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하쇼. 그런데, 혹시 뉘신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나는 그들의 행색을 다시 살폈다. 추위를 대비한 듯 두껍게 껴입은 사람이었다.
한파를 예상했다기보단, 있는 옷 없는 옷을 다 껴입은 꼴. 이 한빙지옥의 맹추위는 그들에게도 예상 밖의 환경이었다는 뜻이었다.
“대답 감사합니다. 아, 저는 노르드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노르드?”
“자, 잠시만 기다려 줄래? 우리끼리 얘기 좀 하고.”
“그러시죠.”
내가 승낙하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괜찮겠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 모르겠군.”
“안 믿으면 어쩌게? 일단 대화나 해 보자고.”
“대충 서 있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닌 것 같은데, 실력이 뛰어나다면 협력할 수도 있을 거야.”
내 귀에는 상의하는 내용이 들렸지만, 대꾸해 줘도 얘기만 길어질 것 같았기에 못 들은 척 했다.
이 세상을 탐사하는 데 내 힘을 빌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들은 상담 끝에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그래. 아무튼 뇨르드 씨는 무슨 일이신감? 아니, 그것보다 일단…… 당신, 이 동네 주민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닙니다. 제 사정이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적당히 사실과 거짓을 버무려서 얘기를 전해주었다.
여기가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가급적 빼 놨다.
전부 확신한 근거가 없는 나 혼자만의 추리이기도 했으며, 아까 대화를 훔쳐들은 바로는 니플헤임이란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발작하며 나랑 대화하길 거부할 듯해서였다.
“자네도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단 얘기인가?”
“그렇죠. 아마 어디 추운 지방이 아닐까 싶긴 한데요.”
그들은 내가 몰라레후로 일관하자 머뭇거리다가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우리는 모험가요. 지금은 벨코트 탐사대라는 곳에 소속돼 있지.”
“벨코트?”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거긴가? 브리타니아의 제 1왕녀님이 소속한 피라미드 탐사대의 라이벌?
“아니, 잠깐만요? 그러면 혹시 여기가 나르메르-나일에서 새롭게 발견됐다는 그 피라미드입니까? 명예 귀족 선발권이 달린, 그 피라미드?”
나는 갑자기 든 생각에 어안이 벙벙하게 물었는데, 그들의 대표인 듯한 모험가는 착잡하게 수긍했다.
“그렇수다. 우리는 거길 탐사 중이었지. 그런데 밑으로 쭉 내려가다가 잠깐 위로 올라왔더니, 바깥세상이 이렇게 된 것 아니겠수?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존나 동감이다. 무슨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고사(故事)도 아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세계물 한 편 뚝딱 찍고 앉은 것 아닌가. 얼탱이가 없을 만 했다.
“……건물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까 이곳에 오셨다는 뜻 맞습니까? 도중에 뭔가 이렇다 할 〈공간 이동〉의 징조도 없으셨고요?”
“그렇지. 자네와도 사정이 비슷한 걸 보면, 아마 같은 방법으로 여기 와 버린 게 아니겠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내가 있던 지하 밀실이랑 이동방식이 비슷하군.’
저들도 나처럼 할 일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갑작스레 저승에 와 버렸단 뜻!
‘설마 저들에게 에퀴녹스가 수작을 부렸을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그 지하 밀실처럼, 이 피라미드는 【중간 가지】── 즉 이승과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할로윈이나 추석에 혼령들이 현세에 풀려난다는 이야기도 의외로 흔하지 않은가. 이승과 저승을 잇는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 얘기는 나에게 희망의 활로를 열려주었다.
‘내가 넘어왔던 지하 밀실은 입구가 막혀있던 데다가, 이미 없어졌지.’
이 피라미드를 파고 들어가 볼 가치는 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탐사대원들에게 정보부터 더 캐내기로 했다.
“혹시 시리우스 탐사대의 어떤 모험가가 지하의 문을 연 건 아닙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아, 당신도 피라미드를 탐험 중이었소?”
“아니오. 그 모험가랑 우연히 만나서 얘기를 좀 나눴었죠. 그렇다고 친한 사이는 아니고요.”
일단 저들에겐 라이벌 관계니만큼 모르쇠로 일관하는 나.
하지만 아마 브리타니아의 왕녀가 나랑 그녀의 남편이 채취한 독샘으로 막혀있던 문을 열었나 보다.
‘혹시 그게 원인일지도 모르겠어.’
피라미드의 심부에 자리한 저승의 문이라. 그럴싸하잖아? 이름만 들어도 저승이랑 연결될 것 같이 생겼네.
‘……그런데 그게 사실이면, 왕녀님도 저기 있겠네?’
어쩌다 일면식이 있길 다행이군.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이런 곳에서 왕위계승권자가 죽을 수는 없는 판국 아니겠는가. 지금쯤은 그들도 엄청나게 경계심이 높아졌을 것이었다.
마주치자마자 싸움이 벌어지지 않기만 해도 그때의 만남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 말했다.
“아무튼 문이 열렸다면, 여러분도 거길 들어가 보셨겠군요.”
“그, 안쪽을 좀 탐사하다가 나왔수. 보물이 좀 있나 했지.”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던 걸지도 몰라. 저주를 받아서 이런 이상한 곳을 헤매게 된 거지.”
“이제 와서 후회해서 어쩌게? 너도 탐험가로서 넘어갈 순 없었잖아.”
탐사대원들은 급변해버린 환경에 지쳤던 모양으로, 상당히 가벼워진 입으로 온갖 한탄을 해댔다.
그들의 말에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가 부활할 수 있도록 미이라를 안치하는 왕릉입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피라미드 쪽의 공간과 연결돼 있을 수도…… 왜들 그러십니까?”
파라오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는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도 파라오가 꼬맹이다 어쩌다 했던 것 같은데.
“파라오……! 그래! 그 꼬맹이야!”
“꼬맹이요?”
“저 피라미드의 안쪽에서 나타난 환영 말일세!”
그들은 분개한 듯 눈밭을 밟아가며 성을 냈다.
“시리우스 탐사대가 연 입구로 들어가 봤는데, 피라미드의 안쪽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어! 너무도 불길해서 도무지 발이 떼어지질 않았지.”
“그리고 눈앞에 갑자기 이상한 꼬맹이의 환영이 나타나선 자기가 파라오라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우리더러 더 안쪽으로 들어와 보라고 재촉을 하더란 말일세!”
“안쪽이라는 건 어디죠?”
“당연히 더 아래지 어디겠나. 밖으로 나가봤자 아무 소용없으니까, 살아 돌아가고 싶으면 더 밑의 계층으로 내려와 보라면서 우릴 속이려 드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단 밖으로 나와 보니까, 여기로 연결됐다는 말씀이시군요?”
“아암, 그렇지! 그 쥐방울만한 꼬맹이가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게 분명해!”
탐사대원들이 씩씩대자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뉘신 지도 모를 자칭 파라오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일단 따지고 보면 이들은 그 꼬마 파라오의 무덤에 무단 침임을 한 도굴꾼 아닌가. 화를 내도 될 입장은 아닐 것이었다.
‘꼬마애 무덤을 털다가 그 유령에게 참교육을 당한 거잖어.’
반대로 쪽팔려 해야 하는 일 아닌가? 꼬마애랑 도둑이라. 존나 나 홀로 집에도 아니고.
아니, 쫓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죽이려고 드는 망령이라면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가긴 하겠군.
그렇지만 뭐든 간에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고개를 젓고서 그들이 빠져나온 출구─혹은 입구─를 쳐다보았다.
“안쪽이라는 곳은 저기로 들어가면 됩니까?”
“뭐? 설마 들어갈 생각인가? 그만두시게! 탐험가로서 하는 말인데, 저 안은 도저히 현실 세상 같지 않은 몽환도였어!”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요.”
나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겪어봤던 바로는 이 한빙지옥은 어딜 가도 현실미 빵점의 지옥도였다. 아무리 악몽 같은 세상이어도 지옥보다는 편하겠지.
나라도 아내들 문제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서두르진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아니, 다른 곳으로 가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인가.’
그나마 이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이곳이 제일 나을 것이다.
‘리스크가 동일하다면 리턴이 확실한 쪽을 고르는 게 맞아.’
내가 거절하자 그들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시게. 몸 간수 잘 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합류하지 않자 아쉬운 듯 하면서도, 완전하게 믿자니 찝찝한 녀석이 제 발로 사라지자 어쩐지 안심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이상의 참견은 서로에게 오지랖이겠지.
나는 탐사대원들에게 위험하니까 가급적 이 주변을 돌아다니지 말라는 충고만 던져주고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입구 근처는 평범한 돌 건물 같았는데, 지하 계단을 찾아내서 내려간 즉시 ‘평범하다’는 생각은 싹 접어야만 했다.
휘오오오─.
메마른 바람이 속눈썹을 파고들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태양빛에 달궈진 듯 뜨거운 모래바람이었는데, 바깥에서도 불지 않는 바람이 건물 안에서 불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바람 따위보다 몇 배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지평선이네?”
피라미드 바로 아래는 드넓은 사막이었다.
태양이 내려쬐는 황량한 모래사막!
아무리 그래도 너무 황당한 광경이었지만, 현실이 아니란 결론을 내리기에는 오감에 전해지는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푸른 하늘과 마른 땅을 번갈아보던 나는 허리를 숙였다.
─사박.
모래를 한 줌 쥐었다. 손가락 틈을 벌리자 생생한 모래의 감촉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고운 입자의 모래가 바람에 실려, 별로 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유적으로 날아갔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막화가 진행된 오아시스의 옛 터전 같은 곳이었다.
이런 초현실적인 광경이라니? 왜 탐사대원들이 도망쳤는지 알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밑으로 내려오라고 했다고?”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계층’이 몇 개는 더 있다는 뜻일까?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시발, 탑 등반물이야 뭐야.”
존나 건물 안에 이런 넓은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마법으로 만든 공간도 아니었다. 오딘의 눈을 켰다 끈 나는 눈을 반개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대충 알 것도 같군.’
내가 이 어메이징한 이세계에서 구를 만큼 구르고 깨달은 팩트 하나.
‘이세계의 법칙에는 예외도 자비도 없다.’
대충 보고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비상식적인 것들에는 다 그만한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내러티브.
이런 경우에는 저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말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모종의 논리정연한 과정과 법칙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이 말씀이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아공간을 만들려면 마법의 힘을 빌려와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마법적인 술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눈으로도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좆 쩌는 술식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마법인가 아닌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신급의 마법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아무 술식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었다.
출처는 확실치 않지만 오딘의 눈은 신의 권능이라고 봐도 모자람 없는 눈깔이 아닌가
내 눈이 버그가 났을 확률도 무시하긴 뭣하긴 한데, 몇몇 가능성을 따져보자 얼추 1~2개의 가설이 짜였다.
‘아무튼 이쪽도 현실성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크.’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가까이 오는 기척을 감지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하라고는 볼 수 없는 푸른 하늘을 갑자기 새의 그림자가 덮었다. 50마리는 가뿐히 넘을 숫자였다.
“삐에에에에에──!!”
형형색색의 새들은 둥글게 홰를 치며 모래밭에 내려왔다. 마치 그 자체로 그림자나 환영인 것처럼 현실적이지가 않은 기이한 날갯짓이었다.
‘존나 또 뭔데?’
인상을 쓴 내가 몸을 피하자 새 떼는 모여들면서 찰흙처럼 융합했다.
흩날리는 깃털은 모래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회전하면서 녹아내리고, 한 곳에 응축되어 사람처럼 변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마나의 움직임은 없다.
─푸확! 소용돌이가 터져나가며 안측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돌개치는 깃털이 무대 연출처럼 가라앉았다. 무슨 히어로 랜딩처럼 무릎을 꿇고 있던 소녀가 천천히 일어났다.
《──파라오, 등장!》
팟─! 새들이 융합하며 나타난 소녀는 하늘에 손가락을 내지르며 외쳤다.
얜 또 뭐야 시발. 나는 황망하게 입을 벌렸다.
중학생은 됐나 모를 어린 소녀였다. 키는 작고 머리는 희다.
특징이 있다면 왼쪽 눈을 가린 안대일까. 피부는 연한 갈색이며 옷차림은 상당히 화려했는데, 그런 복장을 익숙하다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꼬마였다.
《현세와 명계의 필연을 역전(逆轉)하여 망자의 땅에 도달한 새로운 방문자여! 기천의 세월을 넘어 성사된 이 만남은 태양신께서 점지한 운명일지니!》
그 꼬맹이는 돛대 위에서 먼 곳을 내다보듯 나를 쳐다보며 활기차게 중2병 환자 같은 포즈를 취했다.
《나의 이름은 이원왕(Dual King) 세헤테피브라! 68대 파라오이자 아메넴헤트의 적자, 수수께끼와 퍼즐의 기재인 이 몸께서! 서기신(書記神) 토트의 시련으로 네놈을 시험하겠다!!》
─처억! 대사를 읊고 나를 가리키는 자칭 파라오.
뜬금없기 짝이 없는 등장에 내가 대답을 못 하고 멍청하게 쳐다보자, 안대 꼬맹이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표정을 다잡고 삿대질한 손을 다시 안대로 가져갔다.
《나의 이름은 이원왕(Dual King) 세헤테피브라!》
《아, 거기서부터 다시 하게?》
《으, 으으으……!》
내가 나도 모르게 그만 대사를 끊어버리자, 연갈색 피부의 꼬맹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분한 듯 어깨를 떨었다.
기껏 폼 잡으며 등장했는데 내가 리액션이 어설펐네. 미안하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