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火田民) 말씀이시죠?”
나는 호툴루실의 말에 반사적으로 그리 되묻고 말았다.
식물을 기르기보다 태우는 걸 좋아하는 엘프라.
‘편견을 깨는 건 좋지만, 방향성이 살짝 잘못된 것도 같은데.’
혹시 고향 분들이 수레바퀴보다 큰 남자를 보면 죽이고 싶어지는 정신질환에 걸리신 건 아니죠? 내 질문에 호툴루실은 손가락에 불을 피우며 말했다.
“화전이건 뭐건 농사가 일상다반사였다면 내가 처음 괭이를 잡았을 때 그렇게나 고생하진 않았을 거다. 화염 폭풍을 일으키는 것보다 농지에 물을 뿌리는 게 훨씬 어려웠다면 믿겨지나?”
아니 쓰벌, 진짜로 파이어엘프였네.
세계수가 화르르 타버리더니 종족 단위로 불속성 효도에 눈을 뜨기라도 했나. 서주대효도 같은 걸 저지르고 다니지는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저 그리스에선 탁자보다 키가 크면 발목을 잘라냈다는 싸이코가 몬스터의 일종으로 등장하는데, 여기 이 변발 엘프들의 고향은 그게 일상이면 너무 무섭지 않은가.
“싸움은 사람의 혼을 성장시키지. 강렬한 전투 속에서 목숨을 건 촌각의 승부에 칼날을 저미듯이 승리를 쟁취하면, 그만큼 성장도 빨라지겠지. 식물 못지 않게 말이야.”
내가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도 물어볼 용기가 안 나서 입 다물고 듣고 있자,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쬐까 영양제 맞은 양파처럼 빠르게 크기는 했지.
남자는 3일 정도면 괄목상대한다는데 180일 쯤 줬으니 옐로 몽키에서 Z-용사 벡터맨 몽키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써 봐라.”
─휙! 그때 호툴루실이 대뜸 조각상을 던졌다.
받아보자 움켜쥐기 딱 좋은 크기의 돌이었는데, 투박한 생김새와 질감은 익숙했다. 돌하르방 같이 생겨먹었는걸.
“압력석입니까?”
모험가 길드에서 완력을 테스트할 때 쓰던 바로 그 돌멩이다.
안 써본지 좀 되긴 했지. 팔에만 야수회귀를 킨 상태로 압력석을 꽉 쥐자 호툴루실이 마저 말했다.
“격렬한 전투에서, 생명의 혼은 철을 담금질하듯 깎이고 제련된다.”
그의 시선은 담금질과 금속제련의 종족인 우리 프랑에게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게 가장 빠른 성장법이야. 다만, 오직 그것만이 영혼을 성장시키는 요령은 아니다. 마나량을 늘리는 방법 자체는 그밖에도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게 흔하지 않다는 것도요.”
나만 해도 마나통이 이렇게 튼실해진 건 울프헤딘의 권능 덕분 아닌가.
“과욕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실력을 드높이고 싶다는 게 본심입니다.”
“전사라면 누군들 안 그럴까. 적절한 향상심은 좋은 원동력이다.”
“격려 감사합니다. 좀 더 노력해야겠죠.”
나는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압력석은 용광로에 넣었다가 꺼낸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빨주조초파남보의 순서에서 최고 등급인 빨강이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미스릴 클래스를 찍었는데 속세의 기준에서 이 정도도 못 찍으면 오히려 더 개쪽 아니겠는가.
물론, 흐뭇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모험가 플레이트를 갱신하러 가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겠지. 의뢰를 안 받은지도 몇 달 지나지 않았나.”
─휙! 압력석 조각상을 던지자 호툴루실은 그걸 보지도 않고 낚아챘다. 그도 어디 가서 실력으로 후달릴 모험가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멋쩍게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의뢰를 받기가 힘들 것 같은데요.”
“신경 쓸 것 없다. 이 녀석은 오래 안 있겠군, 싶은 놈들은 관상만 봐도 구분이 가. 그게 아니어도 순수한 모험가로서 사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맞는 말이다. 나도 길드에 가입하기 전부터 다 알고 있던 점이지.
그래서 오히려 모험가 길드 연합에서는 티르시 같은 외부 길드와의 이중 소속자는 높은 등급을 안 주려고 하는 경향도 있댔던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문득 이 엘프의 과거가 살짝 궁금해졌다.
어쩌다가 황야의 엘프가 저 동방에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와서 아우둠라 길드의 지부장이 되고, 또 영주의 땅에서 농삿일을 하며 살게 된 걸까.
‘……뭐, 됐나.’
호기심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그 궁금증을 잘 털어냈다.
언젠가 말했던가. 세상의 모든 의문을 해결하며 살 수는 없다고.
인생이란 대개 더럽게 못 쓴 소설이다. 복선의 결핍이며 낭비되는 맥거핀을 지적하고자 하는 요식 행위가 시간 낭비나 다름 없다는 건, 중학생 정도만 되도 다들 눈치채는 사실 아니던가.
분명 호툴루실한테도 내가 모르고, 또 앞으로도 알지 못할 삶이며 사정이 있는 것이리라.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무관심과 관심을 동등한 비율로 나누는 이 관계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호툴루실은 툭 내뱉듯 말했다.
“동방에 전수되는 마나 연공법은 『심법(心法)』이라고 불린다. 시간에 비해서 효율이 좋지 않은 기술이지.”
심법?
‘아아니 씨벌, 진짜 이름부터가 내공심법이야?’
막 자하신공이니, 뇌룡일기공이니, 바위의 호흡 같은 걸 훈련하는 친구들이 정말로 실존한다니? 난 필요성과는 별개로 약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협 좀 읽어본 코찔찔이 잼민이가 엄마 몰래 지 침대 위에서 습습하 대주천을 돌려보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잖은가.
어릴 적의 강북호는 천마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었다.
그야 이 이세계랜드 수준을 생각하면 기대하는 게 멍청한 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만은 공짜 아닌가. 나는 두근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실용적이진 않을 듯 한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유의미한 변화를 낼 정도라면 이쪽 나라권에도 전파됐을 테니까요.”
실크 로드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황야가 좀 위험해도 이득이 됐다면 건너고도 남았다. 지금의 무관심은 서로 안면을 터도 득 볼 일이 없으니까 생긴 상호 간의 괄시였다.
“잘 아는군. 네 말마따나 그닥 효율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기대를 접지 못하는 나였는데, 호툴루실은 일언지하에 내 무협지 뽕을 반으로 갈라 죽여버렸다. 시발, 매정한 새끼.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는 기술이지만 차라리 그 사이에 전투를 한두 번 겪는 게 더 나아. 잘못된 방법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시간 낭비지.”
“씁……. 그 정도입니까?”
설마 여기에 와서 전통 무협처럼 1갑자를 쌓는 데 성실하게 60년씩 걸리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식이 나쁠 법도 했다. 나는 예외로 치더라도 생사를 가르는 싸움을 겪으면 성장하는 게 이 바닥의 상식 아니던가.
그런 세상에서 누가 성실하게 라마즈 호흡에다 짧디 짧은 인생을 때려박겠는가.
“물론 전투와 병행하면 늘어나는 속도가 유의미해 지기는 하지. 결정적인 문제는 그 요령을 외부인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결코 없다는 점이다.”
“문파의 비전이라는 거군요.”
“재밌는 표현이군. 나도 그렇게 부를까. 아무튼 그 『비전 심법』은 굉장히 다양한데도 겉으로는 차이를 구분할 수 없고, 절세무학급 심법은 그들의 직계 제자에게만 전해지지.”
그렇게 호툴루실은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내 무협지 지식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동방의 내밀한 사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지금 호툴루실이 말해주고 있는 정보가 그냥 냅다 찾아와서 묻는다고 알려줄 정도로 간출한 정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충 이 정도겠군.”
서방 국가에선 어디 가서 못 들을 만한 정보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자, 호툴루실이 말을 멈췄다.
“더 물을 게 있나?”
“음…… 그럼 소소한 의문입니다만.”
나는 노트를 넣으며 생각난 사항을 물었다.
“『심법』은 대부분 효율이 나쁜 마나 연공법이라고 하셨죠?”
“수준 낮은 것들은 그렇지.”
“예. 그래도 일신의 재능이 허락하는 한 마나량을 늘리는 일에 한계는 없을 겁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평생을 들여서 쌓아봤자 결과는 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 반백 년을 들여도 서방국가에서 말하는 골드 클래스 마법사보다 5~60% 많은 정도겠지. 내 경험담이니까 틀리진 않을 거다.”
그가 끄덕거리는 걸 보며 나는 떨떠름하게 질문했다.
“하지만 그러면…… 엘프는요?”
내가 읽은 무협지에서, 저 중원은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전부 불로장생을 꿈꾸는 곳이었다.
반로환동, 우화등선, 불로초, 연단술.
그런 것들은 모두 긴 수명을 꿈꾸던 문화상에서 파생된 수명연장술 아니겠는가. 도를 갈고 닦으며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 사는 것 말이다.
그런데 엘프는?
좆간들이 평생 도를 닦아서 우화등선을 노리는 동안, 엘프들은 그냥 ‘엄마 자궁에서 10개월 응애하기’ 원툴로 우화등선 패시브를 타고 태어난다.
기본 수명은 수백 년.
걸출한 달인의 경우, 때때로 천 년.
태어나기를 신선으로 태어난 듯한 그들이, 만약 그 긴 삶을 전부 내공의 단련에 투자한다면?
탁상공론이니까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
초중고등학교의 20년 동안 성실하게 공부하는 놈이 몇 명 됐던가. 개나 고양이 기준으로는 엘프처럼 장수하는 인간도 인생 낭비는 오지게 한다.
‘킹치만…… 유목 엘프들은 안 그런다며?’
말을 내달리며 치열하게 생존투쟁을 벌이는, 삶 자체가 전투의 연속인 황야의 좆프들.
동서양이 부딪히는 날이 오면 3대 야만족이 4대 야만족으로 업데이트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 종족이, 만약 내공심법까지 배웠다면?
옆집 귀쟁이 아저씨인 예수게이가 5백 년 정도 말을 타고 사냥하면서 10갑자 정도 내공을 쌓고, 꽃다운 오랑캐 신부 타부타이는 태교를 운기 브런치로 하는 동네라면?
삼천갑자 동방삭이 300명.
존나 레콘이냐고.
“……이방인은 어딜 가든 환영받지 않지. 과거 숲이 불타고 황야로 흘러나온 뒤, 우리 엘프족은 하늘 아래 어디에서나 이방인이었다.”
호툴루실은 담배를 태우면서 말했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인정받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지?”
“……글쎄요.”
내가 대답하자, 호툴루실은 나를 보며 픽 웃었다.
“노예로서 굴종하거나, 힘을 통해 증명하거나다.”
“……그거 참.”
금발벽안의 백인 엘프들이 북원의 오랑캐 유목민인 무협지라.
이 동네 중원 무림은 대체 뭐 하는 곳일까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