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50화 (550/1,009)

“이동 중에는 요 녀석을 들고 계십셔.”

나는 길다트에게 나침반 나비를 건네주며 말했다. 다행히 생체 인식은 아닌지 나비는 주인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양도를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길다트는 나비를 어깨에 얹었다.

“너도 다 생각이 있으니 주는 거겠다만, 뭔가 방법이라도 있나?”

“이걸 시험해 볼 겁니다.”

나무 부적을 꺼냈다. ᚦ(Thurisaz)의 룬을 새긴 매직 아이템이다.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자여…….”

나는 별로 의미는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집중했다. 이 룬의 효과는 공격 마법에 대한 내성과 정신 방호다. 따라서, 내 생각이 맞다면──

……빠직! 빠지직!

‘……통했다!’

마나가 물씬 빠져나가며 안개와 숲의 결계가 소실되었다. 결계는 물론이고, 나무와 식물 같은 장애물까지 싸그리 없어졌다.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린 것이었다.

길다트는 자기가 좆 고생을 한 숲이 원큐에 뚫리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뭐야? 뭘 어떻게 한 거지?”

“신이 만든 결계라고 해 봤자, 과거의 풍경을 재현한 것은 세헤테피브라의 힘입니다. 원리와 대처법을 안다면 어린애의 소꿉장난을 무시하듯 ‘환상’의 일부를 밀어버릴 수도 있죠.”

부적을 챙기며 대답하는 나.

사막 계층에서부터 이런 벽뚫기 치트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이유? 뻔하지. 이런 건 놀이의 룰을 씹고 지 좆대로 ‘응~ 내가 이겼어~’ 하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는 짓 아닌가. 내가 세헤테피브라면 그런 새끼는 피라미드에서 쫓아내고 만다.

퍼즐 게임을 오함마로 부수고 탈출해놓고 상금을 내놓으라 한다니? 내가 빡통도 아니고 주최자의 심기를 거스를 짓을 왜 하겠는가.

‘게다가 이런 방법으로 계층을 뚫었다간 이상한 공간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계층 사이가 어떤 원리로 이어져 있는지 불확실하다. 층을 넘는 방식은 문을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뒤탈을 고려하지도 않을 만큼 촉박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써도 된다.

잼민이 파라오가 항의를 하러 온다면 좋고, 오지 않는다면 더 좋다. 나는 제자리에서 그녀의 리액션을 기다렸다.

“……음.”

하지만 세헤테피브라는 오지 않았다.

내가 저지른 짓은 이 시련의 룰의 근간을 휘젓는 치트 플레이였다. 이 세상의 주인인 그녀라면 감지하고도 남았을 거고, 내게 경고하러 와야 정상일 것인데도 말이다.

역시, 그녀의 목표는 단순한 여흥이나 시련이 아니다.

누가 되었든 간에, 시련을 통과한 자가 와 준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생전의 취미였던 퍼즐 놀이를 즐기고 싶다는 작은 소원이 있을 뿐.

“결계의 무효화는 제 주변에서만 일어납니다. 기척을 먼저 감지한다면 선공을 가하죠.”

“나비의 가이드는 안 따를 건가?”

“그 녀석이 태양의 십자라는 물건의 위치까지 알려주지는 않겠죠. 당장은 쓸모가 없을 걸요? 그렇지만 운 좋게, 뭔가를 물어볼 만한 상대는 차고도 넘치는 환경 아닙니까.”

─스릉. 나는 팔찌를 창으로 바꾸었다.

“에퀴녹스의 따까리들을 찾읍시다. 심문은 맡겨주시고요.”

며칠 정도 각 잡고 뒤지면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여기서부턴 거친 으르신의 시간이라구.

***

흑마법사 귀스타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끝에, 집합이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원래라면 서른 명 가까이 되었을…… 그리고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 만한 일도 거의 없었을 그의 동지들은 고작 5명밖에 없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해도 10명일 뿐이다.

3일만에 ‘육망성의 좌’를 섬기는 〈콩레가티오〉의 인원이 2/3 가량 실종된 것이었다.

〈정녕…… 이게 전부인가?〉

〈……그래.〉

대답을 알고 한 질문에 먼저 도착해 있던 동지가 침통하게 대답했다.

믿을 수 없었다. 원래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로 죽는 것은 일상다반사인 그들이라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가 버리다니? 귀스타보가 아는 한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다른 동료를 이끌던 이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제는 의심하는 게 더 어리석다. 확실해. 요 며칠 사이 우리를 노리는 적은 마장(魔裝)을 사용한 은신을 뚫고, 우리 정체가 흑마법사라는 걸 구분할 수 있는 거다.〉

〈혹은 찾아낸 탐험가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놈이거나.〉

귀스타보는 정체도 목적도 모를 적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마장.

무기에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저장하는, 에퀴녹스가 개발한 독자적인 매직 아이템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인인 에퀴녹스와, ‘육망성의 좌’에 간택된 흑마법사를 섬기는 노예인 것이다.

귀스타보 역시, 그들의 주인이 〈콩레가티오〉를 적당하게 쓰다 버려도 상관 없는 취급의 하찮은 도구로 여긴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다.

콩레가티오(팔과 다리)라니, 이름부터가 노골적이지 않나.

하지만 〈콩레가티오〉에게는 그런 도구 취급을 받아가면서까지 주인에게 바라는 소원이 있었다. 목숨을 저당으로 잡힌 처지조차 감내할 만한, 그런 소원이 말이다.

〈데스 나이트를 수비에 돌리는 게 낫지 않겠나.〉

〈헛소리. 그랬다간 이 숲의 괴물을 어떻게 막겠다고?〉

귀스타보는 동료의 의견에 눈을 부라렸다.

〈주인님께서 맡겨주신 2체의 데스 나이트는 그 괴물놈을 저지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그 틈에 이 계층을 공략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건 우리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전에 내린 합의였어! 우린 아직 시련의 목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탐색에 더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위층에도 공략의 단서가 있을 거라며 올라갔던 동지들은 어떻게 됐나?〉

대답은 침묵이었다.

5~6계층을 찾아보겠다며 올라갔던 흑마법사들도 전멸했단 뜻이었다. 어느 동지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전부 이 빌어먹을 피라미드의 구조가 원인이다. 다른 파라오들처럼 왕릉의 수호자를 죽이는 것 뿐이었으면, 진작에 공략하고도 남았을 것을……〉

저따위 한탄도 이제는 지겨웠다. 귀스타보는 거북한 가짜 가죽 위로 목을 긁었다.

피라미드의 탐사는 에퀴녹스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일이다.

하지만 세헤테피브라의 왕릉은 다른 파라오들과는 모색이 달랐다. 평소처럼 피라미드의 수호자들을 처리하고 파라오의 영혼을 사냥하면 끝나는 간단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따위 영문 모를 시련과 귀찮은 과정이라니?

힘으로 뚫으면 그만이었던 다른 피라미드와는 다르다. 저 강력한 데스 나이트들도 지식의 번뜩임을 요구하는 시련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계속 갑론을박을 나누던 〈콩레가티오〉는 결론을 지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순 없다. 데스 나이트를 회수한다. 제 8계층에서 기다리고 계실 주인님께 낭보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죽을 수는 없어.〉

변명처럼 읊조린 귀스타보의 동료가 단말을 꺼냈다. 죽은 전사의 갈비뼈는 에퀴녹스에게 받은 데스 나이트를 조종하게 해 주는 매직 아이템이었다.

─쿵, 쿵.

왜곡된 공간 탓에 시간이 걸렸지만, 굴강한 거체의 언데드 전사들은 곧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잠깐.〉

원래라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미스릴 클래스의 언데드를 호출하던 귀스타보의 동지가 갑자기 뭔가 눈치챈 듯 말했다.

〈내 감지 마법진에 새롭게 인기척이 잡혔다.〉

〈동지인가? 아니면 척살 대상인가?〉

〈척살 대상이다.〉

행동할 이유가 될 대답이었다.

그들은 바로 준비하고 묵묵하게 이동했다. 데스 나이트의 도착은 목적지에서 기다리면 되니까.

피라미드를 통해서 명계의 문을 넘다 보면, 운이 좋은 탐험가들이 〈콩레가티오〉와 그들의 주인이 탐사하는 ‘진짜 피라미드’까지 따라오는 경우도 많았다.

〈콩레가티오〉가 탐험가로 위장했다는 건 그들 이외에도 공략자들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 좋게 니플헤임에 발을 디딘 탐험가들은 절대로 이 ‘진짜 피라미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 고대의 대전쟁 이후로 줄곧 그러했다고 들었다.

왜냐하면, 에퀴녹스가 지난 1000년 간 다른 이들의 생환을 한 차례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스타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콩레가티오〉라는 단지 그것만을 위한 도구였다.

그들은 이승에서 혐오와 두려움의 상징인 〈임모르탈리스〉보다도 더 역사가 깊고, 그러면서 한치의 존중도 받지 못하는 노예 집단인 것이었다.

1천 년의 전통은 이번에도 유지된다.

과정은 복잡해졌지만 결국 침입자를 모두 죽이고 주인께서 할 일을 마치면, 오늘도 어리석은 이승의 세민(細民)들은 ‘또 피라미드에서 잔뜩 죽어나갔군’ 하는 정도의 감상밖에 품지 않을 것이었다.

탐험가와 모험가가 유적에서 죽는 건 그만큼 흔한 일이다.

〈찾아냈다. 여자 둘, 남자 셋. 5명이다.〉

오랫동안 이 결계에서 시달린 탓이었을까. 귀스타보는 간단하게 목표를 찾아냈다.

그는 연락용 매직 아이템에 속삭였다.

〈데스 나이트를 회수한 이상 유인계책을 쓸 것도 없겠군. 그들이 도착하는대로 곧장 처리하길 바란다.〉

〈아니, 기다려라! 저 여자는……!〉

귀스타보의 냉정한 요청에 다른 동지가 크게 소리쳤다.

〈틀림없다! 브리타니아의 공주다! 현재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자인 제 1왕녀다!〉

〈뭐라고?〉

귀스타보는 그 정보에 척살 대상을 다시 보았다.

에퀴녹스를 주인으로 섬긴지 20년. 이승의 햇살보다 니플헤임의 추위가 익숙한 그였다.

사람의 분위기를 읽는 능력은 없어진지 오래였지만, 분명 군계일학으로 귀태가 느껴지는 여자가 있었다. 탐험가로 위장할 때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동지의 말이다. 사실인 건 확실하다.

물론 이승의 왕족 따위는 〈콩레가티오〉에게 하등 의미가 없다.

하지만 속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죽’은 매력적이다. 노예이자 도구인 그들이 독단으로 살해해도 좋을 대상은 아니었다. 귀스타보는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제안을 정정한다. 유인계책을 쓰지.〉

〈승낙했다. 네가 가 다오.〉

데스 나이트를 호출하고 있는 동지는 어둠과 음의 마나를 몸에 넣고 다뤄야 했다. 마장을 사용해서 탐험가를 위장하는 역할은 그와 그의 일행이 제격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귀스타보는 인기척을 내며, 마치 우연하게 만난 탐험가처럼 자신을 위장했다.

《거기 누구요!》

기척이 전해질 위치에서 대뜸 소리치자, 제 1왕녀와 다른 일행도 고슴도치처럼 무기를 세우며 경계했다.

귀스타보는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 무기를 내렸다.

《사, 사람이로군. 착각했잖소!》

《실례했어요. 저희야말로 사람을 만나서 기쁘네요.》

그 능숙한 연기에 귀스타보 일행의 정체에는 의심을 품지 않은 듯, 일행의 대표인 엘리자베트가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잠깐! 그 이상 접근하지 마시오!》

《그러죠.》

엘리자베트는 발을 물리고서, 손을 가슴에 얹고 겸손하게 말했다.

《첫 만남이니 제가 먼저 자칭하겠어요. 브리타니아의 제 1왕녀인 엘리자베트 플로리나 트리스 브리타니아랍니다.》

《……제 1왕녀!!》

이런 극한상황에서 먼저 밝힐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그 경악성은 진심 반 연기 반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 했다.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것부터 자기 신분을 숨길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만나자마자 급작스럽지만, 여러분께 제안을 드리겠어요.》

엘리자베트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 7계층에는 식량이 지처에 있더군요. 싸우는 일 없이, 저와 함께 이 피라미드를 공략해 주시길 바라요. 살아남아서 조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왕녀의 이름을 걸고 보상하죠.》

《고, 공주님의 제안이라…… 어떻게 할래?》

동지들에게 형식 상의 물음을 던졌다.

고개를 돌린 순간, 귀스타보는 눈짓으로 일행과 합의했다. 유인계책은 상대를 회유해서 기습하는 걸 우선한다. 다치게 하지 않고 생포하려면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 하는 게 옳았다.

《조, 좋습니다. 저희도 한 몫 껴 주십쇼.》

《어머. 판단이 빠르네요. 현명하세요.》

《그야 뭐, 공주님 말씀대로 싸울 이유는 없으니……. 아, 저희들도 식량을 모으는 중이었는데 같이 식사라도 한 끼 어떻습니까? 신뢰를 다지기엔 적절하지 않을까요?》

《저희야 좋죠. 아직 독이 없는 버섯이나 과일을 구분하긴 어려워서요.》

웃음을 지은 귀스타보는 은근히 공주 일행을 유도했으며, 공주는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따랐다.

단지, 속여넘겼다고 여긴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귀스타보가 동지들이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든 순간, 돌아선 등을 찌르듯 정령 마법이 날아왔던 것이다.

─파사사삭!

쿠콰광─!

귀스타보는 바닥을 굴러 피했지만, 발이 느린 동지 2명은 피곤죽이 되어서 쓰러졌다.

처음에는 살의가 없는 구속 마법이었다. 하지만 동지들이 마장을 몸에 꽂으려고 든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화살과 파괴 마법의 세례가 그들의 명줄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표정을 지운 귀스타보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내 일행이 나랑 만나기 전에 당신들의 동료를 해치웠다 그러더라. 그래서 보자마자 알았지.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건 왕족의 기본 소양이야.》

말투까지 바꾼 엘리자베트는 싱긋 웃었다.

그녀는 6층에서 피라미드의 문에 함께 들어온 브리타니아 왕궁 학자와 재회하고, 노르드와 있었던 일을 들은 뒤였다.

《돌고 돌아서 또 흑마법사라니, 재수도 옴 붙었지. 이 나라 왕족들은 어떻게 탈모랑 자살충동에 안 시달리고 산대?》

《이 상황에서 농담을 지껄이는 담력은 존경스럽다만, 그 패기도 거기까지다.》

귀스타보는 엘리자베트의 농담을 무시하고 사인을 보냈다. 데스 나이트를 준비시키고 있을 동지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갓 7계층으로 내려왔던 엘리자베트 일행도 몸을 긴장시켰다. 뭔가를 해 올 거라고 눈치챈 모양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가 우리 동료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게 사실이라면, 너희들에게도 들어야 할 말이 있겠군.》

며칠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적은 저들처럼 위 계층에서 내려왔을 가능성이 컸다. 귀스타브는 서늘한 눈빛으로 어떻게 심문할지만을 생각했다. 승패는 걱정하지도 않았다.

데스 나이트는 인간형 몬스터 중에서도 손 꼽히는 강력한 언데드다.

조종하는 흑마법사의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이 정도의 적이라면 몇 명이든……

《……저기, 뭐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엘리자베트는 조용하기만 한 숲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봐! 무슨 일이냐!》

그리고 귀스타브는 사인을 보내도 답하지 않는 동지들에게 대답을 촉구했다.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대도, 이런 적나라한 상황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행동할 만 하지 않은가.

귀스타보가 고함까지 치자, 간신히 후방에서 뭔가가 그의 머리를 넘어서 지면에 부딪혀 내렸다.

휘익─ 퍽!

그건 분명 시체이긴 했으되, 마나를 품고서 살아 움직이는 언데드는 아니었다.

단순한 시체다.

목이 부러진 〈콩레가티오〉의 노예들이었다. 자기 죽음을 깨닫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절명한 표정들은 얼마나 깔끔하고 확실한 사살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텅 빈 눈동자에서는 영혼의 기척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흑빵에서 흑은 빼 주세요.》

─터덜, 터덜. 나무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해치운 흑마법사들의 소지품에서 주은 검은색 빵을 던졌다 받았다가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왜냐하면 ‘흑’은 쵸큼…… 흑마법사 같으니깐.》

흑빵을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 노르드는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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