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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42화 (542/1,009)

《──쌍귀 포위진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발을 붙잡아!》

대장이 안면함몰로 혼절하자, 부대장 같은 놈이 외쳤다.

그 외마디 비명 같은 지시에 흑마법사들이 재빨리 진형을 갖췄다. 실전에서 뼈가 굵어진걸까? 마법사답지 않게 상당히 움직임이 날렵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지.’

달인이 될 수록 마법사와 전사의 구분은 희미해지지만, 그 말은 달인 이하의 2~3류라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 새끼들은 팀워크를 위해서인지 개개인의 능력치는 별 볼 일 없었다.

《느그 주인님의 수족이라더니, 실력은 비루하군.》

위력만 높지 에임은 씹창난 흑마법을 가볍게 피해가며 픽 웃었다.

《자기를 영혼을 예속당한 노예라 소개하기는 부끄러웠나 보지? 입막음하기 편하게 쓰다 버리는 잡졸 주제에 말이야.》

발설하면 뒤지는 저주? 그런 건 신용받지 못하는 잡몹이란 증거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말 1번 잘못하면 즉사하는 흑마법을 걸게 둘 만큼 가진 힘이 없는 깍두기 악당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크하아앗!!》

찔린 듯, 놀란 듯 흠칫하던 흑마법사들이 거칠게 돌격했다. 내 팩트폭력에 빡친 모양이다.

바라던 바다. 공격일변도의 태세와 흔들린 마음은 빈틈을 낳으니까.

콰르르르가가각─!

창에 오러와 번개 마법을 감고 휘둘렀다.

싸움이 지진부진해 지려면 실력이 비등하거나 몸을 아끼며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에 임하는 우리는 피차 그럴 마음이 없었다.

승부는 순식간에 갈렸다. 1명의 흑마법사가 뇌진탕을 일으키며 기절했다. 부숴진 턱주가리는 애교였다. 실력이 불분명하니까 힘 조절이 어렵군.

‘나는 방어력도 높고, 소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처지다. 그리고 저 놈들도 뒤지는 일이 있어도 나를 죽이고 싶겠지.’

싸움의 결착이 폭주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빠른 건 그래서다.

‘내가 저 빡통들보다 훨씬 쎈 덕분도 있겠지만, 뭐 아무튼.’

대신 방어를 포기한 적들의 목숨을 건 공격이 내게 꽂혔다.

물론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나 소모는 컸지만 딱히 상처는 없다.

마나 코팅과 ᚦ(Thurisaz)의 룬을 새긴 매직 아이템이 주는 마법 내성의 힘이었다.

‘야수회귀가 사기는 사기야.’

특히 룬 마법과의 시너지가 미쳤다.

가성비 좋은 고효율 방어 마법인 마나 코팅을 룬 마법으로 두께를 늘리거나 가공하면 실드 마법이 부럽지 않다. 내가 더 좆밥일 때부터 강자들을 이기게 해 준 마법은 격하의 상대를 쓰러트릴 때도 빛을 발했다.

《도, 돕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신관이 말하며 전투에 개입했다.

딱히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싸우겠다는데 사양할 것도 없었기에 그냥 냅두었다.

그렇게 3명째의 흑마법사를 제압했을 때였다.

《어어? 어딜 도망가, 새꺄!》

심문해 보려고 사지만 썰던 나는 부대장 같던 놈의 대사가 나를 향한 페이크이자, 자기들끼리의 암구어 같은 거였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혀를 찼다.

눈치채게 된 이유는 별 것 없다. 무슨 동귀어진을 노리는 듯 말하더니만, 무려 잡졸 중 1명이 흑마법을 사용해서 도주한 것이다.

거품처럼 분열한 놈이 4인조 탐험대를 상대하며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환영을 남기고 튀었기에 방심했다면 놓쳤을 것이다.

‘다른 동료들에게 소식을 알리려고? 절대 못 보내지.’

밤에 잠도 못 자고 습격을 경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환영분신을 두고 튀는 놈에게 마찬가지로 분신을 써서 응수했다. 구름에서 튀어나온 내 분신이 그 놈을 가로막았다.

《분신이다! 본체보다 못하니 무시하고 도망── 억!》

〈집중해, 개자식아!〉

내가 피를 조종하려던 부대장의 턱을 엘보로 찍자 뒤에 있던 4인조의 리더가 팔을 잘라냈다. 마법의 특성인지 어깨죽지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혈흔의 십자가를 만들었다.

《무슨 스플래터 톰과 제리 같군.》

내가 창을 털며 읊조렸다. 도망친 놈은 볼 것도 없었다.

《─아가가각!!》

파지지직─! 부대장의 말만 믿고 내 분신을 공격한 새끼는 감전당해서 비명을 질렀다.

《신기루 템포, 썬더 트랩.》

덤덤하게 중얼거리자 도주하려던 흑마법사가 기절했다.

자기 흑마법 분신처럼 물리력을 가진 분신 정도로 여겼던 모양인데, 검을 꽂자마자 수증기 분신 안에 채워넣었던 번개 마법이 폭발한 것이었다. 큐트한 적란운 분신 되시겠다.

〈허억, 허억…… 이게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이 피라미드에 흑마법사는 절대 없는 거 아니었어? 그 사티스의 사냥개들이 왔다 갔었잖아?〉

4인 파티는 숨을 몰아쉬었다. 날 의심하는 눈빛은 아니다. 설명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짜잔! 그런데 절대란 건 없군요.〉

발치에 구르는 놈들은 사람 가죽을 덜렁거리며 꿈틀댔다. 나는 서늘하게 눈을 반개했다.

아마도 이 씹새끼들은 처음부터, 피라미드 탐험대에 꼽사리 껴 있었던 모양이었다.

***

〈모험가인 노르드입니다. 그쪽 학자 분은 구면이죠?〉

우리는 간략한 자기 소개를 마쳤다.

내가 떠드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강철 밧줄인가 뭔가로 흑마법사들을 묶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했다. 존나 내가 목숨을 구해줬는데 당연히 잡일 정도는 도맡으셔야지.

〈예, 예. 그때 사막의 버려진 도시에서 뵀었죠.〉

학자는 땀을 닦다가 말했다.

〈그때 차려주신 식사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혹시 저기 차려져 있던 고기도 노르드 님의……?〉

〈제가 깔아둔 게 맞습니다. 아, 걱정하실 건 없고요. 원래 그리폰을 유인하려고 함정을 판 거였거든요. 낚인 게 살짜쿵 의외의 상대이긴 했습니다만, 본전은 친 셈이군요.〉

〈그, 그렇군요.〉

턱짓으로 흑마법사들을 가리키자 그들도 납득이 간 모양. 나랑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말을 나누게 된 듯한 학자는 좀 안색이 어두워졌다.

〈흑마법사가 숨어들어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

〈놀랍기는 하군요. 제가 사티스 교단에 들렀을 때까지만 해도, 사냥개 몇 분이 피라미드를 서성였다고 들었는데요.〉

싼 값에 만든 인공 미스릴으로 헌금을 하러 갔을 때였다. 교주 씩이나 되는 양반이 친히 나와서 오프툼이 피라미드에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감히 흑마법사들이 피라미드의 보물을 노리지 못하게요.〉

〈그런데 이제 보니, 그들은 당당하게 숨어 있던 흑마법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거, 꼭 그렇게 생각할 순 없지 않남?〉

리더 격인 전사의 말이었다. 내가 눈빛으로 묻자, 그는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들이 가고 나서 갑자기 모여든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저기 저 개새끼가 쓰고 있던 끔찍한 인간 가죽 말인데, 내가 오고 가면서 얼굴을 본 적 있는 골드 클래스 모험가라서…… 뭐, 그렇다굽쇼.〉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떠오르는 흑마법사가 1명 있다.

‘코뤤투스의 위장 가죽 마법.’

사람의 가죽을 진짜 피부처럼 뒤집어 쓰는 흑마법이다.

그냥 가죽 좀 덮는 정도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성직자로서의 성취가 높은 사람이 아니면 간파하기도 힘든 잔혹한 마법이었다.

〈……흐음.〉

엘리트 대굴빡을 풀가동하던 나는 바닥의 검을 밟았다.

내 달인급 드리블에 칼이 회전하며 튕겨나왔다. 맨손으로 붙잡아서 오딘의 눈으로 한참 동안 살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 검은 매직 아이템일 것이었다.

내 창이랑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그런 매직 아이템 말이다.

〈……본인들한테도 물어봐야겠군.〉

〈아, 심문이라면 맡겨 주셔도 되는데.〉

흘리듯 한 말을 들었던 걸까. 4인조에서 유독 말수가 적던 마법사가 말했다.

마, 니 자신 있나? 이 쉐끼들 혀 잘못 놀렸다간 곧바로 콱 뒤져뿐다 아이가.

〈관둡시다. 심문은 하루 이틀만에 끝나는 게 아닌데다, 숲 속에서 하다간 병 걸려서 죽어버릴 겁니다. 시간 낭비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심문이라는 건 사람의 심력을 고문과 그밖의 기타 등등으로 깎아내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정보를 불 녀석은 손톱 1개만 뽑아도 분다고.

‘마법 훈련이 곧 자발적 고문인 흑마법사들을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고문하라고? 그럴 이유는 없지.’

심문해서 정보를 캐내는 건 비효율적이다.

─주섬주섬.

일단 그리폰의 깃털부터 챙겼다. 내가 지켜보는 중에 나타났던 놈들 것까지 포함하자 무려 14장이나 나왔기에, 그중에 남은 걸 4인조에게 건네줬다.

그밖의 소지품은 탐험가다운 장비나 식량, 그리고 제각각 들고 다니는 책 정도였다.

책은 엄중하게 봉인되어 있었기에 뜯는데 애를 먹었다. 난 그 서적을 앞뒤로 확인하고 눈을 반개하다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학자에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왜 혼자이십니까? 길게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습니다만, 에르제 씨가 일행을 버릴 분은 아닐 듯 한데.〉

〈문을 지나온 순간, 일행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파라오 세헤테피브라의 말로는 영혼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도 막을 수 없는 현상이라고……〉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면 흩어진다구요?〉

〈그렇죠 뭐. 우리도 그래서 각자 파티원이랑 헤어졌고요.〉

신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씨발. 나는 절로 찡그러지는 인상을 펴도록 노력했다.

‘좆 됐네. 우리 아내들이 여기로 오면 어떡하지?’

만약 나를 돕겠단 생각에 아내들이 니플헤임에 온다면?

이 넓은 계층에서 찾아라 아내곤볼을 해야만 하겠지. 무려 흑마법사들이 우글거리기까지 하는 이 트루-지옥에서 말이다!

농담으로 흘러넘길 수 없는 얘기였다.

‘메시지부터 남겨야겠군.’

바로 노트에 받아적었다. 아내님들, 절대, 오지, 마셈…….

손을 가쁘게 놀려가며 눈을 끔뻑대는 학자에게 물었다.

〈……그러면 에르제 씨나 그 남편 분은 각 계층에 흩어져버린 상태겠군요. 합류를 생각 중이십니까?〉

〈예. 흩어지면 안전지대를 찾아 합류하는 게 저희 팀원의 기본 프로세스입니다.〉

안전지대. 유적 탐사 전문 모험가들이 쓰는 단어다.

고고학자이므로 나도 알고, 브람마톤 교수님의 저서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유적 안에서 안전을 보증할 수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탐험가가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중요한 개념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라면 더 그렇다.

나는 노트를 덮어서 아공간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움직이다가 동료 분들을 만나면 일단 말을 전해두죠.〉

〈저희와 함께 이동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러지는 맙시다. 제 옆에 있으면 이런 놈들만 더 자주 보게 될 텐데요.〉

뒤진 흑마법사를 발로 툭툭 찼다. 흑마법사의 위협은 좌시할 수 없었다. 나랑 다녀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거란 말이지.

〈아…… 과연. 노르드 님 쯤 되시면 혼자이신 게 훨씬 편하시겠군요.〉

내 목에 걸린 인상미채 가면을 보고 학자는 바로 납득했다.

기습을 할 때도 발목만 잡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거겠지. 이 탐사가 일반적인 상황이면 인원이 늘어서 손해볼 게 없는데, 흑마법사 새끼들이 참 좆 같은 상황을 조성해 놓은 거였다.

‘바퀴벌레와 흑마법사는 찾아내는 족족 족쳐버리는 게 가장 옳은 대처라니까.’

역시 흑마법사 새끼들은 사악한 교수가 맞다. 죽여버려도 하등의 양심적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사악한 족속이로군.

‘나중에 모여서 다굴당하면 귀찮고.’

장기전이 되면 물자 보급이 안정적인 내가 유리하다.

자기들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따로 다니는 놈들을 각개격파해 두자.

‘마침 이 니미럴 놈들도 양판소 어쌔신들처럼 구분이 가는 표식을 달고 있잖아? 미리미리 솎아내 둬서 손해볼 건 없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4인조 파티에게 빵과 고기를 잔뜩 베풀었다. 꼭 선거철 정치인처럼 다정다감하게, 그들의 손을 잡고 직접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하지만 내 식량은 아니다. 이 흑마법사 새끼들 거다.

그리고 딱 봐도 미각 씹창난 벌레먹이 흑마법사 새끼들의 식량답게 맛대가리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굳이 멀쩡한 식량을 두고 이런 걸 먹기 싫다는 생각에 나눠주는 건 아니다. 절대 아님.

〈이, 이건?〉

〈시장하실 텐데, 가서 나눠 드십쇼. 많이 있으니까 싸우지 마시고요.〉

〈……죄송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천금보다 귀한 게 식량입니다. 노르드 님의 몫까지 거저 받을 수는 없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저는 굶어 죽을 걱정은 없어서요.〉

정확한 방법은 말할 수 없었기에 조금 실랑이가 있었지만, 앞으로 할 일을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게 더 귀찮았다. 근데 참 사람이 양심적이시군. 나 같으면 낼름 받았겠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헐벗은 여신관이 허겁지겁 개입했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여기서 헤매면서 알아낸 정보를 건네드리겠어요. 1주일 이상 걸려서 찾아낸 정보니까, 1주일 치 식량을 소모한 대가로는 적절하지 않겠어요?〉

〈오. 훌륭한 발상이십니다. 안 그래도 여쭙고 싶었는데,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시는군요.〉

내가 호구도 아니고 처음부터 물어보려고는 했지만, 직접 말해주다니 고맙군 그래.

나는 그들에게 들은 정보를 노트에 받아적고 나서 그들과 헤어졌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시 만날 수 있게 위치는 공유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나를 두고 가는 걸 걱정하는 듯 하던 이들은 실력 차이를 떠올린 듯 순순히 떠났다.

‘저 사람들 말 대로라면 일단 1명이라도 통과하면 전원이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굳이 척 질 이유는 없어.’

남에게 내 목숨을 맡길 수는 없으니 서두를 필요는 있을 것 같지만, 일부러 적을 늘리는 건 악수(惡手)였다. 세헤테피브라만이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제 남은 건 나랑 흑마법사들 뿐이다.

나는 바로 대장 쯤 되던 놈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었다. 그 놈은 두 눈을 희번뜩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녕? 일어났군. 니 쮸인님이 에퀴녹스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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