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는 마치 자신이 벌인 일을 눈에 새기려는 듯 타오르는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네페르티티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쏟아졌다. 뒤에 서 있는 나조차, 아마 싸우면 그녀에게 지지 않을 나조차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살기였다.
“고마워, 노르드. 진실을 알려줘서.”
주체 못하고 흘러나온 마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띄웠다.
“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는 그녀의 기백에 압도당해서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쉽게 입을 열고 나불대기에는, 방금 막 허락도 없이 엿보고 말았던 네페르티티의 과거가 너무 생생했다.
하지만 이대로 두는 게 맞다고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는 곧바로 혼자서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아는대로 말해줘도, 다 듣고 나서 고개만 잠깐 끄덕이고 말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 한 방 얻어맞을 각오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피.》
…홱! 네페르티티는 눈을 크게 뜨며 돌아봤다.
평소 그녀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표정이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놀란 것처럼도, 잊고 있던 추억을 흙발로 짓밟힌 것처럼도 보였다.
《지나간 기억일 뿐이에요. 복수건 뭐건, 그게 삶 자체보다 우선될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
과거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실컷 봤지 않은가.
인생의 방향을 복수나 증오 같은 마이너스에서 정해버리면 에퀴녹스의 절차를 밟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이랑 해야만 하는 일은 분간하는 게 맞다.
어깨를 잡은 내 팔을 붙잡는 네페르티티는 입술을 잘게 떨었다.
《……나는, 포기 못해.》
《포기하라고 한 적 없습니다. 단지, 복수를 ‘끝’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복수는 과정일 수는 있어도 결말이면 안 된다.
볼 장 다 보고 나서 죽을 것도 아니잖은가. 이 자리에서 내가 할 말이 없답시고 닥치고 있었다가 네페르티티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럴 바에는 네페르티티의 추억을 이용하거나, 흙발로 밟게 되더라도 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건 같은 복수자끼리의 의무이자, 내 개인적인 오만이다.
오프툼처럼 복수를 삶의 끝으로 삼은 삶은, 그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너무 씁쓸했다. 술 한 잔으로는 도저히 떨쳐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 따위 없어.》
《그러면 제가 울어 드릴게요. 감수성은 풍부한 편이거든요.》
뭐 문제 있냐는 듯 대답하자, 네페르티티는 한 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깨를 잡힌 상태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다른 삶의 방법 같은 거 몰라.》
《알려드릴게요. 제가 인생 경험 하나는 풍부하거든요.》
《……전부 끝난 다음의 일 같은 거,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같이 생각해 드릴게요. 아시다시피 머리쓰는 건 자신이 있거든요.》
《……네 얼굴을 보면.》
네페르티티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날부터 쭉 가지고 왔을, 눈물을 참을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언덕에 언데드의 해골이 한가득 굴러다녔다.
이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풍경의 도시는 흑마법사 사냥꾼이 말라붙은 마음을 굳게 닫고 복수를 시작한 날이었다.
그렇기에 말라붙은 네페르티티의 마음을 되살리려면 여기밖에 없다.
어린 날에 두고 온 그녀의 감정은 모두 여기에 있을 것이니까.
《네 얼굴을 보면, 자꾸 오빠가 생각나.》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어쩌면 그게 나를 신경쓰는 근본적인 원인이며, 처음으로 함께 흑마법사를 쓰러트렸을 때도 끝내 내 곁을 떠났던 이유였을까.
슬픔은 졸이다 보면 말라붙고 변질된다. 증오와 원망은 바닷물을 졸여서 만드는 소금처럼, 사람의 눈물이 말라붙어서 만들어지는 독극물인 것이었다.
그러면 뭐, 해결할 방법도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아이를 달래듯 싱긋 웃었다.
《그래서, 싫은가요?》
《……………….》
네페르티티는 깨물던 입술을 뗐다. 입을 멍하니 벌렸으니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
그녀의 모든 감정은 사막의 태양에 자글거리며 졸아진 끝에 한 줌의 증오와 원망이 돼 버렸다. 삶 전체를 핏빛 복수에 할애할 수밖에 없도록.
그러면 그걸 물에 녹여서 다시 마음에 채워주면 그만이다.
물론 그 앙금이 금방 녹아내리지는 않겠지. 말라붙고 타올라서 변색된 재는 네페르티티에게 영원히 달라붙어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었다.
물에 녹여버린 증오와 원망은 몹시 짠 소금물로 뒤바뀌고,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워버릴 운명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그 다음’이 있다.
꽃 한 송이 피기 어려운 소금물이라도, 사막엔 물이 필요하니까.
《제가 싫으시다면 노력할게요. 네페르티티가 절 좋아하도록요. 속는 셈 치고 몇 년만 믿어 보세요. 금방 세상 살 맛이 나실 겁니다. 마법처럼요.》
나는 살기로 떠오르던 그녀의 물색 머리카락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한 줌의 검은 소금을 전부 흘려보내고, 그렇게 비어버린 마음에 또 물을 흘려넣어 주자.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물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이래봬도 저, 마법의 신의 후계자거든요.》
네페르티티가 입술을 깨물지 못하게 그 상처를 손가락으로 감쌌다. 입술을 닫으려던 그녀는 내가 그렇게 막아버리자 머뭇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계속 닫혀만 있을 듯 하던 네페르티티의 입술이 열렸다.
〈──마법의 신의 후계자라. 네가?〉
하지만 그 입술이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네페르티티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을 때, 그런 목소리가 우리의 사이를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읏!”
네페르티티가 깜짝 놀라면서, 내가 웃던 얼굴을 정색했다. 우리는 달인다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거리에 착지했다.
언덕 위의 남자가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고 하기엔 시간대가 조금 다른가.〉
하얀 불꽃 같은 그림자가 걷혔다. 그렇게 와꾸를 내민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여멀건 남자였다.
내가 잘 아는 어떤 신을 생각나게 할 만큼 긴 백발을 가진 호리호리한 미남이다. 창을 들고 있는데도 체구는 마법사처럼 말랐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서 마치 그제서야 생각이 미친 듯, 등진 도시의 화마(火魔)를 아랑곳 하지도 않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면 말이 통할지도 확실하지 않나……. 그렇대도 명색이 오딘의 후계자라면 게르마니아 어 쯤은 할 줄 알겠지. 내 말은 잘 들리나?】
들린다. 존나 잘 들려서 역겨울 정도다.
나는 혹시 몰라서 창을 만들고, 네페르티티에게 채찍을 던져줬다.
“……혼은 여기에 없어.”
네페르티티는 나처럼 마법을 쓰지 않아도 혼이 보이는 걸까. 그녀는 단언하고서 눈을 반개했다. 좀 가라앉는가 했던 살기가 다시 흘러나왔다.
“현실의 어딘가에서, 우리를 보고 있어?”
“아뇨, 말도 안 됩니다. 절대로요.”
아무리 생생해도, 이건 단순한 기억이다.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자 내 꿈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저 새끼가 엄청난 마법으로 지금 현실에서 내 꿈에 개입하고 있다고 쳐도, 그 개입을 꿈의 주인인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레티티아는 네게 신좌의 열쇠를 맡겼나?】
하지만 그렇다면…… 이건 스크린 너머의 영화 속 등장인물이 대화를 걸어온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 불가능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열쇠를 받았다면 자질을 가진 인간에게 열게 해라. 문을 연다면 자질이 부족해도 힘으로 신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남자는 마치 내 행적을 싸그리 꿰고 있다는 듯 사무적인 태도로 정보를 나열했다. 표현한 그대로, 야근 중인 은행원처럼 무신경한 말투였다.
【프레이야의 신좌다. 방치하지는 마라. 동료는 있나? 가족은? 네가 배신당해도 후회하지 않을 상대라면 대신 맡겨도 좋겠지.】
나는 그 새끼의 말을 들으며 네페르티티를 반쯤 억지로 끌어당겼다.
뭔지도 모를 위협에는 되도록이면 가까이 가지 않는다. 21세기에서도 앵간하면 통하는 야생의 생존수칙이다.
【당황하고 있나? 그럴 것 없다. 나는 그냥 빈 공간에 대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니까. 지금의 네 표정 정도만 어렴풋이 보일 따름이다.】
주판을 두들기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하얀 남자는 말했다.
나는 가느다랗게 좁혔던 눈쌀을 원래대로 떴다.
【너, 뭐하는 새끼냐.】
【시구르드.】
그저 기억일 뿐인데, 그는 질문에마저 대답했다.
【네 이름은…… 물어봤자 대답하진 않겠군.】
타오르는 마을을 등지고도 그을음 하나 안 묻은 시구르드는 그렇게 말했다. 쓰벌놈이 대가리는 잘 굴리는군. 물어보면 좆까라고 대답해주려 했는데.
【이거 지독하군. 대화가 성립되지를 않아.】
그는 작게 한숨을 쉬어댔다. 뭘 혼자서 떠들고 앉았어, 빡치게.
─으적!
나는 네페르티티를 끌어안고 꿈에 균열을 냈다.
뭔지는 몰라도, 어차피 나한테 손찌검을 할 수 없다면 굳이 남아서 말싸움을 할 가치가 없었다. 뭔가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어차피 에퀴녹스의 기억은 이걸로 끝났다.’
이 뒤로 보이는 게 없다는 건, 이후의 사건들은 내 예상대로라는 뜻.
〈편찬대대〉를 상대할 방법을 기르며, 어그로 탱커 겸 경험치 쿠폰 담당인 〈임모르탈리스〉를 만들고, 니플헤임에서 전쟁을 준비하겠지.
그러다가 결국 우리 손에 죽는 것이다.
처절한 세월의 결말로서는 허무하지만, 사실 그 리치 년의 손에 죽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허무하게 죽어나갔을 거였다. 동정할 가치가 없다.
나는 내 현실의 육체가 눈을 뜨는 것을 느꼈다. 몸이 공중에 떴다.
【벌써 떠나나. 대화는 못 했다만,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도 일부러 여기에 남아 있을 만한 가치는 있었다고 여기마.】
소름끼치는 건, 시구르드는 우리의 그런 모습마저도 다 보인다는 것처럼 정확하게 내가 떠오르는 속도에 맞춰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
네페르티티는 살기를 흘려대긴 했는데, 내게서 벗어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설득한 보람이 있었다. 하긴, 어차피 상대는 본체도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그런 네페르티티를 진정시키고자 팔에 더 힘을 줬다. 그녀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예지(銳智)의 공유는 양날의 검이다. 다만 네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
시구르드는 떠나는 나를 보며 속삭였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 금단의 지식을 전하는 예언자처럼 말이다.
【──축하한다, 울프헤딘. 너는 우리들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깨어나기 직전에 보인 그 놈의 낯짝은, 슬며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