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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나는 ‘아들에게 젖을 물려주는 꿈을 꿨느니라’라면서 멍하니 있는 베로니카랑 조금 노닥대다가, 그녀를 도로 재워두고 영주의 방 밖으로 나왔다.
“뎃?”
“……아.”
그러자 복도에서 창밖의 항구를 구경하고 있던 네페르티티와 마주쳤다.
나는 기쁜 마음에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혹시 아침 훈련 때문에 기다리고 계셨어요?”
“……응. 나올지 어떨지 몰라서.”
“안 그래도 할 생각으로 나온 참이에요.”
섹스를 한 다음날 밤이라고 해서 훈련을 거르진 않는다.
‘그런 식으로 운동하기 그런 이유를 찾다 보면 꼭 거르게 되더라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던가. 여신님의 애널 조교가 그렇듯, 1번 괜찮겠지~ 하고 넘어간 시점부터 2~3번째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진다.
“어쩐지 미안. 나 때문에 뿔 엄마를 두고 온 건 아니지?”
“베로니카요? 괜찮아요. 아직 졸려하는 것 같고, 좀 이따가 다시 가 보면 되죠.”
“그래.”
네페르티티는 살짝 기쁜 듯 웃었다가, 갑자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놀라서 슬쩍 물러났다. 쓰벌, 냄새라면 마법으로 깨끗하게 했는데?
네페르티티는 멍한 얼굴로 물었다.
“브류나크는?”
“네? 아, 잠깐 풀어놨어요.”
휴, 뭔가 했더니 팔찌 상태의 브류나크를 차고 있질 않아서 그랬나. 나는 안심했지만 우리 처녀 마망 네페르티티는 조금 눈썹을 댔다.
“……안 돼. 다른 창을 쓰면 그 애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아, 아아. 그렇긴 한데요. 죄송해요, 깜빡했어요. 어젯밤에 좀……”
“어젯밤?”
멍하니 단어를 되새긴 네페르티티는 홍조를 확 띄웠다.
나는 당연히 이 쑥맥 마망이 사과하면서 물러날 줄 알았는데, 브류나크 마망의 사차원적인 사고방식은 과연 보통 사람과는 남달랐다.
뚜벅, 뚜벅…. 부끄러움마저 감수하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네페르티티.
“……킁킁.”
냄새를 맡던 네페르티티는 눈을 크게 떴다.
“……브류나크가 자는 방에서 한 거야?”
쓰벌, 그게 왜 그렇게 돼?
말문이 막혔던 나는─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궁색맞게 변명했다.
“서, 서랍에 넣어뒀는데요.”
“……서랍에 가둬두고 한 거야?”
아니 뭔 씹. 미치고 팔짝 뛰겠네.
딸 앞에서 섹스하는 애비 되기 VS 딸 가둬두고 섹스하는 애비 되기.
존나 간만에 가불기에 걸린 느낌. 이 강북호를 궁지에 몰아넣다니. 네페르티티도 한 가락 한다는 걸 깜빡한 내 실책이었다.
아마 그녀도 그럴 마음은 없겠지만 말이다.
“브류나크는 제 분신 같은 아이잖습니까. 저의 일부란 말이죠. 창은 단말에 불과하니, 어디 둬도 저와 같이 있는 상태……”
아 씨, 이게 더 이상하네.
나는 이 화제를 빨리 끝낼 필요를 느꼈다.
“아무튼 브류나크는 저의 일부이니 너무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분신……”
한동안 고민하듯 턱을 괴다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는 네페르티티.
“……그건 네가, 나를 엄마로 보고 있다는 뜻?”
“이거 일부러죠? 그쵸?”
“들켰어?”
젠장, 당했다.
약간 부아가 치미면서도, 슬며시 웃는 네페르티티의 미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뭐라 말을 못한 나였다. 그래 시발, 내가 희생해서 당신이 웃으면 됐지 뭐.
이게 사랑인가. 나는 입을 내밀고 손을 뻗었다.
부웅─ 척!
룬 마법으로 공간을 도약한 브류나크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 거의 묠니르 아니냐? 어벤저스에 가입해도 되겠군. 히어로라기엔 여성편력이 화려하긴 한데, 아이언맨만 못하니까 양해 바란다.
“됐고, 훈련이나 하러 가십시다. 오늘은 제 창이 평소보다 더 격렬할 테니 단단히 각오 하십셔.”
“그거 성희롱?”
“이 얘기 그만하지 않을래요?”
신났네, 아주. 나는 머리를 넘기면서 먼저 복도 쪽을 걷다가 또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침부터 내 방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왤케 많어?
“알렉산드라 씨?”
“노르드 씨. 기침하셨군요.”
장모님(Ver 라리루라)께선 우아하게 인사했다. 나 역시 인사를 돌려드렸다.
“오늘은 무슨 일로? 혹시 저택에 묵으시면서 뭐 불편하신 점이라도 생기셨다면 말씀해 주세요.”
“네에……. 불편한 점이라기보단, 궁금한 점이긴 한데요.”
뭐지.
몬가…… 몬가 불길한데. 나는 제 6감의 호소를 느꼈지만, 장모님 앞에서는 도망칠 수 없었다. 좀 어색한 미소로 다음을 재촉했다.
“라리루라가 서커스 연습을 한다고 들었어요. 네. 오늘 아침도 하고 있더군요.”
“그, 그런가요? 평소보다 빠르군요. 성실하기론 저 못지 않으니까요.”
“네에. 그건 저도 알고 말고요. 성실하죠. 제가 딸처럼 아낄 만큼.”
알렉산드라 씨가 기분 좋게 웃자, 네페르티티는 소름이 돋은 것처럼 내 뒤로 숨었다. 나도 어딘가 숨을 곳 없을까? 이 사람 눈이 안 웃고 있다고.
“그런데…… 울프헤딘 백작님?”
“넵.”
“왜 프리실라 백작 부인께선 매일 아침 서커스 연습 따윌 하고 계실까요?”
“……………………………………….”
영주 대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장모님께서는 어디까지고 정중하게 물었다.
“프리실라 백작 부인이 대중의 앞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라도 있나요? 그렇지 않으면 이해가…… 잘 되질 않네요. 왜 울프헤딘 경의 부인께서 서커스 연습을 하시는 거죠?”
“그……. 그, 그…… 그게…… 어…….”
따박따박 나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청산유수.
라리루라랑 이 휴스로이트에서 재회했을 때부터 생각한 말을, 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왜 라리루라의 서커스 연습을 방관했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어서였다.
라리루라=서커스라는 명제가 박혀 있어서일까.
나는 내가 귀족이 된 뒤, 내 아내인 라리루라가 저 정원에서 서커스 연습을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었지 않은가.
아니, 나만이 아니라 라리루라 본인을 포함해서 가족들 전원이 그랬다.
“……제가 들은 바, 아직은 ‘프리실라’, ‘백작’, ‘부인’은 정식으로 울프헤딘 경의 부인으로 호적을 올리지 않으신 듯 하더군요.”
딱딱 끊어서 뱉는 단어의 나열에서 확고부동한 의지를 느낀다.
설령 귀족이 상대라도 타협할 수 없는, 부모의 애정이 말이다.
“그래서 혹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라 씨는 아무런 감정조차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울프헤딘 경께서는 혹, 저희 서커스단이 눈물과 함께 떠나보낸 그 아이를…… 다시 저희 품에 돌려보내주실 생각일까요?”
“옙!! 무슨말씀이신지충분히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결코그런뜻은없습니다!!”
나는 속사포 랩을 하듯 다급하게 대답했다.
나랑 라리루라는 아직 서류 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식 같은 건 당장 예정에 있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라리루라는 언제든 서커스단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한다?
귀족이 된 키타이 옐로 몽키는 그런 라리루라를 흐뭇하게 지켜본다? 그러면서 라리루라가 결혼식 공연을 하는 건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면 부모된 자의 도리로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 소중한 딸이── 저 개씨발새끼한텐 그냥 엔조이일 뿐인가 하고.
“결단코 그런 사실 없습니닷……!!!!”
그렇기에, 나는 영혼으로부터 우러난 목소리로 외치며 기립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라리루라를 장모님 허락을 받고 데려가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 후배님은 아직까지 결혼반지조차 끼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후후. 저는 또 마냥 ‘프리실라’, ‘백작’, ‘부인’께서 울프헤딘 경의 아내가 못 되고 저희 서커스단에 돌아오게 되는 건가~ 했답니다. 아니라면 천만다행이네요.”
“옙!! 제 이름을 걸고 맹세컨대, 저는 라리루라 양과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사귀고 있습니다!! 처음 그녀로부터 사랑을 고백받았을 때부터 줄곧 그랬습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챱. 알렉산드라 씨가 내 손을 붙잡았다. 등에 찰싹 달라붙은 네페르티티는 내가 급소에 칼빵을 맞는 모습을 본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면, 노르드 씨?”
“넵!!!!”
내 호칭이 울프헤딘 경에서 노르드 씨로 돌아온 것에 안심하기도 잠시.
알렉산드라 씨는 소름돋을 만큼 차갑게 웃었다.
“저희 프리실라의 결혼식은, 언제쯤이 될까요?”
“최우선 사항으로 검토하겟슴미닷……!!”
아직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렇게 내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쥐처럼 굳어있을 때였다.
저벅, 저벅─!
분명 서두르지 않는 발소리인데도 엄청 달리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는 구둣발을 울리며, 웨스턴 씨가 우리가 있는 복도로 달려들어왔다.
“여, 영주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아아닛?!!!!! 손!!!!! 님!!!!! 이라고요!!!!!!”
발소리를 들은 알렉산드라 씨가 물러났던 것에 환희하던 나는 모든 사실확인을 제치고 소리쳤다.
“아!!!! 손님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죠!!!! 절 찾아오신 손님이시라면 누구든 융숭한 대접을 해 드려야 하고 말고요!!!! 어디 계십니까!!!! 당장 뵈러 갑시다!!!!”
시발, 나 찾아올 손님이라고 해 봤자지!!
아니, 지금 기분 같아선 헤니르가 시구르드 목을 따고 합체해서 찾아와도 환영할 수 있다!! 죽이고 결혼반지&결혼식 생각만 하면 되니까!!
“이런. 그렇게 환영해 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그때였다. 나는 웨스턴 씨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면서 말하는 남성을 발견하고 몸을 굳혔다. 네페르티티도 놀란 듯 몸을 굳혔다.
……이 남자, 우리에게 조금의 기척도 드러내지 않고 서 있었다고?
“처음 뵙습니다. 고명하신 울프헤딘 경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젊은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꼭 수명이 안 남은 않은 노인처럼 무력해 보이는 청년.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얘기에 끼어들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모험가 길드 연합의 총수, 키아라 콜리도 연합총장입니다.”
마스터 클래스의 모험가가 날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