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귀족이 막아서 유적에 못 들어가고 있다?〉
〈네, 네!! 일종의 소강상태에요!!〉
〈유적 통제는 위법인데. 안에 몬스터도 없고?〉
〈네!! 저랑 오빠가 직접 확인까지 했어요!!〉
10분 정도 괴롭혀주자 금발 활쟁이 소녀는 울며불며 아는대로 불었다.
이름이 록시랬던가. 아무 생각 없이 레즈바에 와 버린 중학생 소녀처럼 공포에 떨고 있다. 내가 뭐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고, 화살을 전부 피하고 잡으면서 간지럼을 태웠을 뿐인데.
성희롱 아니냐고? 그럼 다짜고짜 ‘결투다 썅년아’ 하고 시비 거는 건 괜찮고?
이건 이세계식 정당방위다. 불평은 헌법재판소에 하도록 해라.
근데 나는 귀족이고 너는 평민이네? 이미 이긴 싸움이구만. 마! 내가 임마 각국 왕님들이랑 회의도 하고, 밥도 먹고! 다 했어 임마!
〈이, 이제 돌아가 봐도 될까요……? 다신 언니 주변에 얼씬도 안 할게요……〉
〈안 돼. 내 정신적 상처부터 배상하고 가야지.〉
─화륵. 나는 초대장부터 불태웠다.
‘부랄 달린 새끼의 초대? 절대 안 가지 시발.’
어어딜 감히 평민따리 평민따 쉑이 귀족님더러 오라가라야?
〈그보다 기껏 둘 다 활 쓰는 사람이겠다, 표적 맞추기 내기 같은 걸 해도 됐잖아?〉
〈오, 오빠한테 찝적댄 여자들은 그런 승부로는 절대 안 물러나서…… 꼭 아픈 꼴을 당해야 제가 무서워서라도 물러났거든요……〉
〈……네 오빠한테 찝적댄 사람들 직업이?〉
〈……여자 용병이나 술집 아가씨들?〉
가정교육 문제였군.
혼기가 찬 여자들의 인생역전 신데렐라 드림에 시달린 결과가 이건가.
‘결혼에 집착하는 여자들은 무섭지. 암.’
오빠 놈이 못난 놈인가 보다.
한창 민감한 질풍노도의 중딩 잼민이는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가. 딱히 이들 남매를 실드쳐 줄 필요성은 못 느끼겠지만.
‘그보다 스트레스 쌓인 거나 풀어야지.’
선빵을 친 건 자기니까 불평은 못 하겠지. 나는 흐뭇하게 손을 꼼지락댔고, 이미 실컷 당한 록시는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경기를 일으켰다.
〈그, 그만하세요! 아악!! 야!! 그만하라고!!〉
〈간질간질간질간질간질간질.〉
〈아하하하하하?! 야하하하하핫!!〉
즐겁다!
록시를 간지럽히며 넉다운시킨 나는 고된 전투 끝에 땀을 닦아냈다.
대충 들을 만한 건 들었다.
‘이제 히타이트의 유적에 몰래 들어가면 그만이겠군.’
안에 몬스터도 없다지 않은가. 가서 대충 쓸어버리고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윈스턴이랑 같이 복귀해버리면 땡이었다.
일 참 쉽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곤란한 게 있다면 나밖에 못 들어간단 건데.’
난 그냥 룬 마법으로 공간을 뛰어넘으면 유적의 문이나 경비들을 뚫고 들어가질 것이다. 그러니까 라리루라만 혼자 남게 된다는 건데……
‘납득해줄려나 모르겠군.’
뭐, 이제 가서 설득하면 그만이지. 내가 그렇게 발뒤꿈치를 돌리려고 했을 때였다.
육중한 바이킹 갑옷이 내 감지에 걸렸다.
〈……언니, 거기서 뭐해요?〉
링링이 7호에 들어간 라리루라였다.
시발, 쟤가 왜 여기 있지?
〈프, 프리실라? 안에 있으라고 했잖아?〉
〈언니 목소리가 들리길래 나왔죠.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길래 일단 쫓아내 뒀는데……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실래요♡?〉
등골이 오싹했다. 바람 피는 현장을 들킨 것만 같은 느낌. 따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결투와 보복 중에 땀 범벅이 되서 기절한 록시 때문이었다.
아니면 걔 위에 올라타서 간지럼을 태우고 있던 내 자세 때문이던가.
꼭두각시에서 내린 라리루라의 눈초리가 차갑다.
〈……저는 어린애라면서 손도 안 대셨으면서.〉
후배님아. 남들이 듣고 오해할 말은 말자?
〈오해 말렴. 이건 정당한 결투의 결과야.〉
〈……흐응. 언니는 결투를 기승위로 하나요?〉
와! 라리루라가 이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봐!
〈자, 자! 얼른 방에나 들어가자? 다 설명할게. 응?〉
나는 허겁지겁 일어나서 록시를 발로 치워내고 라리루라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유부남의 일곱 신기 중 하나, 아내님께 아양 부리기다.
〈볼 일 있어서 나가신 것 아니었나요? 혹시 그 볼 일이란 게 이 애랑──〉
〈아냐!! 그냥 관두려고!! 보는 눈도 많고, 날도 좀 추운 것 같지 않아?!〉
〈그러게요. 날이 좀 춥긴 해요.〉
라리루라는 무뚝뚝하게 왼손을 주물렀다.
〈손가락이 시렵네요. 난생 처음으로.〉
─니르바나 씨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울상이 되었다. 나도 지금 잠입 때문에 결혼 반지 뺐다고.
손가락이 시렵다 못해서 달달 떨린다.
몸에 핏기가 싹 빠진 느낌이었다.
***
〈유, 유적에 말입니까? 자엘 님.〉
셀루스티아 남작은 손을 떨면서 물었다. 귀족이 머물기엔 부족한 장소였지만, 남작도 그의 손님도 배경에 불과한 건물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소. 저 유적을 처형대로 삼을 것이오.〉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자엘. 가문조차 가지지 않은 기사.
하지만 내실을 안다면 어떤 귀족도 그를 경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니아의 집행관이었으니까.
집행관.
국가의── 다시 말해서 황실의 뜻에 반하는 이들을 척살하는 살인기계들. 이교도들과의 국경 없는 전쟁처럼 일반 기사들에겐 불가능한 일을 맡는 수면 아래의 기사들이었다.
저들 ‘99대대’는 그중에서도 더욱 별종.
집행관은 어디까지나 성기사나 왕실기사단처럼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국방력의 일종이다. 그러나 99대대는 세간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존재만은 낭설로써 속삭여졌다.
전원이 미스릴 클래스인 척살부대.
과거의 대숙청에서 초대 원로원 가문의 저항을 짓밟은 황제의 비수 중 한 자루.
9명 모이면 마스터 클래스마저 죽일 수 있다는 살인귀 집단.
조금이라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면 코웃음으로 넘길 만한 허황된 소문들이지만, 그게 전부 사실이라는 걸 셀루스티아 남작은 알았다.
늘 2자리 수의 미스릴 클래스를 유지하며, 9명 모이면 마스터 클래스마저 죽인다. 실제로 과거에 초대 원로원 가문의 마스터 클래스 전사를 죽여보이기까지 했다.
마스터 클래스라는 이름은 가볍지 않다.
무예에 무지한 몬스터라면 모를까, 같은 인간끼리는 9명은 커녕 90명이 모여도 동귀어진조차 불가능하다. 판돈과 패를 들키고 베테랑 갬블러와 전 재산을 걸고 도박하는 듯한 짓이었다.
그 90명이 미스릴 클래스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99대대는 그런 상식마저 훌쩍 뛰어넘는 존재였다.
1+1로 2가 아닌 10만큼의 전력을 발휘한다는 처형인들.
남작은 황실의 끄나풀로서 그게 진실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설탕 필요하시오? 나는 단 게 좋더군.〉
그래서였을까. 소탈하게 설탕종지에서 티스푼을 퍼올리는 남자가 그 99대대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남작이 받아들이는 데에는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아,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남작은 손을 저었다. 그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소? 단 게 싫은가 보오. 다행이군. 선물 차 가져온 ‘초콜릿’이란 물건이 꽤 괜찮거든. 달콤한 맛도 있고 쓴 맛도 있지.〉
〈초콜릿이라고 하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헤르마이온 길드가 팔기 시작한 디저트요. 울프헤딘 백작의 작품이겠지. 그 재료가 아즈테카의 품종라는 소문이거든.〉
〈그거 기대가 되는군요.〉
남작은 아즈테카란 말에 조금 관심을 가졌지만 표정으로는 티내지 않았다.
〈나 또한 아쉽소. 그런 인재가 죽어야 한다니.〉
자엘은 설탕을 휘젓고 찻잔을 들이켰다.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말에 남작은 어깨를 작게 떨었다.
〈마저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울프헤딘 백작의 마수를 막고자 남작을 찾아왔소. 조국 로마니아의 ‘치부’에 손을 뻗게 둘 수는 없으니.〉
〈……폐하의 명령입니까?〉
〈알고 싶소?〉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우리들은 유적 안에서 백작의 심복, 혹은 그를 기다릴 것이오.〉
남작이 호기심을 접자 자엘도 미소지었다.
〈저들 탐사단이 잘못된 장소로 향한 것이 착각이건, 함정이건 언젠가는 이곳으로 올 거요.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소. 폐하께서 이르시기를, 인내는 미덕이라 하였잖소?〉
〈열과 성을 다하여 협력하겠습니다.〉
셀루스티아 남작을 테이블에 이마를 비빌 듯이 머리를 숙였다. 자엘은 소탈하게 웃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방을 나오는 그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기듯 표정이 사라졌다.
〈통제는 며칠 더 유지한다. 백작이 저 유적이 히타이트의 유적이란 걸 알고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침입해 오겠지.〉
본인이 숨어들었든 부하를 보냈든 간에 말이다.
자엘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아는 걸 모조리 토해내게 만들 방법과, 그걸 막는 마법을 파훼하는 마법은 99대대의 전매특허였으니까.
그렇게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자엘과 99대대는 알지 못했다.
【광신도로군. 섬길 신은 잘못 골랐지만.】
처형인들 앞에선 무력하게 떨고만 있던 남작이, 따분하게 턱을 괸 채 그들이 나선 방에서 하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충 들리는 소문만 봐도 〈인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일 텐데, 노르드도 인간들에게 죽지는 않겠지. 죽으면 나도 좀 곤란하긴 한데……】
중얼거리던 그가 허공에 손을 저었다.
─쩌억.
그 손짓 한 번에 빈 공간이 찢어지면서 별하늘 같은 공간이 작은 병을 떨어트렸다. 남작은 병의 내용물을 자기 찻잔에 건성으로 들이부었다.
─똑똑.
〈남작님.〉
〈음? 아, 들어오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하자 시종이 들어왔다. 차기를 정리하던 그가 물었다.
〈차가 식었군요. 새로 내오겠습니다.〉
〈됐네. 마신다면 차가운 게 더 낫지.〉
〈예.〉
시종은 주인의 취향에 대해 논할 자격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셀루스티아의 가주들은 대대로 욕심이라곤 없었으며 모두가 영지를 잘 운영해나가고 있었다. 시종은 그런 당주를 보필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함마저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는 남작이 놓은 병을 몰래 살폈다.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네?’
남작은 시종의 일을 보는둥 마는둥, 보통 사람 같으면 입에 넣자마자 토해낼 듯한 소금물을 무척 기껍다는 것처럼 홀짝거리며 웃었다.
99대대가 이긴다면 곤란하지만, 진다면 굉장히 우습지 않겠나.
물론, 남작은 그 우스운 꼬락서니를 기대했다.
【제왕의 어전에는 광대가 필요한 법이지.】
광대에게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그 정체조차도.
왕을 웃게 하고, 가끔 지혜를 빌려주는 역할만 완수해내면 그만이었다.
저 외눈의 천공신의 곁에 머물렀던 광대들처럼.
〈남작님, 뭔가 명하셨습니까?〉
〈별 것 아닐세. 배가 좀 고프긴 하군.〉
혼잣말을 들은 시종이 알지 못하는 언어에 되물어보자, 남작은 미소지었다.
〈자네, 올해로 근속이 몇 년 차였지?〉
〈예? 아…… 11년 쯤 됩니다.〉
〈후임은 가르쳤고?〉
〈네. 영광스럽게도 제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남작님께 차를 타 드릴 것입니다.〉
시종은 자부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야반도주한 제 아버지를 대신해 저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주셨으니, 그 은혜를 내려입은 제 아들놈도 남작님을 평생토록 섬길 것입니다.〉
〈그랬었지. 자네 아비는 상등품이었어. 자네도 기대되는군.〉
〈……예?〉
멍청하게 질문한 시종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퐁당. 그의 몸이 바닥에 빠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남작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오랜만의 만찬에 콧노래를 불렀다.
【당신의 아들들을 축복하소서. 저희는 재림의 날만을 기다리옵니다.】
현대의 인류는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
금발 잼민이를 방치하고 여관으로 돌아온 뒤.
“기왕 초대받았는데, 가 보셔야죠♡?”
혼신을 다해 삐진 라리루라를 달래는데 성공한 나는 그런 말을 듣고 멍해졌다.
“……그 게이게이 놈을 보러 가라고?”
“네! 뭔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렛츠 미인계♡!”
아 쉬펄 진정헤 미친년아.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암만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도 그렇지 사랑하는 아내님한테 할 말이 따로 있지. 비록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지만 말이다.
“기, 기다려 봐. 내가 모르긴 몰라도 오며가며 들은 얘기로는 티베리우스 용병단은 현지 교단에 헌금을 내고, 그 부지 안에 묵고 있단 말이지?”
현지 귀족이랑 척을 졌으니까 교회의 힘을 빌려가며 안전지대로 숨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말이야? 일단 그, 축복이란 걸 받아야 해.”
“아핫♡ 받으시면 되잖아요?”
“우리 집은 대대손손 무교야!! 그리고 그 축복이라는 건 알몸으로 수녀한테 머리에 성수를 끼얹어지는 거라고!! 쥬지를 달고 가면 100% 들키잖아!!”
그랬다.
사실 알몸은 아니고, 얇은 흰 옷을 입고 목욕을 한 뒤에 머리에 성수를 부어지는 절차였다. 바깥 세상의 더러움을 닦아내야만 신의 어전에 갈 수가 있니 어쩌니 하는 이유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쥬지만은 지킨 상태!!
‘거기서 얇은 옷을 입고 몸을 적신다?’
들키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쥬지가 음속으로 덜렁덜렁. 수녀님이 몽큐의 절규.
신성모독으로 투옥 당하기까지 하루조차 안 걸린다는 데 저 초대장을 보낸 씹게이 새끼의 부랄을 두 짝 다 걸 수 있었다.
신분을 밝히고 나오면?
─울프헤딘 백작은 여장 취미가 있다더군.
─허미 씹… 아내가 6명이더니 다 위장이었어?
─씌불 꼴리네. 오늘은 백작님으로 한 발 뽑음.
갸아아아아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냉정을 유지했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논리가 필요하니까!!
“이 초대를 받으면 말이야, 프리실라. 내가 양성구유의 절세미녀로 프릭쇼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우리 귀여운 서커스걸께서 설마 남편을 은화 30닢에 팔아치우진 않을 거지?”
“잠깐 뗐다 붙이면 그만 아닐까요?”
“이 씨팔!!! 내 쥬지는 탈착식이 아니얏!!!”
우리 후배님, 화 하나도 안 풀렸구만.
“아델라이데 씨가 만들어주신 목걸이를 빌리면 변신 마법은 새로 걸 수 있어요. 조금 수준은 떨어지겠지만, 눈속임 정도라면 가능할 거랍니다~?”
웃으며 슬금슬금 접근하는 라리루라.
나는 공포에 떨며 물러났다. 침대에 발이 걸려 넘어지자 변신한 라리루라가 내 몸에 올라탔다. 씩 웃는 미소가 복수와 장난기로 깜찍발랄했다.
“……가만히 계세요, 언니. 전부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자, 잠깐만. 뭐하려고?! 너 미쳤어?!”
“왜요, 괜찮잖아요? 어차피 다른 사람이 올 것 같지도 않고.”
“그건 그렇지만! 흐악?! 야! 옷!! 옷 벗기지 마!!”
나도 모르게 저항하면서 외쳤다. 상대가 라리루라여도 상관없다. 힘으로 떨쳐내려고 했을 때였다. 문득 데자뷰가 내 뒤통수를 두들겼다.
“……에헤. 진짜 신기하다. 그쵸?”
잠깐만, 이 대사. 어디서 들어봤는데?
‘……개 씨팔 예지몽!!’
맞다. 이 전개, 예지몽에서 봤던 그거다!
역시 내 예지능력은 애미 없는 카산드라였다! 이 눈이 보여주는 건 파멸의 미래 뿐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씨이팔!! 그 예지의 내용이 내가 암컷타락하는 장면이었다니!!
그렇기에 이 순간, 나는 오딘의 말을 되새겼다.
인간이라면 운명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아니지, 그런 말을 했던가? 몰라씨발레후. 암튼 비슷한 말은 했었다.
신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TS물 멈춰!!!”
─쏘옥! 나는 라리루라의 구속에서 몸을 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