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76화 (675/1,009)

나는 여신 다나에게 꿀빠는 미래를 기원하고서 말했다.

“아틀란티스의 소식이라면 며칠쯤 전에 와이번 특급으로 보고 때렸는디요.”

“아, 예~. 길이 엇갈려서 바로 엊그제 받았죠. 읽고 나서 길다트랑 10초 정도 기절했었어.”

“공주님. 천것들은 그걸 졸았다고 부른답니다.”

“게거품도 뽀글뽀글 물었는데?”

“아하! 그건 침이에요. 졸다 보면 입에서 흐름.”

“제에길.”

쯧쯧. 다나만 못하시구만. 이래서야 신하들이랑 아가리 파이팅 하겠나.

내가 소고기를 우물거리자─물고기는 어인들이 생각나서 거절했다─ 엘리자베트는 표정을 상당히 진지한 것으로 바꾸었다. 가면을 바꿔끼는 것처럼 빠른 변화였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저 아틀란티스가 정말 차원이 다른 물건이라는 건 알지?”

“아무렴요. 군사적으로만 봐도 함대 이상인걸요.”

말해놓고 조금 틀렸다는 생각을 하는 나.

‘함대가 뭐야. 거의 언럭키 라퓨타지.’

우리가 〈공간이동〉을 동원해가며 똥꼬쇼를 한 이유가 다 있다.

정상적으로는 상륙할 수 없는 곳이라는 얘기는 앞서 했었지 않은가.

막말로 항해 속도만 봐도 배보다 빠른데 어떻게 따라잡을 건가?

좆빠지게 달라붙어도 해안선에서 마법을 쏴대면 접근하던 배는 침몰한다. 소총을 매고 자전거를 탄 보병이 탱크를 쫓아가는 게 더 안전할걸?

반격? 섬을 가라앉힐 화력을 가진 배가 있을까?

길다트는 휴스로이트의 향토요리─이 촌동네의 요리사들이 사력을 다한 것─에 만족한 듯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탄식하듯 말했다.

“공격할 때는 또 어떻고? 저 배가 그대로 해안 기지에 들이받는다니, 적병에게는 재앙이겠군.”

“항구도 필요 없지. 막말로 아무 대비도 할 수 없는 갯벌이나, 군사기지도 없는 해안에 다짜고짜 땅을 박고 병력을 내리는 것도 개껌인데.”

10만 단위의 병사를 내륙에 때려박을 수 있는 섬.

대체 그게 얼마나 큰 이점일까.

아무리 개쩌는 대형선도 항구가 없으면 정박할 수 없다. 활주로 없이 비행기만 있어도 무용지물인 것처럼 군문(軍門)의 상식이다.

그런데 아틀란티스는 그 상식에 온몸을 비틀며 뻐큐를 날리는 섬 아닌가.

‘전쟁의 패러다임을 아예 갈아엎는 것도 누워서 떡치기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미리 생각해뒀던 얘기를 몇 개 더 내뱉었다.

“반격하겠다고 아틀란티스에 올라탔는데, 섬이 육지에서 벗어나면? 졸지에 배수진을 켜고 죽으러 들어간 꼴이지. 적진에 보급 없이 쳐들어간 꼴이 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건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 희대의 전쟁병기야.”

길다트는 눈을 반개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길다트는 기사 출신.

그런 그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내가 엘리트 대갈통으로 대충 생각한 아틀란티스 운용법이 현실미가 있다는 거겠지.

‘아틀란티스에 군대랑 충분한 식량, 그리고 배 몇 척만 있어도 정복국가 하나 뚝딱이지.’

기동력은 화력을 갈음한다던가.

지구에서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전법이다.

키타이 인, 칭기즈 강이 이끄는 물 타입 몽골군.

바닷물에 젓갈이 돼서 농사는 못 짓지만, 만약 자급자족까지 됐으면 진짜 살벌했겠네.

“아틀란티스와 충분한 군사력이 있다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겠네. 고대문명 황금시대의 유물 중에서도 틀림없는 최상급이겠지.”

플래티넘 클래스 모험가, 엘리자베트 공주님이 인증 마크까지 붙여줬다.

판결: 아틀란티스는 에이션트 살인병기.

‘최상급의 고대유물이라. 거창도 하군.’

설마 그렇겠냐고 잡아뗄 수도 없으니까 곤란할 노릇이다.

‘아틀란티스 인이 이끄는 이 이동식 아일랜드가 고대문명 대전쟁에 참전했다면 당시에도 적국 몇 개 쯤은 너끈하게 멸망시켰을 거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저 섬과 견줄 만한 무력은 그 〈청동옥좌〉나, 네가 비호하는 아르마슈나스의 여식이 사용하던 〈강림〉 마법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군.”

그리 말하고 고개를 젓는 길다트.

엘리자베트도 포크를 깨작대다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티르시 양이나 네가 명계에서 보여준 힘을 제외해도, 너는 이미 일국 수준의 무력을 갖출 포텐셜을 얻은 거야. 딴나라 왕족들조차 좌시하기 힘들만큼.”

“……이 섬을 탈취하려는 자가 나오겠군요.”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당연한 추측이었다.

사람의 존엄이나 자존심보다 위에 있는 가치는 존재한다.

학교에 닌텐도를 가지고 온 초등학생은 언제나 도난을 걱정해야 하니까.

“암살, 독살은 아니다. 그런 진부한 수단은 최후의 수단으로나 쓰는 거니까.”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를 암살한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무모하니까! 노르드. 너는 맹독을 먹어도 설사나 며칠 하고 말지 않을까? 길다트는 그랬어!”

“설사 얘긴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습니다.”

길붕아…. 그런 과거가 있었구나….

‘아니, 맹독을 먹고 배탈로 끝난 거면 대단하긴 한데.’

그래도 말로 들으면 존나게 쪽팔린 사건 같다.

노로 바이러스라고 하면 그럴싸해도 똥독 오른 생굴을 먹다가 드러누웠다고 하면 좀 그렇잖슴. 거 공주님께서도 남편 분 체면을 좀 더 챙겨주십셔.

“근데 제가 뒤지면 아틀란티스는 애물단지가 될 걸요?”

“항해기능의 조종권한 얘기지? 그건 이미 오는 길에 소문을 퍼트려 놨으니까 걱정 마. 사실점검 정도는 할 테고, 당장은 문제 없을 거야.”

내가 즉석에서 생각할 만한 일은 대비해놓고 온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식기를 내려놓고 집중했다.

“공주님의 고견, 경청하겠습니다.”

“고견이랄 것도 없어. 유물은 주운 사람이 임자잖아? 그래도 이만한 물건엔 그 불문율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란 얘기지.”

“그렇겠죠. 제가 대비할 방법이 있을까요?”

“수도에선 국가의 소유물로 넘기라는 개소리가 나오는데, 이건 싹 무시해버려. 뇌를 망상에 절인 머저리들이거나 얼굴에 욕심이 그득그득한 귀족들이니까.”

워후. 아무리 사적인 공간이라지만 폭언 보게.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그녀는 사족을 붙였다.

“너희한테서 아틀란티스를 빼앗을 생각은 없어. 그러고 싶어도 힘들고. 왕권이 강해질 것 같으면 귀족들이 합심해서 저지하는 게 브리타니아의 전통이거든!”

“그건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응? 귀족들이 궁전 앞에다 침낭을 깔고 단체로 드러눕는 게 흔한 일이었어?”

“깝쳐서 죄송함미다.”

대단하다, 브리타니아!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국내의 좆 같은 정치판을 논하는 공주 부부였다. 이런 건 어느 세상의 어느 나라를 가던 똑같구만기래.

자국의 정치판이 제일 잘 보이고, 그만큼 병신 같이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가 당분간 여기서 ‘왜 남의 나라의 영토에 트집이야? 브리타니아랑 한 판 뜰래?’하고 귀찮게 구는 놈들을 세레브하게 협박해 주려고.”

“간단하면서도 왕족이 아니면 못할 대응이군요.”

“응. 왕족이 이렇게 나서면 상대도 도의적으로 시비 걸기도 힘들겠지?”

엘리자베트는 히죽대며 웃었다. 수학여행을 간 여고생이 베개싸움을 하던 중에 승기를 잡은 듯한 살벌한 미소였다.

이게 차기 여왕님이라니. 이 나라의 미래가 밝다 못해서 핵분열을 일으키겠군.

“이런 문제에 뾰족한 방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너라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유도 짐작이 갈 거라고 믿겠다.”

“어. 제 고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알지.”

독도의 경우만 생각해도 알 법하다.

전쟁의 원인은 99%가 이익 분쟁이니까.

‘그리고 땅덩어리는 이익 분쟁의 최고봉이고.’

건물주? 땅부자? 그놈들은 사천왕 중 최약체에 불과하지.

국가가 보여주는 영토 확장의 욕심에 비교하면 건물주의 월세는 새발의 피였다.

건물주가 세입자 방에서 금품을 훔쳐가고, 저항하는 세입자의 손발을 잘라내진 않잖아?

다른 나라도 우리를 도와주지는 않을 거고.

‘오히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겠다고 훼방부터 놓겠지.’

자기 배에는 못 들어가도, 남들이 아틀란티스를 꿀꺽하는 걸 보고 있으면 꼴받을 것이니까.

내가 다 이해한다는 붓다의 자세를 보여준 게 꽤 인상 깊었던 것일까. 엘리자베트는 어깨의 힘을 빼며 안심했다는 듯 팔을 벌렸다.

“새삼 네가 머리가 좋아서 다행이야. 혹시 네가 ‘욕심에 눈이 먼 공주가 날 속이려는 건가’라면서 의심했다간 어쩌지~ 하고 노심초사했었거든!”

“뭐,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해결을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정치는 참 귀찮네요.”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정치보단 유적이나 돌아다니는 게 더 속 편하지.”

차기 여왕으로서 심히 걱정되는 멘트를 내뱉는 엘리자베트였다.

“다른 나라가 전쟁을 불사하지 못하도록 명분을 내주지 말아야 해! 아바마마한테 여차할 경우에는 왕권을 대행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아왔다고!”

그래도 주먹을 움켜쥐며 부르짖자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

“감사한 일이군요. 권력이라는 의미에서는 저는 그만큼 높은 위치가 아니라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내가 법치를 좆까고 싸웠다간 명분이 상대한테 넘어갈 것이었다.

화장실 대기줄이 길다고 오늘 막 뽑은 새 차에 암모니아 농축액을 지려버리는 짓거리지.

좀 귀찮아도 이런 건 나 대신 개고생── 아니, 정쟁을 벌여줄 사람을 찾는 게 맞다.

정치판에 밝고, 왕인 아버지에게 신뢰까지 받는 공주님이다. 나는 옆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만 지켜보면서 믿고 맡기도록 하자.

─탁! 엘리자베트는 자기 팔뚝을 치며 말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저런 어처구니가 없는 섬을 얻어버린 이상, 너한테 영지를 주겠다는 약속도 흐지부지 될 것 같으니까!”

“아틀란티스만 제 앞으로 보내주셔도 그 약속은 잘 지켜주신 셈 아니겠습니까.

“그래!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너한테도 은혜를 갚을 찬스 아니겠어? 복잡한 문제는 나랑 우리가 데려온 문신들한테 맡겨버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세밀한 조정을 논의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혼식 준비로 바쁜데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만 한다니.

보통 귀족들은 다 이러고 사나? 아닐 것 같은데.

이게 다 좆찬대대 새끼들 때문이다. 그 씹놈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해도 됐음.

“아~ 아. 품행을 따질 건 없어서 좋은데, 이쪽 일도 꽤 골칫거리네. 긴 싸움이 되겠어.”

엘리자베트도 몇 시간 더 지나자 지친 듯 숨을 토했다.

그녀는 입술에다가 포크를 올리면서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어디 그럴싸한 명분 좀 없나? 영토분쟁은 결국 현지민들이 있는 쪽이 그나마 유리해지는 법이긴 한데 말이지. 네 얘기를 듣다 보면 현지인은 커녕 몬스터밖에 없다고 하고.”

“현지민이요?”

내가 묻자 엘리자베트는 눈을 깜빡거렸다.

“응. 그야 뭐, 다 쫓아내고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국가의 백업을 받으면서 ‘이 땅은 대대손손 우리의 정당한 영토다!’라고 주장한다면 명분 하나는 확실하잖아?”

“……흐음. 그거야 확실히.”

무심코 눈을 반개하며 턱을 쓰다듬는 나.

우리 아내들이 봤더라면 ‘이 새끼 또 이상한 생각한다’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봤겠는데, 이 공주님 부부에게 그걸 바랄 순 없겠지.

“그보다 있잖아. 슬슬 저 섬에 가게 된 계기도 좀 들려주지 않을래?”

이런 얘기를 좋아하는 걸까. 철딱서니 없는 공주님은 눈을 빛냈다.

“들려달라니, 뭘요?”

“당연히 모험담이지! 일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거야? 해구에 가라앉아 있었다며? 저런 곳에 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나한테도 좀 들려주라! 응?!”

“글쎄요. 장장 몇 시간은 걸릴 이야긴데요.”

“많이 바쁘면 어쩔 수 없는데, 우리도 뭘 알아야 도와주지! 안 그래, 길다트?”

“앞뒤 사정을 알아야 말을 맞출 때도 편하기는 하겠지.”

아주 척하면 척이었다. 능청스럽기는.

하지만 잘 된 일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좋죠. 그런데 공주님. 조금 전 얘기 말인데요.”

“응?”

“굳이 현지민이 아니어도, 아틀란티스의 정당한 소유권을 누가 가졌는지 증명하면 되죠? 기왕이면 저 섬과 역사적으로 엮인 사람들이 있으면 훨씬 더 좋고.”

“……뭐, 그렇지?”

왕족 입에서 확답 나왔고. 나는 서류를 뭉탱이 째로 꺼냈다.

“뭐야, 이게?”

엘리자베트는 숙련된 먹물쟁이답게 일단 받아든 뒤에 물었다.

뭐기는 뭐야. 나는 머리에 손가락으로 양뿔을 한 쌍 만들며 말했다.

“게르마니아 난민 후보요.”

알아들었으면 얼른 로얄-서명이나 써 갈기라고.

우리 여신님 주민등록증 만들어 줄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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