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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63화 (563/1,009)

“아, 씹……!!”

기습적인 통증에 그만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땅에 찧을 때 생긴 충격이 오함마로 뇌를 올려친 것처럼 머리를 울렸다. 띵 한 느낌이 통증을 잠시 날려보냈다가 2배로 돌아왔다. 이러다 뒤질까 무서운 통증이었다.

역할분담으로서 통로와 언데드들을 확인하던 오프툼이 내 신음을 듣고 놀라서 돌아보았다.

《……괜찮나?》

《씁……. 예. 조금 쉬면 나아질 겁니다.》

통증이 컸기에 그 이상은 손을 젓는 걸로 대답했다.

마나를 많이 쓴 것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 부족한 마법 능력을 갖고 너무 무모한 짓을 반복해서 이러는 모양이었다. 출력이 낮은 룬 마법 1개로는 중과부적이었던 게 아닐까.

오프툼은 그런 나한테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듯 하다가, 내 쪽에서 먼저 제스쳐로 말을 재촉하자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쫓아오는 놈들은 없는 듯 해. 우리를 둘러쌌던 언데드는 저 드래곤보다는 발이 늦을 테니까, 적어도 10분은 숨을 돌릴 여유가 있겠지.〉

다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로마니아의 언어였다.

10분이라. 근거도 없는 만큼 마냥 쉴 수도 없겠지. 통증은 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도 했으니까. 오프툼은 내가 뚫은 구멍을 눈으로 살폈다.

〈문제는…… 그 언데드 드래곤이 다시 나타날 때겠군.〉

〈……해치운 건 아니랬지? 어떻게 한 거야? 또 우리한테 말 못 해줄 마법?〉

오프툼의 군소리를 들은 엘리자베트가 물었다.

길다트가 다친 팔로 인상을 쓰며 제 아내에게 한 소리 하듯 그녀의 무릎을 툭 쳤다. 그런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누르며 엘리자베트는 다시 말했다.

〈……계속해서 도움만 받아놓고 따지는 것처럼 들렸으면 면목이 없지만, 문제가 없다면 말해줬으면 좋겠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 마법 말고는 없을지도 몰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할게.〉

티르시는 그녀의 얘기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입을 열려다가 이마를 눌러가며 두통을 참아냈다. 꼴마초가 되서 타이레놀 1알이면 나을 통증 갖고 지랄염병을 떨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제가 지금까지 써 왔던 건 굉장한 마법은 아닙니다. 그보다 마법이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군요.〉

〈드래곤을 쫓아내는 마법이 굉장하지 않다고?〉

〈예. 굉장한 건 제가 아니라, 이 피라미드 속 세상입니다. 저는 그 힘을 조금 이용해서 써먹었을 뿐이고요.〉

후우우우…….

심호흡으로 통증을 참아내던 나는 말을 고르는 한편, 바로 여기가 피라미드의 최하층일 듯 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 들었던 커다란 그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그릇에 독을 담은 결과, 엘리자베트와 길다트는 명계의 문을 열었다던가.

그러면 이 명계의 피라미드의 문 너머에는 세헤테피브라가 있겠지. 나는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이건 제가 아내에게 배운, 어떤 주술 속 세상에서 겪은 경험을 활용한 기술입니다.〉

〈……주술? 아니 잠깐, 주술 속 ‘세상’이라고?〉

〈네. 게르마니아에서는 셰이드라고 부르죠. 꿈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주술입니다.〉

나는 ᚦ(Thurisaz)의 룬을 새긴 부적을 들었다.

정신을 수호하는 의미를 가진 매직 아이템.

이 룬이 어째서 피라미드 속 세상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가.

그걸 생각해 보면, 답은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서, 여긴 세헤테피브라의 꿈속인 겁니다.〉

셰이드의 꿈과 한없이 비슷한 꿈을 피라미드의 안에 투영한 세상.

그게 우리가 헤쳐나왔던 각 계층의 정체다.

─휘리리릭!

룬의 부적이 문에 개입했다. 원래는 위층에서 뭔가 시련을 깨고 나서야 열릴 문은, 내가 마나를 사용하자 삐그덕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꿈?〉

상처에 붕대를 묶은 네페르티티가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이 전부, 꿈이라는 뜻?〉

〈예. 셰이드라는 주술을 사용하면, 시전자는 꿈속에서도 자아를 가지고 꿈의 내용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자각몽이란 말을 아신다면 이해하시기 쉬우실 겁니다.〉

나는 조금 가라앉은 두통을 느끼며 이마를 몇 번 두들겼다.

〈그리고…… 그 꿈에 말려들어간 사람도 이 ᚦ(Thurisaz)의 룬을 쓰면 타인의 꿈에 개입할 수 있죠.〉

언제였던가. 베로니카가 내 꿈에 2번째로 휘말렸을 때였나.

그녀는 처음에 알몸으로 끌려온 것과, 정신이 나간 나에게 실컷 희롱당한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ᚦ(Thurisaz)의 룬을 잠 자기 전에 베개맡에 설치하고 잠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꿈에서 오두막을 세우거나, 옷을 입거나, 찻 주전자를 만들어서 꿈의 광기에 훼까닥 해 있던 나를 제정신으로 돌려주기도 했다.

〈나는 네 말을 전폭적으로 믿는다만, 평범한 꿈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군.〉

길다트는 물의 정령이 피부가 전부 벗겨진 팔을 보듬는 걸 흘겨보다가 말했다.

〈예.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데 단순한 꿈일 리는 없죠.〉

죽을 뻔 했던 그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괜히 머리만 쑤실 것 같아서 그냥 관두기로 했다.

〈하지만 저는 이 세계의 구조에서 아무런 마법적 설계도 느낄 수 없었고, 이런 비현실적인 공간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방법을 달리 몰랐습니다.〉

의심의 근원을 따지자면, 그건 예전에 다나에게 내 고향을 보여줬을 때가 시작이다.

나는 그때부터 사람의 오감마저 지배할 수 있는 꿈이란 게, 정말 단순한 꿈이 맞을지 의아해 했지 않았던가.

이 세상은 내 의문에 대한 답이자── 셰이드의 꿈의 궁극적인 발전형일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5계층의 사막을 봤을 때부터 의심을 했었다.

혹시 여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다음, 7계층에서부터 실현을 해 보며 증명했죠.〉

〈……안개를 걷어냈었지. 그것도 꿈에 개입했던 거군.〉

길다트에게 대충 맞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게 아니어도 저 미친 언데드 드래곤을 쫓아낸 방법도 같은 식이었으니까.

내가 오딘의 눈을 얻게 되었던 날.

베로니카의 스승인 아델라이데의 도움으로 셰이드의 꿈을 꾸다가, 갑자기 나타난 어떤 늙은 애꾸는 마법사를 상대하며 지형을 회전시켜서 이겼을 때와 같았다.

꿈속의 공간 자체를 뜯어내서 드래곤을 이 꿈에서 최대한 멀리 날려버린 것이다.

어쩌면 다른 계층까지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오프툼은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것처럼 머리를 헤집다가 물었다.

〈잠깐만. 그 말대로라면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사용할 순 없나?〉

〈예. 안 되더군요. 꿈속의 피조물인 발퀴리에를 상대로도 안 되던데, 육체와 영혼을 갖고 꿈에 들어온 상대를 없애거나 조종할 수는 없겠죠.〉

방금 전에 생각난 늙은 애꾸눈 마법사 때도 그랬잖은가.

그 세상은 내 꿈이었지만 놈을 직접 해치우거나 하지는 못했다.

꿈의 내용을 건드릴 순 있어도, 꿈에서 독립된 제 3자를 손댈 수는 없다.

마치 게임의 치트 프로그램 같지 않은가. 내가 이 기술을 치팅 툴 부르듯이 부른 건 그래서였다.

〈그래서 저는, 세헤테피브라가 피라미드 속 세상을 만든 능력을 가설로마나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는 룬 마법으로 닫혀 있던 문에 룬의 부적을 겨눴다.

〈꿈속의 광경을, 현실에 불러일으키는 권능이라고요.〉

쿠구구궁……!!

원래라면 세헤테피브라가 설정한 방식이 아니면 열리지도 않을 문.

그 문은 내가 마나를 사용하자 열리기 시작했다.

베로니카가 했던 것처럼 꿈의 내용을 건드린 것이다. 문도 세헤테피브라가 만든 것이니, 나는 자신의 정신을 지키는 이 룬에 마나를 퍼부어서 꿈에도 개입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세헤테피브라가 있을 공간이 드러났을 때.

〈──나쁘지 않은 결론입니다만, 한 발 모자랐군요.〉

황금 관이 열려 있는 방에는 웬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오시리스로부터 파라오의 혈통에 전해져 오는 이 권능은, 특정 공간에 한정된 필멸자의 힘이 아닙니다. 사후에야 완전한 반신으로 거듭나는 파라오는 명계에서밖에 이 힘을 쓸 수 없다는 모양입니다만.〉

그녀는 창백한 갈색 피부의 나르메르-나일 인이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나신을 거의 드러낸 미녀였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적을 것이었다. 우리 앞에서 세헤테피브라를 언데드들의 손에 포박시키고 있는 그 여자의 우측 반신은, 살점이 전혀 없는 뼈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로 듣던 것처럼 완전한 해골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마도의 극치에 도달한 흑마법사.

언데드, 리치.

〈신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현실에 투영하는 초상능력. 니플헤임, 아스가르드, 그리고 저희가 【중간 가지(Miðgarðr)】라 부르는 이승까지도 만들어낸, 태초의 기적.〉

─빙글.

에퀴녹스는 사뿐하게 몸을 돌려서, 반쪽짜리 얼굴을 내게 향했다.

〈세계 창조의 힘── ‘창세의 권능’.〉

그녀의 손에는 달빛 같은 신성력의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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