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59화 (559/1,009)

《후후후후후……. 용맹한 도전자들이여! 그대들의 지혜와 힘에, 이 이원왕 세헤테피브라가 찬사를 내리마!》

잼민이 파라오는 여봐란 듯이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예기치 못한 사악한 자들을 구축하며 7층의 시련마저도 훌륭하게 통과해낸 솜씨! 시련을 구상한 이 파라오조차 감탄 경탄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느니라! 아하하하핫!》

허리에 손을 얹고 웃는 세헤테피브라와, 가만히 있는 우리.

세헤테피브라는 우리가 아무런 대답도 안 하고 쳐다보자, 볼을 부풀리다가 괜히 바닥을 발로 비벼댔다. 알프헤임의 도로정비 사업이 허접해서 돌멩이라도 굴러다녔으면 혼자서 차 댔을 것 같다.

《……치. 반응이 뭐가 그렇게 엷어? 이 파라오가 현세의 왕이었을 때는 내가 뭐라고 말하건 신하들이 눈물에 콧물을 짜내며 박수 갈채를 보냈는데.》

그야 반인반신인 파라오가 그렇다면 해물소스비빔밥도 존맛이라고 해야지.

나는 일행을 돌아보고 대표로 쓴웃음을 지었다.

《보상이 떨어졌다는 건, 통과했다는 소리겠지? 그리고 또, 네가 직접 등장한 걸 보면 시련도 곧 끝날 모양이고.》

《흥. 나는 퍼즐을 퍼즐 밖의 요소로 해석하는 놈이 싫다.》

세헤테피브라가 뚱하니 쏘아붙였다. 아하, 메타적인 해석을 싫어하신다?

하긴, 창작자라면 누군들 안 그렇겠느냐만.

《하지만 적절한 예측이었다. 이 다음층의 시련을 끝으로, 토트의 시련은 끝나지. 그대들도 현세로 돌아갈 수 있겠고.》

《저희 모두가 사이 좋게 부활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엘리자베트가 물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 가지 오해가 있군. 너희들의 현세 복귀는 삶이나 죽음이라는 불가역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다르다. ‘죽은 자의 부활’보다는 ‘산 자의 복귀’가 훨씬 쉬우니까.》

세헤테피브라는 재미없는 질문이었다는 것처럼 손을 휘저어댔다.

《현세와 명계에 혼과 육체가 별개로 존재하며 또한 생전 죽음을 맞이한 나와는 다르게, 너희는 몸도 영혼도 잘 붙어 있지 않느냐. 문을 열어줄 뿐이라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말뜻을 이해했다. 저 말대로라면 자기 자신의 부활은 여러 이유로 다사다난한 모양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의사도 스스로를 수술할 수는 없잖은가.

혼자서도 알아서 되살아날 수 있으면 피라미드를 만들었을 일도 없었겠고.

《……이원왕 세헤테피브라. 저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때 티르시가 나섰다. 그녀의 등장에 잼민이 파라오는 확 밝아진 얼굴로 박수를 쳤다.

《아! 네녀석의 얼굴은 안다! 발퀴리에를 소멸시킨 마법은 잘 보았노라! 그 혹한의 냉기는 마치 명계의 엄혹한 추위를 현세에 초래한 듯 하였으니, 친히 찬사의 말을 건네겠노라!》

《네. 바로 그 점이에요.》

티르시는 나처럼 세헤테피브라의 거창한 말투를 한 귀로 흘리고서, 눈을 반개하며 물었다.

《보고 계셨다면, 알고도 계시겠죠. 당신의 후손들을 항상 시달리게 만드는 흑마법사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걸.》

《뭐, 그런 듯 하더군.》

듣는 내가 허망할 정도로 존나게 소탈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티르시를 그런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끄덕거렸다. 오히려 그 말에 반발한 건 존재감이 전혀 없던 4인조의 엑스트라들 쪽이었다.

《네?! 자, 잠시만 기다려 봐요, 옛날 옛적의 파라오 님!》

《응? 무어냐?》

《다, 당신도 옛날엔 저희 나라를 통치한 파라오였잖아요! 나르메르-나일의 후손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개자식들이 보물이며 뭐며 다 챙겨서 살아돌아간다는데, 그걸 냅둔다구요?!》

나르메르-나일 출신인 여신관의 항의에 세헤테피브라는 잠깐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고, 뒤이어 나온 건 묵묵한 정론이었다.

《현세에 부활할 수 있었다면 어쨌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다. 흘러가버린 옛 영광에만 매달려서는 당금의 문제를 해결해도 파국을 미루는 게 고작일 것이다.》

여신관은 말문이 막혀서 대답하지 못했다.

감정적으로 설득한다면 더 물고 늘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가 분노를 사면 본말전도라고 여긴 거겠지.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상관 없어.》

《……뭐야?》

《네가 원하는 것도, 우리가 원하는 것도, 전혀 바뀌지 않았잖냐.》

세헤테피브라는 그런 대답에 내 눈을 들여다보듯 안대를 안 쓴 눈을 깜빡거렸다.

《……흐음. 다 안다는 듯 떠드는군. 하지만 파라오를 기대하게 만들었다면 그만한 결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기대하라곤 않겠지만,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셔. 몇백 년 넘게 기다리던 거에 비하면 금방일 것 아냐.》

《후후후! 포부는 좋구나! 허면 어디 도전해 보아라!》

─파악! 세헤테피브라는 팔을 벌리며 워프 게이트를 열어젖혔다. 길다트가 말했던 곳 근처에 있던 문이 열렸다.

《제 8계층은 혼백조차 얼어붙는 혹한의 지옥! 이 최후의 시험으로써 토트의 시련은 종언의 때를 맞이했노라! 그러면 너희들의 방문을 기다리겠다! 아하하핫──!!》

날개를 펄럭이며 매로 돌아간 세헤테피브라는 그렇게 훌쩍 날아가버렸다.

매가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나서 엘리자베트가 중얼거렸다.

“……고대인은 우리랑 감성이 많이 다르네. 난 내가 죽은 후였어도 브리타니아를 어지럽히는 놈들이라면 절대로 살려 보내지 않을 텐데.”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걸 수도 있죠.”

“……못 했다니?”

“흑마법사들의 대빵은 데스 나이트를 사역하는 놈입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강한 언데드를 창조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남이 만든 걸 조종할 뿐이라면 몰라도요.”

정령술사인 만큼 엘리자베트는 내 말을 실감하고 안색이 싹 굳었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 쪽에 미스릴 클래스가 넷인데도?”

“로마니아 원로원 가문의 기사단장 왈, 미스릴 클래스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경지를 마스터 클래스라고 부른다고들 합니다. 상대가 그 경지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스터 클래스는 격하의 적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실감이 가는 말이었다. 발퀴리에 같은 새끼만 해도 존나게 무술이 뛰어나서 잠깐이나마 1대 4로도 호각의 싸움을 보이지 않았던가.

마스터 클래스가 그와 비슷한 경지에 격하의 상대를 족칠 힘까지 갖고 있다면, 그야 싸울 엄두가 안 나긴 했다.

미스릴 클래스가 한 100명쯤 동시에 덤빈다면 모르겠는데, 이세계 인구를 전부 모아도 미스릴 클래스급 전사, 마법사가 100명 씩이나 되지는 않겠지.

나는 4인조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여기 남아 계십셔. 저희를 못 믿고 따라오신다 해도 만류는 안 하겠습니다만, 시체도 못 건질지 몰라요.〉

〈옙! 무사귀환을 기도하고 있습죠! 그리고 못 믿는다니, 그런 사실 없습니다!〉

4인조는 여신관의 입을 틀어막고 얼른 물러났다. 알프헤임 안에 머물러도 된댔으니까, 따라와 봤자 별로 의미 없는 사람들은 남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띄웠다. 그래도 여기서 가만히 있어봤자 소용없다는 점만은 의견을 나누지 않아도 공통되는 의견이었기에, 우리는 다음 계층의 문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공주님도 가십니까?”

“전투에서는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겠지만, 누굴 찾으려면 내가 있는 게 좋을 걸?”

그러면서 바람의 정령 같은 걸 손가락에 소환하는 그녀.

순정 마초 길다트가 억지를 부리며 기다리게 하지 않는데 제 3자인 내가 뭐라고 그러겠는가. 믿을 만한 실력이 있다면 사양할 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움직이죠. 저는 벌써 이승의 공기가 그립거든요.”

우리는 알프헤임에서 옷을 챙겨 제 8계층의 문을 지났다.

문을 통과하자, 역시나 설원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죽어버린 세상이다. 딱히 다시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었으며 진짜 니플헤임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진짜 니플헤임과 차이점도 있다. 하늘에서 눈발이 내리고 있던 것이다.

거친 눈보라는 아니었지만 멈출 듯한 기미도 없다. 하늘에 구름조차 없는데 내리는 눈은 어떤 의미로 몽환적이라고 할 만한 기현상이었다.

─사라락.

8계층의 눈을 밟자 인도의 나비는 본분을 다했다는 것처럼 사라졌다.

“……눈.”

네페르티티가 무심코 중얼거린 것처럼 말을 흘렸다. 그녀는 발에 밟히는 눈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나르메르-나일에서 나고 자랐다면, 혹시 눈은 처음 보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었다. 평생 사막을 통치하던 파라오나, 그 통치 하에서 살던 이들은 죽고 나서 처음으로 눈을 보게 되는 걸지도 모르잖은가.

그것도 이 눈 투성이의 지옥에서 말이다.

“푸우우…….”

산 자를 배척하는 듯한 매몰찬 추위에 벌써 귀가 시렵다. 존나 내 이세계 생활은 왜 이렇게 추위나 겨울이랑 밀접한지 모르겠군. 나는 입김을 길게 불고 말했다.

“길다트. 오래 헤맸다고 했으니까 여기 지리는 잘 알죠?”

“그래. 엘리자베트가 도와주면, 그 오프툼이라는 자의 발자국을 찾는 건 쉽겠지.”

이걸 호언장담을 다 하네. 나는 알프헤임에서 가져온 겨울 옷의 후드를 뒤집어 썼다.

에메랄드 비석이 나타나며 목표를 고지했다.

《◇ 목표: 제 8계층에 존재하는 왕릉을 찾으시오.》

《◆ 보상: 획득한 보물의 소유권. 생환.》

“가, 웬디. 사막의 향을 찾아 줘. 향신료 냄새 같은 거.”

엘리자베트가 정령을 날렸다. 그리고 불의 정령─도깨비불 같은 놈─을 우리들에게 1마리 씩 배부했다. 가만히 어깨에 앉아주기만 해도 추위가 한결 나아졌다.

바람의 정령은 오프툼을 찾아서 떠났다. 손바닥에 입김을 불던 티르시는 불의 정령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엘리자베트 님은 정령들의 사랑을 받으시는군요. 모험에 큰 힘이 되겠어요.”

“브리타니아 왕가는 대대로 그랬지. 모험에 나선 건 우리 정도지만!”

“우리가 아니라 너 뿐이다.”

길다트는 말괄량이를 탓하듯 아내의 등을 치고 말했다.

“오프툼이 사냥꾼이라면 체취를 숨겼을 가능성도 크다. 이 주변에 추위를 피할 공간에서 대기하지.”

“여기 몬스터는 없습니까? 언데드라거나.”

“내가 헤맬 때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럭군요. 하지만 정찰용으로 몇 마리 뿌려뒀을 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 보급이 간단한 건 우리만이 아닐 것이니까.

나는 아내들의 항의 어린 편지로 가득한 노트를 못 본 척 석판에 넣고, 길다트를 따라갔다.

****

길다트가 찾아냈다는 곳은 어느 허름한 건물이었다.

놀랍게도 내 고고학적 지식을 올인했는데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디자인의 건물이다. 대충 고대 게르마니아 건축 양식을 아방가르드하게 재해석했다는 느낌.

엘리자베트는 불의 정령으로 빨개진 귀를 녹이며 말했다.

“니플헤임을 재현한 거라면, 이건 죽은 자의 영혼이 세운 건물이려나. 이 피라미드를 나가면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랑 만날 수도 있으려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계십니까?”

무슨 건물 유적 같은 것도 보였으니까, 혹시 사후세계에서 당차게 살아가는 영혼들이 있을지도 모르긴 했다. 내 물음에 엘리자베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노르드 너는 흥미 없어? 모험가답지 않네…… 아, 너처럼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한테는 익숙한 느낌인가? 네 고향 키타이는 신기한 나라네.”

물 흐르는 듯한 편견이었지만 딱히 인종 차별은 아닌 듯한 느낌.

이게 그 오리엔탈리즘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나는 눈을 걷어내고 모닥불을 만들다가 픽 웃었다.

“키타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은데요. 제가 별종인 겁니다.”

“그래? 아무튼 심문 과정은 못 봤었어도, 영혼이 보인다면 편리할 것 같네. 내 정령보다 나은 거 아냐? 활용하면 돈과 명성을 쌓는 건 누구보다 쉽겠다!”

“그렇게 편한 능력도 아니고, 암만 칭찬하셔도 브리타니아 궁정에는 취직 안 합니다.”

“아하하! 눈치챘어? 아쉽다. 우리 나라엔 너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필요한데.”

엘리자베트는 베테랑 모험가답게 긴장되는 상황에서 좋은 농담을 할 줄 알았다. 그녀는 적당한 선에서 잡담을 마치고, 정령을 보내겠다며 문 앞으로 나갔다.

길다트는 보초 겸 그녀의 호위로 활짝 열어둔 문 바깥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

저렇게 정령에게 부탁해서 오프툼을 찾아 데려올 생각인 듯 했다. 효율적인 방법이군. 나도 일단 야매 드루이드인데 정령 같은 건 못 다루려나 몰라.

어쨌든 건물에 남은 건 눈을 쓸고 있는 네페르티티와, 모닥불에 쓸 불 마법을 외워놓고 기다리는 티르시. 그리고 장작을 까는 나 뿐이다. 효율적인 역할분담이라는 거다.

─화륵.

눈을 걷어내자 티르시가 불을 붙였다. 화력 좋은 불길은 내 손에 들린 장작에서 모닥불에 옮겨붙었다. ─타닥! 불똥이 옷 위로 튀자 티르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그런 느낌을 제 고향에서는 호접지몽, 아니면 통 속의 뇌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기억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꿈인지 모른다는 거죠.”

“후후. 구분할 수 없다면 알아봤자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티르시는 모닥불을 쬐며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더라도, 중요한 건 제가 지금 느끼는 마음이죠.”

“흐흐. 100% 동감합니다.”

특히 내게는 더 와닿는 말이다.

예전에는 이세계 랩실에서 구르며 ‘내가 사실 지구인인 줄 아는 정신병자라면?’이라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다. 지구랑 쏙 빼닮은 신화들이 아니었으면 지구라는 기억이 내 환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은, 지구가 이세계의 신들이 만들었단 사실을 알게 된 뒤고.’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진짜건 알 게 뭐냐는 기분이었다. 티르시는 장작을 헤집다가 말했다.

“네페르티티 씨? 도 와서 앉으세요. 춥지 않아요?”

“……네페르티티.”

“네?”

티르시가 고개를 모로 꼬자, 네페르티티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냥, 네페르티티. 그렇게 불러.”

“아, 그런 뜻이었군요. 알겠어요. 네페르티티.”

티르시는 조금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한 듯 그렇게 말했다. 네페르티티는 낯선 추위에 빨개진 얼굴을 문지르며 나한테도 머뭇거리며 말했다.

“……너도.”

“넹? 아, 저도 네페르티티라고 부르라고요?”

“……응.”

“알겠습니다. 그러죠 뭐.”

내가 선뜻 승낙하자 네페르티티는 어딘지 모르게 입을 우물거렸다. 뭔가 하는 마음에 바라보자 눈치챈 듯 입을 가리는 그녀. 존나 달인의 스피드였다.

그리고 나서 네페르티티는 넓지는 않지만 좁지도 않은 건물 안에서 다른 곳도 아닌, 내 바로 옆에 앉았다. 선뜻 앉기에는 꽤 가까운 거리였다.

─꼼지락, 꼼지락.

내가 별로 신경쓰지 않자, 그녀는 가만히 눈치를 보고서는 엉덩이를 꼼지락대며 조금 더 밀착했다. 대충 지하철 좌석 반 개 정도의 거리다.

근처에 적당히 앉아 있던 티르시가 눈을 반개했다.

“……아, 춥네요~. 노르드. 잠깐 기대도 되죠?”

“네? 아, 그렇게 하세요. 마침 저도 춥던 참이라.”

“후후. 잘 됐네요.”

─포옥.

내가 끄덕거리자 아예 내 품에 안기듯 몸을 맡기는 티르시.

“……………….”

네페르티티는 다시 엉덩이를 살짝 물렸다. 지하철 좌석 1개 거리다.

그리고 조금 추웠던 듯 알프헤임 산 부츠를 벗고 발가락을 모닥불에 쬐었다. 티없는 하얀 발가락이 꼬물거렸다.

“추우십니까? 발이 젖으면 동상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어? ……아,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달인의 내성도 뚫는 추위가 걱정되서 물었는데, 네페르티티는 흠칫하며 대답했다.

와. 나, 이 사람 놀란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내가 어떤 의미로 놀람마저 느끼고 있자 티르시는 눈빛이 더 뚱해졌다. 네페르티티는 말솜씨는 없으면서 그런 건 귀신같이 눈치챘는지, 거북한 듯 눈을 피했다.

‘……뭐하는 거래, 이 사람들.’

나는 보다 못해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연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무뚝뚝하고 사회성 없는 숫처녀 아가씨가 내게 적지 않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다소 뜬금없기까지 한 호의.

하지만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지 못해도, 계기에 대해서는 이미 추측이 끝난 뒤였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입을 떼려고 했을 때였다. 우리 눈치를 보던 네페르티티는 말했다.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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