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을 고치고 잠수 마법이 완성됐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였다.
“바이콘들 어셈블.”
“히힝! (넵!)”
니 위로 내 밑으로 집합.
아니지 시발. 저렇게 말하니까 가혹행위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건 병 걸린 병사들이 후유증 없이 의가사 전역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깐부의 마음이라고.
절대 권력에 취하면 안 된다. 이러다 교수가 돼 버리면 나도 오딘처럼 자기 가슴에 창 꽂고 셀프 박제를 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오딘이야 일 보고 빠져나왔지만 나는 악덕교수 노르드를 봉인하기 위해서 평생 그러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씨이발, 존나 무섭다. 밤새 이불에 대동여지도 한 편 인쇄해버릴 것 같애.
존나 한 50년 뒤에 사혼의 논문 조각을 모으러 떠나고 싶진 않다고.
“바이콘들한테 마법 연구 짬 때린 건 교수 짓이 아니고?”
“존나 어떤 교수가 대학원생보다 빡세게 일함?”
“고건 맞지.”
다나 박사님은 정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가 진짜 교수였으면 저주 풀러 내려가는 것까지 바이콘들 시켰을걸. 나도 일 많이 했다 이거에요.
‘바이콘들이 대신 가겠다는 걸 말리기도 했고.’
위험하니까 바다 밑으로는 자기들이 가겠다면서 자원하더라.
하긴 저 바다에 지성체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자기들끼리 내려가면 베로니카처럼 신족 폼으로도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원시회귀 바이콘이다.
‘또 내가 저주를 풀어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럴 바엔 그들이 마법을 써 주고, 나랑 발퀴리에들이 내려가는 게 맞다.
전투력이나 안정성이란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계산해 보니까 나랑 발퀴리에들의 내구도라면 저 수압에 그대로 노출되도 생각보다 버티더라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야.”
남한테 일 시키는 게 다 교수 짓이라는 논리는 테러리즘 수준의 극론이다.
그런 식이면 1달만에 퇴근한 대학원생이 술집에 가서 술 시키는 것도 갑질이게?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고 예의 차리면 그게 협력이지.
친절함의 아이콘인 나를 자꾸 음해하면 못 써.
“잠수 마법 연구도 끝났느니라.”
“저도 엄청 고생했다구요~? 저렇게나 멀리까지 꼭두각시를 보낸 건 처음이어서, 꼭두각시 몇 개는 그대로 해저에 잠들었어요!”
“비극적이네. 깡통 1호와 2호의 명복을 빕니다.”
“노르. 그 이름은 경의가 전혀 안 느껴져…….”
그치만 속 빈 철 꼭두각시는 진짜 깡통 맞는걸.
아무튼 내 대신 고생해 준 바이콘들과 아내들에게도 감사.
하지만 아내님들은 어쨌건 말 모습으로 찾아온 바이콘 친구들은 고개를 저었다.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저희 일족이 구도자님께 드릴 수 있는 건 부족한 지혜와 노동력 뿐이니까요. 그 외에 인간 사회에서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곤 보석 정도밖에 없군요.
엘프랑 다르게 바이콘들은 매직 아이템 같은 걸 갖고 있질 않았다.
그런 게 있었으면 베로니카가 가져다가 썼겠지. 저들이 가진 건 현찰이 고작이다. 성지까지 잃고 뿔뿔이 흩어진 유니콘들보다야 낫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 운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행이네요. 저희도 돈보다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협력자가 더 궁한 처지라서.”
돈 좀 퍼준다고 인간 인재들이 이 시골까지 와 주길 바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바이콘들은 아주 좋은 협력자다.
저들의 성지는 폐쇄된 사회였다. 다시 말하자면 성지에 살던 바이콘들을 전부 우리 편으로 삼으면 내외의 배신자나 간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얼굴이고, 존나게 오래 사니까 몇 년쯤 내 밑에서 일해도 아무렇지 않다. 씨팔거 저주만 풀리면 능력도 뛰어난 문무양도의 인재들이기까지 하다.
무력의 발퀴리에, 지력의 바이콘.
“Ungogo~.”
“끼룩! (섹스!)”
그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골렘과 섹무새들까지.
이 영지가 뉴 아스가르드로 개명하는 날이 멀지 않았구만.
문제는 휴스로이트의 시민들이 내 깐부 클럽을 어떻게 여길지였다.
자기 고향이 이렇게 물들어가는 걸 보면, 보통 고집이 세고 악으로 깡으로 살아가는 부류가 많은 항구의 바닷사람들이 얼마나 불만을 가질까?
솔직히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영주 대리님! 시민들의 지지도가 하늘을 뚫고 있습니다!”
“뎃?”
여론을 조사해본 결과,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오히려 좋아’였다.
“뭐? 새 영주님이 뭘 어쩌셨다고?”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저 씨부랄 세금 똥통이 바다에 떴다고!!”
“울프헤딘 영주! 그는 신인가? 울프헤딘 영주! 그는 신인가? 울프헤딘 영주! 그는 신인가? 울프헤딘 영주! 그는 신인가?”
“울프헤딘 펀치! 울프헤딘 펀치! 울프헤딘 펀치!”
울프헤딘이 뉘겨.
아, 나구나.
“웨스턴 씨. 설명 좀 해 주실래요?”
“암무나 호의 시범운행을 한 뒤로부터 시민들도 노르드 님의 능력을 깨달은 듯 합니다! 노르드 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회의감을 일소하신 거죠!”
아니 시발, 아부하란 게 아니라 설명을 하라고.
결국 나는 잘 알 법한 사람한테 달려갔다. 머리 쓰기 귀찮았거든.
“세금만 잡아먹었던 부서진 배를 취임 3주만에 고치셨잖아요? 그것도 예전 영주들은 평생 동안 못 고친 배를요. 시민들로서는 좋은 변화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겠죠.”
“레훼에엥……?”
처음에는 머선 일이고? 하던 나는 티르시한테서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암무나 호.
전대 영주 가문의 자랑이자 고대문명의 함선.
하지만 매년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보기에, 그 대책없이 큰 말좆 함선은 돈 될 일도 없는데 영지 운영비만 퍼먹는 밑 빠진 독이었다.
각 나라마다 하나씩 얘기할 수 있는 세금 낭비 정책 같은 것이지.
놀림감이자 원망의 대상!
그것이 기존의 암무나 호가 가진 포지션이었다. 전대 영주의 인품과는 별개로.
근데 영주님 가문이 망해버리고, 왠 평민 출신 백작이 새로 부임했댄다.
이 염병할 깡촌이 기어이 좆 된건가 싶어서 쫄아 있는데, 그 놈이 1달도 안 되서 자기들 할애비의 할애비 대부터 애물단지였던 배를 띄워버렸네?
“영주님이 신통력으로 배를 띄우셨어!! 우리를 엘리시움으로 데려가 주실 거야!!”
“아직도 대가리 덜 깨진 놈 있냐? 있으면 얼른 나와! 내가 깨줄게!”
대대손손 똥덩어리였던 정책 일신하기.
능력을 의심받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치적이다.
하긴, 저 새끈한 배가 항구 앞을 뿌뿌 순회하는 게 임팩트가 좀 크긴 했어.
내가 보기에도 그랬는데, 비교적 깡촌인 휴스로이트 영지민들이 보기엔 어땠겠는가. 나는 본의 아니게 취임 초반부터 시민들이 두 다리 쭉 뻗고 지릴 수밖에 없는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보다 나 영주 대리야, 시발럼들아.”
때로는 시골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독하단 얘기는 누누이 들어봤지만, 설마 벌써부터 가스라이팅과 프레임 씌우기에 들어가다니?
독하다 독해. 이 새끼들, 한국인이 김치 잘 먹는 외국인을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저렇게 김칫국을 물처럼 벌컥대는 것이지? 소름 돋게.
“새 영주님은 엘리자베트 공주님께 직접 작위를 권유받은 분이라신다!!”
“로마니아의 무슨무슨 원로가 사람도 붙여주는 분이셔요!! 술집에서 ‘싸장님, 술 더 쎈 거 업서?’ 거리던 조선공들 기억 나요?! 그놈들이 그 원로가 보내준 기술자였대요!!”
“우리 영주님은 손에서 미스릴을 발사한다고!! 걸어다니는 탄광이야!!”
“내가 듣기론 은을 미스릴로 만드는 게 아니라,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라던데?”
“둘 다 맞을걸.”
“손에서 오러도 뿜고 미스릴도 뿜는다고? 그게 사람이여 쓰벌? 몬스터의 일종 같은디?”
“야!! 이 새끼 족쳐!!”
“바위에 묶어서 바다에 던져! 떠오르면 유죄야!”
내 새 직장 개판났네 진짜.
캐서린한테서 올라오는 보고서가 개발새발이다. 보고서를 쓰면서 존나 빵 터진 그년 모습이 눈에 선한 필적이었다. 이 시발, 이래서 금발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
뭐, 아무튼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바야흐로 내 지지도는 천장을 뚫어버렸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은가? 자기들이 좀 김치국에 취하겠다는데 그걸 말릴 수도 없고.
아무튼 그렇게 휴스로이트 모든 시민의 기대를 등에 업은 영주 대리.
그런 그가 야심차게 펼친 2번째 정책이란 무엇이었는고 하니.
“야, 근데 새 영주님 어디감?”
“아내랑 메이드들만 데리고 뱃여행 갔대.”
“???”
다름 아닌 크루즈 여행이었다.
미안! 나도 어쩔 수 없는 귀족인가 봐!
꼬우면 너희도 귀족 해!
***
암무나 호의 주요 기능은 자동항해다.
하지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자동’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인상을 받는가 하는 점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이거, 해도(海圖)?”
Ahoy한 기분으로 항해를 시작하고 며칠 뒤.
심심한 듯 항해실을 기웃대던 네페르티티가 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현대 이세계의 지도를 펼쳐놓은 하얀 백지에는 삐까번쩍 반짝이는 실선. 선박을 고치자 기동하기 시작한 암무나 호의 레이더였다.
“네. 항해 기록을 자동으로 기록한대요.”
“자동으로? 대단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 길을 완벽하게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하니, 진짜 고친 보람이 있는 배다.
고친 뒤에도 손이 많이 가는 게 문제지.
─팽글.
붉은 화살촉이 나침반처럼 돌았다. 나는 지도를 보면서 항해실의 기어를 조작했다. 막대 몇 개를 내리고 조타기를 돌리자 배의 코스가 돌아갔다.
‘니미 쓰벌. 왠지 약간 사기당한 기분이네.’
이렇듯 암무나 호의 항해 기능은 100% 자동이 아니었다.
한 번 루트를 설정하면 언제든 그 루트를 써서 항해할 수 있었는데, 처음 항해 코스를 설정해줄 때는 이렇게 한 번씩 점검해야 했다.
자동항해 기능이라더니 실시간으로 세팅해줘야 하는 것 좀 봐라.
청소구역설정에 손이 좀 많이 가는 1세대 로봇 청소기냐고.
‘그래도 아예 완전히 수동으로 배를 움직이는 데 걸리는 수고와 인력을 생각하면 나은 편인가.’
항해사로서 지식이 좆도 없는 나조차 일주일째 무난한 항해가 가능했잖은가.
항해실에서 가끔씩 조작해 두기만 해도 알아서 항해하는 함선.
그 정도면 자동이라고 불러줄 만은 했다. 조작 난이도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되는 만큼 간단하고, 까놓고 말해서 진짜 개쩌는 배는 맞았다.
‘근데 나는 자비스 같은 걸 바랬다고.’
대갈통만 있는 생체 컴퓨터한테 지시만 내리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해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기대가 지나쳤던 만큼 살짝 좌절감도 있다.
─달칵.
아무튼 세팅을 끝내놓고 네페르티티와 갑판으로 나왔다.
이 여행에 바이콘들은 데려오지 않았다. 진짜로 필요하면 우리의 만능 베로에몽이 어디로든 문을 열어주면 그만이니 말이다.
베로니카는 나를 보며 물었다.
“……마음의 준비는 됐느냐?”
파르르르…!
화살촉이 균형잡는 새 장난감처럼 일어섰다. 난 그걸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래.”
이 암무나 호의 아래에, 그때 봤던 해저의 섬이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