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26화 (725/1,009)

***

라리루라한테는 그렇게 말했었지만, 아즈테카란 곳도 내가 이 인종차별 개쩌는 서방국가에서 들은 소문만큼의 지옥도는 아니라는 모양이다.

아니지. 팩트만 놓고 봐도 명계보다 지옥이기는 한데, 그래도 일단 사람들이 사는 지옥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현지에 가 봤던 키아라와 트루-현지인인 이스테틸이 그러더라.

【너희는 우리를 싸잡아서 식인종이라 매도하는가 보다만, 그건 착각이다.】

협의를 나누고자 모인 곳에서 이스테틸은 그리 말했다.

나는 그 얘기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저들이 사람을 먹길 좋아하는 인종이라면 키아라가 진작에 알고 귀띰해줬을 것이었다.

애초에 원정에 꼬시자는 눈치도 안 줬겠지.

그때 해안가에서 평소처럼 싸우고, 제압해서, 몇 명만 살려두고 기록지침처럼 썼을 것이었다. 퉁명스러운 데 비해서 태도가 부드러운 것도 있었고.

【‘먹는 측’이 있듯 ‘먹히는 측’도 있어야 한다. 또한 육식 동물만 존재하는 밀림이 없는 것처럼,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 막시카도 있다. 아니, 그런 쪽이 더 많지.】

【막시카? 아아, 아즈테카 인 말씀이시군요.】

【그래. 너희들이 알아듣지 못하니까 우리들도 별 수 없이 그리 부른다만.】

말하면서도 기분이 나빠 보이는 이스테틸.

하긴, 조상님들께서 멀쩡한 호칭을 두고 ‘조센징’이나 ‘중국 속국인 나라 사람’ 같은 이름을 자칭해야 하는 느낌 아니겠는가. 기분 더러울 만도 하다.

동방을 싸잡아서 키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저 호칭도 비슷한 맥락일까.

존나 인종차별자 서방국가 새끼들 같으니라고.

【아무튼, 여러분은 후자라는 거군요?】

【인간을 요리하는 방법을 공공연하게 주고받는 건 아즈테카 제국 뿐이야. 다른 도시국가를 포함한 막시카들은 인간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원래는 아즈테카도 그렇게까지 인간을 잡아먹진 않았어. 그것 뿐이다.】

그렇게 말을 끊은 이스테틸은 아즈테카 지도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이렇게 부감도로 본다는 게 신기한 모양.

【이 땅, 우리가 ‘어스틀란’이라고 부르는 땅은 종족을 불문하고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그 중의 하나가 너희들이 아는 아즈테카 대제국이지.】

【나머지 둘은요?】

【그들에게 저항하거나 복속한 도시국가. 그리고 틀라이어칵스틀리.】

틀라 뭐시기는 몬스터 얘기다.

외부랑 교류가 없는 동네라서 그런가. 자꾸 말 사이에 고유명사가 튀어나오네.

─딱!

키아라는 지시봉으로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종래의 원정에서는 대부분 이 밀림에 상륙해 내부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벌레나 몬스터들에게 시달려야 했던 이유죠.】

동쪽 방향 해안가. 즉, 서방 국가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면 처음 마주치는 어스틀란의 토지는 밀림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들을 데려가도 버텨내는 이들이 없었기에, 오늘날까지 제 탐사는 극히 개인적이고 단시간이어야만 했어요. 제가 없는 사이에 누가 배를 부수면 저도 집에 못 돌아가잖습니까?】

【미친 짓을 했군. ‘달 신의 밀림’은 막시카들도 두려워하는 곳이거늘.】

키아라의 설명에 질색하는 이스테틸이었다.

하긴, 아즈테카 사람들도 인간이라면 살기 좋은 곳을 선호하겠지. 기생충, 맹독충, 대형 몬스터가 막 범람하는 밀림이다. 좋아할 이유가 없다.

키아라는 어깨를 으쓱하곤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밖의 해안은 상륙할 수가 없어서요. 위나 아래는 암초와 장애물이 많고, 대륙 서쪽은 보시다시피 아즈테카 제국의 영토입니다.】

【당당하게 사절로 들어가는 건 무리수겠죠?】

【하하. 백작께서는 가진 능력이 많으시니 살려두고 일을 시킬지도 모르죠. 단지, 아즈테카 제국에 상륙하실 거면 부인 분들은 데려가지 않으시는 게 낫겠습니다.】

섬뜩한 얘기구만. 이스테틸은 얼굴을 찌푸렸다.

【남부에도 해안가는 있다. 거기에 상륙하면 돼. 저 말도 안 되는 섬을 남부보다 더 밑에 두고, 그 ‘배’라는 걸 보내면 그만 아닌가?】

일주일 사이에 아틀란티스를 목격하고 기겁하긴 했지만, 이스테틸은 꽤나 이지적으로 우리 작전의 개요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 밖에 내진 않겠지만 살짝 의외이긴 했다.

역시 인종을 이유로 덮어놓고 편견을 가지는 건 좋지 않군.

【울프헤딘 경이 아틀란티스를 운행해 주시면 이후엔 배로 대륙에 상륙할 생각이긴 한데, 남부는 해양 몬스터가 너무 많습니다.】

─콕콕콕콕. 지도에 마나로 점을 찍는 키아라.

【강함도 강함인데, 몬스터의 숫자가 문제에요. 저나 울프헤딘 경이 분발해도 배를 지켜낼 방법은 구상하기 힘들어서요. 밑에 구멍이라도 나면 바로 침몰입니다?】

【그런 문제라면 우리들에게 맡기면 된다.】

이스테틸은 시답잖은 고민이라는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바다의 몬스터? 는 우리들 스콜라키체를 기피하고 두려워한다. 우리가 그 배라는 것 주변에서 헤엄치기만 해도 얼씬도 안 할 거야. 피만 뿌려도 인근 해역에서 도망치니까.】

【오?】

그거 엄청 도움이 되는 정보인데. 나는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원리입니까?】

【……민족의 역사다. 실증은 인근 해역에서 해 줄 테니 확인해 봐라.】

말하기 싫은 건가. 비밀이 많은 사람이구만.

우리는 그렇게 상의하면서 작전을 짜다가, 잠시 휴식을 가졌다.

─달그락.

발퀴리에들이 차 몇 잔을 내놓자 이스테틸은 덤덤하게 마셨다.

독 걱정 같은 건 안 하는가 보다. 어느덧 무척 맛있어진 발퀴리에들의 차를 홀짝이고 있자 신문을 뒤적거리던 키아라가 말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으니까 물밑에서 움직일 때가 됐는데요.”

“다른 나라 말씀이십니까?”

이 원정이 사실상 히타이트 탐사라는 건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도 어느 정도 냄새를 맡거나, 적당한 협조를 약속하고 숟가락을 꽂으러 올 법도 하다. ─팔랑. 키아라는 신문을 넘겼다.

“예. 나르메르-나일 외에도요. 개인적으로 니다벨리르를 예상했습니다.”

“니다벨리르? 거긴 또 왜요?”

“아즈테카는 외세의 장인을 선호하니까요. 예를 들면, 드워프처럼요.”

…팔랑. 종이를 넘기는 키아라.

드워프 여성과 아즈테카 전사의 혼혈인 남자는 신문을 완독한 듯 덮었다.

“아즈테카는 더 이상 야금(冶金)을 비롯한 전문기술을 습득하려는 계층이 없어졌습니다. 연합제국답게 다른 도시국가로부터 인재를 갈취하려 해도, 끌려가는 걸 뻔히 아는데 장인이 될 리가 없죠.”

“그래서 바깥에서 장인을 충당한다?”

“저 분들 얘기는 아닙니다만,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전사(Ueyoselotl)’ 계층은 많습니다. 그 자들은 니다벨리르의 드워프 장인들을 납치해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왠지 ‘전사’라는 말이 내가 생각한 이미지랑 좀 다르게 들리는데.

그래도 실제로 그런 과정을 거쳐서 태어났다는 키아라의 말이다.

허무맹랑하다고 일축하기에는 이 모험가 연합의 길드장이 자기 과거사를 말하며 궤변을 늘어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니다벨리르에 갔을 때, 조이드 투스타스가 경비원으로 일하던 가게에서 아즈테카식 가면 같은 걸 팔았었지.

‘라리루라가 신기하다고 구경하다가 기겁했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아즈테카는 서방국가들에게 낯설기만 한 땅이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선 아즈테카의 물건은 고사하고 입소문도 거의 못 들어봤지 않은가.

니다벨리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아즈테카랑 엮일 계기가 있었던 것이다.

게르마니아-니다벨리르에 가까운 곳에서 활동한 충왕대군도 아즈테카 산(産) 벌레를 사용했잖은가. 키아라의 말도 덮어놓고 의심하기엔 증거가 은근 많다.

“하지만, 단순히 장인이 필요한 거라면 니다벨리르까지 갈 필요는 없잖아요?”

아즈테카에서 서방국가 끝자락까지 가는 것만도 존나 빡센데, 하필 동방으로 가는 황야와 인접할 정도로 극동(極東)인 니다벨리르까지 가다니?

‘아니면 꼭 드워프여야 할 이유라도 있나?’

납치한 드워프를 데려가는 방법이 뭐가 됐던지 보통 노력이 아닐 텐데.

물론 좆도 칭찬받을 일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예. 물론 다른 이유도 있죠. 아즈테카는 아이를 낳는 모태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태어나는 아이의 자질이 갈라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키아라는 손가락을 3개 세우고 하나씩 꼽았다.

“하나. 태생이 고귀한 자. 둘. 재능이 뛰어난 자. 마지막으로 셋. 드워프입니다.”

“……하필 왜 드워프만?”

후보 중에서 혼자만 모색이 다르잖은가. 실제로 혈통빨 강한 이세계에서 첫째 이유와 둘째 이유는 꽤 현실적인 이유에 근간한 편인데.

“하하. 울프헤딘 경. 미신에는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하지 않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키아라였지만, 나는 그가 무언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말할 수 없거나 끔찍한 기억이 얽혀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밀이 많기로는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꼴마초.

이스테틸이나 키아라에게 숨기는 것 없이 불란 말은 못 할 처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키아라의 말은 맞아 떨어졌다.

우리가 원정을 나갈 준비를 거의 마쳐갈 무렵.

아틀란티스 회담 때 왔던 니다벨리르 사절단이 다시 한 번 휴스로이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초면부터 분신으로 실례합니다.】

여자애를 본뜬 작은 인형 같은 걸 실고 말이다.

【니다벨리르의 여왕, 이발디 폰 드베르그. 명망 높으신 대영웅을 뵙습니다.】

【……이렇게나마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판타지 중세랜드는 왜 이렇게 왕족들이 자기 집 밖으로 나돌지.

분신만 보냈다는 점에서 엘리자베트 남매보다는 낫다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