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훈련의 시간이 돌아왔다.
어인과의 전쟁이 끝났다. 운동 좀 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지롱. 일은 바쁘지만 1~2시간 정도 몸을 쓰고 나면 그날 하루 종일 머리가 잘 굴러간다고.
옳게 된 꼴마초에게는 흐르는 땀이야말로 윤활제인 것이지.
“……같이 해도 돼?”
“아, 그럴까요? 가볍게 대련이라도 해요.”
우연히 네페르티티랑 마주쳐서 의기투합했다.
─웅웅! 반갑게 떨리는 브류나크를 변신시켜서 날 없는 모드로 만들고, 대련 개시.
투콰과과과곽─!!!
─챙! 쩌저저정!!! 콰아아아앙!!!
물론 승부욕이 없는 전사가 달인이 되기란 힘든 일이기에, 하다 보니까 열이 올라서 꽤 진지하게 맞붙게 되었다. 어머 시발. 정원이 쑥대밭이 됐네?
네페르티티는 사춘기의 여드름 학대파 청소년들 뺨치게 곰보빵이 돼 버린 정원에서 눈을 돌렸다. 망했다 하는 기분이 반이고 책임회피가 반이다.
“……가벼운 대련?”
“……어, 피는 안 흘렀으니까 그런 걸로 칩시다.”
꼴마초 특) 여자가 상대여도 안 봐줌.
정원은, 음, 원래 방치된 곳이었으니 괜찮겠지. 리부트 전에 스토리를 좆창내는 온라인 게임 같은 거다. 창조에는 파괴가 따르는 것이야요.
그래서인지 영주관에 출근한 웨스턴이 놀라갖고 턱이 빠졌다.
“소,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르군요. 대단하십니다.”
“흐흐. 실력이 모자라서 부끄럽습니다.”
“그, 송구스럽습니다만, 겸양도 도가 지나치시면 오만보다 못한 법입니다.”
고건 고렇네. 내가 주의하겠다고 대답하자 그는 마음을 놓은 듯 말했다.
“그러나 이래선 영지의 경비대의 역할은 잡무가 되겠군요.”
“……경비대요?”
“예. 당연히 영주 대리님만의 경비대를 갖추실 필요가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병은 영주의 권력이니까요. 이전 영주님의 경비병들은 은퇴했거나 먹고 살 길을 떠나버렸고요.”
“앗, 아아……”
와! 일이 또 늘었어요!
좆 같았지만 맞는 말이어서 할 말도 없다. 나는 웨스턴을 떠나보내고 훈련을 마무리했다.
…척.
돌아가는 길에 은근슬쩍 달라붙는 네페르티티.
여전히 거리낌 없는 스킨십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슬쩍 어깨나 허리에 손을 대려 하면 고양이처럼 피해버리니까 남자로서 미칠 노릇이에요.
뭐, 목욕도 같이 했었으니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나는 멋쩍게 코를 훔쳤다.
“……나. 혹시, 냄새 나…?”
“넹?”
내가 코를 비벼댄 걸 ‘우욱씹, 냄새’라는 뜻으로 해석한 네페르티티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멈춰서는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아무튼 아침 훈련 끝.
그렇게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건 어때요! 얍♡!”
“으음. 내 눈에는 전부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확실하게 정해주시지 않으면 곤란해요~? 저는 바이콘 여러분의 공연 취향은 모른다구요~?”
“그렇기는 하다만…….”
저택 근처까지 왔더니 우연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성품 꼭두각시 10체와 서커스를 펼치는 우리 후배님과, 그걸 구경하며 박수를 치던 예비 신부 여신님을 발견.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앗, 선배♡!”
붕붕─! 라리루라가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꼭두각시들도 그 박자에 맞춰서 손을 흔드는 게 좀 웃겼다. 베로니카도 손을 까딱거렸다.
“아침부터 밖에서 뭐해?”
“잠깐 공연을 구상하는 중이었어요!”
“결혼식에서 공연을 해 주겠다더군. 다만 다른 바이콘들도 하객으로 올 테니, 공연의 반응이 애매해지지 않게 감상을 들려주고 있었느니라.”
아하, 그래서였구만.
문화 차이로 ‘쟤 뭐함?’하는 눈초리를 당하면 울 후배님이라도 정신적 데미지가 클 테고, 분위기도 미묘해질 것 아닌가. 역시 은근 생각이 많다니까.
‘라리루라도 아침마다 연습하긴 한댔지.’
시간대가 달라서 마주치는 일은 적었지만─실수하면 부끄러우니까 싫댄다─, 라리루라도 서커스 훈련을 쭉 했었을 것이다.
안 그러면 싸울 때도 그렇게 우아하고 잽싸게는 못 움직였을 거고.
그건 그렇고, 안 그래도 베로니카한테 할 말이 있었지. 나는 주저하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베로니카.”
“……경험 상, 주인님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는 뭘 잘못했을 때였지.”
테에엥.
즤에길, 눈치 귀신 같은 것 보게. 나는 눈을 꾹 감고 어젯밤 엘리자베트와 나눈 얘기를 말해줬다. 어제는 너무 늦어서 설명을 못 해줬던 것이다.
“……그렇게 되서, 약속했던 일주일보다 10일, 아니 5일 정도만 더 기다려 줬으면 해.”
“5일이라…….”
약간 실망한 듯 눈을 반개하는 베로니카.
존나 가슴이 아팠다. 나는 샘솟는 죄책감을 못 참고 150도로 대가릴 박았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 최대한 빨리 해 볼게.”
“그, 그러지 말거라. 솔직히 나도 무심코 좋다고 말하기는 했다만, 일주일은 좀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했다. 그대가 청첩장? 이란 걸 돌릴 시간도 부족할 테고.”
빠르게 말한 베로니카는 목이 메인 듯 헛기침을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그 문제로 그대에게 상의하고픈 것이 있었으니.”
“상의하고 싶은 거?”
─끄덕. 베로니카는 약간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다들, 잠깐 따라와 주겠느냐?”
***
새벽이 끝나면 휴스로이트의 하루가 시작된다.
어부들은 일을 나가면 애매하게 개발된 도시의 정경에는 썰물이 일듯 시골과 도심이 뒤섞인 곳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독특한 생기가 차오른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조개 구이가 졸라게 비쌀 것 같은 한국의 항구 도시 같은 느낌.
예쁜 해변 근처에 적당한 항구가 있고, 거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바닷내음이 은은한 도시 정경이 펼쳐진다. 어느 길목은 세련됐지만 거기서 몇 분 걸으면 정겨운 다라이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머리를 틀어묶은 모양에서부터 특출난 생활력이 엿보이는 아낙네들은 노련하게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 4인조는 그런 거리에 구경을 나왔다.
얼굴이 많이 팔린 옐로-사이어인은 작은 뱀으로 변신해야 했지만 말이다.
─말캉.
그렇게 베로니카의 가슴골에 안착. 유모차에 탄 것 같군.
이대로 이 끝내주는 계곡에서 1달 정도만 쉬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내 눈에 띈 광경은 나를 파이즈리 유토피아로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줘기, 아줨마? 이 뽱 을마예요?”
“뭐, 뭐라는겨? 아, 빵? 빵이 1쿠퍼지 얼마야.”
“1쿠-퍼? 더 마쉿는 건요?”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뿔이 2개 달린 호청년이 빵집에서 어눌한 브리타니아 어로 시민과 소통을 시도하는 광경이었다.
빵집 아줌마는 그의 머리에 난 뿔과 말투에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존나 대단하다. 존경스러운 상인정신이었다.
“더 맛있는 거라면…… 이거, 꿀을 친 흰 빵은 어때셔? 이건 3쿠퍼야.”
“알앗슴미다. 4궤, 아늬 5궤 쥬세요.”
바이콘 청년은 냄새를 맡고 기대된다는 얼굴로 빵값을 지불했다.
대충 100원짜리 동전만한 루비로 말이다.
“뭐여? 무슨 돌맹일…… 워매?! 보석이여?!”
빵집 아줌마는 뭔가 싶어서 받았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홱홱! 루비를 놓칠 뻔 하다가 어떻게든 붙잡고서 십년 감수한 표정을 짓는 아줌마.
“보증서 이써요. 1실버 50쿠퍼 어치 루비에오.”
“이, 이걸로 빵을 사겠다고? 청년 미치셨수?!”
“어…… 웨요? 않되요?”
“안 되고 나발이고, 거스름돈 내다가 가게 접을 일 있남?! 시골 빵집에 135쿠퍼가 어딨어!!”
거스름돈이라는 건 알았어도 현찰 문제는 생각 못 한 걸까. 입을 헤─ 벌리는 바이콘 청년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나이가 많겠지만 말이다.
살짝 눈을 돌리면 다른 바이콘들도 눈에 띈다.
저주에서 벗어나서, 처음 인간 사회와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소식은 들었다.
“야! 빨리 와! 떠다니는 신천지, 안 볼 거야?!”
“가, 같이 가아아……”
그때였다. 웬 어린애들 2명이 길목을 달려가며 소란을 피웠다. 마법사가 꿈인 건지 손에 나무를 깎아 만든 장난감 완드를 들었다.
“아오, 진짜. 느려터져서는…… 으악?!”
“앗! 어머?”
체력이 없는 친구를 한심한 듯 보던 소년은 지 앞을 못 보고 행인과 부딪혔다.
“괘, 괜찮니? 다치진 않았어?”
갈색 머리카락을 땋은 바이콘 여인은 주저앉은 소년이 걱정된 모양이다.
이제 막 인간들이랑 교류를 시작한 참인데 나쁜 이미지를 심기는 싫었겠지. 아주 극진하게 이마며 어깨, 뺨에 손을 가져다대는 바이콘 양.
그리고 여기서 리빙 포인트 한 가지.
베로니카가 입은 고대 로마니아 전통복 말고도 바이콘들은 낡은 양식의 옷을 즐겨 입는다.
그리고 소년과 부딪힌 바이콘 여인은 특히 가슴골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약간 반투명한 질감이기까지 했다.
아마 나르메르-나일의 전통복인가 보다.
“저기, 왜 아무 대답이 없어? 혹시 내 말이 안 들리니? 저주가 덜 풀렸나…?”
“아, 으아아아……”
뺨에 손을 얹고 갸우뚱하는 바이콘 여인. 아직 성에 눈을 못 뜬 듯한 소년은 코앞에서 출렁이는 커다란 가슴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랑 같은 걸 지켜보던 라리루라가 중얼거렸다.
“……저 분, 브래지어 안 했나 보네요.”
“……벼, 별 수 없잖느냐. 우리 의류는 신대에서 고대 사이의 것들 뿐이다.”
베로니카는 동족을 변호하듯 말을 더듬었다.
하긴, 문화 교류가 없었으면 옷을 만드는 바이콘들도 옛날 옷만 만들었을까.
당연히 주변 바이콘들도 같은 옷만 입을 거고, 자기 옷이 이상하다는 자각도 없을 것이었다. 그 결과가 저 노브라인가.
혹시 밑에도 안 입은 건 아니겠지? 내가 어이가 나가 있자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아, 안 다쳤어요! 저 멀쩡해요! 안녕히 계세요!”
“어?! 자, 잠깐! 너 완드 떨어트렸어─!”
“끄악─!”
처음 부딪힌 꼬마는 도망치고, 따라오던 다른쪽 꼬마는 그 바람에 부딪혀서 또 자빠졌다. 새끼들 쉽게도 넘어지네. 하체가 부실하구만.
“너도 넘어졌니? 어머, 무릎이 까졌네…….”
바이콘 여인은 넘어진 소년의 무릎을 보고 안쓰라운 듯 말했다.
“잠깐 따라오겠니? 약초라도 발라줄게. 쉬다가 나중에 친구한테 완드도 돌려주렴.”
“……네, 넵! 갈게요!”
전언철회. 부실한 건 하체가 아니라 도덕심이군.
허약한 잼민이는 자기 친구랑 다르게 조숙했다. 체력이 없고 뼈가 삭은 이유가 다 있구만 그래. 부러운 소년 시절을 보낼 듯한 소년이었다.
베로니카는 이마를 짚으며 작게 탄식했다.
“어떻게 보이느냐?”
“심각하네.”
바이콘들이 인류의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다른 종족과의 교류는 처음이니까.’
대충 1000년±500년 만의 쇄국정책 해제.
나이 쉰 살 먹은 모태 솔로 아저씨가 소개팅에 나가는 수준이다.
바이콘들의 긴장감도 엄청날 테고, 사기에 속아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경계는 했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일단 휴스로이트에서 적응 기간을 갖게 할 생각이었는데, 정기적인 정훈교육에 상식 교육을 추가하지 않으면 문제의 소지가 될 것 같았다.
우습긴 한데, 마냥 좌시하기도 애매한 문제니까.
“문제는 일목요연하다. 나처럼 예지자로서 교육받은 몸이 아니면, 바이콘들은 바깥 세상을 너무 모른다. 다른 지성체들과 교류해 본 경험이 없는 건 둘째치고 지식 자체가 부족하지.”
“네?! 베로니카 언니, 교육을 받으신 거였어요?!”
“……어?”
전혀 상상도 못한 리액션이었는지 입을 벌리는 베로니카.
나도 라리루라의 경악에 100% 공감이다.
“말투만 들어도 무슨 소설로 상식을 공부한 줄 알았느니라. 그 이상한 말투가 노력의 성과였다니 이 주인님은 참으로 당황스럽느니라.”
“그렇느니라에요!! 베로니카 언니도 일족 분들 사이에서는 인류학 전문가 레벨이라니, 경악스럽기 그지 없느니라에요!! 저까지 바이콘 족의 장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느니라에요!!”
“…………………………………….”
미안. 충격받지 말고 마저 설명했으면 좋겠는데.
몇 분에 걸려서 바스라진 멘탈을 긁어모은 베로니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무튼 그렇다. 성지 밖에 나갈 수 있대도 대화는 불가능하니까. 실태는 이렇지.”
“해결 방법, 있어?”
과연 네페르티티도 신경이 쓰인 듯 물었다.
세상만사 관심이 없는 우리 사차원 아가씨마저 걱정을 금치 못하다니. 베로니카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내가 다 면목이 없어지네.
“……상식이야 점차 가르쳐줄 거고, 다른 바이콘들도 스스로 배워나갈 테니까 괜찮아. 하지만 그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
“베로니카 언니, 죄송해요!! 더는 안 놀릴 테니까 그냥 편하신 말투를 써 주세요!!”
“진짜 미안!! 듣는 우리가 다 어색해!!”
우리의 진솔한 사죄에도 베로니카는 입술을 쑥 내밀고 외면했다.
삐진 건가? 쓰벌, 귀엽네. 더 놀리고 싶어지게.
“병 주고 약 주고.”
네페르티티가 작게 중얼거렸다. 스탑… 유징… 팩트….
“……후. 그런 불우한 오해가 차별, 악감정, 선입견 같은 것으로 번질까 걱정되는구나.”
화가 풀렸는지 말투를 다시 고친 베로니카였다. 존나 진땀 뺐네.
“나한테 상의할 게 있댔지? 뭘 어떻게 해 줬음 해?”
저택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묻자, 베로니카는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내 상식이 맞다면── 그래. 내가 배운 상식이 맞다면 말이다. 그렇게 지체 높은 귀족이 아니면 영지민들을 결혼식에 부르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아마도. 혹시 우리 결혼식을 그렇게 하려고?”
“아, 아니. 꼭 그렇다기보단, 그, 제안일 뿐이다.”
오물꼬물….
이렇다 저렇다 하고 단언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비벼대는 베로니카.
“나쁜 인상은 좋은 인상으로 덮어진다고 생각하느니라. 나는 그냥, 우리 일족의 이들이 이 영지의 시민들과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이 찐따스러움…… 우리 여신님이 맞습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베로니카의 가슴골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알았어. 고려해 볼게. 그런데 괜찮겠어? 네가 말한대로 되면 결혼식은 상당히 덜 화려해질지도 몰라. 일반 시민들을 초대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야.”
“그, 주인님만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다.”
의외로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푹. 베로니카는 후드를 쓰며 눈가를 가렸다.
“공작이 개미보다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개미의 생태가 공작의 그것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흐음.”
“내 눈에 비치던 인간 세상의 근사함은 신분의 높고 낮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바가지를 씌우며 팔던 저렴한 조각상도 대귀족의 만찬을 장식하던 샹들리에 만큼이나 아름다웠으니.”
내가 귀를 기울이며 생각하고 있자 베로니카는 부끄러운 듯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우리 일족의 모두도 그렇게 여길 것이라 믿는다. 주인님과 함께 다녔던 여행은 어딜 가건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됐던 것처럼.”
“……그렇게까지 말해주면 안 된다고는 못하지.”
─휘릭!
변신을 풀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즐겁게 웃었다.
“어려운 부탁은 아냐. 하객의 신분을 생각해서, 저택 안에는 귀족이나 명망 있는 사람들을 부르고 거리에서는 우리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면 될 거야.”
영지의 창고는 먼지가 날려대긴 했는데, 쓰벌거 내 호주머니를 열면 땡이지.
“바이콘들은 하객으로 불렀다가, 중간에 거리로 나가서 시민들이랑 같이 우리 결혼을 축하하면서 친해져 보라고 전해 줘.”
“아핫♡ 그렇네요. 시민들도 축제의 분위기에선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해도 넘어가 줄 거에요!”
“그거 괜찮구나!”
다행히 눈에 차는 제안이었던 걸까. 베로니카는 확연히 밝아진 얼굴로 기뻐했다.
“그거라면 일족의 이들도 기뻐할 것이다! 식장 안에 있다가 지체 높은 이에게 실례를 저질렀다간 주인님한테 폐를 끼치지 않겠냐며 신경 쓰고 있었으니 말이야.”
“응. 받아들여줄 듯 하니까 다행이네.”
이걸로 결혼식 계획은 대충 짜였군.
‘신경 써야 할 건 하객 쪽이지.’
초청장을 돌릴려고 해도 먼 거리까지 보내기는 힘들 것이니까.
‘아틀란티스 문제도 있어. 이번 달 안에 결혼할 생각인데 먼 곳에서는 못 부른다.’
끽 해봤자 국내의 지인들이 아닐까.
다나의 친가랑 사르가디스에서 몇 명 불러놓고 땡이겠지.
이번 문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늦장을 부리다가 누가 꼬장이 부려도 곤란하거든.
‘아내들과의 결혼식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건 싫으니까.’
내가 일부러 바이콘들에게 뿔을 까고 지내라고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틀란티스의 소유권.
바이콘의 인간사회 융화.
엘리자베트와 협의하면서 그런 문제들을 원큐에 끝낼 커다란 한 방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바쁜 처지인데 결혼식에서 깽판치는 새끼가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을 거라고.
‘이렇게 보면 결혼식은 또 괜찮을 것 같은데…… 바이콘들 교육은 어쩐다.’
상식 교육이란 건 어떤 상식을 모르는지부터가 시작이다.
나도 이세계에 떨어진 직후에 별 경험을 다 겪어봤기에 안다. 아니 시발, 물로 빨면 안 되는 마법 코트가 있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어.
‘그렇다고 내가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없고, 어디 좋은 교사 없을까.’
베로니카도 하는 걸 보면 멀쩡한 상식 교육을 받았는지부터 애매하고.
바이콘들과 인간 사이의 상식 차이를 잘 알고, 그걸 가르치는 게 가능한 교사라.
가능하면 바이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잔느, 도착했어!!”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항구에 진구(進口)하려는 배를 보고 멈칫했다.
“앨리스! 사람 많은 곳에선 조용히 하랬잖아요! 아, 레오반테스 단장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기운 차서 보기 좋은걸요? 꼭 저희 서커스단의 예전 에이스가 생각나서…… 어머?”
항구에 들어온 배의 갑판에서 익숙한 면면들이 보였다. 나랑 라리루라는 천상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조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니콘을 타고 여행하던 고고학자, 하이로메인 교수.
그리고 라리루라의 친가나 다름없는 플랑궁쿨라 서커스단의 단원들이었다.
저쪽도 우리를 발견했던 걸까. 알렉산드라 씨와 하이로메인은 눈을 크게 떴다.
“아─!! 울프헤딘 백작님─!!”
갑판에 있던 하이로메인 교수는 내 취임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귀족 신분을 부르짖으며 오른손에 든 서류 봉투 같은 걸 힘차게 흔들었다.
예상 밖의 조합과 타이밍에 당황하던 나는, 그 세인트-교수의 다음 말에 눈을 부릅떴다.
“고고학계에서 나왔습니다─!! 석사 은장 진급 건으로 찾아왔어요──!!”
이 시발, 마참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