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43화 (543/1,009)

〈……꺼져라. 네놈에게 해줄 말은 없다.〉

쌔액, 쌔액─. 의식을 되찾은 암살대장은 숨을 거칠게 쉬며 말했다.

나름 핸섬하던 얼굴이 곤죽이 났기에 호흡도 어려워 하는 모양이었다. 그니까 거, 실력에 비해서 허세 부리지 좀 말지. 쎈 줄 알고 적당히 힘 주고 쳤다가 죽일 뻔 했자너?

사내 놈의 새끼가 츤데레 마냥 새침 떼는 게 꽤 좆 같군. 나는 그 놈 앞에 쪼그려 앉았다.

〈……뭐냐.〉

〈내가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 곱씹을수록 신기하더라고.〉

─툭. 비석에서 꺼낸 책을 바닥에 던졌다. 나는 한순간 저 새끼의 눈이 떨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에퀴녹스 새끼가 주고 간 해석 불능의 책과 똑같은 저서.

이 새끼의 품에서 찾아낸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 것과는 다른 점도 있다. 이 암호를 해석하고자 잉크니 뭐니 잔뜩 묻힌 흔적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존나 중요한 물건이겠지.’

몸에서 떼어놓지도 못하고, 이렇게 비밀 활동 중에서마저 갖고 다닐 만큼 말이다.

〈내가 보기엔 너네들은 사고방식이 존나 이상해. 딱 봐도 영혼까지 저당 잡혀서 에퀴녹스의 눈 밖에 나면 뒤지는 신세인데, 왜 그 놈을 꼬박꼬박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추종할까?〉

〈……………….〉

〈죽고 싶지 않아서? 뭐, 그럴 수 있어. 근데 너희한테 걸린 마법이란 게 어어 하는 사이에 걸릴 만큼 간단하진 않거든. 니들이 아무리 병신 중의 쌉병신이어도 말이야.〉

말하자면 양판소 어쌔신의 문신이나 조폭의 등짝 용 문신 같은 것이다.

마취도 안 하고 용 문신을 새기는 건데 100% 들키지. 그 유명한 관우도 화타가 어깨를 쨀 때는 아닌 척 하면서 존나 이 악물고 있었을 걸.

‘그런데 그걸 랜섬웨어 깔듯 스리슬쩍 걸어버린다?’

아무리 봐도 그건 좀 무리가 있다.

영혼이 붙잡힐 정도면 오한이나 통증 같은 걸 동반할 터.

그런데 그걸 눈치를 못 챘다고? 당연히 거짓 부렁이지.

〈이게 무슨 소리냐? 즉, 니들이 저항을 못 하는 동안 억지로 걸렸거나, 아니면 자진해서 목을 내밀고 걸어주십셔~ 했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걸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움찔.

뭐라고 대꾸하려던 암살대장이 흠칫했다. 말을 끝낸 나의 두 눈이 오딘의 눈 모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외견 상으로는 변화가 없는데, 이 놈도 마법사라면 눈깔에 깃든 모종의 위압감을 감지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 놈이 유독 그런 감지능력이 예민한 편이던가.

덜덜덜…….

차분한 척 하면서도 발끝을 떨기 시작하는 암살대장.

나는 그 놈의 영혼을 들여다보듯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나를 밧줄처럼 뻗어서 기절한 흑마법사 한 마리를 낚아챘다.

신축자재의 마나 밧줄! 번지점프 밧줄처럼 늘어난 마나는 뱀처럼 그 새끼의 목을 분지르고, 내 발 아래에 자빠트렸다. 나는 시체의 머리를 밟고 룬 스톤을 꺼냈다.

내 발 밑에 룬의 만다라가 펼쳐졌다. 베로니카도 애용하는 룬 마법의 고등 응용기다.

ᚨ(Ansuz)의 룬과 ᛈ(Perth)의 룬.

영혼에서 기억을 추출하는 콤보다.

슈오오오오오…….

……카칭!

하지만 영혼의 기억은 추출되다가 말고 끊겼다. 이 새끼한테도 걸려 있던 에퀴녹스의 흑마법의 방어기제였다.

─쿠왁!!! 갑자기 어둠이 솟아나며 흑마법사의 영혼이 무슨 우동반죽처럼 구겨졌다.

카오오오오─!

입 막음의 저주는 놈을 심문하려던 나한테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들었다. 악귀처럼 변한 어둠이 내게 손톱을 지른 것이다.

나는 감흥 없이 창을 휘둘렀다. 흑마법의 저주는 항마의 힘에 썰려나가며 소멸했다.

‘어, 애미.’

그런데 조금 예상 밖의 일도 있었다.

내 창은 흑마법을 처부수는데 그치지 않고, 그걸 구성하던 어둠과 음의 마나까지도 흡수해 버렸던 것이다. 이 미친 놈이 진짜 암흑-마나에 맛을 들렸나. 주는대로 처먹네.

놀랍다 못해 빡칠 정도였지만, 나는 짐짓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자약하게 룬 스톤을 던졌다가 받았다.

〈봤지? 니들 영혼에 걸린 건 이런 마법이야. 한 번 걸린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에퀴녹스를 조질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듯한, 그런 흑마법이지.〉

〈……무슨 말이 하고 싶지?〉

〈대가 없는 충성은 없지. 기사도나 의리라는 건 실제로는 아무도 실천하려 들질 않으니까 그렇게 강조되고, 띄워주는 거야. 그러면 니들은 대체 무슨 대가를 받으며 에퀴녹스에게 충성하는 걸까?〉

〈묻는다고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나?〉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건 심문이 아니야.〉

대답해 봤자 지금 내가 기억을 추출하려던 새끼처럼 폭발사산하며 뒤져버릴 텐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오딘의 눈을 ON/OFF 하면서 또 1명의 흑마법사를 데려왔다.

─콰드득!

바로 목을 부러트려서 해치웠다. 사람을 죽이는 짓은 암만 반복해도 즐겁지 않았지만, 이 새끼들은 살려주거나 자비를 베풀 놈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편하게 죽는 걸 감사해야 할 처지다.

절명한 흑마법사가 영혼을 뱉어냈다. 지옥에서 죽는다는 건 참 모순적인 표현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세계에서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은 별개였다.

─카칭!

기억을 추출하려 들자 이번에도 흑마법의 저주가 발동했다.

〈멍청한 노력을 하는군. 그 저주가 그리 쉽게……?!〉

연속된 실패에 비웃음을 띄우려던 암살대장의 눈이 부릅뜨였다. 내가 창을 긋자, 조금 전과는 다르게 심문자를 노리는 저주가 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냥 보기만 하는 것보단, 실제로 발동시켜서 술식의 변화까지 보는 게 더 분석하기 쉽지.〉

그리고 구조를 분석할 수 있으면 부숴버릴 수도 있다.

흑마법사의 혼은 단말마를 지르며 소멸했다. 창이 가슴을 관통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내 창으로 그 씹새끼의 어둠과 음의 마나가 빨려들어갔다.

망연자실하던 암살대장은 목울대에 핏줄을 세워가며 악을 썼다.

〈저주를 분석했다고 한들 해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넌 빛의 마나를 사용할 줄 모를 텐데!〉

〈해주까지 갈 것도 없지. 이미 발동된 마법이라도 술식이 흐트러지면 효력이 붕괴하니까.〉

내 창이 가진 마나를 거절하는 능력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기둥이 무너졌는데 건물이 멀쩡하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잖은가? 마법도 거기서 거기였다.

조금 예상 밖이긴 했는데,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까지 생겨버린 창이다. 저주를 부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물론, 아직 정보를 캐내는 건 어렵지. 니들한테서 기억을 추출하려면 이 술식만 부수면서 영혼은 살려둬야 하니까. 1~2명 연습한 것 가지고는 엄두도 못 낼 일이야.〉

그래서 저번에 생포했던 놈은 사티스 교단에게 맡겼었다.

지금처럼 술식을 부수려다가 영혼까지 죽여버릴 가능성이 컸는데, 심문 가능한 상대가 1명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마침 여기는 같은 저주에 걸린 흑마법사들이 존나 많네?〉

나는 픽 웃었다.

표본이 늘어나고 횟수가 중첩될수록 실험 성공률은 오른다. 랩실에서 배운 삶의 지혜다.

암살대장의 안색이 하얘졌다.

〈……다른 동료들은 이 피라미드에 없다! 네놈의 지레짐작이야!〉

〈어허. 우리 사이에 구라 까기 있냐? 좀 전에 부하 놈을 도망치게 시켰잖아. 그러면 도망쳐서 합류할 상대가 있다는 뜻밖에 더 돼? 뭐라도 연락할 방법이 있긴 하겠지.〉

〈크윽……!〉

오딘의 눈을 킨 나는 저들에게 걸린 그 저주를 훑어보기만 해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저주에 걸렸다면 일단 흑마법사로 봐도 돼.’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놈들에게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마피아 게임에서 누가 마피아인지 이마빡에다가 써 붙이고 다니는 거랑 똑같지.

〈찾아낸 놈들을 상대로 연습해 볼 생각이다. 몇 명만 더 잡다가 보면 입막음의 저주를 뚫고 정보를 뱉어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 아, 그리고 방금 네가 내뱉은 말에서 신기한 점이 또 있더군.〉

─콱! 창을 내려찍었다.

부지불식간에 눈으로 쫓은 암살대장은 자기 책이 관통된 걸 보고 눈을 부릅떴다. 부하들이 내 손에 뒤질 때보다 더 격한 리액션이었다.

〈‘다른 동료’랬지? 이상한걸. 너희들이 그렇게 말할 만큼 동지의식이 있다니. 내가 해치운 정규 멤버 놈들이랑은 천지차이인데?〉

〈……합!〉

손도 발도 못 쓰고 휘둘리기만 하는 상황에 결심이 굳었던 걸까. 암살대장은 입을 크게 벌렸다. 어쌔신의 국룰처럼 이빨 아래에다가 독이라도 숨겨뒀던가 하는 걸지도 몰랐다.

심문이 처음이라 깜빡하고 자결할 가능성을 놓쳤다. 근데 뭐, 솔직히 실수 좀 했어도 별로 상관 없었다.

─쩌억!!

창대가 번뜩이며 암살대장의 턱을 쳤다.

〈게헥?! 으캬악……!!〉

턱 관절이 빠져서 부랄처럼 늘어졌다. 이제 자살 같은 건 꿈도 못 꾸겠지.

대꾸도 못 하겠지만, 그게 더 낫다. 저주를 역이용해서 별 것 아닌 정보를 던져주고 자결해 버리면 큰일이잖어?

창을 바닥에 찍은 나는 냉엄하게 말했다.

〈얌전히 듣기나 해라. 거듭 말하지만, 이건 심문이 아냐.〉

단지 이 씹새끼의 리액션으로 내 생각이 얼마나 맞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사람은 입과 문자로만 생각을 표현하는 생물이 아니걸랑.

비언어적 표현이라고 들어봤을랑가 몰라.

〈내 생각이나 마저 말하지. 너희는 억지로 명령을 강요당하는 처지가 아니야. 오히려 동료의식까지 가질 만큼 확고한 목표를 공유하고, 에퀴녹스를 따르는 거지.〉

사실을 자백하면 뒤져버리는 저주?

그런 건 정보 유출을 막으려는 수단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예측은 앞뒤가 잘못되었다. 이 새끼들은 저주 때문에 따르는 게 아니다.

따르고자 마음을 먹었기에, 자진해서 저주를 받아들인 거다.

어쩌면 이 서책에서 뭔가를 알아냈기에, 콩고물을 바라고 에퀴녹스 새끼의 노예를 자처했던 게 아닐까?

〈증거가 모자라서 목표가 뭔지는 확신하지 못 하겠군. 그래도 에퀴녹스가 너희를 꽤 신뢰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게 도구로서의 신뢰인가, 동료로서의 신뢰인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암살대장의 검을 차올렸다. 나르메르-나일의 전통 검은 내 손에 회전하며 붙잡혔다.

검에 걸려 있는 마법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스윽. 그 검으로 암살대장의 목을 살짝 그었다. 모가지에 붙어 있던 시체의 가죽이 저며지며 여름철 쥬지처럼 주르륵 늘어졌다.

〈코뤤투스의 흑마법인가. 에퀴녹스가 그 개새끼의 영혼을 회수하면서 그 놈이 개발한 흑마법까지 손에 넣은 거겠지.〉

디아볼로는 나한테 뒤지기 전에 지하밀실에서 6인의 따까리들한테서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했다. 그리고 그 새끼들이 쓰던 마법까지도 구사했었고 말이다.

당연히 그 마법을 가르쳤을 에퀴녹스도 똑같은 개짓거리가 가능하겠지.

다나의 메시지에 ‘코뤤투스는 흑마법사가 아니게 됐다’는 얘기가 있던 게 증거였다.

〈에퀴녹스는 손에 넣은 위장 마법을 너희한테 걸어줬다. 왜일까? 피라미드를 탐사시키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조금 잠입하긴 모자랐을 거다. 피라미드에는 사티스의 사냥개들이 어슬렁댔을 테니까.〉

오프툼은 〈임모르탈리스〉의 실마리를 잡고자 피라미드로 갔다고 했었다.

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 채로 나를 도우러 알리씨크로 왔다.

그의 가호는 탐험대에 숨어 있던 이 새끼들을 분별해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마침 조금 전에 확인한 참이었다.

〈너희들이 수렵신의 가호를 빠져나간 방법은…… 바로 이거다.〉

─푸욱.

나는 망설임없이 빼앗은 검을 암살대장의 심장에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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