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51화 (551/1,009)

《네 이 놈, 노르드!!》

숨어 있던 흑마법사들을 빠르게 암살-심문한 내가 얼굴을 비치자, 저주에 걸린 흑마법사들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들은 어째 표정 짓는 것도 다 똑같냐.

《아저씨 나 알아요? 아마 우리 초면인데. 혹시 내가 넘모 유명해져버린 것?》

기분 좀 풀라고 농담을 해 주자 한층 얼굴이 곱창나버리는 흑마법사였다.

이 새끼들은 사회에 불만이 얼마나 많으면 깔깔깔 유머의 달인인 내 개드립에도 화만 내는 것이지?

히어로 만화에서 웃음이 없는 사회는 지옥이라 그러던데, 이 새끼들은 찐퉁 지옥 주민들답게 웃음꽃이 피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니면 추운 지방 사람들은 다 이래?

《칫!》

그러다 전사처럼 위장한 흑마법사가 품에 손을 넣었을 때, 나는 그를 흉내내는 제스쳐를 취했다.

휘리리릭─ 투퍽!!

나무 위에 숨어 있던 흑마법사들을 떨궈줬던 길다트가 그 위치에서 춤추듯 내려왔다. 검을 휘두르며 흑마법사 4마리를 원큐에 기절시킨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엘리자베트는 폴짝 뛰었다.

“길다트! 무사했구나!”

“배에 칼자국이 생긴 게 무사하다는 범주에 들어간다면야, 그럭저럭 무사한 편이겠지. 그러는 너는?”

“나? 완전 무사해! 배고파 죽을 것 같은 게 전부야!”

“그렇다면 됐다.”

검집에 묻은 피─제압하면서 튄 흑마법사의 피다─를 털어대며 순정마초 길다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마초라는 생물은 진화 타입에 따라서 저토록 애정 표현이 서투른 경우도 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트는 길다트에게 안겨서는 나한테도 인사했다.

“노르드도 안녕!”

“넹. 공주님도 안녕요.”

아, 길다트한테 쓰던 말버릇이 그대로 옮겨갔네.

다행히도 엘리자베트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며칠 사이 포션을 퍼부어서 치료한 길다트의 배를 만져댔다. 눈앞에서 염장질이네, 좆 같게.

난 우리 아내님들이랑 며칠 째 못 만나서 죽겠구만. 작게 투덜거리면서 기절한 흑마법사의 품을 뒤졌다.

‘또 그 놈의 해석불가능한 책이랑…… 뭐야 이건? 갈비뼈?’

시발, 사람 갈비뼈 아냐? 기분 나빠진 나는 밟아서 박살을 내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딘의 눈으로 관찰했다.

‘어, 애미.’

그리고 이게 뭔지 눈치를 깠다.

“……즈기요~ 길다트? 저희가 3일 넘도록 흑마법사들 족치면서 데스 나이트랑 안 마주친 거 알죠?”

“물론 안다. 의심하는 거라면 조금 서운하겠군 그래.”

“저도 조금 토 쏠리니까 그런 말씀은 아내 분한테나 많이 하시고요. 일단 튀는 게 좋겠는데요.”

─빠각! 나는 갈비뼈를 밟아 부수며 말했다.

“지금 데스 나이트가 저 새끼들 콜 받고 달려오고 있는 것 같걸랑요. 저희가 족치기 전부터 불러놨던 듯.”

“데스 나이트?! 쟤들 데스 나이트까지 사역해?!”

엘리자베트는 실력이 되는 만큼 훨씬 더 기겁하며 손짓을 했다.

“알았어! 이쪽으로 도망치자! 우리도 방금 전에 막 여기로 내려왔고, 맵핑도 했으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6층 출구야!”

“예, 그러십시다.”

공간의 왜곡에도 어느 정도 법칙성이 있으니 그렇게 해도 될 것이었다. 나는 대답할 시간도 아껴가며 냉철하게 주먹을 치켜들었다.

기절시킨 흑마법사들은 두고 갈 수도, 전부 업고 갈 수도 없었다.

“보라색의 파문!! 소나기빛 파문질주!!”

─퍼엉! 심폐정지술을 응용한 즉사 펀치로 세 놈을 그대로 황천길에 보내주었다.

지난 3일 동안 개발해낸,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파괴하는 신기술이었다. 참고로 실전성은 별로 없다. 영혼이랑 육체를 동시에 부수는 것에만 중심을 둔 기술이거든.

“여기! 여기로!”

〈쓰벌! 또 뭔 일이래요! 로마니아 말로 해 줘!〉

〈닥치고 뜁시다! 저 노르드 씨가 튀려는데 우리가 남아서 뭘 하겠다고 불평입니까, 불평은!〉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며 허겁지겁 대쉬했다. 안개를 대충 걷어내며 달리자 나도 내려왔던 6계층의 문이 나타났다.

─촤악! 나는 트리플 액셀을 펼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거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죠? 일단 공주님은 올라가라 하십셔.”

“고맙다. 또 빚만 지는군.”

“아뇨 뭐, 솔직히 공주님은 여기 안 계시는 편이 더 마음 편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길다트의 대답에 엘리자베트는 살짝 상처 받은 표정으로 제 6계층까지 밀려났다.

두두두두두……!!

숲의 땅을 울리면서 무식한 기척이 달려왔다. 조종을 해줄 흑마법사가 없기에, 전투기술을 빼면 좀비나 다름이 없을 듯한 데스 나이트들이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파츠츠츳…!! 나는 창에 오러를 감으며 말했다.

“준비 됐죠, ‘길’?”

“왠지 모르게 듣기 거북한 이름이군. 물론이다, ‘노’.”

“아니 시발 노는 좀. 농담 좀 했다고 욕하기 없기. 차라리 ‘르’로 하십시다.”

“루? 루는 빛의 신이지. 창도 쓰고. 마침 너랑 닮았군.”

“이 아저씨가 칼 맞은 곳에서 염증이 올랐나. 자꾸 헛소릴 하네.”

혹시 검술이랑 귀족 예법에 인생을 갈아넣어서 평생 친구 없이 살았나. 좀 친해지니까 성격이 술술 나오네.

아니, 이런 것도 남자들끼리는 자주 있는 일이긴 한가. 뭔 병신이지 하고 생각한 새끼들이 알고 보면 나랑 코드가 맞는 놈이기도 하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대기를 타고 있자, 생목을 뿌리 째로 쳐날려버리며 데스 나이트 2마리가 나타났다. 까맣게 굳은 피부는 시체란 느낌보다는 시체를 컨셉으로 만든 마네킹 같았다.

〈RooaaaaA──〉

지성의 편린도 없는 울음소리였다. 전사다운 패기도 없고, 그저 한없이 음침하고 섬뜩한 숨 소리 같았다.

이렇게 보면 디아볼로 놈의 셀프-언데드화가 얼마나 수준 높은 흑마법이었는지 알겠다.

그래서였을까. 느껴지는 강자의 위압감은 경시하면 안 될 적이라는 것을 내 피부에 때려박는 듯 했지만, 두려운 기분은 추호도 없다.

디아볼로 새끼처럼 흑마법을 난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쎌 뿐인 오러 전사는 호르샤를 상대하면서 충분히 겪어 봤다.

“그리고 니새끼들은, 대학원생의 애환을 짊어졌던 그 트롤 킹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저 놈들이 자진해서 데스 나이트가 됐을 것 같지도 않다. 능욕당한 영혼에 영면을 주도록 하자.

어차피 울프헤딘 노르드에게 모든 언데드는 평등하다. 어떤 언데드는 특히 더 평등하다.

데스 나이트라도 영혼에 내 손가락만 닿아도 부처님께 나데나데를 받은 중생처럼 바로 육도윤회로 가버리겠지. 디아볼로 새끼랑은 다르게 마법으로 영혼이 간당간당하게 이어져 있는 상태니까.

─척!

그런 위협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데스 나이트는 방패를 앞세우며 방어 자세에 들어갔다.

콜 센터 직원이 꿈에서도 진상에게 시달리듯 저들은 죽은 후에도 육체에 생전의 전투 기술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저 방패를 오러로 썰어넘기자니 반격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멀찍이 떨어져서 마법으로 틈을 만드는 게 좋겠지만, 근접한 이상 무술에 섞는 버프형 마법이 아니면 되려 틈만 내줄 듯 했다.

그렇게 우리 2명과 2마리가 극한의 집중 상태에서 검끝의 까딱임마저 예의주시하며 변화를 기다리던, 바로 그때.

“〈현빙(懸氷)의 돌격창(Icicle Lance Charge)〉!!”

6계층의 문에서 튀어나온 집채만한 얼음 기둥이 고드름의 낙하를 시궁쥐 시점에서 본 듯한 스케일로 펼쳐냈다. 마나의 양이 위력과 속도에 직결하는 물리 에너지의 마법이었다.

─빠지직!! 까드득!!

내가 상대하고 있던 데스 나이트는 생전에 방어를 특기로 하던 새끼였던 모양으로, 무식한 공격을 그보다 더 무식하게 막아냈다.

언데드 가죽으로 만든 방패로 고위 마법급의 기습을 막은 솜씨는 그 놈의 무술 솜씨에 갈채를 보낼 만한 것이었는데, 지능이 약간 후달리는 게 옥에 티였다.

“가서 죽여라, 귀등환!”

내 손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변신의 룬으로 창을 여의봉처럼 늘려서 바늘에 실을 꿰듯이 데스 나이트의 방패와 검, 투구를 빠져나가서 안와를 헤집고 투구를 벗겨냈다.

“얼음땡이다 씹탱년아!!”

〈Ggguuuu……!〉

창으로 상반신을 억류하면서 죽빵을 갈겼다.

당연히 완벽하지는 않았기에 반격에 맞았으나, 오러권까지 발동한 나의 우주적인 방어력은 오러를 감은 살점 칼날을 큰 폭발음을 일으키며 튕겨냈다.

〈O, Uooo, oooUoOooo…….〉

그리고 내 손에 머리 안에 있던 영혼의 일부가 닿은 순간, 데스 나이트의 영혼은 즉시 성불했다.

본래의 영혼이나 육체의 틀에서 벗어난, 일그러진 혼에게 안식을 주는 오딘의 후계자의 힘이다.

존나 왠만하면 이 미친 인파이트를 할 바에야 그냥 적당히 해치우는 게 나아서 그런가. 언데드를 상대로 이렇게 치트빨 효력을 톡톡히 본 건 예르나랑 싸웠을 때 이후 처음 같았다.

─촤아아아악!!!!

나는 바로 몸을 돌렸지만 길다트 쪽을 도울 것도 없었다. 똑같이 6계층에서 뻗어나온 채찍이 낭창낭창하도록 휘며 다른 데스 나이트의 검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오러권을 쓸 수 있다면 모를까, 오러를 쓸 수 있는 달인 간의 전투에서 그 빈틈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오러로 대검을 만든 길다트가 데스 나이트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Iiiiiiii, nnnnnnt, lllllo……!!”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투구가 뭉개지고 머리가 터졌을 뿐, 데스 나이트의 육체는 아직 죽음을 거부했다.

사람 말의 발음을 뭉갠 듯 죽기 전에 입에 담으려던 말을 되풀이하려던 데스 나이트가, 채찍의 구속을 뿌리치고 검을 물리던 길다트의 목을 노렸다.

“Lllllllloooo!!”

“하아아압!!”

쩌어엉……!!!

길다트는 팔에 땅의 마나를 모으며 위력을 올리고 힘으로 받아쳤다. 비행기끼리 부딪힌 것처럼 공기가 터져나왔다.

존나 개무식한 놈들. 왜 맷집 맞다이를 뜨고 있대. 나보다 방어력도 낮은 것들이 말이야. 나는 석사탈주의 보법으로 그 데스 나이트의 배후를 점하고 뻑치기 일격을 날렸다.

“사신 오의(奧義), 통수까기의 술!!”

《사막의 뱀과 같이(r-Hr.i ir.kwi mi sA-tA n smt).》

그 찰나, 2개의 필살기가 맞물리며 채찍과 창이 수면 위로 튕기는 물 수제비처럼 엇갈렸다.

오러를 더한 파괴적인 공격의 연쇄!

꼴에 내구력이 자신있는 갑옷형 언데드였을지도 모르는데, 오러란 이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고출력의 절기가 아닌가!

자비가 없는 위력에 용서가 없는 손속까지 합쳐지자, 범에 날개를 단 듯이 데스 나이트는 정면에서 다져지고 뒷면에서 저며졌다. 돈까스 분쇄기에 커터칼을 넣으면 그런 파쇄음이 나지 않았을까!

─파사삭!

그렇게 놀라우리만치 허무하게, 2마리의 데스 나이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골로 가 버리고 말았다.

일단 내가 죽인 새끼가 더 호상이라고 본다. 2번째 새끼는 길다트가 홈런샷까지 쳐서 대공포 굵기 샷건에 맞은 북한군을 방불케 하는 네기토로가 돼 버렸던 것이다.

나는 민찌까스라고 말해도 믿을 듯한 다크니스 다짐육에서 눈을 돌렸다.

일방적으로 공격만 날아오던 6계층의 문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미녀들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존나 익숙하다 못해서 눈 감고도 얼굴 묘사가 가능할 듯한 사람들이군.

기가 찬 나머지, 나는 헛웃음마저 흘리며 말했다.

“둘 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대요? 동반자살은 좀 에반데.”

“……아직은 자살 아냐.”

“제가 노르드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같이 살아보기도 전에 같이 죽고 싶지는 않은걸요?”

티르시와 네페르티티는 제각각의 말투로 그렇게 대답했다.

이세계의 지옥은 환생 플랫폼 쯤 되나. 사람이 뭐 이리 많이 돌아댕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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