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48화 (548/1,009)

***

《GN-12번 피라미드의 탐사는 당분간 금지되었습니다.》

노르드의 아내들이 새롭게 발견된 피라미드에 도착했을 때.

갖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밤낮도 가리지 않는 강행군으로 간신히 도착한 피라미드의 입구가 통제당하고 있는 모습에, 안 그래도 심로가 쌓였던 다나는 곧바로 꼭지가 돌아버렸다.

“아니 씹, 금지? 금지이이~? 입구를 통제해? 니들이 무슨 자격으로? 대답을 해 봐, 폐에 모래먼지로 적층이나 쌓았을 새끼들이!”

《어, 어어! 마, 막아! 저 아가씨 막아!》

“야! 유적 입장 통제는 일국의 왕도 못 하는 건데, 니들이 뭐라고 피라미드 입구를 틀어막고 앉았어! 나르메르-나일에서 내전이라도 터졌냐?! 고고학계에서 가만 냅둘 것 같아?!”

《뭐, 뭐라는 거야?! 로마니아 말 아는 병사 없냐?!》

《로마니아가 아니라 브리타니아 말 같슴다! 저희 중에는 할 줄 아는 놈 아무도 없슴다!》

“씨발 이거 안 놔?! 저기에 우리 병신 남편놈이 있대잖아! 놓으라고! 니들 대가리 깨 버린다!! 유적에 대한 불법 통제랑 그에 따른 항소법이면 줘패고 지나가도 할 말 없을──”

“진정해.”

한동안 성질을 부리던 그녀는 눈앞이 휙 돌자 말문을 닫고 말았다. 뒤편에 선 누군가가 한순간에, 그러면서 그녀의 몸을 염려하는 동작으로 다나의 몸을 들춰버려서였다.

작은 애완동물 낚아채듯 허리를 잡고 휙 들어버리자 아무리 피로가 쌓여서 이성이 무뎌진 다나라도 머리가 식었다.

뚱한 얼굴로 돌아보자 하늘색 머리카락의 달인이 멍~ 한 표정으로 다나를 만류하고 있었다.

네페르티티는 다나를 내려주며 말했다.

“화부터 내 봤자, 무용지물. 우선 이야기부터.”

“후우, 후우……. 그래요.”

맞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피라미드 입구를 막는 병사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흥분한 나머지 그 잠깐 사이에 원래 힘보다 강한 힘이라도 발휘했던 걸까. 정규 영주의 병사인 듯 보이는 굴강한 남자 몇 명이 허리를 붙잡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통역 좀 부탁해도 될까요? 제가 나르메르-나일 어는 전공이 아니라서.”

“앗, 저한테 맡겨주세요! 보시다시피 네페르티티는 대화를 잘 못하거든요!”

다나의 부탁에 시다나브가 거수하며 나섰다.

네페르티티가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그녀의 호위를 포기하거나, 혹은 시다나브 자신이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 그렇기에 소식을 들은 시다나브는 망설임없이 따라왔던 것이다.

시다나브는 무난히 유명세가 있는 것도 있어서─노르드에 비하면 못 하겠지만, 적어도 얼굴이 알려진 정도는 된다─ 그 병사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청취했다.

5분 후에 그녀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피라미드 안에서 실종사건이 빈발하고 있어서, 잠시 소요를 두고 조사 중이래요.”

“그런 얘기 맞아요?”

“응.”

다나가 네페르티티에게 같은 뜻이 맞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였을까. 다나는 곧장 오만상을 쓰며 혀를 찼다. 도착 이후로 계속 피라미드만 바라보고 있던 프랑이 물었다.

“다나. 설명해 줘.”

“……실력이 뛰어난 탐험가들의 대량실종은 정치적으로나 영지의 운영에서나 문제가 커. 영주가 그걸 막으려고 억지로 통제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것 뿐이라면─통제가 장기화되지 않는 선에서─ 문제시 할 수 없었다.

위험하니까 잠시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입장 금지라는데, 뭘 어쩌겠는가?

그 잠깐을 못 참고 억지로 뚫고 들어가는 건 법률상으로는 옳을지언정, 욕심이 지나치다며 규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이 근처의 탐색원들이 큰 반발 없이 대기 중인 것도 그래서였다.

“입장 자체를 못 한다는 거야?”

“모르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혹은 이 통제 자체가 그 개자식들이랑 커넥션이 있어서 하는 일일지…….”

다나는 입술을 만지다가 오프툼에게 눈길을 주었다.

〈오프툼 씨?〉

〈……흑마법사의 기척은 없군. 하지만 자네가 말해준 그 추측대로라면, 수렵신의 가호도 무기에 어둠과 음의 마나를 숨기고 있는 놈들까지는 감지할 순 없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그는 다소 침체된 듯 보였다.

다나가 노르드에게 받은 정보를 ‘그녀의 추리’로서 전달해 준 이후, 정체를 감춘 에퀴녹스의 노예들이 자신들의 조사를 비웃듯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툼만이 아니라, 흑마법사 축출에 혈안이던 이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영주를 의심하는 건 쓸데없다.

애당초 흑마법이라는 건 남 부러울 일 없는 권력자들이 일말의 매력도 느끼지 못할 분야니까.

“언니들, 모여 보세요. 저희 얘기 좀 해요.”

일단 피라미드까지는 따라온 라리루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일행들을 불렀다.

일행이 모이자 라리루라는 작게 속삭였다.

“안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베로니카 언니의 마법이 아니라도, 경비병들 자신이 그렇게 통제에 열심이 아니에요. 뇌물 조금이나 몰래 빠져나가는 걸로 충분할걸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저들의 주장도 부정하기 어렵다.”

여러 나라의 도시를 돌며 검문을 전전해 온 막내의 의견에 베로니카는 나지막하게 반론했다.

“주인님의 연락에 따르면, 문을 통해서 저승의 피라미드에 들어간 순간부터 우리는 완전히 와해된다. 파라오라는 자를 설득하거나 흑마법사의 존재가 없다면 모를까, 이래선 그저 자충수야.”

“적들에게 목을 내밀고 각개격파를 당할 뿐이니까.”

냉정해진 두뇌로 프랑이 곧장 대답했다.

─사각, 사각. 노르드에게 메시지를 남기던 다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돈이나 그 외의 수단으로 더 나은 공략 방법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적절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유적 탐사에 대한 국가의 스탠스는 존중 반, 방임 반이야. 수색 중에 위험에 처했다고 해도 도와달라곤 할 수 없어.”

모험가-탐험가가 유적에서 얻는 이익 중 국가가 받아가는 것은 판매 후의 세금이 고작이다. 의무를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요구한다고 해도 도와줄 리가 없다.

노르드라면 ‘주식을 조져놓고 국가에게 배상하라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마 그녀들은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그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대부분의 국가들은 유적이라는 미지의 황금향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것이었다.

군사력을 내부의 유적 탐사에 쏟다가 외부의 위협을 막지 못하고 망해버린 소국.

【중간 가지】의 역사에서는 흔한 얘기였다.

그럴 바에야 이득을 조금 포기하고, 출토된 유물들의 기술력을 선별해서 구매하거나 탈취하는 게 안전하다. 나르메르-나일의 당대 파라오가 명예 귀족위를 보상으로 이 피라미드의 공략을 일임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모험가 길드에 도움을 청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아우둠라 길드는 게르마니아를 본국으로 삼는 길드고, 어차피 돈으로 고용 가능한 인력은 저 사람들만 못하겠지.”

다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네페르티티와 오프툼을 슬쩍 가리켰다.

대인전에 숙련된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 2명. 유적 탐사에 관해서는 다소 흠결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력이라는 면에서라면 이 이상 없을 만큼 든든하다.

그야말로 마스터 클래스의 괴물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쉽게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면 각개격파 당하지 않을 만한 전력이면 어때요?”

그러자 입을 다물고 있던 티르시가 말했다. 다분히 덤덤한 말투였다.

“네?”

“전력의 차이가 크다면 300명의 병사로도 5천명의 적병을 포위섬멸할 수 있어요. 각개격파라는 건 숫자와 질, 둘 중의 어느 쪽인가가 명백히 더 뛰어나야 가능한 전술이죠.”

티르시는 그렇게 제안의 물꼬를 틀어놓고서 슬쩍 웃었다.

그의 아내인 네 사람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각개격파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노르드가 그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되려 도우러 갔다가 혼나기만 할지도 모른다.

물론 저 4명은 그걸 무시하고자 여기까지 왔지만, 상황이 이렇지 않은가?

무리해서 들어갔다가 죽기라도 했다간 노르드에게 오히려 평생 갈 마음의 상처만 남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다짜고짜 돌격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결국, 티르시나 그녀들이나 내심 최우선시 하는 것은 그의 행복이었으니까.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이 애매모호한 관계는 티르시가 평생 처음 겪어보는, 달콤쌉싸름하기 짝이 없는 줄다리기였다.

서로 한 발짝만 남기고 발끝만 꼼지락 거리는 듯한, 그런 애가 타는 시간이다.

하지만 본질을 말하자면, 그건 오매불망 적절한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던 그녀의 한심함이 원인이 아니겠는가.

먼저 다가가려다가 실수할 듯 해서 무섭다?

핑계도 유분수다.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선을 넘지 못한 채로 치맛자락만 팔랑거리며 꼴에 그를 유혹하려 들다니. 바로 옆에 있는 모 핑크머리 소녀처럼 애교를 부릴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럴 바에는 조금 더 뻔뻔스럽게 굴었어도 됐을 텐데.

아예 눈 꼭 감고 그의 위에 올라탔어도,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노르드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순간, 티르시의 머리엔 그런 생각 뿐이었다.

첫사랑을 허무하게 잃었다는 뒤늦은 후회만이 전부였다. 이 피라미드에 오기까지, 그녀는 어떻게 했으면 노르드와 조금 더 나아간 관계가 될 수 있었을지 수없이 고민했던 것이다.

“그야 뭐, 노르드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과거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그런 애매한 관계인 티르시에게만 허락된 일도 있었으니까.

“정말 친한 친구라면, 싫을 때는 싫다고도 말할 줄 알아야 하잖아요?”

화낼 테면 화내라지. 티르시는 그렇게 말하고 일행들에게 가볍게 윙크했다.

“설명부터 드릴게요. 제 계획은──”

***

“……웨 답장이 없는 것?”

메시지 노트을 확인한 나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대답이 오기는 오는데 ‘ㅇㅇ’나 ‘응’ 정도밖에 속알맹이가 없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위험하다고 재차 강조했는데 닥치고 돌입하지는 않겠지? 니들이 여기 왔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는다고까지 적어놨는데, 설마 그러겠어.

《뭔가 말씀하셨습니까?》

《넹? 아뇨, 아무 것도.》

나는 일정을 잡아준 기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7층의 알프헤임은 ‘휴식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컨셉을 잡아서였을까. 일부러라도 행동 박자가 조금 느린 것 같았다. 감옥 면회에도 내리 하루를 쉬어야만 할 정도였으니까.

반 강제로 휴식을 취해야 했기에 쉬면서도 조금 조바심이 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각 계층의 공략법을 생각하면, 7층을 뚫고 내려가봤자 별 좋은 꼴은 못 볼 테니까.’

나도 나비 나침반 없이는 알프헤임에 못 들어왔거나, 에르제의 남편이랑 똑같이 감옥에 잡혀갔을 것이니까.

또 에퀴녹스가 얼마나 탐사실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작 1~2일로 피라미드 공략 끝!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솔직히 그러면 운명이지 어쩌겠어. 좆 됐다고 복창하는 수밖에.

‘애초에 그 새끼는 7층을 공략 안 했을 거고.’

이 알프헤임에 에르제의 남편이 붙잡혀 있는 걸로 미루어 보면, 7층의 안개를 제거하는 시련은 도전자들의 공동 퀘스트였다. 그리고 숲에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다.

아무도 이 시련을 깨지 못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는가.

선발대에게도 제 7계층은 미공략지대다.

‘그리고 다른 엘프들에게 들어보면, 잡혀온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나비를 갖고 온 사람은 없다.’

즉, 제 7계층의 시련에서 가장 선두에 선 것은 나였다.

어제 하루의 휴식은 머지않아 있을 싸움을 위해서 체력을 회복시킨 셈 치자. 초조해 한다고 공략이 됐으면 나보다 훨씬 오래 있었을 사람들이 다 공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곳이 감옥입니다.》

엘프가 기사가 발을 멈추며 말했다.

《죄수는 나르메르 어를 못 하는 듯 하니, 참고하시길.》

《예.》

그러고 보면 이 사람들도 나르메르 어로 말해주고 있구나.

고대 언어일 텐데 번역 치트가 없는 다른 사람들도 소통이 되는 건, 아마 이 환상세계의 특성이겠지. 나는 대충 넘기고 매직 아이템을 광원으로 삼은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은 무려 강화 마법이 발린 미스릴 철창이었다.

그래도 갇힌 사람을 배려할 정도의 인권의식은 있다는 듯, 최소한의 인프라는 갖춰져 있었다. 엘프는 고향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좆프가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지.

“너는…… 노르드? 혹시 노르드인가?”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은 인기척에 곧장 반응했다.

나한테 말을 건 사람은 차분해 보이는 생김새의 남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에르제의 남편이다. 변신 마법이 풀려서 원래 얼굴이 드러난 것이었다.

곧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호명이었기에 나는 좀 곤란했다. 맥켄지의 얼굴이 아닐 때 만난 적은 없잖은가.

그러자 그는 내 기분을 헤아린 듯 말했다.

“걱정 마라. 엘리자베트에게 네가 우리의 변신을 간파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날 알아보겠나? 맥켄지다.”

─가명이지만 말이야! 으히히히!

옆에서 에고 소드가 깝쭉거렸다. 흑마법사의 분장은 아닌 듯 하니 다행이군.

오딘의 눈으로 훑어도 마법이 걸린 상태는 아니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알고 계시다면야, 뭐. 예. 어쩌다 눈치채게 됐습죠.”

“내 본명은 길다트다. 길다트 브리타니아지.”

“일부러 소개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대충 수긍하고 상황을 공유하려다가, 문득 눈에 띄는 문제를 발견했다.

“그런데…… 다치신 겁니까?”

엘프들이 병자라길래 정신병자라는 뜻으로 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자 그의 몸에 큰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숲에서 적과 만났다.”

“숲에서? 어떤 놈이었죠?”

나는 당연히 그 상대가 에메랄드 비석에 적힌 강적이라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흐름을 생각하면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썩어도 미스릴 클래스인 맥켄지, 아니 길다트였다. 저만한 상처를 입으려면 상당한 강적이었을 것이었다. 후까시를 잡고는 있지만 대충 봐도 무시하기 힘든 큰 상처 아닌가.

하지만 답변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데스 나이트였다.”

“……예? 언데드 말씀이십니까?”

길다트는 내 황망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 나이트가 몬스터에 가까운 짐승들을 죽이고 있더군. 놈은 어떤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덮쳐드니 후퇴했지. 그 놈을 쫓으려다가 또 다른 데스 나이트에게 허를 찔렸다.”

“……데스 나이트가 여럿 있다, 뭐 그런 말씀이시군요.”

─끄덕. 또 고개를 끄덕이는 길다트.

비석에서는 강적‘들’이 아니라 강적이라고 했는데?

‘……그 하얀 갑옷의 기사라는 게 이번 시련의 강적인가?’

그렇다면 데스 나이트는 에퀴녹스의 언데드겠군.

미스릴 클래스의 몬스터를 여러 마리나 사역하고 있다면, 그 놈 외엔 후보가 없다.

어쩌면 부하들에게 호위 삼아서 붙여준 걸지도 모른다. 저 위에서 만난 놈들은 뿔뿔이 흩어진 후로 합류를 못 했었기에 자기들끼리 활동하고 있었다면 말은 되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슥.

감옥에 기대서 쉬고 있던 길다트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대뜸 대굴빡까지 숙였다. 차기 여왕의 남편이나 되는 새끼가 뜬금없이 사형수에게 목을 내미는 것처럼 머리를 숙인 것이었다.

“……뭐 하십니까?”

“노르드. 네게…… 아니, 당신에게 감히 간청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존댓말이다.

이쯤 되자 내 엘리트 대갈통은 우리 부마님께서 갑자기 왜 이 지랄이신지 대충 감이 왔다. 신분이 무의미한 지금, 나와 그의 갑을 관계가 뒤집혀서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은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든 그가 한 말은 자기를 감옥에서 꺼내달라거나, 상처를 치료해달라거나 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 아내, 엘리자베트를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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