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44화 (544/1,009)

─푸욱.

나는 망설임없이 빼앗은 검을 암살대장의 심장에 찔렀다.

〈커흑, 커어어억……!!〉

그러자 칼날에 어둠과 음의 마나가 빨려들어갔다. 암살대장 새끼가 가진 암흑-마나가 흡수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내 창이 땟국물을 빨아마신 것처럼 말이다.

〈예상했던 그대로였군.〉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나서 검을 뽑아냈다. 칼날에는 피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으며, 뻥 뚫린 심장도 순식간에 나았다. 이 검 모양 매직 아이템의 효과였다.

〈오프툼이 그러던걸. 자기들도 아이템에 깃든 흑마법까지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칼끝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 정도의 증세는 고대유물 급의 마검이나 마창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자주 보이니 말이야.

─크흐흐. 도구의 힘을 사용하는 흑마법 사용자와 진짜 흑마법사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

─수렵신님의 축복으로도 전자는 구분할 수 없지만, 감으로 알아차릴 자신이 있다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씹새가 알아차리긴 개뿔이. 눈 훤히 뜨고 놓쳤구만.’

이 놈들은 지금까지도 이런 방법으로 정체를 숨겼겠지.

그 정도라면 오프툼과 다른 사냥개들도 어떻게든 구분이 가능했던 모양인데, 코뤤투스의 가죽 마법까지 걸어버리자 그냥 놓쳐버렸던 것이었다.

어쩌다 보게 되더라도, 저주받은 무기를 든 모험가 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오프툼한테 불시검문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간 얄쨜 없이 마녀사냥이니까.

〈어둠과 음의 마나를 무기에 저장한다? 괜찮은 방법이군. 마법을 못 쓰면 마법사가 아니듯, 흑마법의 힘을 잃으면 흑마법사가 아니지. 이 위장 방법은 너희의 중대 기밀이었겠어.〉

〈헤억, 허억……!〉

암살대장은 얼굴이 곤죽이 되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저저 씹새끼 눈깔 떨리는 것 좀 보게.

아니나가 다를까, 이 엘리트 대갈통 강북호 님의 생각이 딱 들어맞았던 모양.

〈……자, 그러면 슬슬 결론이다.〉

이만 야매 추리쑈의 막을 내리자. ─콱! 검을 그 새끼의 목 옆에 꽂았다.

〈에퀴녹스한텐 모종의 목표가 있다. 어둠과 음의 마나를 모으는 건 그래서고, 너희는 책의 내용을 해석하다가 놈에게 감화되었다. 때문에 영혼을 저당 잡혀가며 노예를 자처했고.〉

암살대장의 숨이 거칠어졌다. 눈은 충혈된지 한참 지났다. 눈앞에서 동료가 뒤지며 흐른 피가 바지를 적셔도 아무렇지 않던 새끼가 목이 조인 듯 눈을 떨었다.

그만큼 그 공통된 목표를 들키지 않고 싶은가.

이해하기 어렵군.

〈철저한 위장으로 피라미드를 탐사한 것도 그 일환이지? 정확히 뭐가 목표인지는 너희들의 영혼에 물어보면 되니까, 지금은 넘어가지.〉

말하면서 또 1명의 혼을 끄집어내서 기억을 추출했다.

실패했다. 영혼을 즉사시키지는 않았지만 기억을 추출하기 전에 못 버티고 죽어버렸다. 저주가 혼을 침식한 것이었다.

문제없다. 실패는 다음 기회에 살리면 그만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던가.’

즉, 실패를 반복하는 이들은 일종의 출산 머신인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자애심과 모성을 깨닫고, 내세에는 훌륭한 여왕개미 같은 걸로 환생하기를.’

나는 시체를 던져버렸다. 에비 지지.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이상한 거야. 여기에서 뭘 얻으러 왔든, 현세로 돌아가지 못하면 쓸모가 없잖아. 세헤테피브라의 제안을 미리 알았다는 것도 이상하고.〉

〈쌔액, 쌔액, 후윽…!!〉

〈그래서 발상을 바꿨지. 부활 수단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생각의 방향을 그렇게 잡고 보니까, 느그들 몸에 걸린 저주에는 영혼을 회수하는 마법도 포함돼 있더라? 코뤤투스 놈처럼 부활할 수 있게.〉

나는 손가락을 세웠다. 당연히 그 마법은 내가 영혼 채로 파괴해버렸지만 말이다.

〈니플헤임에 굴러다니는 영혼에게 육신을 주고, 현세까지 끌어올리는 마법이더군. 그리고 그런 게 가능하다면, 조금 더 발전된 결과를 내는 것도 가능하고 말고.〉

나는 한때 사티스 교단의 교주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피라미드의 보물을 노리고 모여들 흑마법사는 확실히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임모르탈리스〉의 본거지도 미발견 피라미드로 여겨지는 실정이니.

발견되지 않은 피라미드는 숨어 있기 아주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막을 이 잡듯이 뒤져도 나오지 않는 〈임모르탈리스〉는 아직 보고되지 않은 피라미드에 죽치고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임모르탈리스〉는 나르메르-나일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이 나라의 음지에 숨어 있던 건 아니란 뜻이지.’

정답지는 이미 내 눈으로 보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세계.

죽은 파라오가 부활할 때까지 영혼을 쉬며 보내는 낙원.

다시 말해서 혼의 벙커이자, 현세와 명계를 연결하는 통로.

니플헤임의 피라미드.

〈너희들, 이 니플헤임에 본진을 쳤지?〉

이 놈들은 나르메르-나일의 모든 피라미드가 공유할 터인 기능을 악용한 것이었다.

현실로 돌아갈 방법만 있으면, 이 혹한의 지옥에 세운 본거지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테니까.

어디 그것 뿐인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은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디아볼로을 죽여버린 내가 니플헤임에 온 것. 그것 자체가 이상하지.’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에 떨어진다.

너무 당연한 명제라서 의심조차 않았는데, 이제 와서 보면 그건 존나 웃기는 일이었다.

에퀴녹스가 어둠과 음의 마나를 회수하려고 만든 마법인데, 그 영혼이 당최 왜 니플헤임으로 떨어졌겠는가?

놈의 마법이 무력화돼서 자연의 법칙에 따른 거라면 내가 땜빵으로 끌려온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서로 상충되는 인과관계. 거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간단하다.

〈──당연히 에퀴녹스도, 이 니플헤임에 있겠고 말이야.〉

에퀴녹스의 영혼 회수 마법이, 타겟을 잘못 삼았어도 방향까지 틀리지는 않았던 거라면?

그렇기에 나는 이곳까지 끌려왔고, 미처 완성되지 못했던 마법 탓에 에퀴녹스의 코앞까지 끌려가지는 않았던 거라면?

그거라면 존나 말이지 되죠 씌바.

〈어쩌면 그 새끼도 이미 피라미드 안에 기어들어와 있을 수도 있겠네. 실력이 후달리는 노예들한테 맡기자면 고놈도 불안할 테니까.〉

─파악! 나는 품에서 꺼낸 〈임모르탈리스〉의 인적 사항을 뿌렸다.

돈을 주고 샀던 이 서류에 에퀴녹스로 보이는 놈은 없다.

어둠과 음의 마나를 별도 보관할 수 있다면, 그 놈 본인이 피라미드에 와 있을 가능성도 컸다. 얼굴이 알려졌어도 그냥 가죽을 뒤집어 쓰면 그만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게 니들이 저주의 힘을 빌려서라도 묵비해야만 하는 비밀이다.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들조차 알지 못하는, 에퀴녹스의 직속 노예들만이 아는 1급 비밀 말이야.〉

내가 뿌린 서류가 피에 젖어들어갔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러면 이만 채점 부탁한다. 내 뇌피셜은 몇 점이냐?〉

암살대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의 대답이 어떤 결과가 될지.

그리고, 에퀴녹스의 저주는 그의 알량한 기만을 용납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컥! 커어어어억!!〉

긍정도 부정도 못하던 그의 눈이 문득 흰자위를 드러냈다.

미친 듯 숨을 내쉬던 암살대장의 입이 쫙 열렸다. 마치 입 안에서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 검은 마나가 쏟아졌다. 기어코 입막음의 저주가 발동한 것이다.

〈정답이란 뜻이군.〉

─서걱!! 검은 그림자는 내 창날에 썰려나갔다. 암살대장의 영혼도 뒤따라 소멸했다.

〈수고했다. 썩 믿음이 가는 대답이었어.〉

완전 헛다리였다면 저주가 발동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픽 웃었다가, 조울증 환자처럼 인상을 쓰며 창을 노려봤다.

‘……그나저나 이 새끼,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 같은데.’

처음 놈을 죽였을 때랑, 암살대장을 죽였을 때랑 확연하게 손맛이 달랐다.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하면서 강화라도 되고 있는 건가? 불길하게시리.

‘아 씹, 됐어. 어쨌건 할 일도 늘어났고, 졸라 바빠지겠네.’

나는 나머지 놈들도 처리하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할 일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세헤테피브라의 시련을 통과한다.

2. 그러는 한편, 탐험대로 위장한 흑마법사들을 찾아내서 족친다.

3. 그 놈들의 영혼으로 연습해서, 저주를 피해가며 기억만 추출하는 기술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에 숨어든 에퀴녹스를 찾아낸다.’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승산도 낮다. 찾아내는 것만 하고, 싸우지는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충돌은 피하기 힘들겠지.”

에퀴녹스가 가졌을 부활 방법이나 세헤테피브라의 도움이 없으면 내가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어떡하겠는가.

아무튼 멍하니 서 있어서 될 일은 아닌가.

노트를 꺼냈다. 아공간에 보관해 두는 것과는 다른, 내 개인 노트였다.

여기에는 4인조한테 받은 정보를 적어뒀다. 계단 탐색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통과 조건은 채웠으니까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는 입구만 찾아내면 되지 않을까?

─힐끔.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헤테피브라는 딱히 나타날 기미가 없다.

아마 이 세계의 모든 광경을 동시에 관찰하지는 못하겠지. 내 경험 상 그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문제를 눈치채기 전까지는, 고독한 교수 슬레이어로서 활동해야겠지.

나는 옷깃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좀 서바이벌다워지기 시작했군.”

─웅웅. 팔찌로 변신한 창이 내 말에 호응하려는 듯 떨린 것만 같았다.

니는 좀 자제하자, 쒸팔럼아.

자꾸 이상한 것만 처먹으면 탈 나요.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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