흑마법사들은 전투에 휘말려가며 죽었거나, 바닥에 웅크려서 떨었다.

시큼한 암모니아 남새가 밀폐된 공간에 차오르자 노르드는 얌전히 인상을 썼다.

《……압도적이군.》

오프툼은 엉거주춤하게 들어올렸던 팔을 내리면서 얼굴을 경련시켰다. 그의 건틀렛에서 오러의 챠크람이 사라졌다.

뭐라 칭찬의 말을 주워섬기거나, 말없이 경악을 하기에도 모자랐다. 그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전투였다.

거침없이 뿜어지는 오러. 파천황의 마나량.

때와 타이밍을 가리지 않는 온갖 마법의 향연. 거기에 그 마법 실력에서 비롯되는 무자비한 전장 제압력까지.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게 모험가의 진가라지만, 단 1명이서 저만큼의 다종다양한 타입의 적과 싸우면서 순식간에 척살하는 실력은 결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저런 실력자가 만 명당 1명 꼴로만 있었어도 우리 나라의 최정예 기사단은 절반 이상이 모험가였겠지.’

때와 상황도 잊고 감탄하려던 오프툼은 정신을 되돌렸다. 피칠갑을 한 노르드는 어느새 발뒤꿈치를 돌리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르드! 가는 건 상관없지만, 같이 이동해야 해! 전 멤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네 혼자 가는 것보다는 셋이서 함께 가는 게 맞아!》

노르드는 대답하는 대신 문고리를 잡았다.

─덜컥덜컥!

하지만 문고리는 마치 벽에다 손잡이만 달아놓았다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프툼이 위화감을 느꼈을 때였다. 뒤에서 뿜어진 마나의 칼날이 세 사람이 서 있던 벽을 길게 찢었다.

쩌어어엉─!!

그 칼날이 벤 것은 문고리에 집착하듯 조금 늦게 피한 노르드의 코트 자락과 문 뿐이었다.

가로로 쪼개진 문은 살아있는 생물의 위벽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처럼 칼집이 매워졌다. 노르드의 검은 코트가 살짝 펄럭이며 잘려나간 가죽 옷감을 땅에 뉘였다.

《누구냐!!》

팽그르르─!! 오프툼은 대답을 바라지 않고 오러 챠크람을 투척했다.

하층으로 내려가는 문에 서 있던 누군가가 검을 들었다. 그 두꺼운 대검의 날에 챠크람이 부딪히고, 맥없이 튕겨났다.

《……막았어?》

오프툼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 몰살당한 직속 수하들과는 달랐다. 피한 것도 아니고 정면에서 오러를 막아버리다니?

하지만 그는 곧 냉정을 되찾았다. 적의 대검을 덮은 검붉은 오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를 기억하나, 노르드?〉

그렇게 물은 인물은 머리의 절반 정도를 까만 액체로 채운 듯한, 이상한 모습의 전사였다.

붉은 머리카락의 달인은 오러를 감은 대검을 땅에 꽂으며 노르드의 등에 날카로운 살기를 날렸다. ─덜컥덜컥! 하지만 노르드는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문 손잡이를 돌렸다.

당연하게도, 반으로 쪼개진 정도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의 전사는 픽 웃었다.

〈이 결계는 나를 죽이면 열린다. 단, 죽일 수 있어도 위로 올라가기보단 밑으로 내려가는 게 현명할──〉

─채애애앵!!!

두 개의 병장기가 오러를 터트리며 부딪혔다. 나무 창대와 미스릴 대검이 부딪혔지만, 붓을 가리지 않는 전사들 사이에 그런 오차 따위는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슈화아아아아아악─!! 노르드는 눈을 반개하며 야수회귀의 마나를 폭산시켰다.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뒤지다 만 새끼야.〉

〈미안하게 됐군. 나도 투기장에 가 있던 편이 나았겠나?〉

하려던 말을 끊겼지만, 디아볼로는 오히려 바라던 바라는 듯 사납게 살기를 터트렸다.

〈아니, 네가 어느 쪽을 골랐건 별로 다를 거 없어.〉

짐승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휘광처럼 거칠게 터져나오는 마나를 등에 업고서, 노르드는 한때는 막기도 급급했던 대검을 후려쳐 걷어냈다.

〈여기서 죽나 거기서 죽나, 장소만 다를 뿐이니까.〉

투콰아아아앙─!!!!

대검과 창이 뒤엉키며 포효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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