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1분만 시간을 벌어주십셔!》
그야말로 양심이 터진 부탁이었다.
흑마법사란 저주나 부작용이 쎈 공격을 시도 때도 갈기는 생물이다. 그러니까 흑마법사 사냥꾼인 우리 일행은 회피에 특화한 전투법을 몸에 익혔을 것이었다.
맞았다간 최소 발기부전, 최대 쇠약사. 그런 놈들을 상대로 몸으로 때웠으면 옛날 옛적에 죽었겠지.
그런데 그런 전법의 전사들에게 맞으면 훅 갈 듯한 흑마법 폭격에서 자기를 지켜달라니?
내가 말해놓고도 양심을 회쳐서 물에 말아먹은 듯한 요청이었다.
《……허! 고작 1분이라! 우리도 얕보였군.》
《10분도 벌 수 있어.》
하지만 당당하게 말한 네페르티티와 오프툼은 그렇게 허세까지 부리며 양심 터진 부탁을 따라 주었다. 존나 감동이네.
그러면 나도 보답해 줘야겠지. 오딘의 눈 풀가동이다.
《그르륵, 끄르륵……!》
눈을 부릅뜨자 GOP에 배치된 조명을 정면에서 보고 있는 듯한 통증이 안구를 헤집었다.
하지만 그 통증은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내 눈은 육망성에 떠오른 마법들이 뿜어내는 마나를 샅샅이 해체해서 엘리트 대갈통에 분석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대략 1분이 지났을 때, 분석이 끝났다.
《몸아, 버텨다오……!! 오러권 4배다──!!》
나는 창을 낮추며 전신에서 오러를 뿜었다.
K-게이머답게 모든 버프를 둘둘 감고 렛츠 돌격.
꽂히는 흑마법을 오러로 갈아버리면서, 나는 자신의 몸을 하나의 인간 마초 포탄으로 승화시키며 디아볼로의 심장을 창 끝으로 꿰뚫었다.
─히죽.
그러나 가슴을 관통당한 디아볼로는 흉측하게 웃었다.
《언데드의 몸이라고 말했을 텐데!》
─콱! 동귀어진의 맞수를 찌르듯 디아볼로가 내 목을 움켜쥐었다.
《심장이라는 급소조차도 생명의 한계를 초극한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는 수준의 전법이었지만, 저 새끼의 말대로 심장이 약점이 아니면 해 볼 만한 딜이었다.
《놓치지 않겠다! 이대로 죽어라!》
육망성이 싸그리 빛나며 모든 흑마법 폭격이 내 몸으로만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광─!!!
지하실을 떨게 만드는 폭격!
그래도 이 정도라면 괜찮다. 마나 소비량이 좀 컸지만 내 오러+두꺼운 마나 코팅의 우주방어는 데미지를 차단했다.
《……노르드!》
그래도 내가 얻어맞는 꼴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던 걸까. 경악한 네페르티티가 무모하게 돌격하려고 들었다.
나는 마음만 받겠다는 뜻으로 손을 내었다. 디아볼로가 의아한 듯 눈쌀을 찌푸렸다. 내 오러와 자기 공격에 갈려나가고 재생하길 반복하는 자기 손은 안중에도 없다는 눈치였다.
《꽤나 여유롭군! 허나 그 여유가 어디까지 버틸까! 네놈의 오러가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
《우욱 씹, 말투에서 게이 냄새 나. 개새끼야.》
나는 실실 쪼개며 오히려 디아볼로 새끼의 팔을 붙잡았다.
힘이 빠질 때까지 놔 주지 않겠다니? 수컷 새끼가 말하니 소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나도 그러기를 바라는 처지였다.
《큭!! 무슨 짓을…… 커흑?!》
눈을 반개하던 디아볼로가 입에서 땟국물을 흘렸다.
─울컥! 역류한 피가 치솟자 육망성이 흐려지며 자동 발사 흑마법도 정지했다.
디아볼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달인답지가 않은 빈틈 투성이의 자세로 손에 묻은 피를 꼬라봤다.
그렇게 놀랍냐? 나는 씩 웃으며 중지를 세워줬다.
《그러길래 남의 땟국물은 왜 마셨니, 씹게이 놈아.》
《……이 새끼! 설마 그 어둠과 음의 정수에 수작을!!》
《그르게 누가 아무거나 주워먹으래? 수작이고 뭐고 이런 더운 나라에선 음식이 쉬기 쉽단다, 우동사리 새끼야.》
─쾅! 무릎으로 개새끼의 배를 찼다. 손 치워, 새끼야.
딜도에 맞은 게이처럼 힘을 잃은 디아볼로가 나를 놓쳤다. ─쿠웅! 가뿐히 착지한 나와 다르게 디아볼로는 이쑤시개가 꽂힌 잠자리처럼 볼썽 사납게 떨어졌다.
그리고 그 이쑤시개, 다시 말해서 내 창은 생물처럼 눈에 띄게 맥박을 치며 디아볼로의 마나를 흡수했다. 철쇄아 같군.
《크학! 끄우아아아악?! 이, 이 창은 도대체 뭐냐!!》
《내가 아는 최고의 편식쟁이지. 아직 이름도 없고.》
─툭툭. 어깨를 턴 나는 픽 웃었다.
《너, 편식이 심한 잼민이한테 채소를 먹이는 방법이 뭔지 아냐?》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의외로 쉬워. 좋아하는 음식에 몰래 섞는 거야. 원래라면 안 먹을 마나도, 내 마나와 구분이 안 갈 만큼 잘 섞어주면 꾸역꾸역 먹게 된다고.》
요컨대, 그런 것이었다.
‘시다나브가 내 저주를 정화하면서 생겨난 그 땟국물.’
먹물 같은 오염된 성수는 막대한 어둠과 음의 마나가 빵빵하게 채워진 마나 포션이었다. 그리고 그 포션을 내 창이 참 좋아하던 것은 이미 내 눈으로 확인한 사실.
그리고 디아볼로는 내가 몸에서 뽑아낸 오염된 성수를 빼돌려서 마셨던 것이다.
‘병신 새끼. 얼쑤 횡재다 싶었겠지.’
내 어둠 계열의 적성을 넘어서는 막대한 어둠과 음의 마나!
그걸 일부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손해는 없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건 패착이다.
《빌어먹을!! 마나가, 내 마나가 사라진다…!!》
내 창은 타인의 마나를 거부해대는 편식쟁이지만, 주인을 닮아서 마나 계승─말이 좋아서 계승이지, 거의 흡수다─의 힘을 가지기도 했다.
《저번에 좆발린 복수도 할 겸, 내 혼을 뽑아내서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할 생각이었냐? 욕심쟁이 좆밥 쉑 같으니. 아이디어는 좋았다고 해 주마.》
내가 마나 계승을 할 때처럼, 디아볼로는 남의 암흑-마나를 뽑아서 자기 걸로 융합시켰다.
그건 다른 의미로── 내 몸에 있는 저주와 마나의 형질이 비슷해졌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다진 야채를 넣은 볶음밥처럼, 내 창이 저 새끼의 마나를 마셔버리게 될 정도로 말이다.
《캬아아아아아악!!!》
디아볼로는 10L 쯤 헌혈한 레슬링 선수처럼 말라붙어가며 발악을 했다.
그냥 인간의 몸이었다면 저 꼴이 되기 전에 반격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너, 마나로 움직이는 데스 나이트라매?’
그럼 어떡해. 뒤지셔야지.
마나=생명력이라면 그걸 쪽쪽 빨리는 중에 뭘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콰득! 나는 혼백의 육망성을 하나씩 밟아서 소멸시켰다. 그렇게 할 수록 디아볼로의 움직임은 격렬함을 줄여갔다.
《이걸로 뒈져버리거라.》
나는 꼴 받도록 오만하게 말하고, 디아볼로의 가슴을 뚫은 창을 들어올렸다. 모든 무게가 빠져나간 듯 가볍게 들렸다.
디아볼로는 미이라처럼 말라서는 벌벌 떨며 애걸했다.
《그, 그만──》
《응, 안 돼. 〈구름 소환(Summon Cloud)〉.》
─퍼엉!!
안에서 폭발한 압축 증기가 디아볼로의 육신을 터트렸다. 형 급하다고 안 그랬냐? 씹새가 어딜 목숨 구걸이야.
“으음, 페이탈리티.”
마나가 빠진 언데드는 이렇게 무르군.
피 한 방울 안 튀는 게 오히려 소름이었다.
나는 어쩐지 좀 서늘해진 듯한 창을 찝찝하게 챙겼다. 내 창, 이러다가 무슨 마검처럼 저주 받은 무기 되는 거 아녀?
“요 씹팔럼. 그래도 이번엔 네 음식 취향이 도움 좀 됐다.”
내 애병에게 감사를 표하고, 룬 스톤을 꺼냈다. 이 새끼의 영혼에서 단편적인 거라도 좋으니 정보를 저장해야지.
아내들도 급하지만, 일의 경중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된다. 냉정침착한 판단을 요구하는 싸움 끝에 어떻게든 그 정도의 냉정은 되찾을 수 있던 나였다.
《여러분. 사주경계를 하십셔. 이 새끼, 본인보다 쎈 스승 놈이 있는 걸로 압니다. 혹시 같이 왔을지도 몰라요.》
룬 스톤을 꺼낸 나는 마음 속으로는 마나량을 점검하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때 레나폴리스에서 디아볼로를 데려갔던, 에퀴녹스인가 뭔가 하는 이름을 자칭하던 그의 스승!
그 새끼가 또 기어나온다면, 이 3명으로도 위험했으니까.
《……여러분?》
근데 왜 대답이 없지 씨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라고?》
갑분 호러물 전개에 나는 넋을 잃고 입을 벌렸다.
뭐지? 이 사람들 그새 도망쳤나?
위에서 ‘노르드 이 병신 새끼, 아까는 제일 먼저 나가려거 들더니 왜 안 와?’ 거리고 있나?
하지만 문은 여전히 잠긴 상태였다. 나는 오싹해진 팔뚝을 만지며 일단 디아볼로 새끼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 새끼의 혼부터 확실하게 처리하자.
“ᛈ(Perth).”
기억을 추출해서 룬 스톤에 담고, 영혼을 수도로 일도양단.
라면 먹고 밥을 말듯 자연스러운 마무리였다. 급하게 창을 챙겨서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들도 걱정되기는 했지만, 여기서 대기를 타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었다.
─덜컥! 덜컥!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니, 문고리는 돌아가는데 꼭 뭐에 막힌 것처럼 밀리지를 않는 것이다.
“디아볼로 이 씹새가.”
그 새끼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나는 바로 오러를 켜 창을 휘둘렀다.
─퍽! □ 모양으로 카와이하게 잘린 문이 앞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완전히 구라는 아니었던 걸까. 싸우기 전처럼 잘라도 회복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잘려나간 문의 바깥은 갈색의 암반이었다.
“……………….”
아까부터 뭔데, 대체? 나는 황망해졌다가 다시 창을 들었다.
─콰드득! 콰득!
억지로 암반을 뚫고서 탄광 캐듯 나가봤다. 하지만 마치 땅 밑으로 굴을 파는 것처럼 전혀 뭐가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몬가…… 몬가 일어났음…….”
씨발,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서둘러서 밀실로 돌아와서 석판을 꺼냈다. 울 아내들이랑 공유하는 인벤토리에서 노트를 꺼냈다.
이 노트는 아공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하생략.
촤르륵─! 노트를 펼친 나는 첫 페이지에서 다나의 필적을 발견했다. 급하게 휘갈긴 듯한 필적이었다.
─투기장에 〈임모르탈리스〉 출현. 루크레겐스에서 싸운 흑마법사로 추정. 본인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주장.
─예정대로 대처하겠음. 쫄지 말고 니 일이나 할 것.
“……뭐?”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노트가 해킹당했나?
루크레겐스가 어디더라? 그 뭐더냐, 프리모르의 원수 새끼 얘기 맞지, 이거?
“그 새끼가 무슨 부활을 해? 언데드로? 뒤졌는데 어떻게?”
물음표가 꼬리를 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디아볼로의 시체를 돌아봤다. 역시 뒤진 채였다. 데스 나이트여도 언데드고, 언데드여도 죽이면 없어지는 게 이 세상의 굳건한 팩트였다.
그때도 분명 영혼까지 태워버리고 정보만 쏙 빼냈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존나 이렇게 막막한 건 처음 랩실에 던져졌을 때 이래였다.
─홱! 노트를 일단 석판에 던져넣었다.
상황 보고는 조금 더 사태를 파악하고 하는 게 옳았다. 이 노트는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나서 수정하기가 어려우니까.
이유가 뭐가 됐건,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와 우리 아내들이 싸우고 있다면 늦장 부릴 때가 아니었다.
‘입구 쪽은 이상하게 막혔다. 그렇다면……’
지하 뿐이다.
나는 창을 꼬나쥐고 디아볼로가 기어올라왔던 곳까지 달려 내려갔다. 꼴마초의 애처병(愛妻病)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울 아내님들이 위험한데 내 신변의 안전이 문제인가.
타다닥─!
그렇게 나선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하게 긴 계단의 끝에서는 빛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빛?’
인공적인 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긴 지하인데?
‘아니, 쫄아서 어쩔 건데 씨발!’
노트에 메세지가 갱신 안 됐잖아. 라리루라랑 다른 애들이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뭐가 됐던 움직이자.
아예 나선 계단에서 몸을 던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후욱──!!!!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내 피부를 긁고 지나갔다.
나선 계단의 아래는 공중이었다. 마치 절벽 끝에 세운 하얀 집의 지하실이 절벽 바로 아래로 이어진 것처럼, 계단의 끝은 텅 빈 하늘로 이어져 있던 것이다.
추락사는 걱정할 것 없다. 내가 1~2번을 높은 곳에서 추락했어야지. 내 몸을 건사할 방법은 갖고 있었다.
“……씨발?”
그래서였다. 내가 눈앞에 펼쳐진 공간을 보며 전율한 것은.
──설원이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설원이며, 하늘은 청색의 오로라가 빛났다. 내가 빛으로 여겼던 것은 그 오로라였다.
태양은 없다. 달도 없다. 하늘엔 마치 나뭇가지처럼 하얗게 균열인지 촉수인지가 뻗어 있었다. 원근감을 생각하면, 아마 저 가지의 굵기는 최소 63빌딩 급은 될 것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야수회귀를 켰다.
마나 코팅이 눈을 파고들던 바람을 막았다. 나는 무한하게 펼쳐진, 한빙지옥처럼 생기없는 세계를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세계 전생 실화냐?”
사실 이세계물의 이세계물인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