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순간, 나는 마법을 발동했다.
“흐읍!”
후웅─ 척!!
추락하는 과정에서 압축 분사한 증기로 중력가속도를 모두 무마했다.
다행히 예전에 지저의 탑에서 갔던 이계와는 달리 마법을 쓸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코트를 벗고 낙하산 놀이를 하며 내 육체 강도를 무릎으로 시험했어야 했겠지.
하지만 좋다고만은 생각할 수 없었다.
“으, 쓰벌……!!”
─호달달! 나는 발치에서 올라오는 추위에 기겁을 했다.
무슨 혹한기 훈련 중에 군화에 양말을 안 신고 온 것처럼, 설원에서 엄청난 냉기가 구둣발을 뚫고 올라왔다. 한여름의 오후 2시에 달궈진 아스팔트도 이거에 비하면 천국이겠지.
“으으으으으……! 훌쩍…!”
바로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막의 온도 조절 아이템은 추위에는 무용지물이다.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이러다 뭘 하기도 전에 얼어 뒤지겄다!
가까운 곳에서 눈에 띄는 절벽의 균열을 발견했다. 안전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저런 피난처가 존재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높이가 있으니 그나마 여기보단 덜 추울 듯 했다.
─힐끔.
그래도 일단 내가 떨어진 곳은 확인해 두었다.
절벽에 자라나 있던 나선 계단은 백일몽처럼 흐릿해져서는 사라져버렸다.
오딘의 눈을 켜자, 저 계단─혹은 그 내부 밀실─ 자체가 일종의 마법과 같은 것이라는 게 분석됐다. 어떤 마법인지까지는 사라지는 게 너무 빨라서 알 수 없었다.
“으?”
업슴하는 추위에 어깨를 감싸고 하늘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절벽의 근처에 마치 태양 같은 빛이 7개는 떠 있었다. 그 태양 중의 몇 개는 가지에 밀착해서 공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저 태양과 같은 마나의 응집체에 견문이 있었다.
‘구신의 마나.’
내 셰이드의 꿈이자 심상세계인 공간에서 보이던 것과 꽤 닮은 모양의 마나 뭉탱이였다.
‘……아니, 조금 다른가?’
잠깐 오해했지만, 가만히 보자 느낌이 사뭇 달랐다.
구신의 마나라고 여기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인류의 마나가 엄청난 크기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 하늘의 나뭇가지 근처에 있어서 마치 열매 같기도 했다.
“어?”
나는 동굴로 대쉬하면서 그 마나의 태양들을 흘겨보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질감의 태양에서 느껴지는 마나에 눈을 화잔등만하게 떴다. 익숙한 마나였다.
‘……티르시의 마나랑 비슷한데?’
정확하게는 그녀가 〈강림〉 마법에 걸려서, 초대 ‘아르마 슈나스’의 마나를 다운로드했을 때랑 판박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저 태양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로마니아에서 추앙하는 신들의 마나.’
풍요신 포모나처럼, 한때 인간이었으나 신을 잃은 인류의 희망으로써 거짓된 신이 된 이들의 마나!
그 클라우드 저장소 같은 게, 하늘의 나뭇가지에 붙어서는 끊임없이 힘을 흘리고 있었다.
저건 오딘이 남긴 ‘울프헤딘’이라는 후계자를 위한 안배와 같은 원리였다.
신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나던 고대인들이 후대의 인류에게 남긴 힘의 결정체.
의식이나 자아 같은 건 없이, 신들의 황혼이 저문 인류의 세계를 받쳐주는 힘들이었다.
사제나 성기사들에게 직접 마나를 나눠주는 건 아니겠지. 저 마나의 태양을 근간으로, 내가 구신의 마나를 쌓는 것처럼 그들도 수양을 통해 자신의 안에 마나를 갈무리하는 원리가 아닐까.
“씨발, 추워!!!!”
물론 뭇 이세계인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적일지도 모르는 광경이었지만, 나한테는 그딴 세상의 비밀보다 당장 쏟아지는 추위가 문제였다.
나는 원래 신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던 지구인이고, 실제로 이 세상에 아예 신이 1명도 안 남은 건 아니잖은가.
굉장한 느낌이 드는 절경이긴 했는데, 지금 급한 건 얼어 뒤지지 않도록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스릴 클래스라 해도 대자연의 무자비함을 상대로는 쫌 빡센 감이 있었다.
─파삭!! 파사삭!!
나는 찾아낸 동굴로 뛰어들어갔다.
사실 동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균열 같았는데, 아무튼 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듯했다.
지금은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일단 균열 안에까지 수북히 쌓인 눈을 걷어서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화륵.
석판에서 꺼낸 장작으로 불을 붙였다. 추위를 몰아내기엔 모자란 화력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히 이 세상은 바람은 안 불었으니, 이거라도 오래 쬐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아아아아…….”
입김을 뿜어대며 모닥불을 쬐었다.
바람마저 죽어버린 듯, 밝기만 한 백야의 설원은 추위마저 눈 감아주면 무척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안의 언데드 유교 드래곤은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은 듯, 진심으로 통탄하며 훌쩍였다.
그래도 일단 조바심을 참으며 사태 파악에 힘쓰는 나였다. 추리 타임 개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 여기는 어딘가.’
이 문제는 이미 답이 나왔다.
혹한의 겨울 차가우며, 바람마저 죽어버린 듯한 세계!
로마니아의 거짓된 신들이 천상에서 빛나는 곳!
나는 이미 그 대답을 확신하고 있다.
이 차디찬 풍경! 얼음 투성이의 빙하!
어느 빡빡이 만화가의 유명 웹툰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이 세상은 불교의 지옥 중 하나인 ‘한빙지옥’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한빙지옥이라니! 나처럼 선량한 사람을 왜 지옥에 떨궈버리는 것이지?
항소하고 싶은데 내 옆에는 나랑 같이 재판에 나서줄 변호사마저 없었다.
지옥에 떨어지고 나니 갑자기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구만. 제가 도내 최상위급의 미녀 미소녀들로 하렘을 차린 게 그렇게나 꼬우셨나요, 염라대왕님?
“애미.”
나는 코를 훌쩍이며 석판에서 꺼낸 이불을 몸에 두르고, 내 창을 막대 삼아서 눈밭에 글을 썼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는 알 수 있었다.
한빙지옥.
‘다시 말해서, 게르마니아에서도 말하는 저승세계── 니플 헤임(Niflheim)이겠지.’
그럼 문제 1-2.
나는 왜 이 니플헤임인지 유두해임인지에 떨어진 걸까.
이런 문제는 정답만 딸랑 쓰면 감점이라고. 정답보다 풀이 과정이 더 중요하단 말이다. 나도 이과여서 안다 이거에요.
‘……사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 게 꿈이고, 실은 디아볼로한테 뒤졌다든가?’
디아볼로 새끼가 날 끌고 자기 스승한테 가서 ‘스승님, 이 새끼 웃는데요?’ 같은 소리를 하고 있나?
“시발, 그건 아니겠지.”
절대로 아니라고는 차마 못하겠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근거? 그딴 건 없다. 내가 진짜로 뒤진 거면 아내님들한테 면목이 안 서니까 후보에서 최대한 미뤄둘 뿐.
그러면 다른 이유는 뭐가 있을까.
“……앗.”
한참을 불을 쐬며 생각해 보자,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것만 같이 추리의 구상이 떠올랐다.
노트를 꺼냈다. 다나의 필적이 눈에 들어왔다.
─투기장에 〈임모르탈리스〉 출현. 루크레겐스에서 싸운 흑마법사로 추정. 본인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주장.
루크레겐스에서 싸운 흑마법사가 죽음에서 부활했다.
현장에 있었을 다나는 그렇게 메세지를 남겨주었다.
‘다나가 언데드라고 명시하지 않은 걸 보면 진짜로 살아난 것일 확률이 높겠지. 그냥 언데드일 가능성도 있지만.’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그건 존나 띠요용한 일이었다.
왜냐고? 나는 분명 그 새낄 죽이고 나서, 정보를 뽑아내고 혼이 불꽃에서 사그라드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뒤에서 프리모르와 그 호위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렇게 끝내긴 했지만, 그 새끼의 영혼은 분명 사라졌었어.’
그 바로 뒤에 야누스 교단에서 미스릴 클래스의 사제이자 성기사인 시냐티오도 왔었다.
만약 내가 못 보고 넘어갔어도 그녀가 소멸시켰을 것이다. 악령퇴산은 사제들의 관할이고.
왜냐 그게 사제들 관할이냐고? 이세계의 유령 몬스터들은 마나에 맞아죽걸랑. 특히 빛의 마나에 약하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도 마법에 맞으면 소멸한다.
그래서 나는 그 마피아 두목 놈의 영혼이 무당파의 무공, 혈수마공에 불타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불이 사그라들고 나서 영혼이 사라졌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소멸하지 않았고, 이제는 아예 되살아나셨다 이거지?’
나는 턱을 괬다. 모닥불의 불길이 내 입술을 마르게 했다.
죽은 자의 소생이라니? 무슨 유희왕도 아니고, 솔직히 좀 믿기 힘든 얘기다.
하지만 미스터 홈즈는 말했다.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없앤 뒤에 남는 것은, 아무리 믿기 힘든 것이라도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 가정을 팩트로 두고 생각을 풀어나가 보자.
‘부활이라는 게 영혼까지 소멸한 놈을 되살릴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영혼 정도는 남아 있어야 죽은 자의 소생이라는 비현실적인 업적이 그나마 말이 돼.’
죽은 자의 영혼을 육체에 안정시키는 것.
바로 언데드가 딱 그런 마법의 산물 아닌가. 물론 좀비는 전송 중에 영혼이 데이터 깨짐을 일으켜서 99%가 생각 없이 오로롱 거리기나 하는 좀비가 되지만.
‘그래도 영혼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지.’
저 피라미드도 그렇잖은가?
파라오의 미이라를 만드는 건, 왕들의 영혼이 언젠가 미이라에 돌아와서 부활하게끔 하는 의식이라고 들었다. 21세기 지구에서도 어떤 유명 영화에서 대충 비슷하게 알려줬거든?
그런데 신화 시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 있는 의식마저 그런 판국에, 영혼도 없이 이미 죽었던 씹새를 부활시킨다? 암만 생각해도 그건 개소리 같군 그래.
‘──즉, 흑마피아 새끼의 영혼은 그때 소멸한 게 아니었단 말이지?’
내 앞에서 사라졌을 뿐, 영혼이 소멸한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모순 같지만, 이 논리의 비약을 삼단 논법으로 성립시켜줄 사료(史料)가 있다. 다른 아닌 내 기억 속에 말이다.
“에퀴녹스.”
디아볼로 새끼의 스승.
그 놈은 공간 계열의 마법을 사용해서, 내가 거의 막타만 남겨뒀던 디아볼로를 회수해 갔었다.
‘만약 흑마피아 새끼 때도 마찬가지였다면?’
육체를 회수하는 것보다 영혼을 회수하는 게 더 편하기는 할 것이다.
무게와 이동 거리가 늘어날 수록 공간 마법에 드는 마나가 늘어난다.
영혼의 무게라. 철학적이지만 팩트만 놓고 말하면 영혼이 초일류 전사였던 디아볼로의 몸보다 무겁진 않을 것이다.
‘……내가 흑마피아 새끼를 불태웠을 때, 영혼이 사라졌던 건 소멸해서가 아니야. 에퀴녹스가 회수해 갔던 거지.’
그런데 왜지?
왜 혼자 설쳐대다가 좆발려서 뒤진 병신의 영혼을 회수해 갔을까.
우정이나 동정심? 지랄도 유분수다. 〈임모르탈리리스〉급 콩가루 집단의 행동에 그딴 감정론이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인지부조화 아니겠는가.
더 실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게 어떤 이유인지는── 디아볼로 새끼가 보여주고, 또 설명해 주었다.
“……뒤진 멤버의 영혼에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추출하기 위해서겠군.”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나는 혀를 내둘렀다.
디아볼로도 말했잖은가. 〈임모르탈리스〉는 그것을 위한 단체라고.
나는 그냥 연구 자료나 매직 아이템을 훔쳐간다는 얘기로 여겼는데, 사실은 더 깊은 이유가 있던 것이다.
“〈임모르탈리스〉는 사실 흑마법사판 통발이다, 이건가? 웃기는 얘기군.”
통발.
다시 말해서, 물고기가 제 발로 잡아먹히러 들어오게 하는 낚시도구.
〈임모르탈리스〉는 바로 그 통발과 비슷한 목적으로 세운 단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