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68화 (568/1,009)

***

콰아아아아아─!!

언데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었다.

주인인 에퀴녹스의 마나를 몸 속의 브레스 기관에서 정제한 죽음의 숨결이 티르시에게 쏟아졌다. 티르시를 옥새를 자기 옆에 부유시키며 마법을 발동했다.

“〈왜곡(Pervérsĭo)〉.”

일렁….

공간을 비틀어 직선으로 쏟아지던 브레스를 휘었다. 미스릴마저 녹여버릴 숨결은 라켓에 맞은 공처럼 직각으로 휘어서 지면의 언데드들을 휩쓸었다.

푸과과과광─!!!! 폭발하는 브레스가 언데드 군대에 맞서는 일행에게 얼음 조각을 튀겼다.

〈마나를 나눠준다니, 정확히 어떤 건데!!〉

거인 언데드에게 정령 마법으로 공격을 가하면서 엘리자베트가 외쳤다.

노르드가 적 세력의 한 축을 몰아낸 건 옳은 판단이었다.

이 전투의 세력도는 2대 1대 1의 양상을 띄었다. 노르드와 티르시가 같은 편이기에 얼핏 가장 유리한 건 그들인 것처럼 보인다. 에퀴녹스와 레티티아는 적대관계이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대 2의 구도가 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건 노르드 파티였다. 게다가 세헤테피브라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은 물러날 방법도 없다.

〈기다리게! 티르시 양이 뭔가 하는 것 같으니!〉

오프툼이 그렇게 외쳤을 때였다.

화르르르─!!

하늘에서 에퀴녹스와 맞서는 티르시가 훌트폴크의 옥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남에게 마나를 불어넣는 옥새의 기능에 티르시의 마법이 더해졌다.

─쩌적! 네페르티티의 머리에 얼음 링이 발생했다.

천사의 고리를 방불케 하는 링! 거기에서 전달되는 마나를 느끼며, 네페르티티는 무모할만치 채찍의 오러를 부풀렸다.

〈물러나.〉

〈……이쯤인가!〉

길다트가 오러에 갈려나가며 검을 붙든 스켈레톤을 통째로 들고 뛰었다.

─쩌어어어억!!

더 이상 채찍으로 보이지도 않는 마나가 전장을 후려치자 언데드 군대의 한켠이 폭발했다. 몇 마리의 영혼은 육체에 가해진 데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했다.

길다트는 이어서 자신에게도 흘러들어오는 마나를 느끼고 검을 들었다.

〈신세를 지는군.〉

검집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의 가문에 전해지는 검술은 ‘검집’을 만드는 마나 운용술이었다. 흙이 층층이 쌓여 적층을 만드는 것처럼, 그가 평생 습득한 무예가 검집에 마나를 강고하게 감고 부풀렸다.

파츠츠츠츠즛─!!

기술을 펼치는 마나가 오러였기에 위력은 더욱 상승했다. 단기결전을 치루듯 마나를 낭비하며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가 거칠게 전장을 휩쓸었다. 엘리자베트가 외쳤다.

〈마나가 많다고 낭비하면 안 돼! 티르시한테 부담이……!〉

〈……틀려, 이러는 게 맞아!〉

네페르티티가 말을 끊었다. 그녀는 언데드들의 영혼을 눈 여겨보며 외쳤다.

〈창세의 권능이라는 힘에도 마나는 들어. 군대에 가하는 피해가 클 수록, 에퀴녹스의 힘도 깎아나가.〉

〈……그런가! 본인을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는 언데드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효율적으로 마나를 깎을 수 있지!〉

─촤좌좌좍!! 오러 챠크람의 숫자를 써 본 적도 없을 만큼 늘린 오프툼이 엘리자베트의 말을 받았다.

흑마법사 사냥에 일생을 바친 그는 적당한 거리에서 여러 적과 싸우는 게 가장 편하며, 강했다. 흑마법사들은 스스로의 부족한 물리 전투능력을 언데드나 골렘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네페르티티도 똑같다. 언데드들이 접근할 틈도 주지 않고 부숴버려서, 파괴된 언데드를 수복하는 것에 에퀴녹스는 마나를 소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분투를 하는군요.〉

─펄럭! 에퀴녹스는 언데드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녀는 비행 마법으로 날아오른 티르시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 지면의 전투를 봤다.

디아볼로의 패인(敗因)이 된 물건이기에, 옥새가 어떤 유물인지는 그녀도 알았다. 하지만 마나 전달 기능은 옥새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저만큼 막대한 마나를 계속 사용하면, 사용자들도 지나친 마나 때문에 중독 증세를 일으킬 것이었다.

그런데 언데드 군대를 상대로 일기당천의 분투를 보여주는 티르시의 일행은 그런 부담을 지고 있지 않다. 그건 오롯이 티르시의 마법 덕분이다.

〈유물의 힘에 〈강림〉을 술식 결합해서 거리의 한계점을 보완했나요? 굉장한 솜씨시네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서 마나를 전달하며, 능력 이상의 마나를 사용하면서도 마나 중독 증세를 피하는 것.

평범한 인간인 후손들이, 대마법사 아르마 슈나스의 인지를 초월하는 마나를 계승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단점이다. 그리고 〈강림〉 마법은 그런 문제를 해결한 대마법이다.

〈머리의 링이 부담과 부작용을 대신 받고 있군요.〉

─두둥실. 언데드 드래곤의 머리에서 날아오른 에퀴녹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세계수에 연결돼 있던 얼음의 태양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그 마나 덩어리를 티르시가 전부 몸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만한 마나를 몸에 흡수하면 티르시는 즉사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나의 많고 적음은 영혼의 크기에 좌우된다. 갑자기 티르시의 혼이 수십 배로 부푼 게 아니라면, 멀쩡해 보이는 것엔 그만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에퀴녹스는 리치다운 안목으로 티르시의 목에 감긴 특이한 링에 주목했다.

티르시의 목을 한 바퀴 두르고 부유하는 얼음의 링은 목줄처럼 그녀의 육체의 조종권을 노르드에게 옮기고 있다. 저게 〈강림〉 마법의 핵심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술식 쯤 될까.

부술 수 있으면 최상의 결과겠지만, 대마법의 술식구조다. 부숴질 리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목은 생물의 급소다. 저 링을 부술 기회가 생기면 몸 쪽을 박살내는 게 낫다. 약점이라고 알아봤자 큰 의미는 없다. 연비가 나쁜 싸움이 될 거라는 점을 눈치챘을 뿐.

〈《혼백 공명: 귀곡성》.〉

그래서였을까. 에퀴녹스는 티르시를 해치우는 데 고집하지 않았다.

에퀴녹스가 말하는 동안에도 티르시는 주문을 외우지 않고 마법을 준비했으며, 그건 에퀴녹스도 같았다. 두 사람은 마법 술식에 흘린 마나를 격발시켰다.

“〈극점 응축(Condensatio Partis Exterioris)〉.”

─팡!

아무런 전조도 없이, 언데드 드래곤의 머리 부분이 완전히 소멸했다.

휘말려 사라진 공기가 진공 상태의 한 지점으로 모여들며 바람 소리를 터트렸다.

타게팅한 공간을 압축하는 마법이었다. 발동 속도는 저위 마법보다 빠르고, 물리적인 위력은 비교할 수도 없는 초고등 마법에는 언데드 드래곤의 방어 마법조차 무의미했다.

─으적!

당연히 압축 범위에 있던 에퀴녹스도 무사하진 않았다.

두 발을 허벅지에서 뜯겨나간 상태로 그녀는 붉은 피를 흘렸다. 좌측 반신은 인간의 살을 남겨뒀던 탓이다.

최대 전력인 언데드 드래곤의 브레스 기관과 두뇌, 그리고 에퀴녹스 본인의 신체 소실. 양쪽 다 죽지는 않았지만 상응하는 피해였다.

단지 치명상은 아니다. 고칠 필요도 없다. 에퀴녹스는 싸늘하게 속삭였다.

〈파브룸 미라쿠름. 한 번 더 죽을 각오로 날뛰세요.〉

〈Kuwaaaaaaaaaaaaaak──!!〉

목을 잃은 드래곤은 이름을 불리자 혼을 쥐어짜인 것처럼 포효했다. 그 소리에 흠칫한 엘리자베트가 전황을 살폈다.

〈영혼이 모여든다!〉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군대에서 90% 이상의 병사들이 그 혼을 잃은 것처럼 무너졌다.

파괴되었던 언데드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정령술사인 엘리자베트의 눈에는 육체에서 뽑혀나오는 혼들이 보였다.

〈Waoaaaaaaaaaaaaaaa!!!〉

전투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영혼들이 11마리의 정예 언데드들과, 공중의 언데드 드래곤에게 빨려들어갔다.

에퀴녹스가 발동한 흑마법. 《혼백 공명: 귀곡성》은 언데드들에게 한도를 초과한 마나를 쏟아붓는 마법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면 언데드의 몸과 영혼은 괴멸적인 부담에 노출된다.

하지만 육체의 파괴는 창세의 권능으로 수복하면 그만. 부숴지는 영혼도 흡수시킨 영혼으로 갈음한다.

단점도 없지는 않다. 마스터 클래스의 흑마법사, 리치 에퀴녹스로부터 마나를 억지로 부어지는 언데드들의 혼은 무간지옥과 같은 고통에 빠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안타까워 하는 감성은 에퀴녹스에게 없었다.

〈Krrrrrrrrrrr…….〉

마나를 빨아들인 언데드들은 무시무시한 기백을 뿜었다.

거인도 있고 심지어는 손바닥 만한 요정도 있었지만, 주요 구성은 인간이다. 문드러진 입과 눈에서 흘러나오는 어둠과 음의 마나가 산 자의 생존본능에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등을 맞대고 모여! 숫자 차이가 만만치 않다!〉

길다트가 급박하게 고함을 쳤다.

조금 전까지는 숫자 차이에도 불굴하고 그들이 유리했다. 데스 나이트는 흑마법사가 조종하지 않으면 생전의 무예를 100% 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티르시의 도움을 받는 그들은 판돈이 무한한 승부사처럼 큰 기술을 연발하며 그들을 압박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조건이 같다. 마나량과 실력 동등하다면 3배의 숫자 차이는 치명적이었다.

〈당신과 파브룸의 브레스는 상성이 안 좋군요. 그렇다면 육탄전이 낫겠죠.〉

에퀴녹스는 목을 잃고 검은 마나를 뿜는 언데드 드래곤을 돌격시켰다.

─부우웅!!

2배는 빨라진 드래곤의 손톱이 티르시를 노렸다. 티르시는 공간 이동으로 피해내려다가,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 걸 눈치채고 기계적으로 얼음 방패를 만들었다.

〈도주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형이라면 인형답게 똑같은 도구끼리 싸우도록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에퀴녹스의 뒤에서 마법진이 창세의 권능을 발동했다.

쿠르르르릉……!!

창세의 권능이 하늘의 법칙을 수정했다. 〈공간 이동〉을 저지하도록 만든 것이다.

권능으로 마법의 법칙을 수정하는 건 소모는 크다.

하지만 티르시에게 종합적으로 더 많은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면 손해는 아니었다. 권능에 저항하는 노르드를 상대로는 쓰지 못 했던 수였다.

〈Krwarwarwarwa──!!!!〉

목 없는 드래곤이 몰아치듯 손톱을 휘저으며 파고들었다.

티르시는 묵묵하게 방어하며 무자비하게 반격을 가했지만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창세의 권능이 발동하며 용의 상처를 고쳤다.

언데드 드래곤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기는 해도 덩치에 걸맞은 질량을 가졌다.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공간을 소멸시키는 마법으로 응수하는 건 마나의 낭비가 될 것이었다.

마법사의 싸움이란 서로의 마나량을 겨루는 지혜의 싸움.

한 컵의 마나를 써서 적에게 대야 한 그릇 만큼의 마나를 쓰게 만드는 쪽이 승리한다.

그 과정에 에퀴녹스 자신의 다리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어디 그러면, 다음은……〉

하지만 에퀴녹스는 추호도 방심하지 않았다.

노르드는 다른 이들이 레티티아보다는 에퀴녹스를 상대하기 편할 거라 계산한 모양이지만, 결과가 어찌 되든 승부가 일단락되면 둘 중 어느 쪽인가는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리치의 눈이 지상을 향했다.

〈다들, 마나를 아끼지 마라. 망설이면 죽는다.〉

〈그렇게 하고 말고. 3대 11이라, 긴장되는군 그래.〉

오프툼은 뼈를 묻을 각오로 무기를 들었다. 언데드 요정이 날아오르며 손바닥만큼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마나를 뿜어냈다. 인간들의 것과는 다르지만 엄연한 고위 마법이었다.

〈범위 마법!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있나!〉

〈마법사라면…… 내가, 남았잖아……!〉

오러 차크람을 던져서 견제하는 그의 물음에 엘리자베트가 손바닥을 합치며 호응했다. 그녀의 눈과 입에서 혈관이 터진 듯 피가 쏟아졌다.

〈아까부터 가만히 듣자 하니, 3대 11이라니……! 서운한 소리를, 하시네……!〉

쏴아아아아아──!!

엘리자베트는 내상을 받아가면서 정령을 뽑아냈다. 분배한 마나의 부담을 대신 받아주는 티르시의 마법도 엘리자베트가 스스로 몸을 혹사하는 것까지는 막아주지 못했다.

〈나까지 숫자에 합치면, 11대 11이야!!〉

“Hwiiiiiiiiiiiii……!!”

각혈을 해가며 외친 엘리자베트의 부름에 응해준 것처럼 8마리의 정령이 날개를 펼쳤다.

니플헤임에서 이승의 정령들을 소환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그들은 정령화의 술식으로 급조한 인공 정령이었지만, 가진 힘까지 무시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몸을 매직 아이템 삼아, 티르시에게 받은 마나로 창조해낸 정령들 아닌가.

실질 반신의 경지에 오른 티르시가 소환한 것과 다름 없다.

그럼 내가 전투불능에 빠질 만한 가치는 있었겠지. 엘리자베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아하하……. 여신의 정령이면, 리치의 정예 언데드를 상대로도…… 꿇릴 것, 없는….”

의식만 간신히 유지해내는 엘리자베트에게 언데드 요정의 고위 마법이 뿜어졌다.

“Kirurururu!!!”

일행을 통째로 휩쓰는 칼날 바람이 날아들었지만, 우비를 쓴 요정 같은 바람의 정령이 망토를 펄럭이자 무풍지대처럼 고요해졌다.

엘리자베트가 소환한 정령이 적과 맞대응이 가능할 수준인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잠깐 자고 있어라.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네가 눈을 뜰 무렵에는 끝난다.”

길다트는 쓰러지는 아내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 애완 용이 가짜 여신과 노니는 동안, 여러분은 저랑 어울려 주시겠어요?〉

권능과 드래곤으로 티르시의 발을 묶은 에퀴녹스가, 직접 그들의 앞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언데드 드래곤의 혼이 먼저 티르시의 마법에 파괴되는가, 아니면 에퀴녹스가 길다트 일행을 몰살하고 회수한 언데드를 티르시와의 싸움에 투입하는가.

어느 쪽이 먼저가 됐든,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었다.

〈11대 12였군. 하지만 이 1마리는…… 조금 큰데.〉

길다트는 엘리자베트의 말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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