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람에게는 한 가지 본능 아닌 본능이 있다.
바로 배가 부르면 다른 생각이 솟는다는 점이다.
“배가 부르니까 시간이 좀 널널한데. 관광 내내 군것질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디저트 류를 섭렵하다가 청천벽력이라도 들은 듯 멍하니 날 쳐다보는 베로니카는 어쨌든, 배가 부르니까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좀 그랬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알리씨크 사람들도 대대로 꽤 배가 불렀던 모양이라는 것이다.
“……여기 박물관이 있는데, 갈래?”
네페르티티는 분위기를 용케 읽고 제안했다. 그 손에 급하게 산 듯한 이 동네 팜플렛이 있다는 건 못 본 척 해 주는 게 예의겠지.
이런 전통시장은 구경하는 맛은 좋지만 우리의 K-바자처럼 위생문제와 바가지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치안이 나쁜 나라에는 그밖의 문제도 있고.
“가죠. 바자 구경도 피곤하네요. 손버릇 나쁜 놈들도 많고.”
“끄아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소매치기 C의 손목을 비틀자 이름도 모를 그는 비명을 질렀다.
이 씹새의 넘버링이 C인 이유는 A와 B는 신비한 깜빵 버스를 타고 경비병과 드라이브를 즐기러 갔기 때문이다.
참고로 B는 여자였다. 언럭키 오드리로군.
《협력 감사합니다!》
좀 건성건성이었던 경비병 똘추들은 기합이 빡 들어가서는 경례했다.
내가 후드를 슬쩍 걷어주자 화장실에서 자기 회사를 욕하는데 변기 칸애서 걸어나오는 회장을 만난 차장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맥이 좋기는 좋아.
아무튼 그렇게 가게 된 박물관은 상당했다.
모던하게 마감한 인테리어가 아주 괜찮았는데, 그 직원들의 표정에서도 월급 쫌 받고 자기 직장 이름값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가 전해져 왔다.
“하긴, 역사 깊은 강대국이니.”
당장 꼰대들만 해도 자기들의 너절한 전성기를 추억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강대국인 나르메르-나일에서 잘 나가던 시절의 유산을 자랑하지 않는 장소를 찾기 힘들단 것도 웃긴 이야기다.
우리가 방문한 박물관이 복작대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겠지.
《자, 자! 보십시오! 이것은 남부에서 발견됐던 드래곤의 유해입니다!》
“진짜 드래곤일까?”
“좀비 드래곤이랑 싸워봐서 아는데, 저거 백퍼 공룡 화석임.”
물론 예술도시의 컨셉에 맞게 완벽한 박물관은 아니었다.
그런 게 보고 싶었으면 수도에 가야겠지, 암요. 내가 혼자 끄덕거리고 있자 다나가 말했다.
“공~ 룡? 그건 키타이 쪽이 아니면 보기 힘든 몬스터 아니었나?”
“뭔 십펄, 키타이는 아직도 백악기여?”
그 나라엔 아직도 공룡들이 서식한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오스트리아 사람이 캥거루한테 맞아 봤냐는 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키타이 어쩌구하는 얘기를 흘려넘겼는데, 갑자기 가 보고 싶어지네.
이세계는 먹물 좀 먹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아마 죽을 날이 와도 잘 모를 소식을 듣고 입을 떡 벌리고 있지 않을까.
《오, 거기 아름다운 아가씨들? 혹시 초상화엔 관심 없으신가요?》
아무튼 박물관은 유적에서 주워온 잡템들을 뺀 나머지는 조금 수준이 낮았지만, 예술도시답게 그 안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예술가는 많았다.
“초상화?”
내 번역을 들은 베로니카는 약간 혹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여신님이 원하시다면야 나쁠 것 없지. 나는 지갑을 꺼내기 전에 일단 물었다.
《거 얼마요?》
《헉, 일행 분이신가요? 이야! 원래는 15쿠퍼는 받아야 수지에 맞는데, 저 아가씨가 아주 아름다운 나머지 제 영감을 자극하시더군요! 8쿠퍼 깎아서 단 7쿠퍼에 모시겠습니다!》
비싼 듯 하면서 은근히 싸군.
유럽 여행지에서 멋대로 그림을 그려서는 그걸 10만원씩 받아서 팔아치우는 환쟁이들도 있다고 하니, 7쿠퍼=7만원 정도는 양심적인 가격이지.
지구에서도 관광지 초상화는 그쯤 하지 않을까?
‘물론, 사기꾼이 아니라면 말이지.’
누가 알겠는가? 졸라맨을 그려놓고 돈만 챙겨서 튀려 할지.
《한 장 그려주십쇼.》
나는 은화를 꺼냈다. 그리고 그의 눈이 기대감에 휘둥그레지는 걸 보면서, 룬 마법을 걸고 은화를 손으로 뭉갰다.
─꾸기깃.
1백 만원 돈의 화폐는 변비 환자가 힘을 주면서 움켜쥔 휴지처럼 변했다.
《7쿠퍼 값을 할 거라고 믿겠슴다. 맘에 들면 7쿠퍼 더 드림.》
환쟁이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일생일대의 걸작을 뽑으려는 화백처럼 캔버스를 붙잡았다.
베로니카가 어색한 듯 몸을 비틀고, 라리루라가 그런 그녀를 〈꼭두극〉으로 고정시켜 주는 것을 보며 구겼던 은화를 원상복귀하는 나.
룬으로 변신 마법을 걸어놨기에 힘으로 구긴 게 아니었다.
당연히 손가락만으로도 구길 수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간 내 100만원이 공중분해되는 걸?
《와, 완성했어요. 7쿠퍼만 받겠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멋진 그림이 완성됐다.
나는 세상 좋아하는 베로니카의 얼굴에 만족하며 팁을 줬다. 그치만 그림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은 걸 보면 역시 미대에 낙방한 사기꾼 같은 놈이긴 했던 모양.
《휴, 휴우.》
그래도 운 좋게 결과는 괜찮았고, 그도 100만원권 동전을 쥐어짜서 박살내는 똘기 충만한 놈에게 찍히지 않아서 다행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박물관 관광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주로 다나, 베로니카, 프랑이 모여서 그녀들만의 경험을 꺼내며 이렇다 저렇다 담소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다나와 베로니카의 토막지식이 난무했다.
라리루라는 일전에 말했듯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기에 나랑 같이 떠드는 편이었다.
의외였던 건 티르시와 네페르티티였다.
“티르시는 관심 없나요?”
“……연금술 흔적이 보일 때마다 흠칫흠칫 하게 돼서 좀.”
아하. 놀러와서 일 생각이 나면 싫을 법 하지.
고고학자면서 지금도 박물관의 전시물에 흥미를 보이는 다나도 있고, 그런 점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흐흐. 이거 제가 배려가 부족했나요?”
“설마요. 저도 가겠다고 했고, 아직은 노르드의 옆에 있는 것만도 즐거워요.”
“아직은? 어쩐지 불온한 말투시네.”
“후후.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죠? 곁에 있는 것 정도는 익숙해지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한평생 숫처녀일 수만도 없겠고.”
티르시는 그렇게 말하며 어른 여성답게 기품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는데, 그때 라리루라가 슬쩍 원래 얼굴로 돌아와서는 내게 안겨들었다.
“선배~♡ 저는 지루하니까 놀아주세요~.”
“그래, 그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우리 후배님에게도 후드를 씌워주며 말하자 티르시는 벙쪄 버리고 말았다. 그냥 방금 한 말을 취소해버리면 될 걸, 우물쭈물 거리면서 뭐라고 말도 못 하는 게 귀여워서 얼른 안아줬다.
그리고 네페르티티는 팜플렛(Ver. 박물관)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혹시 아는 것 있느냐고 묻는 다나의 질문 때문인 듯 했다.
“이건, 낙타를 대신하는 이동수단으로 사용됐던 물건으로……”
내가 권유해 놓고 이런 말은 뭣하지만, 네페르티티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가이드 역할을 힘내려고 하고 있었다.
말수도 적은 그녀가 어설프게라도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하는 모습은 꽤 보는 맛이 있었다.
“아, 그거 아니에요. 고대의 이동수단은 그 바로 옆의 겁니다.”
“…………….”
대미는 10분 정도 열심히 설명했더니 근처에서 듣던 박물관 직원이 가볍게 정정해줬을 때였다. 그 간단명료한 설명에 네페르티티는 눈을 내리깔고서 조용히 나한테로 도망쳐 와버렸다.
부끄러워 하는 건가. 아니면 시무룩해 하는 건가.
언뜻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침울해진 건 확실해 보여서, 나는 그 인간미 있는 모습에 살짝 안쓰러우면서도 마음이 놓였던 것이었다.
“사람이랑 부대끼다 보면 실수하는 날도 있죠.”
“……응.”
나는 그런 네페르티티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짤막한 대답 뿐이었지만, 귓볼이 쫑긋 서는 것처럼 보인 건 내 착각만은 아니겠지.
데엥─ 테엥─.
《폐관 시간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느긋한 관광이었기에 전부 돌아보기 전에 폐관 시간이 찾아왔다.
그래도 즐길 만큼 즐겼던 걸까. 기념품을 고르는 우리 아내님들의 얼굴에는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고뭉치 남편이 얌전해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나는 거기서 또 혼자 수학여행에 온 아싸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네페르티티를 봐야 했는데, 도저히 냅두지 못하겠어서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그건 우리 가족에서 가장 인싸인 뭐시기루라 양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저기요! 이거 어때요?”
“……진주 조개?”
“화석이래요! 엄청 뽀얘서 예쁘죠? 안에 거울도 끼워져 있어요!”
화석이라고? 나는 안내문에 눈을 돌렸다.
간단한 설명을 읽어보니까 알리씨크는 지형 상 패류의 화석이 흔한 편인 듯 했다. 이런 물건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세상이긴 하니까.
아무튼 생김새는 지구의 파운데이션 화장품이랑 비슷했다. 안에 든 게 거울이랑 장식용 진주라는 게 다를 뿐이다.
잘 닦은 청동을 끼운 저렴한 거울 같은 거겠지.
─달칵.
라리루라가 내민 기념품을 열어본 그녀는 마치 남이 들으면 안 되는 중대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개는 가공한 진품. 하지만 진주는 가짜야.”
“네? 저도 아는데요?”
“………………응.”
24시간 연중무휴로 진지한 건 아싸의 종특이며, 인싸란 그런 그들과 상반된 존재였다. 달인급 전사 네페르티티는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입술울 다물어버렸다. 치명타!
자신이 본의 아니게 네페르티티에게 크리티컬을 터트렸다는 걸 눈치챈 라리루라는 뒤늦게 웃었다.
“아, 아핫♡ 이런 건 가짜니까 좋은 거에요!”
“……좋아? 어째서?”
말은 쟤가 했는데 왜 나한테 물으시지.
나한테서 너드미(美)가 느껴지기라도 하는 것? 씌이불,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오니구모에서 탈피한 나락처럼 내 안의 너드를 전부 랩실에 두고 나왔다고.
여기서 보석은 비싼 만큼 수요가 적으니까 그냥 적당한 물건에 프리미엄을 붙여다가 파는 게 판매 총 수익 면에서는 낫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이과적인 감성일 것이었다.
여기서는 문과 고고학자 노르드가 필요하다. 내 고향 지구의 째깐둥이 스트리머들아, 내게 언변을 나눠 줘!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살 수는 없다지만, 움직일 수는 있죠. 안에 든 게 진짜 진주라면 관광객들은 이걸 기념품이 아니라 그저 애지중지할 보석으로 여기게 될 겁니다. 비싼 물건이니 당연하죠.”
나는 다른 조개 화석 거울을 집어들어서 네페르티티에게 건넸다.
“하지만 평범하고 간촐한 물건이라면, 이 조개를 어떻게 여길지를 스스로 정하게 되지 않겠어요?”
“스스로?”
“오늘이 즐거웠다면 추억의 기념품인 거죠. 썩 재밌지 않았다면, 굳이 사지도 않을 테니까 따로 가치를 부여할 것도 없겠고요.”
조개 화석? 성분 상으로는 돌멩이와 거의 다를 거 없지 않나.
하지만 지질학자나 낭만가가 보는 화석과 감성 메마른 사람이 보는 시선이 같을 수 없듯, 기념품 하나가 가진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예전에 샀던 고양이 조각상 중에 내 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프랑이랑 베로니카 거는 방에 잘 장식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거우셨나요?”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네페르티티의 손을 잡고 조개 화석 거울을 올렸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우물거렸다.
아마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하기는 싫은 걸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즐겁게 흐흐 하며 웃었다.
“그러면 이 거울은 제가 네페르티티에게 선물할게요.”
네페르티티는 입술을 살짝 벌리며 날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그녀 뒤에서 라리루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는 왜 또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이냐?
“오늘 하루의 기념과 추억을 담은 선물입니다. 저는 당신과 다니면서 즐거웠으니, 이 거울에는 제 추억을 담은 셈이군요.”
닭살 돋는 소리만 넉살 좋게 하는 것도 살짝 좀 그러니, 여기서 가볍게 조크. 나는 픽 웃었다.
“소중히 해 주실 거죠? 혹시 제가 많이 싫으면 제 눈에 띄는 곳에서 쓰레기통에다 버려 주세요. 아마 저, 그걸 보는 날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힐 걸요?”
“그런 짓 안 해.”
이건 또 단호하시네. 농담이었는데.
여기서 ‘찐 특) 진지함’ 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건 나라는 놈이 근본적으로 푼수떼기라 그런 거겠지. 네페르티티랑은 정반대였다.
‘그래도 이런 걸 적절히 섞어가는 게 잘 먹고 잘 사는 요령이니까.’
진지한 것도 마냥 단점만은 아니니까 괜찮은 셈 치자.
《남아 계시는 손님들께 알립니다!! 폐관 시간 10분 전입니다!!》
직원이 귀청 따갑게 외쳤다. 존나 이런 점에선 아날로그라니까. 음파 마법은 뒀다가 몬스터 고막 파킨- 시키는 데에만 쓰지. 미개한 것들.
“선배! 어서요! 계산해야죠, 계산!”
“뭘 그렇게 서둘러? 10분이면 천하도 훔칠 시간이야. ……훔치겠다는 뜻이 아니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실래요?”
라리루라는 자기가 고른 조개 거울을 내가 들고 있자 발을 동동 굴렀으며, 나는 개소리를 읊었다가 직원의 경계를 사고 말았다. 의외! 그것은 GTA!
“노르드.”
그렇게 내가 지갑을 쥐고 직원의 ‘키타이 유목민 놈들은 결혼 상대도 노략질로 겟또한다는데?’ 하는 시선을 견디고 있을 때였다.
네페르티티는 가슴에 그 거울을 소중히 쥐면서 말했다.
“같이 가도 돼?”
눈치 없게 어딜요? 라며 묻지는 않았다.
당연히 여관이 어쩌고 하는 헛다리 짚는 대답도 말이다. 수능으로 다져진 지문해석능력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등장인물 N의 속내로 적절한 것은? [3점].
나는 낭만없게 정답을 명기하기를 관뒀다. 누가 와서 채점하는 것도 아니니까. 자기 인생의 배점, 채점은 알아서들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 올 생각이었어요? 사람 섭섭하게.”
“미안해.”
“미안하긴요. 별로 사과할 타이밍은 아니죠?”
“……응.”
이럴 때는 땡큐 정도면 되겠지. 고맙다는 말은 은근히 낯뜨거워지기 마련이니까, 감사를 느끼고 있다는 티만 내 주면 그만인 것이다.
네페르티티는 반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른 점 없는 무표정으로 고개만 까딱거리고서, 손으로 메가폰처럼 입을 가렸다.
“……해.”
그리고 순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소근거리며 말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네페르티티의 목소리다. 귓가를 파고드는 속삭임 한 마디에 나는 놀란 망부석이 돼 버리고 말았다.
“먼저 갈게.”
네페르티티는 머리를 땅에 박듯 하며 굳어있는 나를 피해서 달려갔다.
그녀다운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허, 참.”
직원들이 퇴장을 독촉하는 소리는 여전하다.
그 덕분에 정신을 차렸으니까 고맙기는 했는데, 머리를 긁적이면서 몸을 돌린 곳에서 입을 쩍 벌린 우리 막내 아내님을 발견하자 웃을 수만도 없었다.
“……선배. 방금 그거, 입 모양이 분명 좋ㅇ”
“폐관 시간 늦겠다, 가자.”
나는 뭔가 말하려는 라리루라의 등을 떠밀었다.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건, 돈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