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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테카 행이 결정된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또 구구절절해진다. 피해 복구나 민심 안정부터 더 큰 물의 안건을 처리하거나 했으니까.
그래도 굵직굵직하거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사건을 꼽자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 엘리자베트가 아즈테카 원정대를 세상에 공표한 게 첫째로 꼽힐 것이었다.
나랑 브리타니아 왕국. 나르메르-나일과 모험가 길드 연합, 그리고 고고학계.
이들을 포괄하는 대원정과 그 핵심 선박이 되는 아틀란티스의 존재.
그리고 내가 ‘히히! 오우거는 인간이야! 모랄빵 발싸!’하고 퍼트린 역사의 진실.
이 소식은 강렬한 센세이션이 되어서 전세계를 매콤하게 후려갈겼다.
─미지와 야만과 패배의 땅! 아즈테카를 향하는 원정대의 대발족(大發足)!
─파라오 셰드멘호테프, “무지와 미지를 계몽할 도전이자 도약이 될 것”!
─위대한 영웅, 서방 역사의 진실을 밝히다!
─울프헤딘 백작의 힘의 근원? 동양의 대영웅이 침대에서 6명의 미녀를 혼절시키는 방법! 동방의 신비로운 의식, 『음양합일』 전격탐구!
마지막 기사는 어떤 씹놈이 쓴 것이지? 어르신 앞에 편지를 넣어서 ‘이 새끼 꼭 좀 찾아내갖고 꼽 주시겠어요?’하고 부탁해둬야겠다.
또 그밖에 개인적인 일들도 있다.
바이콘들이 인간 사회에 융화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모님들께 하는 설명이나 사르가디스 연구소의 운영 등에도 조금 얼굴을 비췄다.
“아즈테카 원정이라니. 위험할 텐데 괜찮겠니?”
다나랑 내면세계를 다스리는 명상 훈련을 하던 날, 소식을 들은 우리 사제장-모님이 찾아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잠깐 휴식을 가졌던 다나는 살짝 질색했다.
“뭐야? 갑자기 닭살 돋게 왜 그래.”
“걱정되니까 그렇지.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보면 이해가 갈 거란다.”
“나 같은 딸? 다나 베르베이아가 2명이 되겠네. 그거 인류의 축복인걸?”
“다나 눈나. 솔직히 내가 봐도 그건 쌉에바야.”
“아가리 쌉쳐.”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말라고. 꼴려 보이니까.
“그렇다고 나만 남아 있을 순 없잖아. 남편놈은 나나 다른 애들처럼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녀석인데.”
내 귓방망이를 잡으면서 말하는 다나. 진짜 딱 잡기만 한 수준이라서 아프지는 않았는데, 가장의 위엄은 땅바닥을 치고 말았다.
“그래도 하늘보단 땅값이 더 비싼 법이지.”
“미친 놈아, 너 그러다 천공신한테 천벌 받아.”
“걔 바지사장에 관짝 들어간지 오래라서 암것도 못함.”
오딘이야 잔류사념? 같은 것만 남은 녀석인데 뭐.
‘꼬우면 후계자를 잘 고르던가.’
신좌도 못 물려주고 울프헤딘이라는 새 직책만 딸랑 줬으면서.
울프헤딘의 권능도 무지 쓸모 있기는 한데.
“여러 국가가 얽힌 원정에, 또 한 번 실패했던 나르메르-나일의 지원도 있어. 그냥 소문만 들어본 우리보다 위협을 아는 놈들이 한 발 꼈는데 설마 대차게 말아먹을까.”
“……후. 누가 널 말리겠니.”
가출과 제멋대로 인생의 전적이 화려한 다나다. 장모님은 체념한 듯 웃으셨다.
이쪽 장모님은 그나마 괜찮다. ‘내 딸이 남편감 하나는 잘 잡았어’하시는 눈빛으로 대견하게 여기시는 듯 하거든.
서먹서먹해진 모녀가 어색한 관계를 풀어나가는 광경은 참 보기 좋았다.
“몸 성하게나 돌아오렴. 엄마 죽기 전에 손주는 보여줘야지.”
“아줌마가 주책은. 할머니가 되고 싶으면 좀만 더 참아.”
다나는 새초롬하게 튕겼고, 장모님은 웃으면서 부적을 몇 개 쥐어주셨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셨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베르베이아 연구소장님. 아니, 백작 부인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데…… 무슨 일이시죠?”
장모님이 떠나자 아셰라드가 찾아왔다. 원정 일 때문에 바쁠 그녀가 찾아와서 하는 얘기에 다나는 곤혹스러워 했다.
아셰라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연구소 쪽 일 때문에 찾아뵀습니다.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노, 논문이나 연구실적은 꼬박꼬박 냈는데요!”
학계의 높은 사람 알레르기+랩실 노예 시절 PTSD가 콤보로 터져버린 다나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새파래져서 기겁했다.
사실 찔리는 바가 있어서 그렇다.
‘이제까지 연구소 일에 그렇게 막 충실한 편은 아니었으니.’
고고학자가 여기저기 출장 다니는 거야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럴 거면 ‘연구소장’이란 직책을 달 필요는 없잖은가? 문제시될 수 있는 일이 맞다.
그러자 아셰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지적하러 온 게 아니에요. 사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범용한 연구소장들에 비해, 많은 일을 함께 벌이시면서 실적도 충분히 내시는 부인께서는 존경받을 만 하시죠.”
“그, 그럴까요?”
와 시발, 이 누나 웃는 것 봐. 내가 칭찬할 때도 좀 그렇게 웃어봐라.
내가 꽁하니 턱을 괘자 아셰라드는 피식 웃었다.
“단지, 원정대에 참여하신다고 들어서요. 사르가디스 연구소에 부 소장은 임명하셨나요? 아직이시라면 제가 임명에 도움을 드릴까 하는데.”
“아,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사실 능력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게 딱 잘라서 누구는 유능하고 누구는 부족하다고 말하기 힘들어서.”
곤란한 문제이긴 했던 걸까. 다나는 기쁘게 그 제안을 탔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팀장이나 리더를 해나가기 힘들지 않은가.
꿀을 빠는 새끼에게 꼽을 주거나,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중용하는 것도 성격에 맞지 않으면 힘들다. 성격에 맞아도 욕 먹기 쉽고.
아셰라드는 거기에 학회장으로서 자문─이라는 이름의 욕받이─ 역할을 맡아준 것이다. 팀장이나 소대장이 개입하면 대리 직급이나 분대장은 욕을 덜 먹으니까.
“이 분이 적당하겠군요. 부 소장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연구원 간의 조율이니.”
아셰라드는 능숙하게 부 소장으로 올릴 인재를 선출했다.
“또 하이로메인 교수도 당분간 해당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백작님의 가설대로라면 히타이트와 옛 에린은 관계성이 깊고 말이에요.”
“네. 특히 훌드폴크는 야수회귀를 원본 그대로 쓰던 계파니까요.”
“해당 가설은 현재 학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제가 예산을 배정해도 지탄받을 일은 없죠. 하이로메인 교수께 예산을 배정할 터이니, 백작 부인의 연구소에서 유용(流用)해 주세요.”
“아하. 히타이트 연구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A를 연구하면서 B를 연구하는 척 예산을 타는 것. 마이너한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예산을 타내는 요령 중 하나죠.”
─탁. 아셰라드는 서류첩을 닫고 말했다.
“하이로메인 교수는 아무래도 그런 쪽의 요령이 부족했지만, 능력 면에서는 확실한 연구자입니다. 히타이트 쪽도 함께 연구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말씀 전해 놓을게요.”
“그녀라면 잘 해줄 겁니다. 히타이트가 얼스터 역사와 무관한 것도 아니고,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당시의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의미하잖아요?”
아마 아셰라드의 본론은 저거였나 보다.
‘아즈테카에만 올인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히타이트의 단서를 찾는 건가.’
스리슬쩍 다나한테 호감도를 쌓고, 자기 뜻에도 합치하는 예산 배정까지.
의외로 학회장이 적성이 맞는 거 아냐, 이 사람?
“엄마한테 그 연구를 좀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아셰라드를 배웅한 다나는 다시금 명상 자세를 잡으면서 말했다.
“하이로메인 교수님도 엄마한테 이것저것 듣기 바쁜 모양이고, 둘 다 같이 사르가디스 연구소에 가면 되겠지. 엄마나 다른 고향 사람들도 세상에 적응해 봐야지.”
“음. 좋은 생각이라고 봐.”
“그치? 좋아. 걱정거리도 덜었겠다, 집중하기 더 쉬워지겠네.”
다나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나도 같이 눈을 감고 명상을 재개했다.
우리 눈나도 나도 명상으로 깨우쳐야 할 권능이 많았으니까.
아무튼 이렇듯이 다나 쪽 사정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한 쪽의 장모님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울프헤딘 백작님.”
아침 훈련 후에 명상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들은 소리가 이거다.
나는 얼굴을 경련시키다가 대답했다.
“……편하게 불러주신다지 않았나요? 알렉산드라 씨.”
“어머, 내 정신도 참. 그만 깜빡했네요.”
거짓말 마십쇼. 지금 대놓고 압박 준 거잖아요.
가끔 휴스로이트에서 간단한 공연 정도를 하며 굳이 여기 머물고 있는 플랑궁쿨라 서커스단. 그 단장이자 내 장모님인 알렉산드라 씨는 나날이 눈빛이 싸늘해지고 계셨다.
왜 그런지는 안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결혼식 하신다면서요? 그런데 뭐? 아즈테카?
맞다. 라리루라의 결혼식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당장 빠른 시일 내에 하겠다고 말해놓고는 다시 일감을 낚아왔으니까 눈빛이 싸늘해지실 만 했다. 보통 일 잘 하면 칭찬받지 않나? 아흐흑.
그렇게 내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고된 일인지 몸과 마음으로 실감하고 있는 나였다.
참고로 ‘우리’가 아니라 ‘나’인 게 포인트다.
“선배, 이거 보세요! 새 서커스 기술♡!”
“존나 세상 해맑은 년……”
“?”
라리루라야. 니가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알렉산드라 씨한테 손절 각 재고 있는 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는 거 아니니?
대체 왜 백작 부인이 서커스 연습을 하고 있어.
그렇다고 우리 후배님한테 삶의 낙을 빼앗기도 힘들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 해. 그건 나더러 석사로 만족하라는 얘기랑 동급인데.
“……아니, 암 것도 아냐. 멋지네.”
“아핫♡! 그렇죠? 선배가 요정왕국에서 얻어다 주신 크라운 크라운 님의 저서에서 배웠답니다~? 아즈테카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반해버리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네가 남의 식탁에 올라가지 않도록 옆에 붙어 있어 줘야지.”
라리루라를 물고 빨아도 되는 건 나 뿐이다.
나는 그렇게 성인이 되고도 여전히 천진난만한 후배를 보며 픽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