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들의 전투는 기술과 마나 소모의 싸움이다.
코뤤투스는 안전지대에서 그녀의 소모를 강요하고 있었다. 인질을 사용하는 전투는 그것 때문이다.
‘그치만, 왜? 아무리 인질을 앞세워도 본체가 직접 싸우는 게 훨씬 강할 텐데.’
〈꼭두극〉 마법을 개조했어도 조종하는 시민은 일반인에 불과하다. 죽어나갈 정도로 혹사해봤자 힘이 모자랐다.
본인이 흑마법을 써서 싸우는 게 더 강한 건 불 보듯 뻔한 일!
라리루라는 노르드처럼 오딘의 눈을 가졌거나 달인 수준의 무예를 가지지 못했다. 적이 경계할 정도의 강자가 아니다.
해치우려면 직접 나서는 게 훨씬 빠르고 간단하다. 이렇게 시간을 끌 것도 없이 끝났을 가능성도 있다.
‘……내게 시민을 죽이게 하려고?’
코뤤투스는 그가 일군 조직을 무너트린 노르드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저 시민들을 전부 죽이게 된다면 노르드의 명예나 업적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니까.
‘──아니, 그건 너무 단락적인 생각이야.’
코뤤투스의 행동에서는 그런 복수심만 갖고는 볼 수 없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려는 느낌의 철두철미함이 전해졌다.
자신보다 하수로 여기는 라리루라를 상대로 경계를 한다? 그런 건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하면, 경계의 대상은 그녀가 아니란 거겠지.
‘……여기 없는 선배를 경계하고 있다?’
이곳에 없다는 건 상대도 뻔히 알겠지만, 코뤤투스를 저렇게나 신중하게 나서게 만들 상대는 노르드 정도밖에 없다.
이상한 결론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방법이 뭐였건 코뤤투스는 노르드의 작전을 알아냈다. 이 상황만 봐도 그 점은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입장이 반대라면 어땠을까?
‘생각하자. 집중해! 선배가 늘 하는 것처럼……!’
투콰각─!! 라리루라는 마나의 창을 피하며 이를 악물었다.
노르드는 1달도 안 되는 사이에 〈임모르탈리스〉의 활동 자체에 타격을 입힐 계책을 구상했다.
그 작전의 효력은 당하는 입장인 저들이 더 생생하게 실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선배의 잔머리 굴리는 솜씨를 실감했으면, 당연히 의심하고 경계하겠지!’
무엇을 의심하고, 경계하는가?
그런 건 정해져 있었다.
‘우리가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가 나타날 가능성을 예상하고, 반격할 준비를 해놓지 않았을지를!’
그게 코뤤투스의 신중함의 원인이었다.
이만큼 사려 깊은 계획을 짠 이가, 〈임모르탈리스〉에게 역습당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너무 속 편한 생각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여기며 반격을 두려워할 수밖에.
‘그러니까 직접 나서지도 않고, 〈꼭두극〉에 쓰는 마나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는 거야!’
시시각각 줄어드는 마나를 느끼며 라리루라는 혀를 찼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지금 같은 순간을 대비한 비장의 수단은, 그녀의 수중에 있었다.
라리루라는 실드를 밀쳐내 적들을 비껴내고, 노르드가 나르메르-나일의 귀족들에게 작업을 치며 하던 말을 떠올렸다.
─솔직히 생각해 봐. 걔네들도 ‘크크크, 그 녀석은 사천왕 중 최약……’ 같은 뻘짓으로 2~3명이나 뒤졌는데, 이제 와서 쫄따구만 보내진 않겠지.
─나 같았으면 축차투입은 때려치고 남은 멤버 다 모아서 한 번에 다굴까겠다. 그게 정상적인 사고방식 아니겠어?
─그러니까 파티 회장에서는 너랑 티르시를 노리려고 들지 않도록, 시종 부리듯이 대해 볼까 하는데…… 괜찮을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라리루라와 티르시는 그래 된다며 귀족들과의 회동에서 그의 무신경한 대우를 허락했다.
그가 구태여 사티스 교단이나 네페르티티 같은 과잉전력을 모은 것도 정규 멤버와의 싸움을 염두한 거겠지.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노르드는 아내들을 가급적 위험에서부터 멀리 하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초인이나 철인 따위를 믿지 않는다. 신앙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들이 밑져야 본전이라며 아내들을 노렸을 때, 그걸 자기 혼자서 전부 막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형사나 경찰의 가족이 보복 범죄에 당하는 건 지구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암만 달인이라도 뭐든 혼자서 다 해먹을 순 없어. 내가 없는 동안 니들이 노려져 봐. 내가 어떻게 보험도 없이 너흴 이런 모래먼지 빵야빵야랜드에 냅두고 일을 하러 다니냐?
그러므로, 비장의 수단은 있다.
곧바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간단하고, 그만큼 강력한 힘이 말이다.
‘사용 가능한 시간은, 단 3분.’
따라서, 중요한 건 그것을 사용하는 타이밍이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전황을 훑었다.
코뤤투스 역시 반격의 수단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얕보던 상대에게 당해서 죽었던 그가 어떻게 방심 따윌 하겠는가. 인질을 조종하면서 라리루라를 몰아세우는 건 패착을 없애려는 책략이었다.
이대로 마나를 소모해서 약해지면 본전.
인질을 죽이거나 감춰둔 수단을 꺼내게 하면 성공.
인륜만 저버린다면, 아무런 손해도 없는 작전이다. 실제로 죄없는 인질을 몰살한다는 갈림길에 라리루라는 지금도 몇 년 동안 잊고 있던 긴장과 떨림으로 손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 망설여봤자 파국이다. 이대로 도망만 칠 테냐?〉
〈읏?!〉
집중을 잃은 게 패착이었을까. 어느 틈에 라리루라를 포위한 꼭두각시들이 검을 들었다.
경비대나 모험가 등, 특히 강한 인질을 선별한 배치였다.
저 숫자가 한 번에 공격한다면 다나의 실드를 마법진으로 재현한 5호로도 막을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막더라도 라리루라의 적은 마나량으로는 전투력의 감소가 현저해질 것이다.
끼익─! 실을 당기며 코뤤투스가 말했다.
〈이만 끝이군. 숨겨둔 게 있다면 써 봐라.〉
〈……좋아요!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에요!〉
라리루라는 한 발 늦게 마나의 실을 당겼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포위망을 뛰어넘어서 감춰뒀던 비기로 적의 본체를 바로 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리루라가 링링이 6호의 해치를 열려고 했을 때.
─촤라라락!!
관객석에서 솟은 결계가 돔 형태로 무대와 일부 관객석을 감쌌다.
쩌엉─!!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린 듯, 피난객들로 복잡한 관객석에서 마나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얼음 기둥이 높게 솟으며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을 높이 띄웠다.
〈──얼음?〉
〈티르시 언니!〉
코뤤투스와 라리루라가 상반된 중얼거림을 흘렸다.
무대가 한 눈에 보일 정도의 고고도(高高度). 프랑과 함께 추락하던 티르시는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누르며 물었다.
“프랑 씨, 높이 괜찮아요?”
“네. 고마워요.”
프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지상의 인질들을 겨냥했다.
작은 손에 나이프가 가득 들렸다. 프랑이 직접 새긴 ᚨ(Ansuz)의 룬이 마나를 흡수하며, 그녀의 마법을 강화했다.
“후우.”
프랑은 심호흡을 하고 마나를 일으켰다.
긴 시간, 유적의 흙을 만지고 사막의 모래를 맞으며 어떤 마법을 바라는지 고민했다.
마법의 적성이랑 그 마법사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다. 피를 흘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방어 마법을 배우고자 하지는 않는 것처럼, 심상을 그리는 마법이란 때로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출하는 기적이었다.
모든 기적은 소망에 기인한다.
소망이란 꿈이다. 꿈이란 바람이다.
하지만 꿈이 얼마나 원대해도, 꿈을 이룰 방법은 좀스럽고 현실적이여야 했다. 학위를 따거나, 모험가가 되는 등, 별로 위대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을 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프랑의 바람은 하나였다.
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자신이 다쳐서 그를 괴롭게 하는 것도, 가족이 다치는 걸 보는 것도 싫었다.
어린애다운, 치기 어린 꿈.
부모 없이 세상을 전전하던 그 어린 날의 하프 드워프가 꿈꾸던 행복을 현재의 프랑은 손에 넣었다. 원했던 것보다 까마득하게 멋지고 훌륭한 일상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돼 버린 프랑은 그 꿈을 지켜줘야 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치기 어린 생각에 살을 더하고, 궁리하며, 고민하고 조언을 받아가며 꿈을 지킬 방법을 찾아냈다.
모래 섞인 바람이 등을 때렸다. 프랑은 찰나지간의 집중을 끝냈다.
그녀의 두 팔이 태양의 역광을 등지고 번뜩였다.
─슈카가가가가각!!
쏜살같이 날아간 나이프들은 인질의 발치에 꽂혔다.
공격을 막은 것은 방어가 늦지 않은, 원래부터 가진 실력이 뛰어났던 일부의 인질 뿐이었다.
맞힐 생각도 없던 공격이다. 빗나가도 좋았다. 프랑은 작게 속삭였다.
더 이상 주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도와드릴게요.”
─쿠과과과과!!
나이프가 수맥을 관통한 듯 하얀 모래가 치솟았다.
눈처럼 하양 일색의 골렘이었다. 크고 작은 골렘들은 팔을 벌리며 눈 깜짝할 사이에 인질의 곁에 태어났다.
─퍽, 퍼서석!!
골렘들의 가슴과 머리에 무기나 주먹과 같은 온갖 공격이 날아들었다.
하얀 골렘들은 저항 않고 그 모든 공격들을 받아들였으며, 그러는 한편으로 부숴지는 일도 없었다.
돌벽에 주먹을 내지른듯 팔이 부숴지는 사람들도 없었다. 골렘의 몸은 모래처럼 그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공포와 아픔에 떨던 인질들이 눈을 크게 떴다. 골렘들은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끌어안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품었다.
마법으로 만든 골렘도 재료를 써서 만든 골렘도, 강인함엔 한계가 있다. 더 강하고 무자비한 힘을 상대로는 부숴진다.
그러면 부숴지지 않을 때까지 작고, 또 나약해지면 되었다.
프랑은 룬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약 2~3개월. 새로운 룬을 배우기에 모자람 없는 시간이다.
“──ᛒ(Berkanan)!”
─휘리리릭!
하얀 골렘은 모래처럼 무너지며, 손가락 한 마디 움직이지 못할 만큼 촘촘하게 인질의 몸을 감싸안았다.
마나에서 태어나는 흙. 마나를 변형시키는 룬. 그 두 개의 술식 결합.
단, 평범한 흙은 아니다.
사막의 모래를 보며, 프랑은 부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흙의 유연함을 깨달았다. 성스러운 마나를 품은 여신상에서 마나가 깃든 흙의 강인함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흙 골렘을 금속으로 만들고, 마나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노르드가 재현한 고대 문명은 마나 부여 기술은 그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백토인형(Doll of White Clay)〉.”
─까앙!!
모루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인질들의 안전을 알렸다.
조종당하던 인질들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순백의 금속에 감싸였다.
모래처럼 무너졌던 골렘들이 하얀 금속으로 변화하며, 거푸집과도 같이 사람들의 몸을 보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