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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만으로는 토벌할 수 없는 적이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전 영주가 회의실로 쓰던 장소에서 침착함을 되찾은 우리들.
하지만 간단하게 목을 축일 음료수를 가져오기도 전에 베로니카가 그런 말을 꺼냈다. 내가 저주의 근원을 발견했다는 설명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 머릿수를 보았느냐? 우리가 발견한 것만도 수천 마리였다. 게다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니야. 각자 일당백의 힘을 갖춘 군세였어.”
“……배는 멀쩡할까요?”
눈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티르시. 다나는 종이에 뭔갈 적으며 계산하다가 혀를 찼다.
“창의 위력을 모르니까 뭐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 투창 수천 개를 전부 맞지는 않았겠죠. 표면적을 계산해보면 적중한 건 30%도 안 될 걸요.”
“30%? 엄청 아무렇게나 던졌던 걸까?”
“……틀려. 저건 높은 지능의 증거.”
네페르티티는 프랑의 말을 부정했다. 나도 그에 동의했다.
“퇴로를 막은 거지. 배를 부수는 건 덤이고, 그 위에서 벗어난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게 360도를 둘러싸고 포화사격을 한 거야.”
“응. 그때 어디로 도망쳤어도, 회피는 못 했어.”
피하는 건 어림도 없고,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막으면서 몸을 빼내기 전까지 엄폐물 역할을 해줄 배는 작살이 났겠지. 무식해 보이는 생김새에 안 어울리게 상당히 전술적인 씹쌉련들이었다.
그 수천 마리가 집에 창을 1~2씩 갖고 있던 것 아닌가. 더는 말이 필요없다.
“우리가 〈공간이동〉을 하리라곤 예상 못했던 거겠지.”
이해한 듯 중얼거린 베로니카가 계속 말했다.
“하여튼 숫자가 숫자다. 각개격파를 할 수 있는 지형도 아니고, 〈공간이동〉으로 치고 빠지려고 해도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아.”
“〈공간이동〉으로 건너편에 공격 마법만 마구 퍼부을 순 없나요……?”
본인이 말하면서도 신빙성 없다고 생각한 걸까. 주저하는 라리루라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가당치도 않다는 것처럼 단칼에 부정했다.
“공격 마법을 넣은 매직 아이템을 대량생산하면 모를까, 에너지의 이동은 손실이 너무 심하다. 그 방법으로 포격할래도 건너편의 상황을 볼 방법이 없고.”
그 뒤로도 몇 가지 작전이나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전부 궁여지책이라고 해야 할 방법이지, 좋은 작전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들만으론 불가능하다. 인간 국가의 국력을 빌려야 할지도 모르지.”
“……아마 그게 더 무모할 거야.”
베로니카는 그렇게 결론을 냈지만, 프랑은 조금 말을 고르며 부인했다.
“그 섬이 움직이지 않아도 그래. 상륙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걸. 나두 하역 일을 해 봤지만, 사람과 물자가 하선(下船)하려는 도중에 그 투창 세례가 날아오면…….”
“배는 또 어떻고? 졸병을 데려가 봤자 죽기나 더 하겠냐? 그렇다고 정예병 수천을 데려가도 불안할 판인데, 정작 데려간다고 치면 배는?”
─슥슥.
계산식을 쓴 종이의 뒷면에 해변을 그리는 다나.
어설픈 그림이긴 하지만, 엘프의 탐지기로 봤던 아틀란티스의 항공뷰였다.
“해안이 생긴 걸 봐. 어인들이 배를 포위하고서 요격하기 딱 좋네.”
“……해안선에서 투창에 전멸하겠군요.”
“그, 돌아오는 길도 문제 아니었어요~? 방향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였죠?”
좆 같군. 되는 이유를 찾는 게 더 빠르겠어.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공간이동〉으로 날아서 일제습격하면?”
“내 마나가 못 버틴다. 전력을 축자투입했다간 자살하러 가는 것과 같지. 그렇다고 〈공간이동〉 기술을 유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대문명 시절엔 〈공간이동〉을 막는 기술이 있었대. 그리고 사람은 필요 없는 기술을 개발할 만큼 한가로운 생물이 아니지.”
옛날 역사의 기술을 떠올리면서 다나는 한숨을 쉬었다.
“〈공간이동〉으로 기습적으로 군대를 옮길 수 있다는 게 실증되면, 어떻게든 마나를 모아가지고 암살, 테러, 반역, 전쟁 같은 걸 터트릴걸. 전례도 많아.”
“우리가 벌인 일의 뒷수습을 그렇게 큰 판으로 벌릴 순 없지.”
예를 들어서 우리 아내님들이 텔레포트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딴 살인기술이 횡행하게 된 이유가, 웬 애미 터진 씹탱련이 자기 사리사욕 때문에 똥을 한 무더기 싸지르고 못 치워서 일을 키워서였다?
‘나였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조커 되지, 시발.’
배트맨은 부모를 잃고 영웅으로 각성했지만, 내 사랑하는 아내들이 그딴 식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정의의 마음에 눈을 뜰 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자고 세계구급 똥을 싸지를 수는 없잖은가.
그따구로 굴었다가 나중에 귀족/국가 차원에서 ‘저 새끼 죽이죠’하고 얘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 이 세상 일은 이토록 난해하게 배배 꼬인 것이었다.
“……근데, 그놈들 섬 밖으로 나오진 않겠지?”
나는 갑자기 떠오른 예감을 입에 담았다.
“노르드? 밖으로라뇨?”
“아뇨, 그 왜. 저희가 불청객이긴 해도 물고기 대가리들의 살의가 장난 아니었잖습니까. 인간이면 덮어놓고 증오하거나, 뭐 그런 느낌의 종족 같지 않았어요?”
“젠장, 그럼 뭐야? 설마 그 새끼들이 이제 바다 위에 올라왔으니 사람을 노릴 거라고?”
“아, 아니. 그렇진 않을 것 같다고.”
다나의 말을 다급하게 부정하는 나.
저런 전천후 살인기계들이 인간을 노린다? 이런 쓰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굶주린 상어가 토네이도를 타고 육지에 올라와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었다.
“노릴 거면 진작에 노렸겠지. 움직임을 보니까 인근 해역을 지배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 주변에 배가 침몰했다는 소문 같은 건 없었잖아.”
“……그래, 그러고 보면 결계 같은 게 있었지?”
다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베로니카도 그제서야 떠오른 듯 끄덕거렸다.
“해구 안이 이상하게 어두웠던 건 혹시 놈들을 가두는 결계가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구나.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놈들도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거야.”
“어? 우리는 잘 빠져나왔잖아?”
“프랑. 주인님과 우리는 〈공간이동〉으로만 그 안팎을 오갔잖느냐.”
“거기에 그 결계를 ‘들어갈 순 있되, 나갈 수는 없는’ 결계라고 가정하면 설명이 되네요.”
그리 말하면서 손바닥으로 파리지옥을 흉내내는 티르시였다.
“저곳, 아틀란티스를 발견하고 들어간 모험가가 있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알리지 않을 만 해요. 모험가는 업적을 독차지하려고 소문을 안 내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밖으로 못 나오면, 식량은?”
“결계가 통발 같은 개념이겠죠. 물고기나 해양 생물을 먹고 살았을지도 몰라요. 그럼 어인들이 저 수를 유지하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아틀란티스, 무척 컸어. 하지만 어인의 숫자는 도시에 비해 적어…… 그렇구나.”
앞뒤가 맞아들어가자 네페르티티는 새삼스럽단 듯 중얼거렸다.
‘물고기나 가끔씩 결계에 갇힌 해양 생물들만이 유일한 먹이다, 이건가.’
중세 지구의 동아시아에 인구가 뒤지게 많았던 건 쌀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식량을 자급할 수가 없다면 그 어인들은 매년이 흉작 같겠지.
아마 그게 이유다.
숫자를 유지할 순 있어도, 늘어나진 못한 이유.
“쓰벌,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네.”
“아니, 그냥 다행이 아닌데? 존나 희소식이지!”
다나가 얼굴을 활짝 펴며 외쳤다.
이 눈나가 몰래 보드카라도 빨았나. 뭐가 희소식이라는겨?
“저대로 해표면에 쭉 냅두면 식량을 못 구해서 굶어 뒤질지도 모르잖아! 결계 크기가 얼마날지는 몰라도, 낚시 같은 걸로 수천 명의 입을 먹일 순 없을 거 아냐!”
“뎃?”
듣고 보니까 그러네?
우리 가족은 살짝 보인 희망에 다나처럼 표정을 폈다.
그 어인들은 생명력이 강할 게 뻔했으니까 당장 굶어뒤지지는 않겠는데, 그래도 배를 굶고 나서도 그때 같은 힘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었다.
대충 몇 주일 정도만 섬 주변을 몰래 살피다가 쳐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보급을 끊는 건 병법의 기본이지. 〈공간이동〉으로 근처에 작은 배를 띄우든가, 아니면 돌고래 같은 놈들이랑 내가 깐부를 맺으면──”
신이 나서 말을 하던 나는 문득 유일하게 우리 가족 중에 안색이 새파란 소녀를 발견하고 눈알을 깜빡거렸다. 또 왜 그래, 진짜. 불길하게.
“……라리루라? 너 안색이 왜 그래?”
“……저기요, 선배.”
우리 막내님은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듯한 무표정으로 말했다.
얘가 이렇게 무표정한 건 오랜만이다.
“저희, 암무나 호의 갑판에다가 〈공간이동〉용 마법진을 그려두지 않았어요?”
“……………………………….”
시발, 그러네.
베로니카가 나를 아틀란티스로 보낼 때랑, 우리 가족이 저택으로 돌아올 때 썼던 마법진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투창에 부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그걸 타고 어디로 넘어갈 수는 없다.
왜냐고? 그 마법진과 연결된 마법진이 없잖은가.
그건 베로니카의 마법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베로니카처럼 〈공간이동〉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좆도 무쓸모다. 그림의 떡인 것이지.
‘근데 혹시 어인들에게 마법의 지식이 있다면?’
놈들이 마법진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해버리면?
불가능하다곤 말할 수 없다.
베로니카 본인도 신마 슬레이프니르의 마법진을 연구해서 지금의 〈공간이동〉 마법을 손에 넣은 입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가능해. 마법진을 해석할 지식만 있으면.’
아틀란티스의 기술력은 현대 이세계보다 낫다.
어인들의 높은 지능은 이미 수차례 확인했다.
어인들이 그 이동식 아일랜드의 기술을 습득할 수만 있다면, 이 가정은 IF가 아니게 될 것이었다.
“……싸워야겠구나.”
거기까지 이해한 순간, 베로니카는 조금 전과는 180도 의견을 바꾸었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태다. 사적인 이유를 빼 놓고 보더라도.”
“동감이야.”
우리 가족들은 남일로 치부하지 않고 눈빛으로 결심을 다졌다.
방사능 폐기물은 뚜껑을 덮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우리더러 이런 사태를 나 몰라라 하라고? 그럼 바다에 방사능 쥬스를 뿌려놓고 ‘모르는 일인데스 데프프’ 거리다가 방사능 쓰나미를 맞는 병신들과 다를 게 없는걸?
티르시는 입을 가리며 침음했다.
“확실한 점은 하나에요. 지금 필요한 건 숫자지, 개인의 강함이 아니란 거죠.”
우리 가족이 일기당천을 넘어서 만부부당의 전투원이라고 치자.
하지만 상대도 일당백의 몬스터가 수천이다.
만부부당 VS 일당백.
10000 VS 100. 교환비로는 1대 100이다.
‘따갚되의 정신으로 발퀴리에의 마나를 탕진시킬 기세로 투여할까?’
그러면 숫자는 ([email protected]) x 100 VS 수천이다.
2000대 수천.
‘애미 씹, 전혀 모자라네.’
적의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고 쳐도, 이래서는 적 어인들이 전부 뒤질 무렵에는 우리 아내들도 몇 명 정도 픽 죽어버릴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저 계산식 자체도 잼민이가 메이플 DPS 계산하듯 현실성이 없었다.
이런 대가리 깨진 교환비로는 얘기가 안 된다.
‘더 많은 아군이 필요해.’
우리 가족을 대신해서 막 굴려도 되는 병사.
아니면 범위공격이 가능한 마법사가 말이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일어섰다.
“……최대한 골렘을 증산시켜 볼게. 〈아공간〉 마법을 쓰면 나르메르-나일 쪽에 보냈던 놈들도 옮겨올 수 있어. 투자할 거면 아끼지 말아야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1대 1 비율로만 움직여줘도 땡큐였다.
‘니 무슨 전쟁하려고 그렇게 골렘을 모으냐?’며 의심받게 생겼구만.
시발, 좆 같은 내 인생.
─부르르!
그때였다. 브류나크가 자길 봐 달라는 듯 짧게 떨린 것은 말이다.
스멀….
팔찌에서 나온 어둠이 해골 모양으로 뭉쳤다.
어둠과 음의 마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호불호를 빼 놓고 봐도, 벼락치기 흑마법만 믿는 건 너무 무모해.”
나는 일전에 에퀴녹스의 과거를 보았다.
거기다가 싸우면서 에퀴녹스의 흑마법을 오딘의 눈을 켠 상태에서─그것도 신의 힘을 곁들여서─ 봤던 전적도 있었다.
에퀴녹스 급은 아니겠는데, 나도 흑마법을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블랙 매지션 노르드.
에퀴녹스랑 레티티아를 처죽였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보단 강해지지 않을까. 해치운 어인들을 흑마법으로 되살려서 고기 방패로 쓴다면 도움은 될지도 몰랐다.
‘내 어둠 계열 마법의 적성이면 부작용도 커버 가능할 거고.’
또, 지금은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안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벼락치기 흑마법으론 한계가 있지.’
나는 제대로 흑마법을 배운 적이 없고, 뭣보다 흑마법에 제대로 된 이수과정이란 개념이 있는지조차도 의문이지 않은가. 그래서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몽글.
그러자 브류나크는 마나의 형상을 바꿨다.
검은색의 해골 바가지에서, 황금색의 열쇠로.
“……아니 씹. 잠깐만?”
─저…… 구도자 님?
황금색 열쇠처럼 변한 마나를 보며 머저리처럼 중얼거리던 나는 머리를 파고드는 예의 바른 텔레파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웬걸, 걱정으로 가득한 똘망똥망한 눈깔이 수십 쌍이네?
와우, 마굿간에 온 것 같군.
─그,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 게 맞습니까?
“……발생하긴 했죠.”
내가 긍정하자, 해주에 앞서 불러모았던 바이콘들은 눈을 깜빡이며 외쳤다.
─혹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구도자께서는 저희를 이끄시는 자이지, 저희 일족의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예전에 구도자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님의 기억을 찾아냈노라고! 저희에게 내린 저주는 저희를 파멸에서 구해 주시려던 아스가르드의 자비였노라고!
─그렇다면 그 자비를 떨쳐내기에 앞서서, 저희 일족 역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룸에 어떤 망설임이 있을까요!
─저희도 후손에게 그저 구원받았을 뿐인 몸이 아니었노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번에 심념을 연결해두길 잘했네. 안 그랬으면 히힝히힝 소리로 분위기 다 깼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심상세계에 있을 황금 열쇠의 복사본이랑, 내 앞에 도열한 수십 마리의 바이콘들을 번갈아 보았다.
…홱!!
재빠르게 돌아보자, 눈이 동그래진 베로니카와 왜 쳐다보느냐는 듯 고개를 모로 꼬는 처녀 마망 네페르티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이콘. 룬 마법.
처녀 알레르기. 임시적인 해주법.
발퀴리에가 가진, 영혼을 수확하는 능력.
수확한 영혼을 병사로 삼는 프레이야의 신좌.
“……오호라.”
그리고 나서야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이거면 시도해 볼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