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41화 (541/1,009)

이제 와서 따져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나는 새로운 기척 쪽에 눈을 돌렸다.

탐험가 같은 복장의 5인 파티였다. 그들은 완전하게 포복 자세를 취하고 기척을 최대한 줄이며 접근했다. 방향은 마침 식사에 눈이 돌아간 4인 파티 쪽이다.

‘먼저 상대의 위치를 발견하고 방향도 확실하게 잡았는데, 굳이 기척을 저렇게까지 숨긴다고?’

그렇다는 건, 접근 자체가 건전한 목적은 아니겠군.

지레짐작으로 의심부터 하는 나. 오딘의 눈 원툴이었지만 뭔가 의심되는 요소는 없는지 그들에게도 눈을 부라려봤다. 통일성 없는 인원들에게 마법적 공통점은 하나 뿐이었다.

“……………….”

대답은 금방 나왔다. 의심할 가치는 충분했다.

나는 나뭇가지를 최대한 조용히 부러트려서 밑으로 던졌다.

─타악!

나뭇가지는 추락 끝에 바닥에 부딪혔다. 무음으로 떨어지던 그 놈은 그때까지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는 것처럼 부러지며 간결한 비명을 질렀다.

〈어윽?!〉

〈컥! 쿨럭, 쿨럭!〉

햄 때문에 손이 기름 범벅이던 4인조가 놀라서 일어섰다. 먹다가 사레에 들리면서도 익숙한 듯 대비하는 자세는 프로의 그것이었다.

스릉─!

그들은 이런 서바이벌 환경에서 누구냐며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4인조는 주목을 끌지 않고 경계를 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들킨 이상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떨어진 나뭇가지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던 5인 파티도 몸을 일으켰다.

《잠깐! 싸울 생각은 없었소!》

《그런 놈들이 수풀에 엎드려서 질질 기어 와?》

《상황이 상황이잖소. 이해해 주시오.》

《시끄럽고, 변명이든 뭐든 말할 거면 로마니아 어로 해!! 다른 녀석들은 나르메르 어라곤 ‘밥 줘’랑 ‘안녕히 주무세요’밖에 못 하니까!》

고기를 먹던 4인조는 조난자들이 꾸린 파티였던 걸까? 여신관이 대표로 단창을 내밀며 일갈하자, 의외로 평생 손톱 밑에 먹물 때 1번 안 꼈을 듯한 걸걸한 남자가 대답했다.

〈로마니아 어! 그거라면 내가 좀 하지!〉

생김새랑 안 어울리는 하이톤이었다.

나는 그 천하태평한 대화에 사냥 직전의 독수리처럼 홰치고 있는 그리폰들의 존재도 경고해 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9명 중의 한 사람이 하늘을 보자, 자연스럽게 다른 놈들도 시선이 따라갔다.

〈그리폰! 피해욧!〉

다행히 발견이 빨랐기에 피할 여유가 있었다.

기겁을 하긴 했지만 피라미드를 탐험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 4인조는 가볍게 회피했다.

의심스럽던 5인조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신기하게도 제일 몸이 잽싸야 할 도적이 바닥을 굴러가며 피했다. 그리폰들을 발견한 것도 그 파티의 마법사였다.

〈죽여버려!〉

〈뭣 빠지게 사냥해도 고기도 안 뱉는 새끼들!〉

그래도 일단 급강하를 피하고 나자 그럭저럭 이겨낼 수는 있을 듯 했다.

나는 말 한 마디 없이 저격수처럼 자세하게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승부는 끝이 났다.

〈실력이 제법이시오?〉

5인조 파티의 리더 같은 인간이 말했다. 아까 전의 걸걸한 와꾸의 기사였다.

〈그거 고맙군. 하지만 이런 곳에서 굳이 말을 건다는 건 동업자끼리의 매너 위반인데?〉

〈매너가 모자랐다면 사과하겠소. 하지만 혹시 괜찮다면, 이 시련인지 뭔지를 통과하는 동안 손을 잡았으면 하오.〉

〈동맹~?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현세로 돌아가려면 뒤통수를 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게 될 텐데?〉

여신관이 신경질적으로 거부하자 5인조의 리더는 정색했다.

〈그건 착각이외다. 그 파라오라는 존재는 인원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잖소?〉

〈그런 건 굳이 말로 명시 안 했어도 나처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틀렸소. 우리는 말하자면 살아있는 채로 저승에 온 거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보다는 가망이 있단 말이지.〉

마치 마법사처럼 말하는 그는 익숙한 듯 설명했다.

〈믿기 힘든 건 이해하오. 하지만 터 놓고 묻지. 식량이나 물자의 보충없이 자네들 4명이서 깃털을 10장씩 모을 수가 있으리라고 보오?〉

〈그러는 댁들은 가능하고?〉

〈해 봐야 알 일이지. 못해도 식량은 많은 편이거든.〉

가방을 가리키자 4인조들의 눈이 살짝 떨렸다.

무시하기는 힘든 유혹이겠지만, 지켜보는 나로서는 저렇게 지진부진한 대화가 언제까지 이어지나 초조할 따름이다.

〈그리고 뭣보다, 자네들도 처음부터 한 팀은 아니잖소?〉

〈……조금 상담하게 해 줘.〉

다행히 기사의 그 말이 결정타가 된 듯, 4인조 파티원들은 몇 걸음 물러나서 수근거리다가 더 이상 질질 끄는 일 없이 승낙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들이 합류하기로 하자 기사는 반색했다.

〈잘 생각했소! 우선 우리의 베이스캠프로 가지. 배고프지 않소?〉

〈식량이야 많아서 나쁠 것 없지. 대신, 너희가 앞장 서.〉

〈물론이지.〉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운이 좋았다. 5인조가 다른 파티를 데려가는 방향이 바로 내가 올라타서 숨어 있는 나무 쪽이었던 것이다.

〈사실 식량을 얻는 법을 찾아냈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라도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

나불대던 기사가 손목에서 은밀하게 단도를 꺼냈다. 마치 암살자처럼 숨겨두었던 칼날이다.

친근하게 말을 걸던 그가 에르제의 파티였던 학자에게 접근했다. 그 일련의 동작은 해체에 숙달한 정육업자처럼 원숙한 경지여서, 그들을 의심하던 내 눈에도 자연스러웠다.

단, 조금 느린 게 흠이었다.

─파츠즈즛!!

〈끄캬아아아아악──?!〉

쏜살처럼 날아간 〈번개의 화살〉이 기사의 몸을 지졌다. 내가 바로 위에서 저격한 것이었다.

〈마법?! 다른 탐험가의 기습인가!〉

진짜 번개만은 못해도 빠른 공격이었기에 그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대장이 당한 수상한 파티는 패닉에 빠졌고, 4인조 파티도 의심하고 경계하던 이들의 리더가 공격당하자 꽤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나는 〈화살〉을 2발 더 쏘아냈다.

〈하압!〉

이번에는 경계하고 있던 만큼, 공격을 당한 도적은 바람의 실드를 둘러서 몸을 지켰다.

잽싼 방어였지만 실력이 모자랐다. 8발이나 연달아 꽂힌 〈번개의 화살〉은 바람을 헤집고 들어가서 마법사를 지져버렸다.

〈으끄으윽!!〉

그런데 놀랍게도, 마법사는 맨몸으로 내 마법을 견뎌냈다.

‘죽이지 않으려고 힘 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마법사 새끼가 악과 깡으로 버틸 정도의 출력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걸 되짚어서 말하자면, 저 새끼는 마법사가 아닌 것이다.

이를 갈던 마법사는 핏발 선 눈으로 으르렁 거렸다.

〈이 씹어죽일 자식들……! 갑자기 어색하게 부러진 나뭇가지가 떨어졌을 때부터 의심스럽더니, 우리를 유인한 거냐!〉

〈뭐, 뭐?!〉

〈가증스러운 연기는 집어 치워라! 반대로 함정을 파다니, 간교한 수작을 부리는군!〉

당연히 애먼 사람을 잡는 마법사와 그의 동료들의 분노에 내 고기를 훔쳐먹은 4인조는 어이가 없는 듯 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콰르르릉─! 눈부신 빛을 쏟아내며 더 큰 번개가 지면으로 꽂혔다.

마법사는 이번에는 막지 않고 피하고서는 번개가 쏟아지는 곳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이 놈들의 동료는 저 나무 위에 있는 녀석 뿐이다! 작전은 철회! 전원 몰살한다! 겉가죽은 포기해라!》

《예!》

─콰슉! 도적이 기절한 기사의 멱을 따버렸다. 생포당하는 걸 막으려는 과감한 한 수였다. 마법사는 경악하는 4인조의 파티를 보면서 완드를 꺼내들어서는, 그걸 제 가슴에 박았다.

《크흐아악……!!》

〈뭐, 뭐야! 아까부터 뭔데, 대체!〉

다른 놈들도 자기 무기를 뽑아서는 스스로의 몸에 주사기 꽂듯 꽂아버렸다.

무기가 생살을 찢는 소리가 섬뜩했는데, 더 섬뜩한 것은 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씹새들의 피부가 앰플에서 흘러들어간 독액을 흡수한 것처럼 썩어들어갔다.

콰르르르르…!!

분수처럼 넘쳐흐르는 어둠과 음의 마나!

도적으로 위장하고 마법사로 위장했던 그들은 겉에 둘렀던 가죽을 뜯어내며 정체를 드러냈다.

그들의 정체는 탐험가인 척 피라미드의 탐사대에 숨어 있던 흑마법사였던 것이다.

《……이 꼴을 보인 이상에는 한 놈도 살려보낼 수 없지.》

뼈가 드러난 섬뜩한 하악골을 매만지며 모험가 마법사였던 흑마법사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 새끼가 진짜 리더였던 듯, 자리를 잡는 흑마법사들은 움직임이 매서웠다.

《영광으로 알아라! 주인님의 수족인 우리에게, 그 비루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인님이라고만 하면 우리가 알아듣냐? 똘추 새끼야.》

《……아?》

그들의 대장이 그 말을 듣고 대굴빡을 든 순간이었다.

─와지끈!

내가 내려친 창이 그 놈의 뼈 뿐인 하악골과 코, 미간과 이마 뼈를 싹 박살냈다. 내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낙하 공격을 때려박은 것이었다.

정신 산만한 번개는 이목을 돌리려고 일부러 뿌린 거였다. 썩은 피가 튀면서 이 씹새가 얼마나 어둠과 음의 마나에 친숙한지를 알려주었다.

《하여간 씨펄, 존나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 같으니라고.》

나는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다.

오딘의 눈을 끈 지금도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멍하니 날 쳐다보는 흑마법사 애미나이 새끼들의 영혼에 걸린, 어떤 강력하고 수준 높은 흑마법이 말이다.

이 나라에서 나를 습격했던 새끼들한테도 걸려 있던 보안 마법이다.

파티원 전원이 흑마법사에게 걸려 있던 거랑 같은 마법을 걸려서는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저장한 매직 아이템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모든 게 전부 우연이다?

‘그게 진짜 지랄이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또 혀를 찼다.

……그래, 뭐.

애초에 씨발, 흑마법사 새끼 때문에 오게 된 곳에서 이딴 새끼들이랑 안 만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병신이었지.

《안녕, 벌레박이 친구들?》

존나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나는 한탄하는 대신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니들 혹시, 그리폰 깃털 가진 거 있냐?》

있으면 좀 빌려줘 봐.

나중에 꼭 갚을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