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65화 (764/1,009)

“TS물 멈춰!!!”

─쏘옥! 나는 라리루라의 구속에서 몸을 빼냈다.

“앗?! 도망치지 마세요!!”

“기다려! 알았어! 갈게, 갈 테니까!! 대신 내 말 좀 들어 봐!!”

쥬지를 뗄 바에야 그 록스 용병단인지 해적단인지까지 가서 전부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메달을 내밀어서 얼른 발퀴리에를 꺼내는 나.

【……서브 마스터의 강렬한 위기의식을 감지. 전투입니까?】

“아냐 새끼야!! 프리실라? 일단은 이 녀석더러 축복을 받게 만들자고!! 들어가서 교대하면 될 거 아냐!! 나는 몰래 들어가면 되잖아!! 그치?!”

“……쳇.”

내 필사적인 항변에 라리루라는 꽁해졌다. 씨발 어떠냐. 궁지에 몰릴 수록 엘리트해지는 내 병신 대갈통의 임기응변력이.

그 순간, 예지몽으로 봤던 풍경이 플래시백했다.

─쨍그랑!!

라리루라에게 완전한 TS를 당하는 미래.

그 악몽 같은 광경이 깨진 유리창처럼 박살나서 흩어졌다. 나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리라고 알지 못했으면 어어? 하는 사이에 꼬츄떼뿌라가 될 뻔 했다.

한동안 입술을 내밀고 있던 라리루라는 어깨를 떨구며 체념한 듯 말했다.

“네에~. 아쉽지만 포기하겠습니다~. 선배가 진짜 언니가 된 모습, 보고 싶었는데~.”

“관둬. 소름끼치니까. 그리고 이 얼굴은 진짜 내 얼굴도 아니잖아.”

“……과연. 다시 말해서 변신 마법으로 성별만 여자로 바꿔야, 진짜 ‘여자로 태어났을 경우의 선배’를 볼 수 있다는 뜻이군요?”

“존나 방금 말을 어떡게 해석해야 그럭게 되는 것이지.”

내가 아주 질색팔색을 하며 대답하자 미소짓는 라리루라.

우리 후배님은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프리실라는요~? 선배라면 여자여도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인석아.

─꽁!

나는 오랜만에 라리루라에게 꿀밤을 놔 주고서,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티베리우스 용병단이 묵는 곳으로 향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잖은가.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말로만 들은 첫 눈에 나한테 반한 게이게이를 만나게 되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손가락부터 꺾어놓는다.’

살기를 갈무리하고 손가락을 까드득거리자, 그 게이게이는 만면의 미소로 말했다.

〈그 목걸이, 원로님의 사절 분이시죠?〉

〈……뎃?〉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니르바나로 분장하고 나서 왠지 계속 놀라기만 하는 기분이다.

〈……기다려 봐. 혹시, 너희가?〉

당황하면서 일단 목도리로 감춘 황금 목걸이를 꺼냈다.

〈……예? 초대장을 읽으신 것 아니셨습니까?〉

내 리액션에 오히려 당황하는 게이게이.

나는 할 말을 잃고 조용해졌다.

……출발 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

─가짜 정보에 낚인 이들 중에서 만만한 놈들을 골라서, 그들이 고용한 탐사대에 섞여들어가려고 합니다. 몰래 저희 끄나풀인 탐사대도 풀 거고요.

─몰래 저희 끄나풀인 탐사대도 풀 거고요.

─몰래 저희 끄나풀일 탐사대도……

음. 대굴빡에서 메아리가 치는군.

맞다. 나는 출발 전에 말했다.

우리 끄나풀을 유적지 근처에 풀 거라고.

단지 빠른 일처리와 정보유출을 막고자, 우리의 현지 물주 코르넬리우스 어르신을 통해서 사람을 고용하도록 부탁드렸다.

그리고 내가 목도리 밑에다 맨 목걸이로 신분을 증명받기로 했고.

〈……하지만 오는 길에 티베리우스 용병들한테 습격당했을 때, 네 부하들은 내가 이 목걸이를 보여줘도 못 알아봤는데?〉

평화롭게 끝나려나~ 싶었다가 날 보고 꼴린다 하길래 못 참고 바로 눈깔 사이에다가 마나 화살을 박아주지 않았던가. 트라우마라 잊혀지지도 않을 듯.

그러자 게이게이는 놀란 듯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을 습격했다면 그건 저희 용병단을 사칭하는 놈들이었을 겁니다. 목걸이의 존재는 오직 저만이 알고 있기도 해서……〉

〈……너만? 보안을 위해서였나?〉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 알고 계신다면, 역시 당신께서 원로님이 말씀하셨던 분이 맞으신가 보군요.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게이게이쉑…… 아니지. 친절한 태도를 취하는 인텔리 용병단장은 우리더러 손짓했다. 그렇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입만 열었다.

〈……록시.〉

─흠칫! 금발 활잽이 소녀가 몸을 떨었다.

〈……너, 나한테 뭐랬었지? 나 오빠가 첫 눈에 뭐라고?〉

〈그, 그치만! 나는 몰랐는걸! 아니 그보다 니르바나 언니가 초대장을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이런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아갈쌉쳐.〉

잼민이 쉑 주제에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다니.

애초에 네가 반했다느니 어쩌니 말만 안 했어도 무슨 내용인지 읽어봤을 거 아냐.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이 잼민이의 착각이 원인이다.

〈앉아. 엎드려. 굴러. 일어나. 앉아. 엎드려.〉

〈힉! 히익! 히! 헥! 힉! 히익!〉

─삑! 삐빅! 삐익! 삑! 삐빅! 삐익!

〈하나에 착각해서. 둘에 죄송합니다. 하나.〉

〈착각해서!!!!〉

〈둘.〉

〈죄송합니다아앗──!!!!〉

─파팟! 파파파팟!

어젯밤에 심어둔 공포와 체벌 덕분에 잼민이는 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훈련생처럼 빠릿하게 움직였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다.

그리고 여동생이 PT체조에 시달리는 걸 보게 된 록스는.

〈로, 록시가 이렇게나 지시에 순종하다니……! 역시 원로님께서 보내신 분!!〉

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네.’

존나 남매가 쌍으로 또라이 기질이 있나 봐.

***

〈너희 사정은 대충 알았어.〉

소란이 진정되고서 설명을 들은 나는 납득했다.

〈몬스터가 없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있어서 안 나온다는 얘기지?〉

〈셀루스티아는 그렇게 공표했습니다.〉

〈너희를 사칭하는 도적단을 풀고 있고.〉

〈추측입니다만 높은 확률로 그래 보이더군요.〉

그랬구만. 탐사하러 왔다는 놈들이 자꾸 잿밥에 관심을 가지더라니.

나는 병신 같은 착각 때문에 쓰린 속을 냉수로 달랬다.

〈유적에 몬스터가 있다는 건 거짓말이야. 이미 확인했지만 안에 생물은 없어.〉

〈예? 어제 오셨을 텐데, 어떻게 벌써……〉

어떻게긴. 천리안으로 구경했지.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록스는 알아서 숙였다.

〈제가 감히 의심했군요. 실례했습니다.〉

〈널 고용한 사람에 대해선 어디까지 알지?〉

〈조사 따윈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하면 알아선 안 되고, 성공하면 알게 될 일입니다. 호기심과 지식은 분수에 걸맞게만 추구해야 합니다.〉

새끼, 빠릿빠릿한 게 마음에 드네.

‘첫 인상이 씹게이게이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인피면구에 홀리지 않는다는 것도 가산점인 부분이다. 공사를 구분한다는 거니까. 동성애자가 아니란 건 어젯밤에 록시한테 많이 들었고.

이놈도 일방적인 착각으로 내가 좆 같다고 하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내 짜증은 1시간 넘도록 원산폭격을 하고 있는 금발 잼민이에게 풀자.

〈동생의 체벌에 대해 불만 있어?〉

〈추호도요. 용서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게 옳게 된 오빠지. 암.

나는 물로 축인 목으로 헛기침을 했다.

〈시간 끌지 않는다. 너희를 빼낼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걱정 말고, 조만간 연락을 넣지. 경비를 뚫고 안을 파악할 테니 창문은 늘 열어둬.〉

〈전서구입니까? 눈에 띌지도 모릅니다.〉

〈알았어. 뱀에게 편지통을 물게 해서 보내지.〉

〈배, 뱀이라면 편지를 삼켜버릴 텐데요?〉

〈안 삼켜. 그렇게 교육할 거니까.〉

드루이드 능력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개껌이지.

천리안의 간편함 때문에 조금 빛이 바랐던 동물 드론들이지만, 이미 유적의 주변에 몇 마리 정도 파견해 두었다. CCTV 역할이다.

‘천리안을 24시간 켜 놓을 수도 없으니까.’

비용도 고기 몇 점으로 땡이니 이만한 가성비가 또 없다. 나는 그렇게 록시를 조금 더 괴롭히다가 투명 망토를 두르고 동물들과 다시 만났다.

“째쯔쯔 짹쯔? (누가 안에 들어갔다고?)”

“짹!! (내!!)”

닭고기를 처먹던 맹금류가 대답했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통제 중인 유적 입구에 들어갔다?’

유적 입구를 통제하는 건 위법행위다.

‘몬스터가 위험하니까’라는 궁색맞은 변명조차도 후일 고고학계나 모험가 길드 등의 항의와 분노를 받으면 페널티가 클 텐데, 몰래 입장까지 시켜?

결코 이득이 있어서 내린 판단은 아니다.

‘그것도 주변에 진을 친 하이에나들의 눈까지 다 피해가면서…… 상당한 실력자군.’

고작 유물 좀 빼돌리기 위해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 짓이지.

나는 천리안으로 유적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이 눈이 아니었으면 나였어도 들어간 뒤에는 눈치 못 챘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대기 중인 놈들이 아홉.

유적에 빼곡한 마법 술식에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눈을 반개했다.

‘씹새들, 투명 마법 아이템까지 있네?’

매직 아이템의 술식을 분석하자 아무 작정하고 온 놈들이란 게 느껴졌다.

누구일까. 궁금하긴 하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족쳐놓고 영혼한테 물으면 그만이지.’

단지, 대충 봐도 실력이 만만찮다.

놀랍게도 내 전사로서의 감은 방심하고 들이박았다가는 키아라조차 뒤질 수 있으리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본체를 해방한 상태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인간형으론 죽고도 남겠지.

자, 그럼 어쩐다?

나는 3초 정도 고민하고 활을 들었다.

‘수를 좀 줄여둘까.’

니들 딴에는 함정을 쳐둘 생각이었겠지만, 혹시 그거 아니?

함정이란 건 들키면 그걸 판 당사자들의 묘지로 바뀌기 마련이고.

끼기기기긱…!!

쿠오오오오오오─!!

나는 너희보다 마나가 한참 많다는 거.

─퉁!!!

내가 시위를 놓자, 오러의 화살은 룬의 마나와 결합하면서 공간을 도약했다.

오러를 압축한 화살. 불어넣은 마나는 호르샤를 마무리했던 일격의 약 2배.

위력은 내가 보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고.

퍼억─!!!

빈틈없이 침입자를 경계하던 병신의 목에 바람 구멍이 뚫렸다.

기겁한 놈들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찾아대는 게 천리안에 비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유적 밖이다.

‘백날 찾아 봐라. 내 털끝이나 비치나.’

이게 동방의 벽뚫 핵(Wall Hack)이란다.

기분 좋게 웃은 나는 내 펀치를 웃도는 위력을 담은 화살을 쉼없이 쏴제꼈다.

퉁퉁퉁퉁퉁퉁─!!!

크, 존나 이지한 것 봐.

역시 MP는 많고 볼 일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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