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13화 (612/1,009)

호툴루실에게 심법에 대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이제 와서 금태양의 호흡 이외의 다른 호흡법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물론 내가 새롭게 뭔가를 배우는 것이 망설여질 만큼 늙고 머리가 굳은 틀딱이여서는 아니다.

아직 나이 앞자리가 간당간당하게나마 20대인 주제에 그딴 소릴 했다간 푸짐하게 욕 먹지. 나는 욕을 먹을수록 장수한다는 기묘한 민간신앙을 내 몸으로 시험해 볼 마음은 안 든다고.

그런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 우물을 파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마나량을 늘리려는 거면 울프헤딘의 힘을 쓰고 말지.’

굳이 먼 길 돌아갈 이유가 있나?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라고는 하지만, 지름길을 찾기에 앞서 내 주변 정세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고로, 나는 우리 아내들과 뷰 좋은 곳에서 즐거운 소풍 놀이를 즐기고 돌아왔다.

“……힝.”

눈치를 보면 우리 프랑은 은근히 야외 플레이를 기대한 듯 했는데, 아직 쌀쌀하기도 해서 건전한 데이트로 끝냈다. 아내가 둘이라는 걸 빼면 공익 광고에 내도 될 법한 소풍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각자 할 일을 하던 우리 가족은 식탁에 모였다.

돌아오는 길에 네페르티티한테도 식사를 권하러 가긴 했다.

하지만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내가 찾아온 걸 눈치채자마자 여관 방 창문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도르카한테서 술이랑 고기만 몇 근 사 오고 끝이었다.

“다나! 라리루라! 밥 다 됐어!”

나는 손의 물기를 닦으며 아내들을 불렀다.

프랑은 부엌 일을 할 줄 모르는 발퀴리에들에게 식칼을 쥐는 법부터 가르치기 바빴지만, 나[email protected]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6인분의 식사를 풍족하게 차렸다.

“야, 쥬지 깡패. 이 심해어 산채 리조또 같은 건 또 뭐야.”

“동물시체 파스타볶음요.”

“파스타는 지랄이, 면발이 안 보이는데. 니플헤임만년설에서 소환해갖고 접시에다 차려놨냐? 존나 오늘밤 꿈에 나올까 무섭게 생겼네.”

“그거 베로니카가 만든 건데.”

“사실 내가 동물시체 없어서 못 먹음.”

“여기 있는데 좀 잡숴보시죠.”

“아니 그건 아니지 씨발아! 그 좆 같은 거 저리 안 치워?!”

“들었어, 베로니카? 이 눈나가 니 요리 좆 같대!”

“부탁이니 닥쳐다오…….”

먹는 것을 넘어서 직접 요리하는 일에 도전했던 베로니카는 스플뎀을 맞고 좌절했다.

소비에 익숙해지면 공급과 창작에 눈이 돌아가는 게 사람 심리지만, 원래 첫 창작물이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

“놔, 놔주세요, 프랑! 저는 됐다니까요! 한 끼쯤 굶어도 안 죽어요!”

“연구가 바쁜 건 알겠지만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서두를 건 없잖아요. 그러다 건강 버려요.”

프랑은 아직 짐도 덜 푼 방에서 연구에 빠졌던 티르시를 질질 끌어서 식탁에 앉혔다. 연구라는 게 순간의 영감이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굶으면서 하는 게 안 좋다는 말엔 나도 동감이다.

“잘 먹겠습니다~♡”

라리루라의 밝은 인사를 시작으로 단란한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메뉴는 남편놈의 사업 그래프가 우상향을 그린 덕분에 충분히 풍족해졌다. 질펀하게 녹인 고품질 치즈와 폭신하게 덥혀진 빵에, 커다란 새 고기와 돼지고기 조림도 있었다.

이세계의 식문화는 식탁에 차린대로 전부 먹고 끝내는 게 보통이다.

부잣집에서는 그렇게 먹고서 남은 걸 하인들에게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로보트 시녀인 발퀴리에는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 남기는대로 버리게 된다.

물론 베로니카가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 암.”

─덥썩.

행복하게 고기를 베어무는 베로니카. 언제 봐도 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었다. 먹방 스트리머를 시키면 백만 구독자도 꿈이 아닐 것이다.

‘버는 돈이 많아지니까 이런 곳에도 여유가 생기는군.’

고딩 때 은수저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기본적인 생활 수준의 격차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시발, 돈 벌어서 뭣혀. 스테끼 사 무야제.

그렇게 베로니카를 보면서 양념을 빵에 바르고 있는데, 문득 프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노르? 맛이 별로야……?”

“응?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냥 오늘 동방 국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쌀밥이 먹고 싶어졌을 뿐이다.

4년 동안 잘만 버텼던 향수병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셰이드의 꿈속에서 해결하면 그만인 욕망이지만, 현실에서 이 매콤달콤한 양념에다가 치즈를 부은 볶음밥이 먹고 싶어졌다.

아무리 리얼해도 꿈은 꿈 아닌가.

꿈이 현실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VR 게임으로 현실의 욕구를 갈음할 수 없으며, 뽑기 시뮬레이터를 돌린다고 모바일 게임에 현질할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역마살이라도 꼈나?’

나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참으면 그만인 욕심이므로 금방 갈무리해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다나는 나를 보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벼락출세 졸부놈이 배가 불러서는. 그 초호화 여관 밥이 맛있긴 했지?”

“다씨, 잔말 말고 밥이나 먹어. 가정식이랑 비싼 외식은 각자 다른 매력이 있는 법이라고. 우리 집 요리 솜씨가 어디 가서 꿀리진 않을 걸.”

“앗, 씨발! 노씨, 한 번만 더 그 심해어 해면체 조림 같은 거 내 밥그릇에 들이밀면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자꾸 제 이름을 줄여 부르지 말아줄래오?”

우리 노의 일족은 이름을 줄여서 부를 수 없는 저주에 걸렸다고. 어떤 의미로는 바이콘 신족에게 내린 구신의 저주보다 흉악한 저주란 말이지.

“다나야, 다나야. 식탁 한켠에서 식어가고 있는 이 동물시체 파스타가 안쓰럽지도 않느냐? 이러다 얘 화석 되겠어.”

“지랄 마. 베로니카 본인도 안 건드리는데 왜 내 입에 욱여넣을 심보로 독이 한가득 올라 있냐고. 암살 시도야? 내가 뒤지면 박사 TO가 하나 비는 줄 아는 건 아니지?”

악! 썩을, 석사따리 원패턴인데 저 반격기는 늘 너무 아프다. 매우 좆 같은 나머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

“씌불, 자꾸 박사 운운하지 말랬지. 내 학위심사 논문이랑 기증품은 어떻게 됨? 마나님이 닌자가 돼 버리면 나는 어떡하면 좋은 것?”

“내일 중으로 야리끼리 해서 보낼 거야. 남편놈 가오 살려줄 논문인데 내가 퍽이나 쌔벼가겠다.”

꼴마초 남편이 뜨거운 눈물 흘려대자 다나는 썩 짓궂게 웃으면서 테이블 밑에서 다리로 내 발등을 간지럽혔다.

으음. 테이블이 상당히 큰데 롱다리라서 간단히 닿는구만. 티르시는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고기를 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 자리가 화기애애해서 좋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서 약간 웃겼다.

***

“발퀴리에들한테 설거지 가르치고 올게요☆!”

라리루라는 그렇게 말하며 설겆이를 하러 갔고, 우리 가족은 잠시 먹은 걸 소화시켰다가 다시 한 데 모였다.

“『심법』인가요? 황야 너머의 사람들도 신기한 훈련을 떠올렸네요.”

내 설명과 노트를 읽은 티르시의 의견이었다. 난 절실히 동감하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 호툴루실한테서 동방의 시중에 나도는 간단한 『심법』을 배워왔습니다. 수준 높은 기술은 아닌 듯 했지만, 습득 난이도는 높은가 보던데요.”

“어? 구하기 힘든 거라구 하지 않았어?”

“마이너 카피겠지. 기술 발전이 보통 그렇잖아.”

다나는 프랑의 의문에 대신 대답해주며 말했다.

“근데 그런 거라도 맨입으로 알려달라고 하지는 못할 텐데, 귀족이 좋긴 좋네?”

“뭐, 그렇지.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권력의 참맛이지. 이 짓거리에 중독되면 어떡하지 싶어서 쬐까 무서울 정도다. 큭, 오른팔에 잠든 콧수-염룡이 멋대로…!

“……이건 쓸모가 많겠는걸.”

내가 그렇게 고유결계 굴라그 오브 시베리아의 발현을 억제하고 있는데, 노트를 읽던 베로니카가 눈빛을 빛냈다.

─속닥속닥. 티르시랑 텔레파시를 나누는 그녀.

뭔데 또 불길하지? 저번에 나르메르-나일에서 돌아오기 전에 느꼈던 그 섬칫함인데?

“나의 그대여. 혹시 그대가 주워왔던 분수 모양 유물을 기억하는가?”

“어? 주변의 마나를 물에 융해시키는 그거?”

니플헤임에서 세헤테피브라가 내린 토트의 시련인가 하는 걸 통과한 보수 중 하나였다. 나는 눈 위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발퀴리에를 자가 발전 시키는 데 쓰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런 마법을 개발하려 했었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구요.”

식사 전까지 하던 연구가 그거였던 걸까. 같이 마법을 손 보던 티르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에 마나를 포함하는 술식이라서, 몸에 액체 한 방울 없는 발퀴리에들한테는 도저히 활용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사용법을 바꿨어요.”

“바꿔요? 어떻게?”

“생물은 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잖느냐. 그 마법으로 우리의 마나를 충전하고, 그걸 발퀴리에들에게 분배한다는 방향성을 잡았다.”

베로니카 가로되, 생물의 몸 속의 액체에 주변 공기 중의 마나를 넣는 건 성공했다고 한다.

“이 방법을 쓰면 마나 포션이 없어도 마나 회복 속도의 상승을 도모할 수 있죠.”

마법 담당이 2배가 되니까 설명 속도도 2배로 늘었네. 티르시는 신이 나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연구에도 애로사항이 생겼어요. 회복 속도가 마나 포션만 못하다는 점이에요. 당연하긴 해요. 대기 중의 마나를 쉽게 흡수할 수 있었다면 마나 포션이 왜 만들어졌겠어요?”

“결국 개발에는 실패했다는 얘기?”

“개량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마법을 『심법』과 조합하면 다른 사용법으로 대용하는 게 가능할 듯 해서 말이다.”

─탁! 메모장을 내려놓는 베로니카.

조합이라니? 내가 고개를 모로 꼬자 그녀는 쿡 하며 미소를 지었다.

“『심법』은 단련으로 마나의 최대치를 늘리는 요령이지. 그리고 나와 티르시가 개발해낸 〈흡결(Absorbance)〉 마법은 액체에 마나를 포함시키는 수단이다.”

“그걸 조합하면 뭐가 바뀌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마나가 깃든 액체를 마셔서 마나량을 늘리는 방법’이 되는 거죠.”

……즉, 게임의 스탯 상승 아이템 같은 건가?

달리 보자면 부작용 없는 스테로이드다. 우리는 그 얘기에 안색이 확 밝아졌다.

“그러면 마나 포션을 마셔대기만 해도 마나통이 쑥쑥 큰다는 뜻?”

“에이, 설마요. 포션은 연금용액이에요. 인체에 흡수시키는 건 불가능하죠.”

아, 그런가.

분명 모든 포션을 영구적인 도핑제로 사용하는 건 너무 씹사기 기술이긴 했다. 세상 일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지. 내가 납득하자 프랑이 물었다.

“그러면 어디서 흡수하는 거야?”

베로니카는 농담기 하나 없이 대답했다.

“정액이니라.”

“……헤?”

“……뎃?

우리는 입을 딱 벌렸으며, 베로니카는 당당하게 있고자 억지로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티르시는 그렇게는 못하겠는지 고개를 숙였고 다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참고로, 발안자는 저랍니다~♡”

그리고 라리루라는 설거지를 끝내고 튀어나오며 외쳤다.

우리가 멍하니 쳐다보자 우리 후배님은 허리에 손을 딱 얹었다.

“저번에 오프툼 아저씨랑 술 마시고 돌아온 날, 베로니카 언니의 연구기록에 살짝 가필해뒀어요! 선배의 정액에 마나를 잔뜩 넣어서 포션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요♡!”

너 임마 그거 산업 스파이야.

세상에 씨발, 정액 포션이라니? 그 무슨 끔찍한 혼종…… 아니지, 다나의 가짜 모유를 개봉할 날만 기다리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닌가.

“제 개인적인 의견을 몇 줄 적어놨을 뿐인데요!”

“니가 토니 스타크야? 연구자 머리맡에 글귀 몇 줄 남겨두고 가게?”

니 로큰롤한 의견 덕분에 베로니카가 익스트라다무스인지 노스트라다무스인지의 계시를 받고 남편 내공 호로록 운기공을 만들어냈잖아. 구와아아악! 이런 건 무협이 아니야!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눈을 깜빡거렸다.

“……뎃? 기다려 봐. 네 말이 맞다고 쳐도, 그런 채양보음 신공으로 내 마나량이 늘어나진 않는데? 오히려 너희가 내 마나를 흡수하는 거잖아?”

“소모한 마나는 복구되니까 문제 없다. 마법을 쓰는 데 마나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지. 우리의 마나가 늘 뿐이고, 주인님에게 해악은 없다.”

“으, 으흠. 당연히 노르드가 저희와 몸을 섞으며 마냐량을 늘리는 것도 가능할 거고요.”

조금 주저하던 프랑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기. 이거 약간 그, 서큐버”

“에베베베!! 안 들려요!!”

본인도 생각한 것인지, 섹슈얼 마력충전법이란 사실을 외면하려는 듯 티르시는 귀를 틀어막았다. 이세계에서 섹스랑 마법이랑 연관이 깊은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하다만.

‘찐퉁 흡성대법은 아니고, 음양합일식 방중술의 일종인 셈인가?’

남들은 자연에서 운기토납을 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우리는 살을 부딪혀가며 무한동력으로 마나를 기르다니. 가부좌 틀고 내공 쌓던 키타이 친구들이 보면 각혈하겠네.

티르시는 귓볼까지 빨개져서는 고함을 질렀다.

“저희 모두가 그 마법의 적성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연구할 가치는 있을 거에요!!”

“좀 더 수준 높은 『심법』을 얻을 수만 있다면 효율을 높이는 것도 가능할 테지.”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반개했다.

“아, 물론 우리 주인님이 동방에 가라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다. 안전이 제일이지, 아무렴.”

“……그보다, 어떤 미친놈이 대대손손 전해지는 소중한 연공법을 섹스 훈련법에 써먹겠다는 말을 듣고 ‘아휴 그럼 알려드려야죠’ 하고 내주는데?”

다나가 얼척이 없다는 듯 묻자 베로니카는 새침 떼듯 눈을 피했다.

“……그거야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베로니카……. 너 은근 대책없이 구는 편인 거 알고는 있지?”

“여, 연구라는 건 원래 머리부터 박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나 너도 잘 알면서 뭘 그러느냐!”

“뭐, 나도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다나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자 베로니카는 나를 보면서 다시 정색했다. 가부간의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듯한 단호함이었다.

“대충 알아들었지? 지금부터 전부 벗거라.”

박력 봐 씨발,

우리 여신님이 처음으로 바이콘이라는 닉값을 하는 것 같네.

***

안타깝게도, 연구에 지장이 간다는 이유로 나의 정액을 채취하는 과정은 입싸와 대딸에 그쳤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니라서, 나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부족한 개운함을 다른 아내들과 뒹굴며 채울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 정력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일찍 잠에 든 게 다행이었다.

만약 집에 불이 꺼지지 않았거나 밤일로 기척을 냈다면, 그날밤에 찾아온 불청객들은 필시 후일을 기약했을 테니까.

“히냥. (일어나.)”

─툭툭.

잠들었던 나는 테레사의 냥냥펀치에 깨어났다. 왜 깨웠냐는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됐다. 어떨 때에 깨우라는 식으로 상의를 해 뒀었기 때문이다.

기척은 잠든 상태로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적의가 없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으로 여기고서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테레사가 나를 깨웠다는 건, 내가 사르가디스에 넓게 펼쳐놓았던 안드루이드-애니멀 드론 시스템이 경보를 울렸다는 뜻이었다.

뒤쫓을 필요는 없었다. 우리 집 현관에는 내가 손에 넣고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얼스터의 고대 유물 CCTV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녹화된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얼씨구?”

담벼락에 비춘 화면에는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 주변을 서성이다가 떠나는 모습이 비춰져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피부색은 햇볕에 탄 황인종 특유의 색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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