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짓는 거, 도와줄게.”
휘릭휘릭 기승위 공중제비 팬티노출 해프닝으로부터 몇 분 정도 지나자, 네페르티티는 내 기억을 덮어쓰려는 듯 그런 말을 꺼냈다.
“아, 저야 좋죠.”
이미 클라우드 스토리지에 백업까지 마쳤으니까 잊을 리도 없다. 종교에 얽힌 출신 탓인지 청결한 순백의 팬티였다. 사실 별 거 아닌데 괜히 인상에 남네.
나는 열심히 그림을 남기는 자칭 딸내미의 머리카락을 빗어주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고민이네요. 지금 이 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줘야 하나?”
“음……. 여자애니까, 귀여운 이름?”
“귀여운 이름요?”
프랑을 상대로 숙달된 빗질을 잠시 멈추는 나. 아내를 상대로 기른 기술을 다른 여성의 아이에게 쓴다고 하면 왠지 배덕적이고 양심이 아프군.
“얘, 따님아. 애나벨이나 티파니 같은 건 어때?”
“싫어.”
창의 정령은 시금치를 먹이려는 유치원 교사를 상대하듯 쌉정색을 해댔다.
이 년 단호한 것 보게. 사람이었으면 커서 대성했겠어.
“아아니, 이게 얼마나 유서 깊고 근본 있는 이름인데 싫대?”
너나 나처럼 근본없는 이세계 떼놈한텐 과분할 정도라고.
그렇지만 창의 정령은 단호했다. 오죽 단호하면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손도 멈췄다.
“멋진 이름이 좋아.”
“그르냐.”
하긴, 나처럼 과묵하고 우수에 젖은 눈을 가진 마초의 무기가 티파니라니. 잘 안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다. 이 녀석 보기보다 생각이 깊은데.
이름은 대상한테 어울리는가도 중요한 법!
우락부락한 검투사가 자기 검을 ‘핑키파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소름이 돋겠는가. 낱붙이에 사람 이름 같은 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무기들이 부러워 할 이름이 아니면 싫어.”
“참고하마.”
무기들이 부러워 할 이름이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애초에 다른 무기들의 머리로는 이름에 대해서 논할 만한 지능이 없을걸. 그렇게 말하자 우리의 딸내미는 기꺼이 심사숙고를 거듭하며 리퀘스트를 첨삭했다.
“전설 속에 나올 것 같은 이름. 절대로.”
“취향 한 번 확고하네.”
“묠니르. 궁니르. 갈라르호른. 그런 거.”
“알았어, 알았어.”
본질적으로 무기여서 그런가. 칼로 베듯 단호한 요청이군.
‘그나저나, 생각해보니까 상황이 웃기긴 하네.’
존나 이 세상의 그 누가 자기 첫 이름을 원하는대로 지어 봤겠는가? 전 인류의 90%가 ‘응애, 나 니 새끼. 이름 줘’하며 부모한테 받았을 텐데.
‘아, 개명이라는 방식도 있나.’
본명 말고 다른 이름을 쓰면 일단 자기 맘대로 지을 순 있겠군.
예를 들면 예명이라든가. 라리루라리리루루.
‘오히려 원하는 바가 확고해서 작명하기 편하긴 하겠다.’
디자이너를 야마돌게 만드는 요청은 다름 아닌 ‘좀 더 모던하게’나, ‘뽀샤시하게’, ‘생각했던 거랑 다르네요’ 등의 막연한 요청이라고 했던가.
생일선물 같을 걸 줄 때도 원하는 걸 아는 편이 더 고민할 여지가 적기도 하고, 차라리 저렇게 딱 자기 취향을 어필해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네페르티티의 방 문을 노크했다.
“실례하마. 베로니카다. 아침 운동을 하겠답시고 나간 주인님이 3시간째 절찬리로 실종 중이다만, 혹시 네 방에 가 있더냐?”
“응. 여기 있어.”
“역시. 들어가도 되겠느냐?”
“응.”
네페르티티의 허가가 나오자 베로니카와 다나가 방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걸 제쳐두고 창의 정령을 안고 있는 나를 보았다.
다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와, 그새 친해진 거야? 내가 결혼한 게 사람이 아니라 카피바라였네.”
“……정답은 그림이었군.”
간식거리를 들고 온 베로니카가 전율한 것처럼 떨며 말했다.
아마 저 달다구리한 간식으로 창의 정령을 꾀려 한 걸까. 우리 여신님이 지상의 생명에게 환심을 사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네.
그래. 다들 저렇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지.
“……누구?”
신나서 그림을 그리던 게 거짓말처럼 낯가림을 타기 시작하는 창의 정령. 나는 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빠 아내들. 그러니까, 저 언니들도 엄마야.”
“엄마…… 엄마?”
아주 눈에 물음표가 뜰 것 같구만.
자칭 딸내미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와 우연찮게 마주친 것처럼 두 눈을 떨며, 네페르티티와 우리 아내님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
그런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창의 정령은 이윽고 새로운 무언가를 깨우친 듯 외쳤다.
“엄마는 단수가 아니구나!”
굉장한 깨달음을 얻으셨구만 그래.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진짜.
***
그로부터 며칠.
아직 동심을 잃지 않은 딸내미가 ‘엄마’는 산타클로스처럼 세상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우리 4인방── 아니, 5인방의 일상은 시끌벅쩍해졌다.
“……과자는 안 먹느냐?”
“응. 물이 제일 맛있어! 뿔 엄마도 마실래?”
“그, 그래. 고맙구나.”
창의 정령은 다나와 베로니카를 ‘수녀 엄마’랑 ‘뿔 엄마’로 정의했고, 그 뒤로는 낯을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렸다. 당연히 아내님들은 좋아했고.
“뿔 엄마라니, 존나 개미핥기 같은 작명법일세. 이름 너무 대충 짓는 거 아니냐.”
“여어, 「노란얼굴 암컷늘리기」.”
“그러는 너는, 「개털머리 빨래판」인가?”
한가롭게 점혈 책을 읽으면서 나를 빼닮은 애랑 놀아주는 아내들을 보고 있자니 꼭 적당히 나이 먹고 칩거하며 연구하는 박사님이 된 기분이었다. 뎃? 대체 언제 모든 싸움이 끝나버린 것이지?
“푸흐흐. 우리 딸, 뭐 먹어?”
“개미.”
“아악─!! 뱉어!! 얼른 퉤 해!!”
물론 그냥 한가롭다기엔 정신이 하나도 없기는 했다.
애를 기르다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데, 그 말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이 며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 나는 게 얼마 없을 정도였다.
“……여기 어디?”
“제 꿈속인데요. 네페르티티는 왜 여기 계세요?”
“와! 넓다!”
딸내미를 데리고 잠든 네페르티티가 그 딸에게 이끌려서 내 꿈에 들어오지를 않나, 창의 정령이 하늘에서 내려온 흰 까마귀한테 아르르르 거리며 으르렁대질 않나.
〈인간이 요정향에서 아이를 낳았다!!!!〉
〈벌써 저렇게 커? 인간은 엄청 빨리 자란다!!〉
〈……어? 인간 맞아? 정령의 향기가 나는데?〉
〈이 맛은…… 요정왕님과 나무의 맛이구나!!〉
〈나는 나무 아냐!〉
창의 정령이 조기교육으로 배운 로마니아 어를 뽐내며 요정들과 한바탕 놀고, 요정들한테 배워온 꽃반지를 베로니카의 왼손 약지에 끼워줬다가 울게 만들지를 않나.
“수녀 엄마, 수녀 엄마! 이 쥬스 뭐야?! 맛있어!”
“……네가 통 마실 것만 먹길래. 더 줄까?”
“않이 즈기요, 모유 착즙기 씨.”
마나를 빨아먹는 창답게 다나가 착유한 액체형 빛의 마나를 세상 행복하게 마셔대서 베로니카가 ‘나도 그 점혈 연구란 걸 도우마’라고 말하게 만들지를 않나.
아무튼 간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었다.
물론 나야 뭐 어쨌든, 아내들이 즐거워 보이니 됐다.
특히 네페르티티가 잃어버린 감수성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게 눈에 보여서, 그것만으로도 이 요정왕국에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기이한 만남은 당연하게도, 여느 신파영화의 국룰처럼 시시각각 끝과 헤어짐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타타르니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창의 정령에게 우리가 하나씩 이름 후보를 건네주고, 당사자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게 하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이제는 완전히 올라프로 굳어진 엘프의 소식에 나는 입을 꾹 닫고 말았다.
“후우…….”
그리고 그때가 되서야, 나는 내가 저 정령에게 적잖이 마음을 준 뒤라는 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일부러라도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하긴, 어디 사람 마음이 원하는대로 되던가.
‘내 집에 개를 데려오면 내쫓을 것’이라던 어머니 아버지들이 누구보다 강아지를 애끼게 되듯, 나도 이미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든 뒤였던 것이다.
그래서 가족끼리 소풍을 가는 것처럼 모니카의 식물원에 찾아갔던 나는 그녀에게 약속한 보수를 지불하고 나서, 우연히 모니카를 찾아왔다던 요정왕에게 대화를 청했다.
─예상은 하고 있겠지만, 실리 코트를 나가면 네 창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테이블에 스콘이며 홍차를 세팅하고, 지나가던 토끼에게 과자를 나눠주던 요정왕이 말했다. 진짜 무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분위기의 다과회구만.
“바깥에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합니까?”
─내가 따라갈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 나라에 요정들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 게 아니고서야 나는 여길 나갈 생각이 없어.
나는 슬며시 인상을 썼다.
당연한 얘기였고, 또 당연한 대답이었다.
─네 창이 원래대로 돌아온 뒤가 걱정돼?
“그야 뭐, 안 될 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돌려준 대답에 저절로 한숨이 섞였다.
며칠 뒤면 타타르니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럼 내가 창이랑 화해하더라도 지금의 관계는 없어질 것이었다. 나한테 흡수되고 끝이니까.
어쩌면 다나랑 베로니카가 내 창에다 말을 거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십쇼. 이러고 저 녀석이 창으로 돌아가면 제가 어떻게 그걸 휘두르고 다닙니까? 제가 안면몰수하고 저질러 버려도 아내들이 저한테 정나미가 뚝 떨어질 걸요?”
일견 우스운 듯 보이지만, 이건 존나게 심각한 문제였다.
그냥 무기 하나를 포기하는 셈 치려고 해도 새 무기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자기를 냅두고 다른 창을 구해다 쓰면 저 녀석이 얼마나 삐지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평생 맨손으로 붕쯔붕쯔 파파팟 하면 싸울 수도 없고.
─뭐어? 아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시발, 내가 그렇게 고민을 털어놓자 요정왕은 스콘을 처먹다 말고 웃음을 빵 터트리는 게 아닌가? 뭐가 그렇게 웃겨, 레고만한 새끼가.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고민해 봤자 어쩌겠냐.’
요정왕은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해줬다. 작별이 아쉽긴 해도, 헤어질 걸 알고 있었기에 다른 일행들도 마음 한 켠으로는 마음을 다잡고 있겠지.
‘그나저나 이 양반, 사실 한가한가?’
모니카처럼 머리가 굴러가는 요정도 있다.
이런 북방의 작은 땅뙤기를 관리하는 일이 힘에 부치지는 않을 것이었다. 덕분에 지방 토호(존나 쎄다)로서 유유자적 사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물어볼 만한 건 오히려 다른 것들이지.’
고즈넉했던 식물원에 꺅꺅대는 아이 웃음 소리가 울리며, 요정왕의 웃음도 거기에 섞였다. 나는 그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말했다.
“사실, 그밖에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궁금한 거? 뭔데?
관심이 가는 듯 질문하는 그. 나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었기에, 석판에서 우리 로봇 메이드 발퀴리에를 한 마리 소환했다.
요정왕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굉장한 인공령이네? 설마 네 거야?
“저희 가족의 듬직한 보디가드죠.”
─요정향 바깥 종족이 부러운 건 처음이네! 한 마리 주지 않을래?
“싫습니다. 그보다, 요정왕님도 말씀하셨죠? 저 옛날에 만들어진 최초의 인간은 오딘과 그 의형제들이 생명을 불어넣은 물푸레나무였다고요.”
오딘과 그 의형제.
총혜신 헤니르와, 만언신 로두르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셋이서 만들었다는 건, 다른 두 명 없이는 그들도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지는 못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음……. 틀린 말은 아니겠네.
요정왕은 생각보다 흥미가 솟은 걸까. 먹던 걸 내려놓으며 말했다.
─물푸레나무로 인간을 빚을 때. 천공신은 생명을, 총혜신은 지혜를, 만언신은 언어를 불어넣었대. 각 신들의 칭호만 들어도 그럴 것 같잖아?
“예. 그리고 이 발퀴리에는 오딘이 만든 겁니다. 영혼에 전투기술과 룬 어를 새긴 병사를, 미희신 프레이야에게 선물로 건네줬다더군요.”
오딘이 만든 생명.
다시 말하자면 ‘영혼’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제 창은 제 영혼과 마나에서 태어난, 제 일부라고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사람이랑 분간도 안 갈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고요.”
─그 발퀴리에라는 애들에 비해서?
“예.”
아무리 골렘보다 지능이 있어 보이고 사람처럼 생겼다지만, 발퀴리에는 진짜 생명이 아니다. 네페르티티랑은 다르게 아예 감정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다.
‘헤니르가 불어넣은 지혜라는 게 감정도 포함한 거겠지.’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데, 양심은 지능의 일종이다.
측은지심이라는 건 공감능력이고, 그게 모자란 건 뇌가 덜 발달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과 다르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는 건 하등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지. 두뇌에 문제가 있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
‘감정도 비슷한 거겠지.’
아마 해파리들한테 슬픔이라는 감정은 없다.
그걸 느낄 만한 지혜가 없으니까. 이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기에 나는 의문을 가졌다.
“제 창에는 생명과 지혜가 있습니다. 제 영혼과 마나의 일부니까요. 아직 창이었던 무렵에도 자기 의지로 행동했고요. 그리고 모니카 씨는 그런 제 창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셨죠.”
─내 권능, 수분의 기적을 빌려서 말이지.
“그렇죠. 우연이기는 해도 제 창에는 조건이 다 갖춰져 있던 겁니다.”
─그렇지. 그래서 나머지 하나, ‘언어’만 갖춰도 저렇게 사람과 비슷한 생명이 될 수 있었지. 진짜 최초의 인간이랑 비교하면 손색이 많겠지만.
숨길 생각도 없었던 걸까. 요정왕은 그냥 웃을 따름이었다.
나는 턱을 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요정왕님은 대체 어떻게 제 말을 알아들으십니까?”
─응~? 이건 또 상당히 당돌한 화제전환이네. 말하지 않았었나? 마법이라고.
“번역 마법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이세계에서 ‘언어’란 그렇게 가볍게 다뤄지는 물건이 아니지 않은가.
‘당장 룬 문자부터가 단어마다 진리와 힘이 담긴 마법 문자고.’
내 야매 심리학 지식에서도 그런 얘기가 있다.
사람의 인식능력의 한계는 곧, 그 사람이 아는 언어의 한계라고.
창의 정령이 다나를 ‘수녀 엄마’라고 부른 건, 저 애의 지능과 언어능력으로는 그렇게밖에 다나라는 인간을 정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정 나라에는 번역 마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정말로요?
─그럼~. 이건 요정왕의 비술로…… 아차.
술술 대답하던 요정왕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픽 웃자 그는 들켰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깜빡 속았네. 방금 그 염파(念波)는 어느 나라 말이야?
“비밀입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만들고, 세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킴연아와 지성 팍의 오른발과 왼발이 있는 위대한 나라지.
나는 오래간만에 고향의 말을 뱉은 혀를 찻물로 축였다.
“뻔한 시치미는 그만 떼시고요. 딱히 나쁜 마음에서 묻는 건 아닙니다.”
“그거야 알지. 종류는 약간 달라도, 우리는 같은 신의 권능을 빌려쓰는 입장인걸?”
요정왕이 쓰는 말이 바뀌었다.
현지인 뺨치는 나긋나긋한 브리타니아 어로.
“네 짐작이 맞아. 우리 요정족은 식물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왕인 나는 이 세계의 모든 지성체와 식물의 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
그는 자기 몸보다 큰 포크로 스콘을 콕 찍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만언신(萬言神) 로두르=로키의 권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