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28화 (627/1,009)

와이번 축사는 와이번과 라이더들로 번잡했다.

운송 길드 길드장은 당연히 로마니아에 돌아간 듯 했는데, 사육실장은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인지 바로 와이번을 한 마리 내왔다.

“오, 마스터 투슬리스네요.”

“네? 얘 이름은 루즈 뱅인데요?”

사육실장은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녀가 데려온 자식은 나한테 가르침을 주었던 그 와이번이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레슬러 뺨치는 등빨에 흐뭇하게 웃는 나랑 달리, 사육실장은 걱정스러운 듯 했다.

“음……. 일단 빌려드리긴 하겠지만, 와이번들은 주인이 아닌 사람을 등에 잘 태워주지 않아서요. 이 아이는 종마 겸 우두머리라서 주인도 없구요.”

“우두머리요?”

“네. 와이번의 습성 상 있는 편이 좋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빌려가는 건 좀……”

“아, 그건 괜찮아요. 이미 자식도 여럿 봤고, 또 너무 축사에서만 지내서 갑갑해 하더라구요. 그런 만큼 일단 등에 태워주기만 하면 서로 좋겠지만……”

어……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

외출외박 나가서 운동이 하고 싶은 투슬리스랑, 이동수단이 필요한 우리.

합의점은 적절한데? 나는 투슬리스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콜? (콜?)”

“크릉. (콜.)”

─툭. 사람 세상에 익숙한 와이번은 내 주먹에 날개를 부딪히고서, 등을 돌려 앉았다.

사육실장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등에 매여 있던 안장에 탑승했다.

펄럭─! 투슬리스는 나와 세 명의 여인들을 태우고도 가뿐히 날았다.

그야 그렇겠지. 원래 플라잉-짐말 같은 역할을 하는 놈들인 데다가, 황소 같은 걸 낚아채서 잡아먹는 몬스터인데 이 정도도 못하면 쓰겠나.

“그럼 빌려갑니다! 1~2주 안에 알아서 축사에 돌아와 있을 텐데, 그때 박박 씻겨주고 밥이나 좀 맛있는 걸로다가 멕여주십쇼!”

“넷? 네, 네!!”

투슬리스는 바람을 일으키며 기분 좋게 울고서 홰를 쳤다. 운동 마니아가 자가격리에서 풀린 듯 날아오르는 동작이 좀 과격했다.

이제 마흐잔을 챙겨서 출발하자.

***

엘프들이 머무는 숲으로 돌아가, 베로니카의 〈공간이동〉으로 대륙을 건넌다.

그건 글로만 적어도 알 수 있듯 존나게 간단한 과정이었기에, 이동에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그 간편함의 비용을 마나로 치뤘을 뿐이지.

“으…….”

“베로니카, 괜찮냐?”

현기증이 난 듯한 베로니카. 다나가 빠르게 힐 마법을 걸어주었다.

존나 무거운 와이번까지 데리고 대륙을 건넌 것 아닌가. 마나 소비가 컸겠지.

옥새를 빌려도 피로는 오롯이 베로니카의 몸과 마나통에 쌓인다. 그래서였을까. 베로니카는 힘이 빠진 듯 나한테 기대야만 했다.

“뭐, 뭘. 조금 지쳤을 뿐이다. 별 것 아니야.”

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본 베로니카는 억지를 부리며 웃었다.

며칠 전에 상의할 때는 괜찮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은 모양인데, 이런 걸로 허세 부리지 말라는 의미로 이마에 딱밤을 놔 줬다.

─딱!

“아윽! 따, 딱밤은 때리지 말거라……”

바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베로니카였다.

뿔을 내놓은 상태였으면 거기다가도 딱밤을 놔 줬을 텐데.

나는 픽 웃고 그녀를 안아들었다.

“얼른 작은 동물로 변신해. 아니면 이렇게 안고 다닐까?”

“……으. 이, 이왕이니 부탁 좀 하겠다.”

베로니카는 공주님처럼 안긴 채 발을 굴러대며 새끼 고양이로 변신했다.

“또, 또 룬 마법을 매개체도 없이 쓰신 겁니까?!”

그리고 그 과정을 본 마흐잔은 오두방정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존나 리액션이 찰지군. 일부러는 아닌 것 같고, 상사들한테 예쁨 받을 타입이야.

“게다가, 어떻게 외마디 룬 문자 1개로 완전히 다른 생물로 변신을──”

“매직 아이템을 쓰느라고 지친 사람한테 물어볼 만한 내용은 아니군. 나중에 하지.”

웃는다고 웃기는 했는데,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섰던 걸까.

마흐잔은 냉큼 실례했다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90도로 머릴 박길래 용서해 줬다. 진짜 사회생활 잘 하는 엘프야. 수백 살 짬바는 어디 안 간다.

“……앗, 체구가 작아지니 주인님의 손길이 너무 안락하구나…….”

근데 우리 여신님도 나보다 최소 5배는 살았을 텐데, 왜 이렇게 애 같담.

‘모르겠다. 귀여우면 됐지.’

나는 새끼 고양이가 된 베로니카를 안고 투슬리스의 고삐를 끌었다.

유적지는 이끼와 수풀로 녹음의 일부가 된 듯한 곳이었다.

정말로 사람이 코빼기도 오고 가지 않는 걸까. 수풀이 우거지고 벌레까지 기어 다닌다.

이 장소에서 건진 게 다름 아닌 【게르튀르】의 룬 스톤이라던가.

잠깐 흥미롭게 구경하던 우리는 투슬리스가 날아오를 수 있도록 장소를 바꾸고자 이동했다. 유적 주변은 나무들과 넝쿨로 하늘이 막혀서 날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흐잔은 그리 이동하는 중에도 믿겨지지 않는 듯 얼떨떨해 했다.

“세상에…… 정말로 대륙을 건너버렸군요.”

“아직 숲 속인데 어떻게 구분을 하냐?”

“예? 식물이나 바람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시발, 그 차이를 알아본다고? 그게 말이 되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식물에 관심이 많나 봐?”

“아, 아닙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냄새가 느낌이 달라서……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

나는 코를 몇 번 킁킁대 봤지만, 당연히 브리타니아의 숲과의 차이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엘프족 특유의 본능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존나 또 그 놈의 혈통빨, 종족빨이여?’

아니, 신수저인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엘프들은 황야보다 숲이 어울리는 거 아냐?”

내가 머리를 긁고 있으려니 눈을 비비던 다나가 말했다. 마흐잔은 겸연쩍게 대답했다.

“……예.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르드님 덕분에 숲속에서 보냈던 며칠은 꼭 어머님의 품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더군요.”

“생물마다 자기한테 맞는 환경이 있는 거겠지.”

예르나 년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데 식물을 쓸 정도였고, 엘프들은 좀 더 자연 느낌이 나는 곳에 사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엘프들은 말하자면 사람이 바다 밑이나 우주 같은 곳에 사는 셈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적당한 비행장을 찾았고, 거기에서 투슬리스의 등에 올라탔다.

아니, 정확하게는 올라타려 했다.

“……안장 모양이 이상해.”

네페르티티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는데, 나는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라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말았다.

2X2, 앞자리 2개 뒷자리 2개의 안장. 평범하게 멀쩡한 모양 아닌가?

그러자 네페르티티는 차분하게 말했다.

“앞자리 3개, 뒷자리 1개. 와이번의 등 모양을 보면 그게 나아.”

“……그, 그른가…?”

확실히 역삼각형이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왜 내 옆자리에 앉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지? 자의식 과잉은 아닐 텐데.

나는 뭐라고 할 기분이 들지 않아서 안장을 내 마법으로 바꾸었다.

앞자리 3개, 뒷자리 1개. 약간 덤프트럭 같군.

“그, 그럼 제가 뒷자리에 타지요! 이야~! 혼자 앉을 수 있어서 참 좋군요!”

또 사회생활을 ‘ON’한 마흐잔이 바로 뒷자리에 탔기에, 나는 새끼 고양이 베로니카를 꽉 묶고서 안장에 올라탔다. 투슬리스의 고삐를 잡는 위치다.

“……내가 오른쪽?”

“음, 그럼 제가 왼쪽…… 이죠?”

다나와 네페르티티도 약간 어색하게 착석.

안전벨트를 매자 양쪽에서 좋은 향기가 풍겼다. 가는 길이 따분하지만은 않겠다는 예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끄응……. 역시 좀 힘들구나…….”

“?”

베로니카는 바로 옆에 앉은 네페르티티 때문에 힘든 듯 몸을 웅크렸다.

아무래도 마흐잔은 아다가 아닌 듯 했지만, 다 알다시피 네페르티티는 유니콘이 인증 마크를 땅땅 박아준 순결한 이하 생략.

이젠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옆에 앉나 뒤에 앉나 거리 차이는 없는 수준이니까 별 수 없다. 베로니카한테는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나는 가슴에 파고드는 베로니카를 톡톡 치고서 말했다.

“손님 여러분, 곧 이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확실히 매셨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 맸어. 마법도 펼쳤고.”

“좋아, 그럼 출발한다.”

다나가 바람을 막는 마법을 펼친 뒤, 우리들은 숲에서 날아올랐다.

쐐애애액─!!

“꺄아아앗?!”

갑작스런 가속에 옆자리에 앉은 다나가 놀라며 나를 껴안았다. 마법을 쓰고 나서 잠깐 방심했던 모양인데, 나로서는 나쁠 것 없었다.

‘오, 보기 드문 귀여운 비명.’

거기다 소극적인 가슴이 밀착하면서 자기주장을 하는 게, 이건 이거대로 또 나름의 맛이 있다.

부수입 치곤 괜찮군. 나는 웃으며 고삐를 당겼다.

후우우우우……!!

실드에 부딪히는 바람이 소란스러울 만큼 높은 곳에 올라오자 많은 것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별 볼 거리도 없던 니플헤임을 날아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절경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지는 3토막으로 나뉘었다.

첫째로, 니다벨리르의 국경지대.

둘째로, 무성하게 자라난 니다벨리르의 삼림과 그 푸르른 식물들이 점점 흐릿해지는 경계선.

마지막인 셋째로는── 식물이 사멸한 황갈색의 황야.

나는 고개를 돌려서 국경지대의 낮은 울타리와 그걸 보수하며 좆뺑이치는 드워프들을 한 번 힐끔거렸고, 그러다가 네페르티티와 눈이 마주쳤다.

딱히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혼이 들여다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네페르티티의 옅은 흥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흐흐, 왠지 즐거우신 것 같습니다?”

“……응. 조금 기대 돼.”

네페르티티는 옆머리를 넘기고 황야의 지평선을 가리켰다.

“저 너머의 나라는, 네가 태어난 땅이니까.”

“……그, 그렇죠 뭐.”

솔직담백한 진심에 양심이 찔렸다.

미안, 네페르티티……. 저기 내 고향 아냐…….

사실 나도 키타이에 가 본 적 없어…….

양심의 가책에 눈을 돌리며 외면한 나는 투슬리스의 고삐를 꽉 쥐었다.

“키에에에엑──!!”

내가 말하지 않아도 투슬리스는 지 본능에 따라 날개를 퍼덕였다.

“난 세계 7대양을 여행하지(I travel the world and the seven seas)~ 모두 뭔가를 찾고 있어(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낡은 팝송을 흥얼거리며, 우리는 황야의 하늘을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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