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단의 전투는 시종일관 일방적이었다.
〈크악!!〉
좋다고 덤벼든 주제에 자칭 전쟁상인들은 놀랄 만큼 약했다.
아니, 원래 가진 힘보다 약해진 것이다. 단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멍청한 놈들!! 화살부터 피해라!! 칼 든 놈만 주의할 게 아니라, 컥!!〉
─퍽!!
소리도 없이 날아간 마나의 화살이 지휘를 하던 남자의 미간을 관통했다. 깔끔하고 정확한 솜씨는 10분 내내 백발백중이었다.
피하라고 말한 장본인이 죽어버렸지만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전쟁터를 구르며 잔뼈가 굵어진 윈스턴도 쏜살 같은 화살은 거의 섬광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거의 시위를 놓자마자 표적에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핏빛 사선이 허공에 그어지면 반드시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졌다.
정확하게 적의 중추만 사살하는 솜씨는 집단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장을 전부 파악하고 있어. 놀라울 지경이군.’
주먹으로 골통을 부수며 윈스턴은 감탄했다.
시야가 넓을 뿐더러 후방에서 아군을 정확하게 피하며 수평으로 쏘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창을 뻗으려던 놈이 목에 화살을 기르고 엎어지는 것이 그만큼 의지가 될 수가 없었다.
노련한 윈스턴마저 그랬으니, 혈기도 많고 겁도 많은 젊은 것들은 오죽할까?
머리에 피가 오르기 쉬운 젊은이들은 용감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쫄지 마! 니르바나 양이 지켜보신다!〉
〈야 이 씹때꺄!! 내 앞에서 머뭇댈 거면 비켜!! 나라면 더 잘 싸울 수 있어!!〉
〈뭐, 씨발아?! 대가리에 바른 기름이나 헹구고 말 해!! 니들 니르바나 아가씨한테 잘 보이고 싶어갖고 그러지?! 실버 클래스 밑으로는 절로 꺼져!!〉
〈씨, 씨발! 누가 잘 보이고 싶대?! 난 그냥 좀 남자다울 뿐이야, 새끼야!!〉
아닌가? 뇌가 아니라 좆에 지배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핏기에 충동질된 단원들은 명망도 없이 돈만 가진 윈스턴으로서는 절대로 조성할 수 없는 용맹함과 충직함을 보여주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역시 봉이었군. 잡길 잘 했어. 하지만──’
정작 그렇게 칭찬과 흠모를 한 몸에 받은 니르바나는 모든 감정이 사라진 표정으로 시위만 당기고 있었다. 거의 화살을 쏘는 골렘 같았다.
인간성과 감정을 배제한 미녀에게서는 단 하나, 살기만이 흘러넘쳤다.
‘지독하군. 감정을 없애는 훈련을 받은 것인가?’
키타이 출신이라면 혹시 모를 일이었다.
〈제, 제길. 이딴 곳에서…… 컥!〉
〈기회다! 쓸어버려!〉
철저하게 살기를 뿜는 니르바나의 손에 습격자 집단은 와해되었다. 전멸하기까지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윈스턴 탐사단에는 사망자도 없었다.
하지만 전투의 흥분이 가신 뒤, 고용된 이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습격 자체는 별 것 없었지만,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군.〉
〈왜 그렇습니까? 올가 씨!〉
골드 클래스인 그의 중얼거림에 단원들의 귀가 쫑긋 섰다.
골드 클래스를 넘는 얼마 없는 인재들은 십인장으로서 각 파티를 통솔하는 파티장 역할을 맡았다. 오크 학살자로 유명한 올가도 그랬다.
〈놈들은 유적의 공략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유적이 엄청난 보물창고인 겁니까?!〉
〈틀렸어. 유적에 몬스터가 없는 거다.〉
올가는 한껏 폼을 잡으면서─니르바나를 힐끔거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역설했다.
〈던전이 아닌 거야. 단순한 보물창고였기에 그 내용물을 두고서 탐사단끼리 경쟁이 벌어진 거다. 몬스터 사냥보다는 인간끼리의 싸움이 되겠군.〉
〈으음.〉
고용된 이들은 탐탁찮은 반응이었다.
싸움을 꺼려서가 아니다. 몬스터보다는 사람이 위험하단 걸 알아서였다.
‘경쟁자끼리 싸운다고?’
‘그럼 돈 주는 양반 입장에선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몬스터였으면 승산이 안 보일 때는 탐사단장도 물러나겠지만……’
몬스터가 강해서 후퇴하는 거라면 괜찮지만, 딴 놈이 보물을 쓸어가는 건 배가 아파지는 법. 이쪽 바닥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멋진 솜씨였습니다, 니르바나 양!!〉
그래서 플라부스는 행동에 나섰다.
〈굉장한 궁술이셨습니다! 이렇게 뛰어나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보수를 더 늘려드렸을 텐데요! 일당을 50쿠퍼에서 3실버로 올려드리겠습니다!〉
거의 니르바나를 중심으로 모인 탐사단 아닌가.
단원들의 탈주나 사기 저하를 막고 탐사를 성공시키려면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아둬야 했다. 지급받은 예산을 탕진해서라도!
플라부스는 피에 젖은 프리실라의 도끼를 보고 서둘러서 첨언했다.
〈아, 물론 일행 분의 몫도 올려드리죠! 당연히 특별수당은 별개구요! 저희가 이번에 투자를 많이 했거든요! 보수로 곤란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 흑심은 없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뭐.
〈그래.〉
하지만 니르바나는 완전히 인형 같은 표정으로 돌아서버렸다. 좌절한 플라부스의 등을 두들겨준 윈스턴은 눈에 힘을 주고 여인을 쏘아보았다.
‘내가 조금 안일했군.’
저만한 강자가 이유도 없이 나타나서, 이런 별 볼 일 없는 탐사단에 합류한다?
윈스턴은 그걸 행운이라고 치부하지 않았다.
‘유물만 좀 가져갈 생각이라면 방치해도 돼.’
안전을 대가로 노획품을 철저하게 빼앗기는 걸 기피했을 뿐이라면 상관없다.
가주로서는 유물이건 뭐건 전부 독점하고 싶은 게 본심이겠지만,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져가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저런 인재를 고용하기 위해서다. 그 정도는 용인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목적이 있다면?
‘정체를 알아봐야겠군.’
아직 어떤 유적인지도 모르지만, 눈 훤히 뜨고 빼앗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니르바나 덕분에 가라앉으려고 하는 분위기는 되살아났다.
─조금 위험해도 돼. 아니, 위험한 게 딱 좋아!
─니르바나는 궁수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구해주면……
‘흑심이 뻔히 보인다, 못난 놈들.’
끌끌. 윈스턴은 동정심을 품었다. 저만한 솜씨를 보고도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건가?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낮게 잡아도 골드. 그것도 최상위.’
높으면 플래티넘 클래스는 될 것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착각하도록 두는 게 더 이득인 건 사실.
고민하던 윈스턴은 가가대소를 터트렸다.
〈다들 전의에 불타는 듯 해서 다행이군! 어서 출발하지! 자고로 모험가라면 보물을 많이 건져야 나 잘났소 하고 어깨를 펴고 다닐 것 아닌가!〉
그들의 눈에 쌍심지가 켜진 건 따로 말할 것도 없었다.
─참을 인 3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데 지금 나 대충 300번 정도 참은 것 같거든? 내가 100명치 목숨을 구한 셈 치고, 그거 써서 저 놈들 죽이면 안 될까?
─……선배. 나중에 유적 근처 도시에 묵을 때 쓰담쓰담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며칠만 더 꾹 참는 거에요? 알겠죠? 자, 손가락 걸고 약속.
─테에에엥…… 프리실라 마망……
─엄마가 많아서 좋으시겠어요.
그와 그녀의 텔레파시를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은, 천만다행히도 없었다.
***
SAN치를 쉼없이 깎아내는 시간이 끝났다.
“라리루라리루라리리라루리루……”
“네, 네~. 고생 많으셨어요~♡”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여관─윈스턴이 내 준 고급 숙박시설─에 들어오자마자 라리루라에게 안겼다. 하필 엘프로 분장한데다 볼륨도 작아져서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흐응. 색다른 느낌은 안 들어요? 선배가 원하신다면 다른 여자랑 하는 느낌이 들도록 변신 목걸이를 써 드릴 수도 있는데요~?”
“그래봤자 프리실라보다 귀엽진 않을 거 아냐.”
“……아핫♡! 선배도 참~! 듣는 후배가 기뻐지는 말씀을 해 주시네요~! 좋다구요~? 서비스 타임! 가슴만 변신 해제에요☆!”
─말랑말랑.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불만을 빠르게 캐치해낸 라리루라가 육체 나이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비록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이 찌찌빵빵은 라리루라다.
“그치만 저는 선배가 언니라서 약간 덜 선배한 기분이에요.”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가도 이해가 쏙쏙 되는 게 싫다…….”
징징거리는 목소리까지 암컷이라서 역겹다. 나, 이러다가 다시는 변신 마법 못 쓰는 거 아냐? 막 변신 알레르기가 생길 것 같은데.
“역지사지 미러링 효과 쌉오져. 여자의 기분을 알겠더라. 닷씨는 아내님들의 다리나 가슴에 눈을 힐끔거리지 않겟읍니다……”
“그건 그것대로 슬픈데요~?”
“아 그럼 취소. 앞으로도 자주 훔쳐볼게.”
“아핫♡ 싱거우셔라.”
그렇게 며칠 내내 ‘암컷’당한 극한의 스트레스를 라리루라의 체온으로 해소한 나는 메달에서 편지 몇 통을 꺼냈다. 남들 앞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못 봤던 것이다.
─저희도 도착했어요. 유적도 찾아냈고요.
티르시의 필적이었다.
“뭐라고 그러세요?”
“저쪽도 유적을 찾았대. 지금은 탐사 중인데, 저 안에서도 몬스터가 나온다더라. 역시 이계의 소환수였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대.”
아내들은 후방진지에서 노르드 D(대역) 울프헤딘이랑 안전하게 대기 중.
그러는 동안 발퀴리에와 키아라가 유적 안으로 들어가고 있댄다. 우리 작전에 낚인 하이에나들도 많다지만 대대적인 싸움은 벌어지고 있지 않다나 뭐라나.
엘프 귀를 건드리던 라리루라가 말했다.
“유적이란 건 그거죠? 지저의 탑에서 찾은 보물지도.”
“세계 지도야. 거기 있던 전선기지 중에서 특히 히타이트랑 가까운 곳.”
하이에나나 다른 이들이 병신도 아니고, 물고기 낚는 데에도 진짜 미끼가 필요한데 아무런 유적도 없는 곳에서 땅만 팔 수는 없잖은가.
“미끼용 유적이지만, 진짜 있어서 다행이었지.”
저 유적이 히타이트의 유산은 아니다.
해도에서 봤던 국토보다 바깥이거든. 고대 오르왈리아 령의 유적인데 낚시는 통했댄다. 하이에나들이 그 차이를 구분하진 못할 것이니까.
라리루라는 턱에 손가락을 대면서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렇지만…… 신기하네요?”
“뭐가?”
“그 왜, 지저의 탑은 사실 엘릭서 같은 포션을 전선기지까지 보급하기 위한 연구소잖아요? 근데 왜 포션을 전세계의 모든 기지에 보냈죠?”
“……응?”
복원 방법이나 유적 자체에 정신이 팔려서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었다.
“계속 말해봐.”
“네? 아뇨, 그냥 제 생각인데……”
내가 몸을 일으키자 라리루라는 중언부언했다.
“전선기지란 건, 전쟁을 벌였단 거잖아요? 아마 황금시대를 끝낸 대전쟁일 텐데. 그러면 왜 포션 등의 물자를 ‘모든 나라’에 공급한 거죠?”
“모든 나라에……?”
듣고 보면 그랬다.
전세계가 서로 죽어라 전쟁을 벌이던 고대말기. 적국에 보급을 해줄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혹시 있었어도 그럴 여력이 됐었을까? 오르왈리아 같은 소국이?
‘그때 적국 근처에 있던 기지에 보내던 물자? ’
아니, 그렇지 않다.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 보급 지도의 유적 중 몇 개 정도는 분명히 외국의 물건이었어.’
모즈리운의 망령도시.
우리가 예르나를 족친 그곳만 해도 고대 게르마니아의 마나 발전소였다.
왜 거기에 물자를 보냈지? 오르왈리아랑 게르마니아는 아군이었나? 지저의 탑은 브리타니아에도 있었다. 그럼 당시 최소 세 나라가 동맹이었다고?
보급 지도는 그밖에 나라에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동맹이었다고 치면, 인류는 무엇을 상대로 싸웠다는 말인가?
“……………….”
존나 무자비한 수수께끼였다.
골든벨 우승문제도 이렇게 ‘응 뒤져도 못 풀게 할 거지롱~’하고 대놓고 시비를 걸진 않을 텐데. 생각나는 건 있어도 증거가 없으니 망상일 뿐이고 말이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사는 수밖에.
나는 잊지 않게 기억해두고 편지를 넘기면서, 그 내용에 답장을 써내려갔다.
“Zzzz…….”
며칠 내내 꼭두각시를 마나로 움직인데다 남편 놈의 어리광까지 들어준 라리루라는 침대 누워서 잠들었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하네.
편히 자는 걸 깨울 수도 없고, 별로 그럴 필요도 없다.
‘답장이나 마저 쓸까.’
사락─. 깃펜을 놀리며 답을 쓰고, 그걸 메달에 넣었다.
‘아, 이걸로 벌써 마지막 1장인가?’
정신없이 쓰다 보니 거의 끝났던 모양.
티르시가 보냈던 편지는 시간 차로 몇 장씩 와 있었다.
─노르드. 미끼 유적의 암호를 찾았어요. 해석이 가능하실까요?
마지막 편지에 적힌 건 암호문구였다.
해석이라면 또 내가 존나 전공이지. 나는 석사 학위의 9할 9푼은 언어자격증으로 딴 사람이에요. 눈을 부라리자 만언신 로키-로두르의 권능이 발동했다.
악필로 쓰인 글씨체에 적응하는 것처럼 암호가 고대문자로 번역된다.
‘예전에 지저의 탑에서도 느꼈던 건데……’
그때도 대충 눈치챘었지만, 역시 이 힘은 그냥 ‘언어를 해석하는’ 게 아니다.
암호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이다.
해석하지 못하는 문자열은 ‘언어’가 아니잖은가.
‘언어란 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기 위한 소통수단이니까.’
그래서 만언신의 권능은 암호도 해석해버린다. 암만 비틀고 어렵게 꼬아도 암호문은 누군가 읽으라고 쓴 글이니까. ‘언어’의 한 갈래라면 번역 못 할 이유는 또 뭔가?
그러면 번역하는 언어의 데이터베이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만언신이 남긴 무언가에서 비롯된 거겠지.’
근거는 없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뜻이 담겨져 있지 않거나 만언신조차 모르는 울음소리는 번역되지 않는 것이었다. 칼침 맞은 새끼의 비명이 ‘씨발 아파!’로 번역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뭐 아무튼, 대부분의 암호에는 법칙성이 있다.
머리만 잘 굴러가면 풀 수 있는 문제. 수학이랑 똑같다.
답이 정해진 법칙에 만언신의 능력은 올바르게 작용하며 그 뜻을 해석했다.
─그는 가장 배알이 없는 자요, 가장 수치심을 모르는 자요, 가장 다양한 울음소리를 아는 자요, 가장 적기(適期)를 잘 아는 자요, 가장 멀리 걷는 자이다.
─모든 왕좌의 곁에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물론, 그 내용마저 해석해주진 않지만 말이다.
“씹놈이 뭐라는 거여?”
아쉽게도 순수한 수수께끼다.
뇌지컬만으로는 못 푸는, 지혜 외의 지식량까지 요구하는 퀴즈구만.
“삐빅, 삐비빅…. 해석, 불능. 해석 불능….”
이과인 나는 문과에 약하다앗!!
딱히 꼽지는 않았다. 이세계인들도 내가 귀양 간 양반들이 국왕 똥꼬 빠는 시 쓴 걸 보여주면서 ‘이 부패사범 새끼의 후빨 솜씨를 논하시오’라는 문젤 내면 못 풀 거 아니냐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번역한 글만 그대로 티르시에게 부쳤다.
뭐, 먹물쟁이도 많겠다 누군가는 해석해 주겠지.
***
〈흐음… ‘노르드가 해석한 문구의 답을 학회장님이 알고 계셨다?’.〉
유적을 걷다가 멈춰선 키아라 콜리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마스터 클래스가 되서 나서 이렇게 자주 놀란 건 오랜만이었지만, 그 놀람의 원인이 전부 한 사람이 원인이라면 슬슬 납득이 갈 만도 했다.
〈암호까지 해석할 줄 아셨나요. 특기가 많은 분이시군요.〉
여기에 없는─걸로 돼 있는─ 남자의 능력에 또 감탄하면서 그는 열어젖힌 문을 넘어섰다. 포스스 일어나는 먼지는 호흡용 매직 아이템을 넘어오지 못했다.
현지에 도착한지 일주일.
진행 스피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탐사하고는 있지만, 탐사 페이스는 조절해야 했으니.
‘유적을 전부 털어버리면 하이에나들의 시선이 바깥으로 돌아갈 테니.’
그렇게 두지 않으려면 조바심이 날 정도만 앞서 나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부상을 입었어도 가장 적임인 키아라가 유적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었다.
신체가 쇠약해지긴 했는데, 청각을 비롯한 감각까지 약해진 건 아니니까.
─아, 스파이드워프 센스군요.
─……무슨 센스요?
─저도 무슨 뜻인진 몰라요. 노르가 한 말이라.
문득 프란체스카 백작 부인의 말이 떠올랐지만 키아라는 대충 흘러넘겼다.
스파이더인지 스파이 드워프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아라만큼 던전에서 귀가 밝은 사람은 없었다. 그 태생이나 삶의 궤적을 고려하면 말이다.
탐사 자체도 어렵지는 않았다.
다행히 페이스 조절은 키아라의 특기였고, 같이 와준 날개 달린 소환수들도 생각보다 유능했다. 그 덕분에 미끼로 쓴 유적의 중층을 넘은 참이었다.
살아있는 전설이자, 모험가 길드의 연합총장인 그에게 덤벼드는 바보는 거의 없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간 키아라는, 그 내부를 보고 조금 당혹했다.
기자재와 마도구가 세월의 풍화에 고장나버린 듯 굴러다녔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기물은 적흑으로 녹슬고 먼지 낀 기재들과 달리 어제 막 들여놓은 것처럼 멀쩡했다.
누군가 먼저 온 게 아니라, 그만큼 뛰어난 상급 유물이라는 증명이었다.
그래서 키아라의 곤혹스러움은 더 커졌다.
‘관(棺)?’
그 유물은 사람 1명이 빠듯이 들어갈 크기의 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가 아무리 눈을 찌푸려 봐도, 유적의 영안실에는 불청객의 존재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적막만이 머물 뿐이었다.
찰랑….
체크무늬 장식이 올올이 박힌 관. 불순물 없는 엘릭서로 채워진 시체 상자.
거기에는 1장의 카드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재회 못 할 벗들에게 감사를.
─너희의 벗은 이 땅에 돌아왔다.
고대 로마니아 어로 작별의 인삿말을 휘갈겨진 채, 젖지도 않고 줄곧.
마치 몇십 년도 전부터 그렇게 있었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