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놀거리가 부족하다.
‘시골에는 놀거리가 섹스밖에 없음’ 같은 지역차별적인 발언도 이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여긴 진짜로 일상 속에서 놀거리를 찾기가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왜, 쎅스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발언자의 뜻이랑은 좀 다르게 인용되긴 하지만, 남녀가 눈 맞으면 돈 한 푼 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놀 수 있는 육체유희는 아주 유서가 깊다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덜컥 임신하면 스폰 모어 오버로드 해서 노동력도르에 점수 1점.
가끔 학기 말 덤블도어처럼 2~3점씩 푸짐하게 퍼줄 때도 있겠지. 당신의 육아계획, 호크룩스 세 쌍둥이로 대체되었다. 뭔 농구도 아니고 삼점슛이 터져 시발.
물론 이세계랍시고 야 심심한데 섹스 콜? 같은 대화가 오간다는 건 아니다. 그런 건 크리스마스 이브에 카톡창이 미어터지는 씹존잘인싸만 가능한 해프닝이지.
오히려 놀 거리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현대인의 독선어린 관점일지 모른다.
하지만 요 1년 간 정말로 ‘심심한데 섹스 콜?’을 시전하던 몸으로서, 나는 내가 즐겨온 갓흥겜 섹스 온라인이 게임이지만 놀이가 아니었음을 이해하고 말았다.
“아빠. 나 심심해.”
“나도.”
데자뷰 무엇.
자칭 딸내미의 시선이 ‘이 시발아 공감하지 말고 놀아 달라고’라는 뜻을 담은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자의식 과잉일까. 아닌 것 같은디.
별 수 없었던 나는 잠깐 지구의 문화를 재현해 보려다가, 주먹구구식으로 해내자니 눈앞의 미니 부코쨩에게 룰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관뒀다.
아아, 이건 「이문화 전파」라는 것이다. 끽 하면 제국주의 직행이지.
“응…. 아빠, 이거 뭐야?”
“아아, 그건 「도화지」라는 것이다. 「붓」이랑 함께 쓰면 「그림」을 그릴 수 있지.”
붓이라기엔 거의 크레파스 같은 모양이지만.
“그림?! 나, 나! 나 그림 뭔지 알아!”
교양이라곤 여체탐구Ⅱ만 이수한 못난 애비 때문일까.
물푸레나무 인큐베이터에서 상식을 습득한 자칭 딸내미께서는 그림이 뭔지는 알아도 도화지며 붓, 물감 따위를 보는 건 처음인 듯 했다.
생각해 보면 딸 잡은지도 졸라 오래되갖고 요즘 그림이라곤 통 보질 않았네.
문화생활하고 담 쌓은 애비라 미아내.
“주세요! 나 주세요! 아빠 그림 그려줄께!”
“그러려무나.”
폴짝거리는 정령에게 문방구 세트를 선물했다.
음. 신나하는 것 보게. 요즘 잼민 보이즈&걸은 이런 걸 선물이라고 주면 손도 안 대고 방치해서, 3년 쯤 뒤에 찾아가도 당근마켓에서 보존률 A급 판정을 받을 만한 퀄리티로 회수할 수 있을 텐데.
동심이 풍부하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림~ 그림~.”
도화지를 배로 깔고 엎드려서 크레파스를 북북 그어대는 창의 정령.
와, 크레파스를 역수로 쥐네. 얘는 ‘진짜’다.
저 머릿속 심상세계를 창세의 권능으로 펼쳐내면 고유결계 - 텔레토비 꼬마동산이 발동될 게 틀림없다. 우리 아내들을 홀리고 네페르티티마저 유혹한 K-유치원생의 위엄이로다.
사족이지만 이세계 춘화집에서 오크나 슬라임, 촉수물 따위는 거의 실재사건에 기반한 알페스급 씹 언더독 쓰레기 취향으로 분류된다.
진짜 걔네한테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걸로 딸을 쳐? 니가 사람 새끼야? 라는 논리다.
가끔 이렇게 훅 들어오는 현실미에 숙연해지는 나였다.
근데 왠지 씹돼지 영주한테 팥고물 응앗당하는 메이드는 메이저 취향이더라.
베로니카도 비슷한 내용의 야설을 침대 밑에다 숨겨뒀던데, 나중에 빌려읽어야──
“……얘, 따님아. 대체 뭘 그리는 것?”
“아빠랑 나쁜 놈들!”
그럭구나. 나쁜 놈들이라 배에 창이 박혀 있나. 포청천도 놀랄 단호한 판결이로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그린 그림에는 어떤 창에 목이 날아가고 배에 구멍이 뚫리는 몬스터, 악당들의 모습이 깜찍하게 그려졌다.
“호옥시 여기 이 창을 쥔 게 나야?”
“창 아니야! 나랑 아빠! 그리고 이건 엄마!”
“……나?”
“와우. 리을리?”
이 베이비 페이스가 무슨 조기교육을 받았길래 엄마아빠가 연장 들고 사람을 조지는 그림을…… 아니 시발, 이거 나랑 네페르티티가 다굴 깠던 놈들이야?
네페노르디티 가족의 화목한 추억이었냐고.
살인의 추억 전체연령가 판이다.
“얍!”
쫘악─! 크레파스를 호쾌하게 휘두르는 정령.
도화지에 지평선처럼 길쭉한 선이 그려지고, 막 완성된 데스 나이트의 죽음이 결정되었다. 그녀는 저 백지 위의 그림들에게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모든 존재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권능…… 아, 너무 무섭다.
“푸슈슈슈슈─! 끄악-!”
도화지에 엎드려서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멱을 따버린 몬스터의 목에다 피분수를 묘사하는 자칭 노르드 2세. 그 어떤 화가도 이 아이만큼 즐겁고 거침없이 붓을 놀리지는 못했으리라.
“음…… 으음…… 초록색 어딨지?”
“자, 여기.”
그렇게 좋아라 하는 창의 정령을 마냥 흐뭇하게 구경하는 네페르티티 마망.
포켓몬만 봐도 폭력적이라고 항의하는 부모님들과는 감수성부터가 다릅니다. 현실이 훨씬 스피리추알한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죠.
이세계 교육학……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아무리 정령이라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화두를 던지고 싶어지는 광경이었다.
─톡. 그러다가 우연히 손이 부딪혔다.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는 딸내미를 지켜보겠다고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기에, 땅을 짚은 손이 살짝 맞부딪힌 것이었다.
…꼬옥.
네페르티티는 3초 망설이다가 내 손등에다 자기 손을 포갰다.
그러고는 고개를 슥 돌리고는 시치미를 떼신다. 나는 픽 웃었다.
“잠깐 그대로 있어봐요.”
“……어?”
네페르티티의 턱선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을 붙잡은 것이었다. 앉은 키 차이 때문에 고개를 당겨진 네페르티티를 내가 들여다 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샥. 눈을 질끈 감은 그녀의 눈가를 훑은 나는 검지를 세웠다.
“이것 보세요, 눈곱.”
“……………….”
도로 뜨여진 네페르티티의 눈이 가늘어졌다. 난 손가락을 수건에 닦으면서 낄낄댔다.
“왜요? 혹시 이상한 기대라도 했어요?”
했나 보다. 네페르티티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나를 째려보았다.
“……너도 눈곱 붙었어. 닦아줄게.”
“어딘데요? 까짓 거 제가 직접 닦죠 뭐.”
“닦아줄게.”
“엥~. 시른데용~.”
“시끄러워.”
“언변능력이 줄충하다고 해 주시겠어요?”
네페르티티는 문답무용으로 내 얼굴에 손을 뻗어왔다.
나는 몸을 젖히면서 피하려 했지만, 그녀는 내 팔목을 잡아 붙들고 우격다짐을 부렸다. 결국 힘 싸움인가. 칼밥 먹는 사람들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투닥투닥!
─홱!!
갑자기 천장이 뒤집혔다. 네페르티티가 메치기의 묘리를 부드럽게 펼친 것이었다. 이 그라운드 자세에서 엎어치기를? 프로레슬러야 뭐야.
저항하면 그만이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기세를 탄 네페르티티는 나를 눕히고 허리춤에 올라탔다. 아니, 이 아가씨가 아예 다리로 팔까지 눌러 버리네. 눈곱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한대.
“……잡았다.”
꾸욱…! 허벅지로 허리와 팔을 꽉 조인 그녀가 내 뺨을 잡고 눈가를 문질렀다.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 기분 좋은 듯 보이는데, 아마 틀리진 않을 것이었다. 나는 떡처럼 얼굴을 비벼지면서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그래서, 눈곱이 어딨는데요. 거짓말이죠?”
“……거짓말 아냐.”
네페르티티는 엄지에 묻힌 눈곱을 보여주었다.
진짜네. 그러고 보면 나 아침에 가볍게 세수만 하고 단련하다가 왔었던가. 혹시 아까 안겼을 때 땀내 나진 않았겠지. 갑자기 신경 쓰이네.
“음, 저기……. 팔 좀 빼게 비켜 주실래요?”
“직접 못 나와?”
고개를 모로 꼬던 그녀는 얼굴이 멍해졌다.
그녀가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표정이다.
“……이럴 때 탈출하는 법, 알려줄게.”
“아, 싸우다 보면 마운트 당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죠. 저도 탈출법은 압니다.”
나의 지도교수님이신 브람마톤 교수님의 저서, 모험가의 연금술에 나온다.
밑에 깔리지 않는 게 최고지만, 실전에선 그게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해라~ 라는 내용의 문단이다. 얼굴을 맞으면 치료비가 존나 깨지니까 특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던가.
그러자 그녀는 머리를 또 갸웃댔다.
“……그럼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싶어서요. 아니면 직접 풀까요?”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깔린 손을 비틀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면 네페르티티의 매끈매끈한 두 허벅지에 내 음흉한 손길에 더럽혀진다.
야하리만치 도톰한 나르메르 매콤 허벅지.
방금 전까지 조신한 자세로 앉아있어서 그런가, 몹시 따끈따끈하군.
“………………!!”
진짜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란 그녀는 앉은 자세에서 천장에 닿은만치 폴짝 뛰었다.
이게 진짜 싸움이었으면 얼굴에 주먹이며 뭐며 쉴새없이 날아와서 삿된 생각이 떠오를 틈도 없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은가?
네페르티티 같은 미인한테 이렇게 장난치듯이 깔아뭉개지면, 남자라는 생물은 뇌기 쥬지에게 지배당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솔직히 눈치 못 챘으면 저대로 몇 분 정도만 더 계속 깔려 있고 싶었다.
─쿠당탕탕!!
착지를 펌블낸 네페르티티가 요란하게 구르면서 옷걸이를 무너트렸다. 엄마아빠가 뭘 하건 그림에 집중하던 딸내미마저 그 소리에는 입을 헤 벌렸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옷가지에 깔린 네페르티티는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꿩은 머리만 수풀에 감추면 남들도 자기를 볼 수 없다고 여긴댔던가. 부끄러워서 나오기 싫다는 듯, 그녀는 자기 옷의 무덤에 드러누워서 침대 메타에 들어가버렸다.
자칭 노르드 2세께서는 그런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 마디 했다.
“엄마, 팬티 보여.”
…샤샥!
네페르티티는 말려올라간 치마를 다급히 내렸다.
눈요기 타임은 끝인가. 넘모 슬픈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