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46화 (745/1,009)

***

아틀란티스의 토지에서 태어난 거신 골렘.

지상의 인간들에게 경외심을 심어주는 전쟁의 신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골렘과 우신의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노르드의 아내들도 그렇게 편한 입장은 아니었다.

“라리루라, 또 오느니라!”

“날씨가 쾌청해서 알아차리기는 편하네요! 눈이 부신 게 흠이지만요♡!”

라리루라는 거신 골렘에 〈부여〉된 마법과 그 동력로를 회전시켰다.

아틀란티스의 토지, 오리할콘, 미스릴, 무슈흐렐리틀의 반신까지.

돈 주고도 못 살 재료들에 돈을 퍼부어서 만든 골렘이다. 실제로 마스터 클래스 급의 괴물들과도 싸워본 노르드의 견적으로는 우신들에게도 어떻게 덤벼볼 만한 무기였다.

맞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브레스! 피해욧!”

호들갑을 떨며 라리루라는 거신 골렘을 피하게 시켰다. 하늘에 똬리를 틀고 광선을 뿜어내던 토나슈일루카틀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대로는 좋지 않았다. 전역이 확대될 때마다 〈공간이동〉으로 멀리 떨어지길 반복하던 일행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세계에 제공권(制空權)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그녀들도 안다.

하늘로부터 계속 공격만 당하고 있어서는 이길 싸움도 못 이긴다는 걸.

“아까부터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있어.”

“저도 떨어트릴 준비라면 하고 있는데요!”

프랑과 함께 컨트롤을 도맡은 라리루라의 말도 맞았다.

토나슈일루카틀은 덩치만큼 무겁지는 않았기에, 손에 닿을 높이까지 올라오면 끌어내릴 순 있다. 잡아서 땅에 억류하면 반격도 쉬워질 것이었다.

─Huuuuuu…….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토나슈일루카틀은 멀리서 포격만을 반복했다.

급조된 골렘의 한계를 간파당한 것일까?

허겁지겁 만들어낸 무기다. 원정 때문에 급하게 만들고, 우신과 마주쳤을 때의 보험으로 투자했을 뿐인 임시방책이기에 오래 움직이지는 못했다.

운이 나빠서 우신과 싸우게 되면 100% 부숴질 일회용 병기.

그렇게 가정하고 설계한 물건이라고 들었다.

싸우다가 부숴지면 아틀란티스 조약에 맞춰서 폐기처리하면 될 뿐이고, 멀쩡하게 돌아오면 휴스로이트에다 적당히 박아놓으면 그만이다.

〈인신〉이나 우신처럼 손 쓰기 힘든 적들에게 맞서고자 만든 물건이지만, 정작 만든 이들부터가 신급 존재는 아니잖은가. 한계는 있을 수밖에.

“무슈흐렐리틀의 영역에 태양이 발생한 후부터 신중해졌다.”

지쳐버린 바이콘 마법사들을 보는 베로니카.

“우리가 진심으로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가능성이 낮더라도 질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심산이지. 아직 무슈흐렐리틀도 살아있다. 체력 낭비는 싫은가 보군.”

“신 치고는 너무 쪼잔한 마인드 아니에요?”

“화가 난다면 주먹질로 해소하거라. 때려도 욕 할 사람은 없으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던 프랑은 수시로 미스릴 메달을 확인했다.

“……다나한테서 연락이 안 와.”

“창세의 권능, 못 쓰는 모양이구나.”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베로니카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토나슈일루카틀의 토벌 계획은 3단계.

우신 2마리를 분리하고, 땅에 떨어트리며, 그런 다음에 ‘낮’을 차단한다.

과정마다 따라붙는 ‘이럴 때는 이렇게 하자’라는 상의를 빼면 간단명료한 순서다. 처음 생각한 계획대로라면 한참 전에 2단계에 들어가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2단계의 핵심인 바이콘들과 다나의 영향이다.

“다들 마나 소모가 컸어.”

무슈흐렐리틀 때처럼 〈공간이동〉으로 토나슈일루카틀을 땅에 처박든지, 신좌를 가진 다나가 창세의 권능을 써서 거대화의 권능을 중화시킨다.

3단계의 핵심, 태양을 가릴 차폐막은 저 우신을 완전히 덮을 만큼 크게 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 2단계에서 저 바보 같은 덩치를 줄여놓을 수밖에.

땅에 떨어지면 거대화가 풀린다.

권능이 무효화되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몸집이 줄어들 것이었다.

그런데 실전에 와서 작전이 틀어버렸다.

이제는 거신 골렘이 낚아채서 떨어트리는 방법 뿐인데, 적이 눈채버리고 말았다.

거대해질 뿐인 권능이지만 다른 권능과 섞이면 이리도 곤란할 수가 없었다.

‘아직 낮은 유지되고 있으니 떨어져도 안 죽는다’는 생각으로 방심해주길 바랐지만, 우신의 지혜는 인간들의 얄팍한 작전을 간파한지 오래였다.

프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을 끌면 노르도 위험해져.”

다나를 재촉할 수는 없다. 프레이야의 성을 불러냈는데 추가로 태초의 권능까지 시전하라니? 그녀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잖은가.

그렇지만 그녀들의 고뇌를 비웃듯, 사태는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Huuuuuuuuu.

공격을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것만 같던 토나슈일루카틀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프랑은 몸 속에 차가운 수은을 부어진 기분에 전율했다.

“……베로니카, 위치를 들켰어!!”

─번쩍!!

프랑이 그렇게 외치자마자 베로니카는 주문을 다 외워둔 〈공간이동〉으로 아군의 위치를 옮겼다. 그녀들이 있던 곳을 특대급의 광선이 불살랐다.

순간적으로 눈부신 판단력을 보여준 베로니카는 기뻐하지도 않고 고함쳤다.

“연속해서 온다! 다음 회피!”

번쩍─!!! 언덕이 폭발하면서 흙먼지를 피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바이콘이 준비해 뒀던 〈공간이동〉이 타이밍에 늦지 않았지만, 직전에 비해서 훨씬 아슬아슬한 회피였다.

──번쩍.

그러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었다. 또 한 번 빛나는 토나슈일루카틀의 구강(口腔)을 본 프랑이 입을 벌리자, 라리루라가 팔을 당겼다.

끼기기긱─ 콰아앙!!

거신 골렘이 사선(射線)에 몸을 끼우며 공격을 막아냈다.

쿠구구구궁…!! 화르륵!! 광선이 휘저은 평원이 대화재를 일으켰다.

아니, 막았다는 표현은 적절한 걸까? 그녀들이 즉사하는 것보다는 나아도, 소모전에서 유일하게 승산이 있는 무기에 피해를 입었는데?

“꺄아아아아아악──!! 또 와요!! 〈공간이동〉!! 〈공간이동〉!!”

“안 돼! 기다려!”

토나슈일루카틀이 광선을 연발하려 들자 놀라며 소리치는 라리루라. 그런 그녀를 프랑이 저지했다. 베로니카는 외우던 주문을 급하게 멈췄다.

“이만한 거리를 한 번에 이동했는데 바로 우릴 노렸어! 위치를 옮겨도 즉각 발견된다면 피해봤자 마나만 낭비하고 끝이야!”

하지만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알아차렸지? 프랑의 머리는 이제까지 없을 만큼 회전했다.

‘냄새!’

맞다. 마나의 냄새다.

반인반룡들, 저 스콜라키체들도 가졌던 마나를 냄새로 구분하는 능력. 그걸로 반나절은 걸릴만큼 먼 곳으로 도망친 그녀들의 위치를 알아차렸다.

【프란체스카 님,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가만히 맞아줄 수만도 없사옵니다.】

급하게 주문을 외우면서 아델라이데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희가 피하지 못하면 골렘의 피해가 커지고, 피하면 피하는대로 작전 수행의 최중요 물자인 마나가 고갈되옵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으로는……】

【알아요. 그래도 지금보다 멀리 떨어지면 골렘에게 조종신호가 못 가요.】

─콰아아앙!! 거신 골렘에게 꽂힌 광선이 팔을 녹이고 뼈대를 드러냈다.

프랑은 동력로의 마나로 골렘을 수복시켰다. 저 유니콘 흑마법사 아비두스가 했던 것처럼 본인의 마나의 부담이 가지 않는 마나 운용법이었다.

그러면서도 프랑은 이 전투에서 자신의 실력이 크게 증진되는 것을 느꼈지만, 이길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무심코 노르드의 모습을 찾게 된다.

─Hhhhhhuuuuu…….

웃음소리로도 들리는 울음을 퍼트리며 토나슈일루카틀이 비행했다.

적의 접근. 바라 마지않던 상황이었지만 가까이 접근해오는 걸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 입에서 끊임없이 브레스가 뿜어져나오고 있었으니까.

쿠와아아아아아아아─!!

태양의 열을 그대로 지상에 꽂히는 듯한 광선!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데도 잔열의 여파가 땅을 달구고 공기를 뜨겁게 했다. 골렘의 바로 아래는 용광로가 무색할 지상의 불지옥으로 변했다.

부그르르르르르…!!

땅이 끓어올랐다. 토나슈일루카틀은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 동상을 앞발로 붙잡았다. 건물보다 큰 거신 골렘도 그녀의 손에 잡히면 갓난아이와 다를 바 없다.

광선은 쉼없이 뿜어지며 골렘의 몸을 융해했다.

관절이 완전히 눌러붙고 금속 덩어리로 전락한 적을 보고서야 그녀는 광선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하늘에서는 신기루의 환상 같던 그 아가리는 땅에 내려오자 섬도 통째로 삼킬 듯 했다.

“안 돼!”

프랑이 비명을 질렀다.

신을 쓰러트릴 유일한 무기가 저대로 당하게 둘 수는 없다.

피가 흐를 만큼 주먹을 쥔 베로니카가 노르드의 안전과 작전의 성공률을 대가로, 〈공간이동〉을 발동하고자 가진 마나를 회전시켰을 때.

“프란체스카 양은 혹시, 저희 드워프의 역사를 알고 계십니까?”

그 모든 상황을 다른 세상 일을 지켜보는 듯이 묻는 질문이 프랑의 귀를 파고들었다.

“……콜리도 경?”

프랑은 무심코 그의 이름을 되뇌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올 뿐.

“아주 옛날, 별조차 없던 밤하늘에 어느 암소와 거인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뿔이 없는 암소 【아우둠라】와 우둔한 거인 【이미르】죠.”

프랑이 당황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을 때, 토나슈일루카틀도 행동을 멈췄다.

우신의 눈이 지상을 훑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이미르】는 저희가 익히 아는 신들에게 죽고, 그들은 그 시체에서 넘친 권능으로 세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는 신의 시체가 필요한 겁니다.”

이 우주는 9개의 차원과 지구,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세계수로 구성된다.

그리고 세계수에 또다른 열매, 지구라는 우주를 만들어내려면 라그나로크로 목숨을 잃었던 신들의 권능과 영혼이 필요했다. 그들의 동의도 말이다.

“그리고 드워프는 【이미르】의 시체에서 태어난 종족입니다. 신족은 아니지만 역사는 몹시 길죠. 각 신화의 주신들과도 항렬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신에게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태어난 종족.

탄생과 창조를 관장하는 어린 생명.

누구에게도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뛰어난 것일까.

“어쨌든, 그런 핏줄 덕분에 저희 드워프는 신들과도 피의 궁합이 잘 맞는 걸지도 모릅니다. 비루할지언정 명색이 신의 근친종이니까요.”

그 말이 어디서 들려오는지 찾던 프랑은 간신히 눈치챘다.

불꽃이 타오르고 마그마가 끓는 땅.

토나슈일루카틀의 천벌이 휘젓고 지나간 불 속에 그는 있었다. 인간이라면 죽고도 남을 불지옥에 서 있던 것이다.

“그래서, 예. 뭐 그렇습니다. 그 황녀님의 언니 분이 납치를 당한 것도, 아즈테카의 바보들이 드워프를 선호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제가 원인인 셈이네요.”

키아라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그녀들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수 km 떨어진 그녀들에게도 들릴만큼 사람답지 않은 성량이었다.

작은 몸으로 목이 찢어져라 소리쳐서? 아니다. 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단지 거대한 몸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성량일 뿐.

“옛날에 죽었다는 ‘으뜸의 아들’ 이후. 어머니의 피를 가장 짙게 이어받은 놈이, 인류와는 자손을 보지 못할 만큼 몬스터에 가깝게 태어난 놈이……”

─톡톡.

키아라는 이마를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또 골치 아프게도, 하프 드워프였거든요.”

─Hooooooooooo……!!!

석상처럼 굳어있던 토나슈일루카틀이 포효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와의 재회.

감격에 찬 어미의 눈물이었지만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울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반세기 만입니다, 어머니. 가족의 연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는 않는가 보더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한숨을 쉰 키아라는 눈을 반개하며, 작전 결행 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새로 사귄 몹쓸 친구가 저를 꼬드기면서 이리 말하더랍니다. ‘부모와의 연을 마무리 짓지도 않고 자식을 보는 건 불효막심한 짓’이라면서요.”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아차렸던 걸까.

머리는 좋은데 성격은 나쁜 사람은 우정을 나눌 대상으로서는 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실감도 되었다.

아니면 대충 지른 말에 혼자 찔려버렸던 걸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어리석은 신은 현명한 인간에게 속아넘고 마는 게 도리인 것을.

“죄송합니다. 어머니.”

헤벌쭉 웃는 하프 드워프의 모습이 사라졌다.

“못난 아들은, 나쁜 친구를 사귀고 말았습니다.”

─번쩍.

그렇게 말했을 때, 키아라는 토나슈일루카틀의 머리 위에 있었다.

베로니카에 의한 〈공간이동〉. 그의 손이 낡은 유물을 기동한다.

신을 떨어트리기 위한 제 1보가 펼쳐진다.

─찌이이잉!!!

대낮의 빛을 가리는 암막결계가 지상을 덮었다.

휴스로이트에서 감염자들을 가두는 데 사용했던 것과 같은 결계였다.

지금 같을 때 정체를 감추기 좋겠다는 생각과, 언젠가 어머니와 재회할 순간을 고려하고 총장의 권한으로 챙겨둔 물건이다.

“태양이 가려졌다!!”

바이콘 마법사단의 누군가가 고함쳤다. 프랑이 녹아내린 거신 골렘을 회복시켰다.

‘낮’의 영토는 어디까지 하늘에 생기는 것. 빛을 가리고 밤을 부르는 결계로 덮으면 권능의 출력에 직접 맞서지 않아도 우신의 낮을 끝낼 수 있다.

펼쳐진 결계는 저번보다 까마득하게 크다.

토나슈일루카틀도, 거신 골렘도, 키아라 본인도 가둬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결계.

하지만 태양의 십자 때랑은 다르다. 이 결계는 오직 그의 마나만으로 감당하는 것이었다.

키아라 콜리도는 오러를 잘 다루지 못한다.

마스터 클래스다운 안목도 없었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어기지 않으려고 노르드와 네페르티티의 훈련 요청에서도 내빼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뤄낸 업적은 진짜다.

위험천만한 유적 탐사를 혼자서 해내는 강함과 아즈테카의 맹독성 밀림을 왕복하는 무모한 탐험. 판데믹 사건에서 벌레 인간들을 상대로 몸을 바쳐 시간을 끈 희생정신.

그것들은 전부 진실이며, 또한 일부분 거짓이다.

그 모든 고행(苦行)이 키아라에게는 위험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Huuuuuuuuuuuuuuuuuuuu!!!!

토나슈일루카틀이 외치고 키아라의 육체가 뒤틀렸다. 뼈가 맞춰지며 살이 부풀었다.

─우드득, 우득!!!!

본능을 해방하며, 인간형으로 끼워맞춘 육체를 본래의 것으로 되돌린다.

벌레로 변한 감염자들의 살육본능마저 꺾어버린 그 모습으로.

모험가면서 팀원 1명, 부하 1명 데리고 다니지 않은 것은 왜인가.

다른 사람의 조력이 필요할 정도의 위험이 발생했을 때, 하프 드워프 모험가라는 거짓말 때문에 팀원의 위기에도 힘을 쓰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친구를 잃고 혼자만 괴물로서 살아남은 적이 있었으니까.

거짓말 때문에 친구들을 죽게 놔두는 괴물이 될 바에야, 혼자서 활동하는 모험가가 되는 편이 더 낭만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노르드의 세 치 혀와 이스테틸의 투쟁심 앞에 넘어가 보기로 했다.

“돌고 돌아 원점이라. 이 또한 낭만이 있네요.”

어차피 들켜버린 김에 정체를 밝히고 말았지만, 이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던 반 세기를 그리워하게 될까.

그래도, 괴물인 채로 잘 살고 싶었으면 고향을 떠나지도 않았다.

키아라 콜리도의 행동원리는 그것 뿐이다.

인간성과 낭만으로 괴물의 육신을 움직인다.

그 신념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든다고 믿으며.

사람을 잡아먹는 용을 굽어보며, 사람으로 살아온 용은 곧바로 자신의 권능을 펼쳤다.

“【원초 해방(Mochiuayotl Amotlaxtlauas)】.”

마스터 클래스의, 초월종 몬스터의 권능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Hwuuuuuuuuuuuooooooooooooooo!!!!

금색의 날개와 사지(四肢)를 갖춘 용이 우신의 몸을 후려쳤다.

진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도, 팔에 담긴 힘은 반신에 걸맞다.

─Hhk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

토나슈일루카틀은 그 타격과 배신에도 추락하지 않고 견뎌냈다.

혈통을 저주로 여기더라도 그녀의 아이다. 배에 품고 잘못을 참회하는 날까지 그 영혼을 보살피겠다는 마음으로 용의 어머니는 입을 벌렸다.

─으적!!!!

하지만 그때, 새빨갛게 달궈진 상태로도 관절을 복구시킨 거신 골렘이 그 턱을 올려쳤다. 프랑은 마나 고갈의 영향을 버티며 소리쳤다.

“아들한테 혼날 만큼 못난 엄마였다면, 수치심 정도는 가져야지!!”

키아라의 날개가 날아오르는 힘을 상쇄하고, 그 체중으로 몸을 억누른 찰나.

투콰아아아앙─!!!

지독하게 퍼부어진 광선의 열을 과부하 상태로 표면에 돌린 거신 골렘이 권능의 가호를 잃어버린 아즈테카의 모신을 지면에 때려박았다.

─Kuuuuaaaaaaaaaaaaaaaaaaaa!!!!!

거대하던 악룡의 몸이 땅에 메다꽂히고, 작아진 육체는 암막결계에 거둬진다.

무대 준비는 끝났다. 그토록 바라던 클라이맥스다.

“……후우.”

노르드는 지상을 훔쳐보던 천리안을 끄고 땀을 닦으며 피식댔다.

“즈기요, 마누라님들? 이 씹새끼랑 뛰댕기는 거 식스썸보다 피곤했는데, 좀 더 빨리 와주실 수는 없었나요?”

“……나름 서두른 게 이거.”

“병사를 모아오라고 한 건 당신이면서. 준비가 미흡한 것보단 낫잖아요?”

네페르티티와 티르시의 대답에 노르드가 입술을 삐죽대자 다나도 쿡쿡거렸다.

─키칭! 그녀의 양손이 군단을 강화하는 술식을 펼쳤다.

“불만이 있으면 얼른 끝내자고. 나도 팔자에도 없는 여신 놀음은 쪽팔리니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프레이야의 성에서부터 뛰쳐나오는 반인반룡의 에인헤리들.

지상의 전투에서 발퀴리에들에게 수확된 전사의 영혼들은, 토나슈일루카틀이 아닌 사신의 여왕의 품에 안기며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군세가 진군하고, 천공신의 병사들이 날아올랐다.

【기동 완료. 적성존재의 소질을 확인합니다.】

【종족 판단 무의미. 에인헤리 적성 전무.】

새롭게 태어난 발퀴리에들은 진형을 갖추었다.

그녀들의 창끝이 살기를 품은 빛으로 번뜩였다.

【외적으로 규정. 소멸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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