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르탈리스〉는 사실 흑마법사판 통발이다, 이건가? 웃기는 얘기군.”
통발.
다시 말해서, 물고기가 제 발로 잡아먹히러 들어오게 하는 낚시도구.
〈임모르탈리스〉는 바로 그 통발과 비슷한 목적으로 세운 단체였던 모양이다.
억측이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흑마법사라는 병신 직업은 종사하는 인구수가 적으니까.’
어쩐지 나랑은 마주치는 일이 많아서 은근 많아 보이지만, 여긴 시골 마을 동네 모험가 할배도 마법을 쓰는 세상이다.
흑마법사는 백분율로 따지면 전체 인구의 1%조차 안 되지 않을까?
어쩌면 0.1% 미만일 수도 있다.
하긴, 저런 인간말종이 흔하면 이세계인들은 어떻게 먹고 살겠어.
‘하물며 그런 상황에서, 저딴 쌉쓰레기 좆부랄년놈들 중에 실력까지 갖춘 뛰어난 흑마법사를 찾아서, 마나를 뺏는다?’
그런 건 거의 불가능하다. 고위 흑마법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흑마법을 연구한 앰생이라는 뜻인데, 그딴 새끼들이 어디 그렇게 쉽게 거처를 들키겠는가?
하지만 고위 흑마법사 간의 인맥에 세레브하게 네임밸류를 붙이고, 멤버에게 실리적인 이득까지 제공한다면 어떨까.
‘소식을 들은 흑마법사들이 제 발로 모여들겠지.’
인간은 사회적 생물이며, 초인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였군. 그래서 멤버들이 뒤지건 말건 별 관심을 안 뒀던 거야.”
기가 찬 나는 딱 들어맞는 가설의 퍼즐을 끼웠다. 그림의 전체적인 상(狀)이 보이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에퀴녹스로서는 뒤지건 말건 지들 좆대로 하게 두면 된다.
흑마법사는 사서 원한을 사는 놈들이고, 뒤지면 그 새끼의 영혼을 회수해서 어둠과 음의 마나만 쏙 빼먹으면 되니까!
‘뒤진 멤버의 혼은 아마 자동으로 회수되는 거겠지. 그런 마법을 본인들에게 걸어두거나, 시스템으로 구축해둔 거야.’
언제나 모든 멤버가 뭘 하다 뒤졌는지 관찰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디아볼로를 죽게 두지 않고 데려간 건…… 멤버가 줄어서 그렇다는 얘기는 구라였고, 자기 제자여서 챙겨줬던 걸까? 아니면 아직 그 새끼에게 역할이 남아 있어서?
“……몰라레후.”
그딴 걸 내가 알 리가 있나.
이렇듯 생각해봤자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추리도 방향 자체는 맞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추리를 뒷받침할 증거도 있고.”
나는 석판에서 거들떠도 안 보던 책을 1권 꺼냈다.
불길한 분위기의 표지가 역겨운 책.
에퀴녹스가 디아볼로를 회수하며 던져주고 갔던 그 책이다.
그 씹새끼는 내 흑마법 재능을 어떻게 알아보고, 이 책을 던져줬다.
만약 내가 사파의 길을 걷게 됐었다면 〈임모르탈리스〉로 초대해서, 자기 손아귀에 넣고 살살 굴리다가 뒤지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지.
내 재능이라면 뒤졌을 무렵엔 암흑-마나도 존나 모아뒀을 테니까.
“지랄하고 앉았네. 벌써 다 들켰죠? 절대 안 당해주죠?”
나는 꼴 보기도 싫은 책을 도로 석판에 던져넣었다.
이제 알았다, 너희들의 목적… 시시해서 죽이고 싶어졌다.
〈임모르탈리스〉란 다시 말해서, 자기들 밑으로 모여드는 암흑-흑우들을 통수쳐 죽이는 다단계 집단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알고도 속아넘어간 척, 꿀만 쪽 빨고 튀려던 놈도 있었을까. 최소한 에퀴녹스가 영혼을 회수해서 마나를 뽑는 마법을 서로 합의하고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그건 나한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자. 여기까진 논리 전개의 기승전결에서 ‘기’와 ‘승’에 불과하니까.
‘오히려 이제부터가 중요한 부분이지.’
나는 눈밭에 다시 글자를 적었다.
‘내가 뒤져서 지옥에 온 게 아니라면, 공간 계열의 마법이 원인으로 날아왔으리라고 추측 가능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레나폴리스에서 하늘의 균열을 연 전례도 있지 않은가.
지옥과 현세를 연결하는 마법도 있기는 하다고 봐야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집에 돌아갈 가망이 없지는 않은 듯 하네.”
안심하며 잠깐 중얼거리고서, 다시 글자를 적어내려갔다.
‘나를 노리고 지옥에 떨궜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럴 바엔 기냥 직접 와서 죽여버리면 그만인걸.’
그러면 왜 지옥 퀵배송 마법이 발동했던 것인가.
그 추리의 논리 전개는 간단하다. 소거법을 쓰면 된다.
일단 그 지하의 밀실이 통째로 전이한 건 아닐 것이다.
‘그랬으면 네페르티티나 오프툼도 여기에 끌려왔어야 말이 되지. 게다가 내가 밀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절벽의 계단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거고.’
이동한 건 나 뿐이다. 아마 밀실 자체도 마법의 일종으로 생긴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계단 자체가 마법이었다는 점은 추락하는 과정에서 오딘의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이 부분은 확실하다.
‘그리고 앞서 나열한 가설을 레퍼런스로 삼으면……’
─사각, 사각. 눈밭에 결론을 썼다.
1.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는 뒤질 때 영혼을 회수당한다. 회수하는 목적은 어둠과 음의 마나의 추출이다.
2. 디아볼로는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다. 사망하던 시점에서는 막대한 어둠과 음의 마나를 가졌었다.
3. 따라서 디아볼로의 영혼도, 원래대로라면 에퀴녹스에게 회수당했어야 맞다.
“하아…….”
나는 차츰 결론에 가까워지자 눈밭을 끼적이던 창을 그냥 내던져버리고 싶어졌다.
끓어오르는 짜증과 빡침을 꾹 참고 마저 적었다.
4. 디아볼로의 어둠과 음의 마나는 내 창이 꺼-억했다.
5. 그러면, 어머나 씨발? 디아볼로랑 똑같은 암흑-마나를 가진 창이 한 자루 생기네?
끼적, 끼적…. 글을 적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에퀴녹스의 영혼 회수 마법은 어둠과 음의 마나를 추출할 목적으로 만든 술식이다.
그렇다면 혹시, 영혼 회수 마법의 술식이 사라져버린 디아볼로의 영혼 대신에── 내 창을 겨냥했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7. 까꿍! 나랑 내 창이 사이좋게 손잡고 〈공간 이동〉에 호로록 빨려 들어간답니다!
“……아 애미 씨발 진짜!!!!!!”
─퍽!! 끝내 못 참고 내 창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나.
“결국 내 창이 먹을 거 못 먹을 거 구분 못한 탓이잖아!!!!”
끄아아아악─!! 나는 성을 내며 눈밭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춰댔다.
이유라고 봐줄 만한 가설은 그것 뿐이었다.
내 창이 회수 대상이 되었고, 나는 거기에 휘말려서 공간 계열 마법에 멱살을 잡히고 끌려왔던 것이다!
에퀴녹스의 오토매틱 영혼 회수 마법이 대굴빡을 긁적긁적거리며 ‘이게 회수대상 맞나?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본사에 보내보자’ 하고 나를 이딴 차디찬 지옥에 떨궜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밖에. 베로니카도 말했잖은가? 나와 내 창은 거의 일심동체가 돼 가고 있다고!
말하자면 무협지에 나오는 경지인 ‘신검일체’의 매지컬-이세계 판타지 버전!!!!!
그래서 에퀴녹스의 마법은 내 창을 타겟으로 삼아서 공간 마법을 발동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내 창과 혼연일체인 나는 그 마법에 휘말려서, 저 밀실에 오프툼과 네페르티티를 두고 딸랑 혼자만 이렇게 전이해버렸던 게 틀림없었다!!!
“디아볼로의 영혼을 회수하려고 해봤자, 그 새끼의 영혼은 내가 가진 울프헤딘의 권능에 소멸했으니까!!!”
나는 한탄하며 추위도 잊고 엎어졌다.
픽트 인 마을의 이름 없는 여신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죽음의 신 오딘의 후계자, 울프헤딘의 권능!
영혼을 성불시키고, 그 과정에서 짐승으로 타락한─호르샤나 타뷸라처럼 제 원래 영혼과 다른 육체를 얻은─ 새끼들의 마나를 부수입으로 챙기는 능력!
나는 그 힘으로 디아볼로를 터치해서 성불시켰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영혼 회수 마법이 발동했었던 것이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런 쌉병신 같은 사고가 다 있나.”
─발라당! 모닥불 옆에 대충 누웠다.
따지고 보면 전부 내 자업자득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때는 존나 이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다 지나간 지금에 와서는 기분이 좆 같을 수밖에.
‘……찡찡거려 봤자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하자.’
에퀴녹스의 영혼 회수 마법은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원래 영혼에서 마나만 쪼옥 빨아먹고 바로 지옥에 방치해 버리는 걸까? 내 창의 암흑-마나는 그대로인데?
그리고 유니콘 흑마법사의 영혼은? 그것도 회수해 갔을까?
“또 모르는레후…….”
씨발, 이러니까 21세기 지구에 탐정 같은 게 없지. 하나를 알아도 둘은 모르니 결국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듯 하면서도 제자리 걸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튼, 디아볼로를 족치고 다른 두 사람한테 사주경계를 부탁했던 무렵에는 옛적에 나 혼자 이 세상에 떨궈진 뒤였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었다.
아마 디아볼로를 족친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 두 사람도 존나 황당했을 것이다.
‘……라리루라는 괜찮을까 몰라.’
역시 가장 걱정되는 건 우리 아내들의 안전이다.
석판에서 살짝 노트를 꺼내봤다. 아직도 새 메세지는 없다.
아직 승부가 나지 않은 걸까? 제발 그러기를 빌자.
‘그나마 다행인 건 석판이 작동한다는 거야.’
그러면 식량도 받을 수 있고, 지혜도 빌릴 수 있다. 살아서 원래의 이세계── 【중간 가지】, 마나하임인가 미드가르드 등으로 불리는 그 세상에 돌아갈 가망이 있다는 얘기였다.
아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당연하고 말이다.
‘조금 쉬었다가 메세지가 새로 올 때까지 요 주변을 조금 둘러봐야겠군.’
울 아내님들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가만히 있을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이도 저도 못하고 있을 거면 걸어다녀 보자. 혹시 아는가? 주변에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개쩌는 비프로스트나 뭐 그런 게 있을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일어났을 때였다.
“……뎃?”
“……Juo?”
동굴 입구에 서리 거인이 여러 마리 서 있었다.
방심하고 있을 때 떼거지로 몰려온 모양이었다. 나는 존나 뛰어난 시력으로 그들의 고드름 낀 얼굴을 본 순간, 소름이 우수수 돋으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흐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Daaaaaaaaaaaaaaaaaaaaaaaaa──?!”
그 얼굴!! 그 두렵기 짝이 없는 흉측한 얼굴!!
마치 반지하에 혼자 사는 여대생이 화장실 창문으로 자길 들여다보는 늙은 노인을 본 것처럼 아기자기한 비명을 지르며, 생물적인 공포에 개지랄을 떨던 나는 재깍 일어났다!!
─부웅!!
서리 거인들이 내 포효에 쫀 것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난 본능에 몸을 맡기고 주먹을 되돌려주었다.
퍼억─!! 서리 거인의 주먹이 터져나가며 피분수가 터졌다.
“Guaaaaaaaaaaaa──!!!”
“이 씹새들아!! 왜 나는 그 흔한 고블린보다 니들 얼굴을 더 자주 마주치는 건데!”
나는 억울한 나머지 울부짖으며 창을 쥐고 서리 거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좋다 이거야. 안 그래도 추웠는데 잘 됐다.
몸이나 좀 뎁히게 한 판 뜨자고,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