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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팔뚝에 화살이 꽂혔다.
‘빌어먹을!’
자엘은 마나의 화살을 꺾으면서 이빨을 갈았다. 이만큼 일방적으로 몰리며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집행관이 되고서부터 처음이었다.
〈자엘 님! 화살의 방향을 파악할 수가…!〉
온 신경을 집중하던 부하가 말을 끊고 오른팔을 들었다. 달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반사신경에 힘 입어, 부하는 팔에 찬 미스릴 건틀렛을 목숨과 맞바꿀 수 있었다.
─콰아앙!!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적중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 화살.
방향도 자유자재다. 그야말로 공간을 뛰어넘어 심장이나 목, 뒤통수처럼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려오는 화살들! 그것도 1발 1발이 상급 마법조차도 새파래질 위력이었다.
미스릴 클래스의 달인인 그들조차 피하는 것이 고작이다.
〈크악…!!〉
갑옷에 가려지지 않은 부위를 지키려다가 배를 관통당한 부하가 무릎을 꿇었다.
기습을 허용한 부하는 즉사했고, 생존한 이들도 부상이 적지 않다.
처형인이자 집행관일 터인 그들이 한낱 투기장 우리에 던져진 사형수처럼 희롱당하고 있다니? 그 현실에 집행관들은 혼란하며 공포마저 느꼈다.
냉정한 인물은 자엘 뿐이었다.
〈탐색 정지!! 유적에 들어온 게 아니다!! 적은 유적의 바깥이다!!〉
울프헤딘 백작이나 그 끄나풀이든 아니든, 이미 몇십 초나 되는 긴 시간을 적의 위치를 찾는 데에 낭비해버렸다. 그런데도 발견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받아들여야 했다.
적은 유적 밖에서 저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창을 갈며 기다리던 그들의 목에 그들보다 먼저 낫을 걸었노라고.
‘바깥에서?’
그게 아무리 그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라도 말이다.
평소라면 대장의 판단에는 의심을 가지지 않는 집행관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곳이 어디던가? 차원 마법 기술의 최고봉이었다는 히타이트의 유적이다.
바깥과 연결된 입구를 제외하면 이 유적은 다른 차원과 같았다. 공간 마법 따위로는 범접할 수도 없는 상위차원의 격리 아공간이었다.
힘으로 뚫지 못할 이차원의 격리벽.
그것을 뛰어넘어 공격을 가한다니?
‘설령 가능하다 쳐도, 어떻게 유적 안의 동향을 엿보고 노린단 말이냐!’
‘본국에서 회수한 유물들 중에서도 그런 기술은 없었을 터!’
마스터 클래스의 권능이면 가능할까?
아니다. 불가능하다. 공간을 지배하는 대마법사, 아르마알스 가문의 시조인 마도신도 아닐 터였다. 그러기는 커녕 마도신조차 명계와 같은 이차원의 문을 눈에 띄지 않고 열지는 못할 텐데.
경악 때문에 반응이 무뎌졌다.
이곳이 히타이트의 유적만 아니었다면 30초나 되는 시간을 적의 위치를 찾는 데 낭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에 따른 피해 역시 입지 않았을 것이고.
물리적인 거리는 가깝지만, 차원벽을 초월해서 이차원에 저격을 감행하는 존재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그렇게 확신했기에 맹공을 허용하고 말았다.
차원을 뛰어넘는 시야와 권능.
쏘아낸 화살이 하나의 세계를 초월하는 기예.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사냥의 여신이 순리를 거스르고 딸을 되살리려던 리치에게 행한 이후로 어떤 궁수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명실상부, 신적 존재의 경지였다.
〈공간도약장치를 기동한다.〉
하지만 기습에 따른 혼란은 거기까지였다.
신적 존재의 경지.
그렇게 가정했기에 오히려 99대대는 혼란에서 벗어났다. 적의 정체가 신이라면 그렇게 가정하고 싸우면 그만이다. 승산을 논하는 건 그 다음이다.
─끼릭! 집행관들은 가슴에 찬 시계를 돌렸다.
고대유물의 복제품이 술식을 펼쳤다.
〈공간 도약〉. 비거리는 짧아도 발동속도에선 가장 뛰어난 공간 마법이 집행관들의 몸을 유적의 바깥으로 이동하고자 시공을 비틀었다.
〈크으으윽……!〉
자엘은 몸에 가해지는 반발력을 견뎠다.
현세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차원 마법은 일반적인 공간 마법보다 상위의 술식이다. 고작 〈공간 도약 〉 정도로는 차원벽을 무탈하게 뚫고 나갈 수 없었다.
살갗이 벗겨지고 공간의 압력이 술식을 뚫고서 단련된 육체를 부쉈다.
─슈욱!
부상을 대가로 그들은 탈출을 감행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자엘은 즉시 탐지 마법을 발동했다. 차원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벗어났으니 적의 위치는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물론 복제 유물이 발동하려는 순간부터 퇴각을 실행하고 있던 노르드는 그들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자엘은 신경쓰지 않았다.
〈퇴각하게 둘 쏘냐!〉
─콰릉!!!
천둥 같은 바람이 폭발하며 직선으로 뻗어갔다. 그 속도는 노르드보다 조금 빠르고, 퇴각 중이던 그의 팔뚝을 얕지 않게 베어냈다.
‘……오. 제법이네?’
─화르륵!
흩뿌려진 피를 불꽃을 뿌려서 증발시키면서 노르드는 감탄했다.
순간적으로 야수회귀를 둘렀는데 버터처럼 썩둑 베여나갔다. 절삭력은 오러보다 낫다는 뜻이었다. 속도와 과감성을 보면 놀라운 출력이었다.
‘스나이퍼 놀이를 하길 잘 했네.’
─푸흐흐.
단지, 당연하지만 그런 결과도 완벽하게 적들을 엿먹인 그에게는 웃음을 짓게 하는 요인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은 저 뛰어난 강함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 채 피해만 입었던 것이니까.
〈……잘도 도망치는군.〉
그 사실을 자엘이라고 모르겠는가.
분노를 다스리던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99대대의 수장을 맡은 그에게 자존심은 없었다.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업적을 가졌지만 그만큼 자존심을 부숴버리고도 남는 괴물들의 존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격이 다른 괴물들이 아닌 적에게 희롱당했다는 굴욕은 감회가 색달랐다.
〈추격합니까?〉
〈관둬라. 전력을 나누지 마.〉
대대가 입은 타격이 크다.
저격, 아니. ‘폭격’에 입은 외상. 차원벽을 공간 마법으로 뚫으며 입은 내상.
구성원도 1명 잃었다.
따라잡아서 교전해도 가진 힘의 반도 내지 못할 것이었다.
각개격파 당하는 건 피해야 했다. 자엘은 적을 쫓는 대신, 삽시간에 잿더미가 된 흙바닥에 무릎을 짚고 신중하게 쓸어담았다.
‘피를 흘리면 추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태웠나. 어설프군.’
자엘은 싸늘하게 웃고 흙더미를 챙겼다.
적이 흘린 피는 흙에 늘러붙고 증발했다.
혈액을 토대로 추적하는 유물은 쓰지 못할 거라 봐야 했지만, 적을 약화하고 찾아낼 방법은 달리 얼마든지 있었다. 그는 흙 주머니를 챙겨넣었다.
〈복귀한다. 남작의 힘을 빌려야겠군.〉
셀루스티아 남작이 그 심약한 성격과 무능함에 맞지 않게 황실의 신임을 받는 이유.
그 이유는 그들 가문이 가진 최상급 저주 기술 때문이었다.
‘말라붙은 피 한 방울로도 대상을 산 송장으로 만들고 신변까지 알아낼 수 있다.’
흑마법사. 아니, 리치라고 해도 견디지 못한다.
‘우리가 찾아내기 전에 죽지 않길 바라지.’
엘릭서를 물 쓰듯 써서 상처를 치료하며 자엘은 미소지었다.
***
“쓰벌, 따가워라.”
나는 베인 상처를 포션으로 치료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8명이 죄다 살아남을 줄이야.’
선빵 저격으로 1명을 죽인 건 좋았는데 말이지. 부상을 입혔지만 병신이 아니면 치료할 테고, 그 상처가 낫기 전에 덤비기도 좀 그렇다.
“언니, 어땠어요?”
“그 언니 소릴 그만 들을 때까지 얼마 안 남은 모양이야.”
나는 라리루라에게 설명하며 떡진 머리를 대충 묶었다.
‘적대세력은 대충 파악했다.’
티베리우스는 따까리 프렌즈.
셀루스티아는 존나 일곱 난쟁이도 아니고 아홉 오러쟁이를 대동한 적.
씨발, 밸런스 봐라. 미스릴이 이젠 막 떼거지로 나오네. 인플레이션이 비트코인 급이네? 크림슨 발록이 잡몹 비둘기한테 좆털리는 걸 본 기분이야.
“그밖에도 〈인신〉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는 하니까, 아내들을 데려오는 건 좋지 않아. 그리고 유적 내부가 생각보다 살벌하더라.”
ᚱ(Raidō)의 룬을 쓰다 보니 느꼈다.
몬스터는 없는데 공간 자체가 이질적이다.
‘이번엔 텔레포트 치트를 못 쓰겠군.’
마지막에 날 쫓아온 놈들은 공간 마법을 썼다가 걸레짝이 됐었다.
위급할 때 아내들한테 헬프를 때려도 와 주지는 못하겠지.
유적에 들어간 뒤에는 말이다.
“정확한 원리까지는 오딘의 눈이 술식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안에 들어간 뒤에는 증원을 부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언니 눈으로도 해석 못 하는 마법이에요?”
“글쎄. 내부를 다른 차원으로 만드는 핵심부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 단계에선 뭐라고도 할 수 없다.
‘오딘의 눈은 보지 못하면 해석도 못 하니까.’
코어를 찾아내서 부순다? 논외다. 공간 변화가 무너져서 파탄났다간 유적 안쪽에 어떤 개씹창이 날지 불분명하지 않은가.
유물을 다 파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짐을 싸며 말했다.
“활을 썼으니까 우릴 찾아내는 건 금방일 거야. 여기서 존버해 봤자 사람들만 휘말린다. 1방 쎄게 맞고 후퇴한 사이에 바로 유적으로 가자.”
“네에~♡!”
날 따라서 준비를 시작하는 라리루라.
나랑 그녀 뿐이라면 룬 스톤 버프의 3연발 ᚱ(Raidō)로 탈출도 감행할 수 있다. 날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지금이 빈집을 털 최적기였다.
‘생각난 김에 천리안으로 좀 더 살펴봐야겠네.’
깊은 유적은 아니지만 다 둘러보진 못했다.
숨어 있는 놈들을 발견해서 조사를 멈추고 바로 저격 자세에 들어갔거든.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혹시라도 잠깐 딴 곳에 한눈을 팔았다가 발각당해서 역 선빵을 맞았다간 억울해서 그날 밤은 밤새 잠을 설쳤을 거라고.
─똑똑.
〈계시오? 잠시 시간 괜찮겠소?〉
내가 스캔을 뿌려서 옵저버 짓 좀 하려던 차에 손님이 찾아왔다.
─선배.
─무기 챙겨.
바로 브류나크를 꺼내며 투시로 문 밖을 체크.
‘……뭐야? 윈스턴이네?’
나는 라리루라한테 눈짓을 했다. 후배님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꼭두각시에 들어갔고, 난 문을 열고 늙은 탐사단장을 마주했다.
〈숙녀들 방에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오.〉
〈괜찮아요. 마침 한가했구요.〉
라리루라가 맘에도 없는 말로 대답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방으로 들이면서 살짝 인상을 썼다.
‘표정이 심각한데? 뭐 할 말 있나?’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앉자마자 말했다.
〈사후보고가 되어서 몹시 미안하오만, 여러분 뒷조사를 좀 했소.〉
〈꽤나 당돌한 말씀이시네요.〉
내가 셧더마우스 모드라서 라리루라가 대답하는 역할을 맡아줬다.
자기가 찾아오자마자 무장하고 대기 타던 우리 후배님에게 불쾌해 하는 대꾸를 받은 것 아닌가. 윈스턴은 손을 들어서 싸울 뜻이 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정말 미안하오. 벼락치기로 고용하고 뒷조사 따윌 했으니 할 말이 없군.〉
〈뭘 알아내셨길래 방에까지 오셨죠? 해고 당할 만한 짓은 한 적 없는데요.〉
〈티베리우스와 접촉했다고 들었소만.〉
꼭두각시에 들어간 라리루라가 팔짱을 꼈다.
‘이거 놀랍네.’
딱히 죽어라 접촉을 숨긴 건 아니고, 교단 안에 들어가려면 절차 상 흔적이 남긴 했다. 악착같이 숨기면 그게 더 수상하고 눈에 띄잖아?
하지만 하루만에 그걸 알아내다니?
〈나는 로마니아 남방의 작은 민족을 통솔하는 사람이오. 수백 명 정도를 먹여 살리는 입장이지. 이번에도 후원자에게 잘 보이려고 온 거요.〉
우리가 말이 없자 대뜸 PR을 시작하는 윈스턴.
별로 관심은 없지만 일단 들을까.
〈입장 상 군문에도 들었고, 티베리우스의 단장이랑도 몇 번 창을 섞어본 적이 있지. 직접 붙은 적은 없지만 일개 도적질을 할 자는 아니었소.〉
〈계속하시죠.〉
〈아가씨들은 두문분출 중인 티베리우스와 쉽게 만남을 가졌잖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더군. 어쩐 일로 그 사칭범들에게 니르바나 양은 그리도 극렬하게 분노했을까?〉
윈스턴의 눈이 번뜩였다.
〈자네들이 그들과 인연이 깊다면 이해가 가는 일 아니겠소?〉
‘걍 씹게이 새끼들이 저한테 꼴리려 해서 빡친 건데요.’
그렇게 말할 만큼 눈치가 없는 우리는 아니다. 라리루라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입을 열었다.
〈놀라운 추리네. 정답이야.〉
이젠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와.
멋진 성장이다, 내 새끈한 입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