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66화 (665/1,009)

60마리.

내가 공지한 해주 의식에 자원한 바이콘의 숫자였다. 절대 치킨 집에서 새 기름으로 갈아야 하는 통닭의 숫자가 아니니까 오해 말길 바란다.

─오셨군요.

─저희는 언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군마처럼 늠름한 말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싸움에 뛰어들게 될 거란 얘기를 듣고도 자원할 만큼 용맹한 놈들이어서일까. 망아지 수준이었던 베로니카에 비하면 뿔도 덩치가 남달랐다.

그 똘망똘망한 눈빛에 살짝 부담이 되면서도, 내 입은 연설에 익숙해진 웅변가처럼 당당했다.

【다들 이렇게 모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작용도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해주법이라든가, 실패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모였냐든가 하는 촌스러운 얘기는 필요 없었다.

다들 사정을 알고, 그러고도 용기를 내 준 바이콘들이다.

당대에 바이콘이 얼마나 있는지 듣진 않았지만, 멸종위기종 딱지가 붙어도 빡칠지언정 부정을 못 할 종족이 이만큼 모여준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해줄 말은 하나 뿐이었다.

【시작합시다. 여러분의 손으로 지겨운 저주를 끝낼 때가 온 듯 하니까요.】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히히힝─!! 우렁찬 말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자, 저택 천장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도 사람처럼 생긴 거인이다.

【역시 젊은 것들은 그러는 편이 보기 좋구나. 세상 다 산 것처럼 굴더니.】

느긋하게 움직이는 여성형 거인은 전대 예지자, 그리고 베로니카의 스승인 아델라이데였다. 우리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젖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다음 대를 키우는 일은 괜찮습니까?】

【위험성은 숙지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도 늙은 목숨이 아깝다고 기약이 없는 책무를 어린아이에게 짊어지게 할 만큼 노망이 나진 않았습니다.】

주름살도 없는 미녀는 사람 허리보다 굵은 목을 기울이며 쿡쿡 거렸다. 대체 저 얼굴의 어디가 노인이냐고 묻고 싶어지는군.

아무튼 자기들의 의사로 모인 거라면 됐다.

각오하고 모인 이들에게 거듭 주의하는 건 자칫 그들의 결의와 실력에 대한 불신으로 보일 것이다. 따로 반전주의 시위를 하러 온 것도 아니었고.

아델라이데는 고개를 돌리며 일족에게 말했다.

【지금도 보다시피, 나와 구도자님에게 성은을 받은 당대의 예지자는 변이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이 구원을 공고한 것으로 만들 각오는 되었나.】

─물론입니다!!

【뱃심이 좋구나. 패기가 넘치는 수컷은 멋지지. 다들 순서대로 줄을 서도록.】

다그닥닥닥─!! 소란스럽게 움직인 바이콘들이 내 정면에 일렬로 섰다. 가장 선두에 있는 녀석은 사람 머리통도 씹어먹을 것처럼 생겼다.

─구도자시여! 해주의 의식이란 어떤 것입니까?

기대에 찬 눈망울을 번쩍거리면서 묻는 바이콘.

【흠.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죠.】

암무나 호의 퍼레이드를 본 주민들보다 훨씬 더 충성스러운 눈빛이 솔직히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손짓했다.

“네페르티티. 이리로.”

“응? 응.”

백치 소녀처럼 앉아서 육포를 우물거리던 네페르티티는 입에 있던 걸 꿀꺽 삼켰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녀. 다른 종족이 봐도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미인인데도 바이콘들은 집채만한 공룡이 다가오는 것처럼 단체로 흠칫거렸다.

숫자가 많으니까 살짝만 움직여도 눈에 띄는군. 보고 있으니까 좀 재밌다.

─구, 구도자님? 그쪽 분은?

“응? 아, 이 분이 누구냐고요?”

중노동에 앞서서 물을 마시고 있던 나는 적당히 되물었는데, 그때 내 대답에서 바이콘들의 질문을 예상한 네페르티티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 사람의 아내. 잘 부탁해.”

“푸웁!”

존나 뭔 3류 코미디 영화처럼 물을 뿜어버렸다.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아무도 없는 쪽에 뿜어낸 나를 네페르티티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야?”

“……아뇨, 아니긴요. 맞습니다.”

내 비밀을 살짝 설명받은 네페르티티는 만족한 것처럼 수긍했다.

쓰벌, 모양 빠지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유부녀(성경험 없음)의 등장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있는 바이콘들에게 선언했다.

【오늘 이 자리를 밝혀주실 간호사 네페르티티 양입니다. 인사들 하시죠.】

─가, 간호사라뇨?

【해주 의식의 도우미라는 뜻입니다.】

─착! 가죽 장갑을 끼는 나.

암수 비율이 2:8 정도는 될 듯 한데, 수컷이랑 부대끼는 취미는 없거든. 예의 상 등에 남는 모포 한 장씩 걸쳐줄 테니까 후딱후딱 끝내자고.

【지금부터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합니다.】

처녀면역과민반응 환자가 무려 60명이라.

날뛰는 환자를 한팔로 억눌러줄 간호사가 있길 천만다행이었다.

***

“그러고 보면, 네페르티티. 저희 사정을 듣고서 놀라지는 않았나요?”

시술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는 랜턴을 들고 복도를 걷는 네페르티티에게 물었다. 3주가 지났지만 저택의 모든 복도의 랜턴에다 기름을 채워넣지는 않았기에 밤에는 랜턴이 필요했다.

앞을 걸으면서 힐끔 돌아보는 그녀는 무슨 얘기냐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뒤늦게 내 말의 뜻을 눈치챈 것처럼 대답했다.

“그다지.”

진짜로 딱히 놀라지 않은 듯한 네페르티티였다.

대단하네. 티르시 같은 경우는 오딘의 후계자와 바이콘 신족의 얘기만 해도 몇십 분 가량의 쉬는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말이다.

“흐음. 역시 많은 수라장을 뚫고 나온 분이라서 그런가? 냉정을 되찾는 속도가 대단하시네요.”

“그건 틀려.”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부인하는 네페르티티. 거 사람 무안하게시리.

네페르티티는 랜턴을 까딱이며 말했다.

“……바이츠니아에서.”

“넹?”

“바이츠니아에서, 너는 그 나라가 익숙한 듯이 행동하지 않았었어. 우리처럼 그 문화권에 처음 온 사람처럼…… 방문객처럼. 그건 고향에 돌아간 사람이 보이는 반응이 아냐.”

아, 그랬군.

하긴. 숨기기엔 애벌레 튀김이 너무 강렬했었지. 내가 그 자리에서 벌레를 우걱우걱 씹어먹었으면 네페르티티는 더 싫어했을 것 같긴 한데.

“……으음. 새삼 죄송하네요. 제 고향에 가는 줄 알고 기뻐하셨었는데.”

“응. 상처 받았어. 그러니까 계속 미안해 해.”

네페르티티는 작게 웃었다. 브류나크와의 이별 이후로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였다.

“네가 미안해하는 동안, 나는 쭉 용서해 줄게.”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에 뺨을 긁었다.

다시 느끼는 거였는데, 나는 이런 꽉 찬 직구에 약했다. 정작 아내들한테는 느끼하다 못해 1달 쯤 뒤에 누가 흉내내면 발작할 정도다.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그래. 저렇게 프로포즈 멘트 같은 걸 흉내내면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아니 쓰벌. 왈랄랄라야? 너 그거 하지 말기로 약속하지 않았니?”

꺾이는 복도에서 음습하게 랜턴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라리루라였다. 촐싹거리는 말투만 들어도 모를 수가 없지.

요 꼬맹이가 까부네. 오래간만에 참교육 좀 해 줄까 했는데, 꼴마초는 침대 밖에서는 감히 아내님한테 손찌검을 할 수 없는 슬픈 생물이었다.

보물 2호인 오래된 랜턴을 든 막내 아내님께선 입을 가리며 킥킥댔다.

“와~ 선배가 또 미녀만 골라서 꼬시고 있어~. 이제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만큼이나 안심감마저 느껴지는 광경이네요~.”

“꼬시는 거 아니야. 나는 다 넘어갔어.”

“과연♡! 벗겨지길 기다리고 계시는 도마 위의 생선이셨군요! 현직 매운탕 4호로써 응원할게요!”

“네페르티티. 저희 마누라의 중상모략에 괜스레 장작 던져주지 마세요. 라리루라. 점혈해서 천장에 굴비처럼 매달아버린다.”

라리루라의 양쪽 뺨을 살짝 꼬집어주자 귀여운 후배님께서는 뭐가 좋은지 헤벌쭉 웃었다.

“아핫♡! 네페르티티 언니~. 선배가 이상한 걸 가르치려고 해요~.”

“묶어서 택배에 넣고 장모님한테 보낼 거야.”

“단장님한텐 청첩장 돌리러 왔다고 할게요!”

“좋아. 내가 진 걸로 치자.”

“그럼 청첩장만 보낼게요?”

“살려줘 시발.”

알았어. 되도록 빨리 금방 준비할게.

근데 텀을 안 두면 무슨 밀린 업무 처리하는 것 같잖니. 이해 좀 해 줘.

나는 배에 안겨붙는 라리루라를 쓰다듬어주면서 네페르티티에게 말했다.

“날뛰는 바이콘들 말리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들어가서 쉬세요.”

“……이상한 거 가르치러 가?”

“아니거든요.”

이미 요녀석은 자격증 다 따고 하산해도 된다고.

19살 짜리한테 펠라를 가르치는 게 맞냐 하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

“그래.”

네페르티티는 알겠다는 듯 물러났다. 나는 다시 멋쩍은 기분에 공연한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아, 가기 전에 이거 가져가셔서 베개맡에 두고 자세요.”

“……부적?”

“제 꿈에 들어올 수 있는 부적입니다.”

요정왕국에서 이미 한 번 내 꿈에 와 본 데다, 브류나크의 얘기도 들은 네페르티티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부적을 소중하게 가져갔다.

“……알았어. 잘 자.”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고마워요.”

“됐어. 네 비밀 얘기도 재밌었으니까.”

그녀는 옷을 뒤적거리며 작은 조각상을 꺼냈다. 오빠의 유품인 도마뱀 조각상이었다.

“다음에는 너한테도 들려줄게.”

“네, 부디.”

일부러 미루고 있던 일인데, 네페르티티도 우리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잡은 모양이었다. 표정도 점점 생동감이 있어지니까 좋은 증상이다.

평소 표정은 여전히 멍하고 무표정하지만, 이젠 그것도 매력으로 보인다.

나도 콩깍지가 씌이고 있는가 보다.

“선배! 방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그때 팔짱을 끼며 라리루라가 말했다. 적당하긴 하군. 볼가 2~3호의 송수신은 베로니카가 해 줄 테고, 정찰 쪽도 작전 계획은 확정해놨다.

나는 깜찍한 후배님한테서 랜턴을 받아들었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랬으니까 조심히 다뤄야겠지만, 라리루라의 방은 이 근처니까 걱정할 것 없었다.

“그래, 네 방으로 가자.”

“……후흥. 달밤의 밀회인가요~?”

“프랑이나 다나도 한가할 텐데, 같이 부를까?”

“아뇨아뇨~. 그러실 것 없는데요? 〈꼭두극〉도 가르쳐드릴 테니까, 제가 기절해버려도 그 사이에 마음껏 으쌰으쌰 해버리셔도 된답니다?”

“네 남편 장모님한테 뚝배기 깨질 일 있냐.”

농담을 주고받으며 방까지 갔다.

평소보다 은근히 수위가 높은 농담은 긴장감의 증거일까. 이성과 살결을 섞는 것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가라앉히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게 영화였으면 중요한 싸움 앞에 10초 정도 배드씬의 암시가 들어가겠지. 하드보일드하군.

“에헤헤.”

라리루라는 방문을 잠그자마자 입술을 포갰다.

평소에는 워낙 잔망스러워서 잊기 십상이지만, 이 녀석도 연애경험이라곤 없었지. 무드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풋풋한 애정을 드러내는 게 살짝 쑥맥 느낌이라 나쁘지 않다.

“쪽…♡”

이 음탕한 키스를 풋풋하다고 하면 바이콘들도 웃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애정표시 단계에서 손깍지나 팔짱 바로 다음이 섹스라니. 멀쩡한 중간단계를 모르면서도 그게 이상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라리루라의 행태는 어딘지 야릇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야한 사고가 순전히 내 의지와 색으로만 칠해졌다는 점이 수컷의 못난 독점욕을 떠받들어줬다. 바이콘의 구세주가 아니라 유니콘 우두머리 같은 사고방식이긴 한데.

‘음.’

내 아랫배에서 마나가 꿈들댔다.

생각을 멈추고 집중했지만 싫은 느낌은 아니다.

몹시 익숙한 기운이 몸을 헤엄치고, 내 마나를 유혹해서 데려가는 느낌.

탄력 있는 엉덩이며 가슴으로 가고 싶어 하는 손으로 라리루라의 뒷목과 허리를 받쳤다. 야릇하게 입술을 핥고 입을 뗐다.

“라리루라.”

“지금은 선배만의 프리실라랍니다?”

“……그래, 프리실라.”

나는 라리루라의 본명을 부르면서 강아지 잡듯 그녀의 겨드랑이를 받쳤다.

“남편 마나 몰래 빨아먹기 있냐?”

“……에헤. 들켰어요?”

익살맞게 혀를 빼무는 라리루라였다.

베로니카와 티르시가 개발해 놓고 정작 그녀들 본인은 못 쓰던 내공 쪽쪽 심법이다.

아내들한테 공유했지만 오늘날까지 해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음란 방중술.

그걸 라리루라가 처음으로 해낸 것이었다. 내심 예상했던 바이긴 하나 이 습득 스피드는 놀랄 노 자였다. 생각보다 빨랐으니까.

내 목에 손을 감은 라리루라가 사랑스럽게 칭얼거렸다.

“그치만~ 티르시 언니랑 선배 자지를 치료해줄 때도 그렇고, 선배 아내들 중에서 저만 마나량이 엄청 부족하잖아요. 당연히 열심히 노력했죠.”

이유가 예전부터 있었던 셈일까.

하긴, 이러니저러니 해도 성장할 기회가 있었던 다른 아내들에 비해서 라리루라는 장비를 강화할 뿐이지 본인의 스탯 성장은 두드러지지 않았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상관은 없는데 허락하고 빨아먹으렴. 키스로는 별로 효율도 없는 것 같고.”

“네에~.”

순진무구하게 대답한 라리루라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선배. 불쌍한 프리실라한테 실컷 정액 기부해 주세요♡”

아니 씹, 그런 남 듣기 쪽팔린 소릴 하라는 게 아니었는데.

듣는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나는 통탄하면서 넥타이를 벗어던졌다. ─꺄르륵. 소녀처럼 웃음을 터트린 라리루라가 침대에 쓰러지며 꺅꺅댔다.

오늘의 극비 리뷰.

‘음양합일 드레인 뷰지. 별점 5개.’

정액이랑 마나가 동시에 빨리면 장난 아니더라. 장차 우리 후배님이 내 마나를 나눠받으며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군 그래.

야한 일에 재능이 있는 아내가 있어서 햄보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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