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69화 (668/1,009)

한국 남자라면 대부분 증오할 강한 친구 육군.

파릇파릇한 20대의 10%를 쪽쪽 빨아먹는 망할 징병제란 병사의 숫자를 유지하고자 강행하는 제도였다. 휴전 상태에서는 병사보단 싼맛에 굴려먹는 노예를 얻는 파밍법이긴 한데, 뭐 어쨌든.

좋게 보면 아직 롸벗이 노동자의 일을 빼앗는 자동화의 시대가 오지 않았다는 건데, 나쁘게 보면 21세기에도 병사는 꼭 필요하다는 뜻.

무기와 기술이 발달해도 숫자 차이는 싸움에서 무시 못할 요인이다.

콰과과광─!!

그게 저 일방적인 유린극이 이뤄지게 된 배경이었을까. 내심 불안한 기분이 없지는 않았던 나는 압권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전투에 혀를 내둘렀다.

【동형(同形) 자매기로 판단. 배제합니다.】

【전술기록 ᚺ부터 ᚦ까지를 재현.】

─푹푹!!

다나 측의 발퀴리에들이 멋드러진 합동공격으로 적병의 심장을 관통했다.

─챙!

적 발퀴리에가 공격을 가한 발퀴리에 A. 그녀를 노리고 대쉬하는 새로운 적병의 기습을 옆에 있던 발퀴리에 B가 즉시 블로킹했다.

그러면 창을 놓은 발퀴리에 A는 새롭게 무기를 뽑아서 공격.

당연히 적병은 막거나 피하고, 그새 이동한 발퀴리에 B에게 양옆을 둘러싸인다.

그 뒤는 설명하지 않아도 일목요연했다.

─푸푸푹!!

발퀴리에들의 전투기술은 다들 오십보 백보.

그녀들은 적 1마리에게 둘 씩 붙어선 기계적인 정확함으로 적병을 도살해갔다.

“두 방향을 호각의 실력자에게 선점당해서 처맞으면 달인이고 염병이고 장사 없지.”

무술의 상성이나 차이가 있다면 비벼볼 수라도 있지, 저들은 같은 유파 수준을 넘어서 그냥 복붙 수준의 【게르튀르】 원툴!

2대 1로 붙으면 적병에게 승산은 없었다.

“하지만 룬 마법이 개입되면 얘기가 다르다.”

베로니카는 지켜보면서 초조한 듯 입술을 살짝 훔쳤다.

맞는 말이다. 베로니카가 자주 보여줬던 것처럼 룬 마법은 조합하기 나름으로 천차만별로 변한다. 예측 불허의 공격은 변수를 낳는다.

하지만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화르르르륵─!!

아니나가 다를까, 대응하는 프레이야의 발퀴리에들은 룬 마법을 쏘아냈다.

육탄전투에서는 밀린다는 걸 인지한 걸까. 손을 뻗는 동작 하나까지 합이 척척 맞는 움직임이다. 어떤 강대국의 기사단도 저렇게 일사분란한 협동공격은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단, 우리 측 발퀴리에들은 그들 이상이었다.

【전술기록유형 ᚦ-ᚠᚷᛖ를 실행.】

【──ᚦ(Thurisaz), ᛁ(Isaz), ᛈ(Perth).】

─우우웅!

마법을 막는 룬이 강화되고 결계처럼 펼쳐졌다.

적병이 사용한 마나의 30%도 되지 않는 마나로 공격을 확실하게 틀어막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남은 70%의 힘을 아군이 공격할 여유로 이었다는 뜻이다.

【근접전 재개.】

쏜살같이 날아든 발퀴리에들이 적 발퀴리에를 1마리 낚아채고는 사방에서 꿰뚫었다. 아무리 강한 기사여도 동급의 기사들이 7개나 되는 창을 꽂자 맥없이 쓰러졌다.

“……한 번에 영핵을 뚫었어.”

관찰하던 네페르티티가 중얼거렸다. 나는 뭐라 대답하지 않고 끄덕거렸다.

“까아악─!!”

그때 브류나크가 날개를 펼치며 흑마법 번개를 흩뿌렸다.

내가 오딘의 눈으로 분석해둔 〈임모르탈리스〉 놈들의 흑마법이 발퀴리에들에게 쏟아졌다. 결코 일격필살의 출력은 아니었지만 마냥 맞아줄 만큼 만만하지도 않다.

그럼 어떡한다? 당연히 방패나 룬 마법을 써서 막아야 한다.

【강행돌파.】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방어에 신경을 낭비하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이며 룬 마법이 허우적대던 발퀴리에를 반짝거리는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우직!

척, 척…!!

한 마리를 해치우면, 0.1초의 유예도 없이 다시 앞으로.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적의 머리통을 잡아뽑아서 던지고 전진 또 전진이다.

터미네이터 부대, 아니면 자동사냥을 2배속우로 돌려둔 폰겜 캐릭터들 같은 철두철미함이다. 워매 쓰벌, 같은 편이라 다행이야.

─사각, 사각!

오죽하면 지휘하는 다나도 자기 몸을 지키고자 할 때를 제외하면 싸울 필요도 없을 지경. 탱커를 믿고 버프에 집중하는 모습은 힐러의 귀감이다.

처음에는 우려를 표하던 베로니카도 그 압승에 가까운 결과를 보며 입을 벌렸다.

“어째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냐? 아, 아니, 좋은 일이긴 하다만……”

“음, 혹시 보드게임 해 봤어?”

나는 그 질문에 생뚱맞은 대답을 돌려줬다.

하지만 그 비유가 해답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카드놀이처럼 운이 개입된다면 모를까, 선후공 빼고는 오직 실력만으로 정해지는 게임은 수 하나 잘못 두기만 해도 패배가 지척으로 다가오지.”

그래서 나는 체스를 싫어한다.

둘 줄 모르는 애들이랑은 전혀 승부가 안 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진짜로 손도 발도 못 쓴 채로 두 눈 훤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이거든.

씌바, 진짜로 호각 느낌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상대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운빨을 탓하면서 웃어넘길 수도 없어서 우정이 파괴되기도 쉽고.

“발퀴리에끼리의 싸움도 보드 게임이랑 굉장히 비슷하지.”

“전법두, 생각하는 것두 거의 비슷할 테니까?”

“응. 발퀴리에는 습득한 정보를 같은 기체끼리 공유하고, 또 그 정보를 기반으로 행동하거든.”

발퀴리에가 태어날 때에 습득하고 있는 건 3개.

룬 문자와 마법, 그리고 신창 【게르튀르】다.

‘여기서 추가로 습득한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지.’

물론 정보 공유는 실시간은 아니다. 타임 랙이 꽤 있다.

그래도 시간만 주어지면 1마리가 딥러닝한 지식 전체는 다른 자매기한테도 전해진다.

──한 번 싸워본 적에게 맞서는 전술도 말이다.

‘내가 레티티아한테서 빼앗은 발퀴리에들은 그 99%가 신형이다.’

명계에서의 전투에서 하도 죽고 죽이다 보니까 처음 빼앗았던 발퀴리에들 중에 생존한 개체라곤 없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우리 발퀴리에들이 정예신병인 짬찌이건, 혹은 백전연마의 특수부대 출신 중사이건 상관없다.

프레이야의 발퀴리에들도, 오직 한 가지 점에선 저 짬찌들한테 접어줘야 하거든.

“……아!”

나랑 같이 명계에서 싸웠던 티르시가 깨달은 듯 기함했다.

“그, 그랬죠! 우리 측의 발퀴리에들은 적들과는 달리, ‘같은 발퀴리에들과 전투한’ 경험이 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치열하고, 많이!”

“넹. 맞워용.”

나는 픽 웃었다. 자명한 QnA다.

레티티아랑 싸울 때 죽고 죽이던 발퀴리에들이 대체 몇 마리였을까.

나도 제대로 파악지는 못했는데, 그때는 기본 수십 마리씩 격돌시키며 계속 보충해줬다. 아마 적군 아군 합쳐서 100마리는 소멸했을 것이다.

무려 100마리 만큼의 전투 패턴과 기록!

축적된 ‘이기는 전법’과 ‘지는 전법’은 지금 저 발퀴리에들한테도 전해졌다.

사람이 후손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프레이야의 발퀴리에라고 해도 같은 기체끼리 죽이고 죽일 일이 얼마나 있었겠어.’

만약 있었다고 쳐도, 지금 튀어나온 녀석들이 그 백전노장이 아닐 가능성도 컸고 말이다.

나는 희미한 불안마저 떨치고 팔짱을 꼈다.

“전투력이 동일하다면 야전에선 전술과 숫자가 승패를 가르죠.”

그런데 어머나 시발, 우리 발퀴리에들은 동족상잔의 프로페셔널리스트에 숫자도 적의 2배네?

자동사냥 폰겜을 즐겨하는 사람은 알기 쉬울까. 이건 플레이어가 조합만 설정해두고 전투 중에는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봐야 하는 형식의 PVP다.

그런데 나를 공격하는 상대가 내 계정보다 캐릭터는 2배 더 많네?

게다가 병신 같은 똥 스킬은 절대 안 쓰고 핵 쓴 것마냥 딱코딱뎀으로 때리고?

나였으면 쓰벌 그 자리에서 그 겜 접는다.

【적성존재의 마나 발현형태, 게르튀르의 투창 형태로 판단. 적중확률 93%.】

【전술기록유형 ᚺ-ᛒᛖᚱ를 실행. 요격합니다.】

─슉! 슈슉! 슈슈슉!

그렇기에 우리 발퀴리에들은 ‘꼬우면 아시죠?’의 마음으로 적의 대가리 뚜껑을 따버렸다.

CPU 성능이 삐까 뜨면 정보를 가져올 자료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

똑같이 알파고끼리 바둑을 두면 기보를 모르는 쪽과 아는 쪽의 차이는 뻔하지 않은가? 생물처럼 감정의 요동이 없기에 차이는 더욱 극명했다.

“게다가 어디 그것 뿐이야? 버프도 있지.”

능력치가 같다는 것도 사실 입 발린 소리다.

우리 애들한테는 다나의 마법으로 버프가 걸려 있거든.

‘강화 대상이 강할수록 효과가 높아지는 곱연산 버프가 말이야.’

솔직히 저 버프까지는 나도 모르던 요소였는데, 당연히 마이너스 요인은 아니었다.

【──잔존 적성존재, 1체.】

그래서였을까.

프레이야의 분신을 뺀 모든 적을 토벌했을 때, 우리 측의 상처라곤 발퀴리에가 입은 칼빵 몇 갤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화아악─!

그마저도 다나가 치유마법을 칼처럼 뭉쳐서 날려주자 순식간에 고쳐졌고 말이다.

군말 하나 나오지 않는 압승이었다.

“비겁한 방법이라 미안하네.”

방심없이 발퀴리에들을 치료한 다나는 우두커니 선 프레이야의 분신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나도 댁처럼 사람을 부려먹고 욕 먹는 직업이거든. 염치가 없어서 미안하지만, 여긴 사람 한 명 살리는 기분으로 양보해 줬으면 좋겠네.”

윙크하듯 한쪽 눈을 감은 다나가 작게 웃었다.

“명색이 여신이잖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레티티아보다는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데.”

프레이야의 분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걸까? 나는 어떤 의미로 발퀴리에보다 더 위협적일지도 모를 분신을 예의주시했다.

‘전투력이 뛰어나진 않았다지만, 신은 신이지.’

누가 아는가? 비교대상이 토르랑 아이언맨이라 그렇지, 프레이야도 블랙 위도우 정도는 될지? 몸 쓰는 능력은 활 없는 언럭키 호크아이인 다나한텐 과분한 적일 수도 있다.

여차하면 얼른 뛰어들어서 다나만이라도 구해낼 생각으로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아바마마의 신좌는 노리지 마.】

누가 귀에 대고 숨을 불어넣은 줄 알았다.

자애로운 손길이 내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안고 보듬는 듯한 착각! 눈앞이 아찔하게 물들며 햇볕 따스한 꽃밭에 드러누운 것만 같은 탈력감이 온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그게 저 분신의 미성이 가진 매력── 마력이란 사실을 나는 뒤늦게 눈치챘다.

【해신의 신좌는 지상의 존재에게는 과분해. 제 분수를 모르는 자에겐 천벌이 내리는 법이야.】

머리가 띵한 와중에도 얼른 오딘의 눈을 켰다.

‘자동재생 메시지?’

자아를 갖추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딘의 망령은 당연하고, 선지자의 분신보다 더 미력한 술식! 자신의 신좌를 계승할 사람에게 할 말을 몇 마디 남겼을 뿐인 메시지였다.

챠르륵……. 프레이야의 분신은 갑주를 벌리고 자기 목에서 목걸이를 벗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황금 목걸이였지만, 그 과정에 드러난 백옥 같은 목 선에 비하면 그냥 누리끼리한 물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목걸이가 바로 프레이야의 신물, 브리싱가멘(Brísingamen)이었다. 레티티아가 사용하는 걸 봤으니까 100% 확실하다.

【고결한 뜻을 품고 나아가렴. 내 성과 평원은 이제부터 네 거야.】

목걸이는 마나로 바뀌어서 다나에게 날아들었다.

발퀴리에는 위험으로 여긴 듯 블로킹했다. 단지 꿈속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목걸이는 그런 발퀴리에들의 몸을 통과해서는 다나에게 빨려들었다.

─몽글.

그걸 지켜보던 나는 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나의 영혼이랄 곳에서 그저 넓게 펼쳐지고만 있었던 재능이 황금색의 빛으로 차오르는 마나를. 다나의 혼이 신좌와 직통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세상의 명운을 짊어질 너에게, 올바른 신념과 운명의 축복이 있길.】

프레이야의 분신은 그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나가 신좌의 시험을 통과했던 것이다.

아마 언젠가 또 도전자가 나타날 때까지 프레이야의 분신은 신좌에서 모습을 감추는 걸까. 다나는 제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리고서 문으로 다가갔다.

…쿵!

끼이이이익…!

천공성의 문이 열리자, 그 내부에는 이상향처럼 아름다운 평원이 있었다.

같은 초원인데도 내 꿈속 기본 베이스랑은 천지차이다. 약간 자격지심.

“……내가 이런 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다나는 손바닥을 모았다. 빛이 모여들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하얀 불꽃 같은 게 태어났다. 아마 발퀴리에의 영혼일 것이었다.

조금 더 갈고 닦으면 새로운 발퀴리에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다. 다나는 빛을 평원으로 보내놓고서 헛웃음과 함께 윙크했다.

“내가 남자 하나는 잘 잡았네.”

─척, 척!! 발퀴리에들이 그런 다나를 떠받들듯 도열했다.

─짝짝짝짝짝!!!!

나는 3류 신파영화 따위보다 감동적인 광경에 두 눈에서 눈물을 뽑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인간 대학원생을 혹사하는 건 사악한 교수나 할 짓이다.

하지만 설마 그 윤리적인 문제를 로봇 메이드를 대학원생으로 취직 시켜주는 걸로 해결하다니? 울 눈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혹사시키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자 눈물을 금할 수가 없는 감동실화였다.

‘미스터 딕. 보고 계십니까?’

나는 천재 사이언티스트 필립 K. 딕를 기리며, 소울-빤쓰를 찢어발기듯 숨 죽여 울부짖었다.

‘당신이 꿈꾸던 세상이 찾아왔습니다.’

아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짝짝짝짝짝─!!! 나와 아내들의 박수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장하다, 강다나. 랩실을 네 손으로 지배해버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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