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45화 (744/1,009)

***

쿠우우웅…!!

갑옷을 입은 거신과 하늘의 용이 부딪혔다.

마치 곡예꾼처럼 날렵하게 몸을 놀리는 거신을 용이 뒤쫓는 모양새였다. 파라오 셰드멘호테프는 빗물에 젖은 얼굴을 닦지도 않고 감탄했다.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군. 허나 저걸 아틀란티스에 실었으니, 섬을 전쟁용으로 무장시키지 않겠다는 조약이 무색해지긴 하겠군.》

아즈테카 원정은 조약 상 침략 행위가 아니었으므로 별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자기방위’에 해당할 병기는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상당히 든든한 병력이라는 건 확실하다.

퍼엉….

셰드멘호테프는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폭발한 불꽃을 감지했다. 민병 사이에서 아즈테카 전사와 싸우며 정신이 없던 그를 대신해서 그의 매직 아이템이 신호를 전해줬다.

《벌써?》

태양신의 혈통을 살린 빛 속성 마법으로 적들을 불태우면서 그는 전황을 살폈지만,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거대한 우신은 보이지 않았다.

노르드가 했던 말이 생각을 스쳤다.

─저 도마뱀을 운석처럼 땅에 떨어트릴겁니다.

─공룡의 약점이라고 하면 미티어 스웜이죠. 음, 그런데 그러려면 저 뱀 새끼가 추락하면서 밤이나 새벽을 불러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요.

─……보물창고랑 연결되어 있다는 파라오의 〈아공간〉 말입니다만.

─폐하의 보물창고에 ‘그 유물’도 들어있나요?

제정신인가 의심스러운 작전이었지만, 가능성은 높다고 봤다.

아니, 그보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을 따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나.

아무튼 저 괴물을 하늘까지 올려놓았으니, 추락지점을 〈공간이동〉 마법으로 조정한다는 계획도 실행은 가능할 것이었다.

대지에서 힘을 얻는다고 해도 타격이 들어가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단지, 상황을 보면 그렇게 잘 굴러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원하지 않았던 일도 해야 하는 법이지. 살다 보면 말이야.》

셰드멘호테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이 꼬인 건 아쉽지만, 이런 해프닝 정도는 강대국을 다스리는 파라오에게는 그럭저럭 익숙한 일이었다.

《이스테틸!》

【그래, 보았다!!】

그가 부르자 오러를 감은 팔로 적들을 도륙하던 이스테틸이 대답했다.

접근하기가 무섭게 살해당하는데도 아즈테카의 반인반룡들도 공포를 모르고 돌진했다. 그들의 두 눈에는 환희와 광기가 번들거렸다.

【성전이 시작됐다!! 어머니께서 지켜보신다!!】

【죽음 따위 두려워 마라!! 전사의 영혼은 어머니의 품으로!!】

【큭, 으으윽!!】

사기가 진작한 아즈테카의 전사들과 비교하자면 저항세력으로 구성된 저항군의 전의는 비바람으로 진창이 된 흙바닥에 뒹군 듯 보잘 것이 없었다.

개인의 힘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데, 신의 위용은 인간을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들도 하늘을 가려버리는 악룡에게는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셰드멘호테프가 지휘하는 골렘과 발퀴리에들이 안과 밖으로 분전하고는 있지만, 이곳의 성문에서 벌이는 전투는 아군의 열세였다.

저항군의 누군가가 평원을 불태우는 토나슈일루카틀을 보았다.

밤 비가 내리는 이곳과 다르게, 용이 포효하는 세계는 전혀 다른 신들의 나라 같았다. 신앙심은 다르더라도 무력함을 곱씹는 마음만은 같았다.

【……저 자식들한테 이겨봤자 아냐? 이긴 뒤엔 어쩌자고?】

【죽기 위한 싸움 아니냐! 각오한 바지!】

【시발, 개죽음을 바란 건 아니었다고.】

창을 위치로. 무기를 찌르고, 비늘에 막힌다.

그 틈을 동료가 찌르고, 저지한 적을 골렘이란 요상한 바위 괴물이 때려부순다. 작업 같은 절차. 제대로 된 전쟁을 겪지 못한 아즈테카의 군대에겐 잘 통하는 진형이었다.

하지만 그 진형을 유지하는 병사들에게 숨기지 못할 피로와 두려움이 보였다.

다독여주곤 싶어도 셰드멘호테프는 저들의 말을 모른다. 저들의 역사도 몰랐으며, 마음도 몰랐다. 출신부터 신분까지 닮은 점이 전혀 없지 않은가.

그는 저들의 심금에 닿을 말을 알지 못했다.

【무서우냐!! 부모를 잘 둔 복받은 새끼들아!!】

그렇지만 이스테틸은 알았다. 그녀는 같은 피를 잇는 전사들에게 입은 상처로 피를 흘리며 진형이 떠나가라 고함쳤다.

【그거 배알 꼴리는 일이군! 우리는 저기 있는 괴물을 계모로 두고, 너희들한테까지 두렵다면서 배척받았는데! 돌아갈 집이 있는 놈들은 태평해서 부럽기 그지없어!】

이스테틸의 노호성에 정신이 팔렸던 저항군에게 아즈테카의 군인이 손톱을 휘둘렀다.

채앵─!! 다급하게 막은 창은 부러지고, 넘어진 그의 심장을 비와 피로 젖은 전사가 노렸다. 눈을 질끈 감았기에 그는 살을 뚫는 소리가 자신에게서 난 줄로만 알았다.

【끄르륵…!】

하지만 낯선 신음에 눈을 떴을 때, 그가 본 건 자신을 지키며 군인의 배를 뚫은 반인반룡의 전사였다. 그의 뺨에 붉은 피가 튀었다.

스콜라키체의 전사는 부러졌는지 베였는지 모를 팔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다른 군인이 덤벼들었다. 저항군 병사는 부지불식간에 부러진 창을 던졌다.

─푸욱!

비늘에 감싸이지 못한 목에 창이 꽂히고, 다른 저항군들이 그를 마무리지었다.

어안이 벙벙했던 병사는 자신을 지켜준 스콜라키체를 돌아보았다.

【도와줘서 고맙……】

말이 멈췄다. 비늘에 덮인 전사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바깥 대륙의 인간들은 우리의 고향을 야만의 땅이라고 부른다!! 애미애비에게 물려받은 터전과 문화를 향유하면서, 오만하게도 우리가 피를 흘린 이 땅을 그렇게 부른다!!】

병사는 스콜라키체의 손목에서 정성스런 솜씨로 만든 팔찌를 발견했다. 같은 물건이 그의 손목에도 걸려 있었기에 모를 수 없었다.

남편의 안전한 귀환을 기도하는 여인의 머리칼. 이 대륙의 전통이었다.

【그 말이 맞고 말고! 우리나 너희 같은 머저리 뿐이니 야만하다고 불릴 수밖에! 전부 싸잡아서 사람이나 잡아먹는 놈이라고 불릴 수밖에!

나는 그 모든 게 역겹다! 이따위 게 내가 고른 삶인가?! 이게 우리가 원하던 인생이었나?! 아니, 우리는 한 순간도 스스로 고른 적이 없었다!!】

외치던 이스테틸은 밝게 빛나는 신룡의 영역을 가리켰다.

【봐라, 개자식들아! 봐!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라고!! 저 우신의 뜻을 따라서, 저 년을 섬기는 미친 놈들과 그 끄나풀을 따라서 살던 게 우리다!

이 땅의 병신들은 부모도 고향도 미래도 골라본 적이 없어! 지금 싸우는 것조차 바깥에서 찾아온 개자식들에게 꾀여서 쫄래쫄래 따라온 멍청이지!】

쓰러진 스콜라키체를 보던 등에 피가 쏟아져서 저항군의 병사는 다시 뒤를 돌았다. 그보다 훨씬 강한 식인종들은 변함없이 성채에 빼곡했다.

【그럼 어쩔 거지? 이번엔 배알도 없이 우리를 도와준 자식들을 신으로 섬기겠나? 오오, 정정한 신이시여! 참된 태양신이시여! 하고 너희 가족들 잡아 바칠 건가?!】

【개소리 마, 씨발!】

누군가가 외쳤다. 어쩌면 그가 외쳐놓고 자각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똑같은 것이다. 그가 소리치고 싶었던 말과 똑같았으니까.

오러를 뿜어서 적을 밀쳐낸 이스테틸이 외쳤다.

【저들이 인간으로 보이나! 신의 수족으로 죽고 싶어하는 놈들이 인간으로 보이나! 네놈들과 네놈들의 가족은 저리 되고 싶어서 이 싸움에 꼽사리를 꼈나!!】

【추호도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고자 왔다!! 삶을 되찾고자 왔다!!】

【저건 우리들 막시카의 본질인가!! 아니면 이 땅을 더럽힌 괴물인가!!】

【괴물이다!! 물리쳐야 할 괴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같은 도시에서 놀던 친구가 다음날에는 없어지는 인생을 살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먼저 알아챈 누군가가 제물로 바쳐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숨을 죽이고 그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저 신의 제국에 반역하려는 머저리들끼리 모였다. 바로 오늘까지 그렇게 오순도순 병신처럼 모여만 있었다.

의지를 잃었던 팔과 다리에 활력이 솟아났다.

저 하늘에서 솟아난 성처럼 전설적인 무언가가 못 되더라도, 뭐 어떤가. 손가락만 빨면서 살다가 구원받고, 그걸 좋답시고 헤헤 웃는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

정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민족의 자결성? 생각해 본 적이나 있었나.

적어도 같이 싸우는 바위나 이상하게 예쁘장한 날개의 전사들은 침략자가 아니었고, 배고프다고 아들과 딸의 심장을 파먹는 새끼도 아니었다.

아직은 그거면 되지 않겠는가.

굶주린 배에 고기부터 욱여넣었다간 위가 꼬여 죽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스테틸은 셰드멘호테프의 어깨를 잡았다.

【모여라, 멍청이들아!! 야만의 시대를 끝내자!!】

【Makssika! Makssika! U! Onkisalistli ualas kenih in iluitl uala!】

─막시카, 막시카! 날이 밝으면 행운도 찾아오리!

너나 할 것 없이 목 놓아 노래를 부르면서 저항군들은 가장 가까운 골렘들을 붙잡았다. 목이 쉰 이스테틸은 뇌에 박아둔 단어를 나열했다.

《파라오. 마나. 병사 숫자. 충분한가?》

《나약한 전사들이 8천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좀 못 미덥군.》

처음에는 조금 더 많았을 것인데, 이 짧은 전투 동안 사기가 추락하며 죽은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파라오는 입꼬리를 호방하게 비틀었다.

《그러나, 용맹하고 자랑스러운 주민들이여!! 운이 좋은 줄 알거라!! 이 몸이 데려온 골렘의 남은 숫자는 현재 약 2천 5백!!》

셰드멘호테프는 웃으며 황금색 십자가를 꺼냈다.

《그대들과 합쳐, 딱 좋게 1만 언저리니라!!》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태양의 십자는 새벽과 밤이 뒤섞인 우신의 영토에서도 눈부시게 마나를 들이마셨다.

【Ken mitskateh, ikniuh iuikpa in okse ueyaltepetl!  Mitskateh pakini! (잘들 지내나요, 건너편 도시의 친구들! 오늘도 행복하신가요!)】

【Niltse, ketsaltitla kuanotstli! Makuali ualakan! Mitschiua xitlaneki itlah nik tlakua?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손님! 환영합니다! 드실 것 좀 드릴까요?)】

【Tlakui mokauiuh!  Xitlapia se yokox kayoiluitl! (한가로이 있다 가세요! 평화로운 하루 되시길!)】

골렘의 동력로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사용법은 몰라도 좋았다. 훌드폴크의 옥새에서 뽑아낸 기술력을 정련한 듀나미스 공방의 특주품. 마나를 저장하는 기능 정도는 이세계의 보편적인 능력이다.

슈와아아아아악─!!

1만 명의 의지가 한 곳에 모이며, 모든 골렘의 총의를 지배하는 파라오의 곁으로 모였다. 인간의 몸에는 과분한 출력이지만 문제시할 것도 없다.

적들이 용의 혼혈이라면, 그는 태양신의 아들.

마나를 견딜 영혼의 그릇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태양신의 아들, 라처럼 빛나는 자(Xa.f ra), 이 셰드멘호테프가 호루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신의 눈을 기만하는 밤이여, 걷히거라!!》

마나를 흡수한 태양의 십자가 하늘에 황금빛의 불꽃을 쏘아냈다. 그 빛은 언젠가 노르드가 환상 속에서 봤을 때만큼 강렬하게 번뜩이며 치솟았다.

─번쩍!!

그리고 우신이 초래한 밤을 걷어내며, 두 조각 난 하늘의 어둠에 태양 빛이 비추는 넓은 구멍을 뚫어냈다.

대지와 밤의 우신이 유린하는 천공성까지 빛이 비추도록.

《노르드여. 그대가 바라던대로 밤은 걷었노라. 대지와 밤의 신을 죽여보이거라.》

셰드멘호테프는 무리한 마나의 운용으로 화상을 입은 팔을 내색하지 않고, 태양의 십자를 다시금 보물창고에 거뒀다.

《허나…… 감히 태양신을 사칭하는 저 악룡은 어쩔 셈이지?》

거신과 맞서는 악룡은 상처 하나 없었다.

우신의 밤을 끝낼 유물은 과거 이 땅을 찾았던 어리석은 파라오의 유지에 따라서, 셰드멘호테프 스스로가 찾아와서 사용했다.

하지만 낮을 끝내고 밤을 불러낼 방법은 그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혹여나 그만한 유물이 또 있는 것일까. 태양의 십자에 버금가는 유물이?

아틀란티스. 갑옷을 입은 거신. 천공의 성에 저 날개 달린 기사까지.

벌써 강대국의 일대 군사전력에 필적하는 온갖 유물과 병기를 꺼내놓고도, 아직도 그만한 여력이 남았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 염려를 품었던 셰드멘호테프는 빛을 눈에 모으는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했다가, 곧 누군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한가. 노르드 울프헤딘, 사람을 부려먹는 솜씨가 대단한 남자야.》

일국의 왕, 반인반신의 파라오로 모자라서 다른 영웅까지 부려먹는가?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라면 적당한 유물을 가지고 있을 만 했다. 세상 곳곳의 값비싼 매직 아이템은 대부분 모험가 길드를 거쳐가니까.

차분하게 웃음을 짓는 파라오의 시선.

그 한구석에 악룡을 향해서 질주하는 자그마한 등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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