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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빨! 기절해 있는 건 편해서 좋은데 손이 모자라 죽겠네!
노르드는 발퀴리에들에게 문을 열도록 시키고, 천리안으로 찾아낸 일행을 99대대의 집행관들이 쓰던 〈공간 도약〉 유물로 문 앞까지 데려갔다.
기절한 일행은 가진 실력만큼 육체도 강인해서 죽음은 면했지만, 산소를 공급받은 지금도 일어날 듯 보이지 않았다.
─발퀴리에들! 문 열어뒀냐?! 아니, 대답할 것도 없네! 맞팜람 존나 들이닥치는 걸 보면 열어둔 거 맞구만! 이 사람들 업고 얼른 따라와!
룬 봉인에서 풀려난 발퀴리에들에게 두 남매와 윈스턴을 던져주는 노르드.
기압 차이로 부는 바람 속에서 사람들의 이목이 모이기 전에 도망치는 그를, 차원의 틈새에서부터 1마리의 이생물체(異生物體)가 지켜보고 있었다.
【……뭐, 예상대로의 결과군요.】
부정형의 육체는 거뭇하게 일렁거리고, 이렇다 할 명확한 형태를 갖추지 않는다.
일자무식한 필부가 보더라도 이 세상의 생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법한 모습.
【어떻게든 즉사만은 피했나요.】
몇 분 전까지 셀루스티아 남작이었던 생물은 차원벽의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죽음이 임박하기 전, 그는 자신의 혼을 나누고 차원의 틈새로 피신시킨 것이었다. 남겨둔 영혼과 기억을 일부러 취사선택하기까지 했다.
단지, 그의 영혼이 입은 치명상은 심대하다.
산산히 조각나고 거의 소멸한 영혼.
인체에 대응하면 심장과 뇌만 절반 가량 남겨진 상태와 같았다.
평범한 생물이라면 죽음과 다름없고, 노르드는 지금까지 봐 온 영혼의 ‘치명상’을 어림잡아 그의 영혼을 탐색하고, 남작의 소멸을 확신했다.
어딘가로 피신했어도 10초 이상 연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그의 혼은 세계수에 존재하는 여타 생물군이나, 그 생물을 만든 신들과도 전혀 다른 생태를 띄기 때문이었다. 파편만 남아도 이렇게 생존할 수 있다.
단지, 그런 그라도 멀쩡하진 않다.
‘탈출도 불가능. 영원히 갇힌 거나 다름없군요.’
흡수당한 마나의 잔량은 영혼의 상태보다 한층 처참했다. 작은 야생동물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이 차원의 틈새로부터 탈출조차 감행할 수 없다.
물론 차원벽의 틈새를 찾아내서 그를 찾아내는 존재는 그리 많지도 않다.
시간을 들이면 회복은 가능하다.
중요한 건 ‘어디서’ 회복할지다.
‘화신께 빙의하려는 수작은 사전에 차단당했고, 아무런 도움 없이 이 공간에서 스스로 회복하려면 최소 3천년은 들겠습니다.’
그가 흡수시킨 구신의 마나는 브류나크에게 차단당했다.
이곳에 남아서 스스로 회복하려면 문명이 하나 멸망하고 다시 태어날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도면 라그라로크가 1번 더 일어나고도 남을 것이었다.
【후후후.】
그렇기에 그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일렁….
전투 중 소환해 두었던 흡혈생물이 조각난 그의 손에 한 방울의 피를 바쳤다.
피부로부터 생채기 하나 내지 않고 채취한 피.
그가 초장부터 망령들을 불러냈던 건 지팡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이 피 한 방울을 채취하고── 그 주인의 몸에 의식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이생물체의 시각기능이 라리루라를 살폈다.
‘화신께 신임을 받는 어린 첩. 빙의 대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군요.’
구신의 마나는 없으나, 노르드가 부부로서 정을 베풀어 마나 면의 동질성은 거의 유사해졌다. 저 육체에 숨어들어도 즉시 들킬 염려는 적다.
빙의한 뒤에 노르드에게 들킨다면 별 수 없다.
그럴 운명이었던 거라고 치고 포기하는 수밖에.
하지만 들키지 않는다면?
그는 소리를 죽여가며 웃었다.
【저는 경고드렸습니다. 광대를 경계하시라고.】
파멸은 내부의 배반자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신들이 유희신 로키──로 ‘변장한’ 이가 초래한 황혼으로 멸망한 것처럼.
그리고 라그나로크 이전에, 바니르의 왕과 애시르의 외눈 여신이 그가 섬기는 위대한 분께 이름과 존재를 빼앗겼던 것처럼 말이다.
‘직전의 몸과 달리 빙의대상이 암컷이기는 합니다만, 상관은 없겠죠.’
셀루스티아 가주로 살아갈 때도 여자였던 적은 몇 번 있었으니까.
무성(無性)인 그들에게 성별의 구분은 사족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집필한 마도서의 술식대로 새 몸에 갈아타고자 이적(異蹟)을 행사했다.
쿠르르르르……!!
바닥까지 끌어모은 마나가 술식으로 발현한다.
어두운 마나는 노르드의 감지를 피해서 기절한 소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은밀한 마수가 두족류 생물의 촉수처럼 라리루라의 뺨에 달라붙었다.
─티잉!!
그리고,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튕겨져나갔다.
【……………….】
무방비하고, 노르드나 그와 비교하자면 열등한 한낱 소녀.
그런 평범한 인간에게 자신의 마법이 실패하고 말다니. 초유의 이상사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에 눈에 띄게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또각.
단지 벽도 바닥도 없는 공간에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에 탄식했을 뿐.
【오랜만이야. 꼴 좋네, 이족(異族).】
그녀는 광대 같은 차림을 한 인간이었다.
좌우의 색이 다른 옷과 양쪽으로 갈라진 삐에로 모자. 얼굴에는 문신처럼 스페이드 문양을 새기고 끝이 뾰족하게 선 신발은 구두처럼 날렵했다.
【낡은 패션이군요. 시대를 천 년 정도 착각한 것 아닙니까?】
그는 차원의 틈새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들어온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자신도 좌표를 알지 못하는 공간에 찾아오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상대가 상대라면 놀랍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그녀야말로 한때 이 세계수의 구천세계를 가장 자유롭게 오고 가던 신.
어느 때는 만언신으로 불리고, 어느 때는 유희신으로 불리던 존재.
【진작에 죽었던가, 새 몸으로 갈아탔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로키.】
바니르의 트릭스터. 오딘과 헤니르의 의자매.
황금시대 제일의 광대로서, 인류의 역사를 관조하던 여신의 말로(末路).
언어와 유희의 신, 로키=로두르였다.
【실제로 죽을 뻔 했어. 나르메르 태양 바보의 귀염둥이(Pharaoh)도 아니고, 엘릭서에 푹 잠겨서 미이라 마냥 수백 년을 쿨쿨 자다가 얼마 전에나 깨어난 참이야.】
여신은 상하좌우도 없는 공간에 서서 대답했다. 이족은 눈을 찌푸렸따.
【염치도 없군요. 벗들도 잃고, 믿었던 인간에게 뒤통수를 맞아 의자매의 신좌까지 빼앗긴 주제에 아직도 무대 뒤에 뻔뻔하게 남아있고 싶습니까?】
【시구르드 때는 시기를 착각했을 뿐이야. 설마 수만 년을 기다려서 찾은 녀석이 마기도라가 말한 구세주가 아니었다니, 난들 알았겠어?】
대수롭지 않게 과거의 내력을 언급하는 그에게, 여신 또한 평이하게 대답했다.
【대답하는 꼴을 보면 진짜가 맞군요. 그래서? 저 아가씨가 당신이 크라운 크라운 다음으로 몸을 빼앗을 가엾은 희생양입니까?】
그는 비아냥대듯 라리루라를 보았다.
사지를 잃은 상태여서는 그녀를 가리킬 촉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슥…. 여신은 역겨운 것처럼 눈쌀을 좁혔다.
【빼앗다니? 듣는 여신 불쾌하네. 내가 너희들 같은 괴물인 줄 알아?】
【아, 그러셨죠. ‘죽은 인간의 영혼과 약속하고 육체와 존재를 빌린다’였던가요? 위선자들 같으니. 누가 오딘과 헤니르의 동생 아니랄까 봐, 궤변은 여전하군요.】
여신은 대답하는 대신 웃었다. 그녀가 무엇보다 화났을 때의 표정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죽어가는 이족은 큭큭 거리며 여신의 말로를 비웃었다.
【그 오르왈리아 광대의 몸은 아직 굴러갑니까? 슬슬 한계일 텐데요.】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
너야말로 곧 있으면 죽을 테니까.
─사르륵. 로키의 손에서 실이 뿜어졌다. 그물에 묶이면서 이족은 뇌까렸다.
【통탄스럽군요, 가엾은 광대여. 당신이 나타날 때는 언제나 그 시대를 끝낼 전쟁이 찾아올 때죠. 라그나로크도 인간들의 대전쟁도 막지 못해놓고, 여전히 자신이 무언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까?】
【당연하지. 간신히 진짜 울프헤딘을 찾았는걸. 그 바보 언니의 후계자를.】
【그러나 당신보다 우리의 신께서 더 빨랐죠.】
【누가 더 빠른가는 대수롭지 않아. 중요한 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지.】
꽈아아악…!!
조여드는 마나의 실은 여신의 권능으로선 말도 안 될 만큼 약했지만, 영멸 직전의 이족을 죽이는 데에는 충분했다. 분노한 여신이 손을 당겼다.
【잘 가렴, 씹어죽여도 모자랄 별의 아이야. 곧 네 친구들도 지옥으로 보내줄게.】
【지옥이라니, 인간들이나 믿을 헛소리를.】
탄식한 그는 목숨의 끝을 앞두고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그냥 깔끔하게 화신께 살해당하는 편이 나았을 뻔 했군요.】
─뿌직!
부정형의 육체는 으깨지며 소멸했다.
수만 년을 살아온, 자신이 낳은 슬레니프니르나 프레이야보다 고령일지도 모르는 이종족의 초라한 죽음을 몰락한 여신은 차갑게 바라보았다.
─또각.
발끝을 돌리고 차원의 벽을 뛰어넘어서, 그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콜록.】
여신은 참았던 기침을 터트렸다.
파사삭…. 기침한 손에 굳은 피가 묻어나왔다.
여신은 착잡하게 피를 닦아내고 상의를 들췄다. 그녀의── 아니, 크라운 크라운의 심장은 예리한 것에 꿰뚫린 흉터가 얼기설기 메워져 있었다.
【……너도 궁금한 게 많겠지. 묻고 싶은 것도.】
차원의 틈새로 노르드를 보며 여신은 속삭였다.
【나를 만나러 오렴. 어여쁜 공주님이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데에는 꼬부랑 할망구가 더 적임 아니겠니.】
…비틀. 중얼거리던 로키는 무릎을 꿇었다.
과분한 권능은 죽어가는 육체를 황폐화시켰다. 인간들이 만든 마도구에 몸을 기댄 그녀는 녹슬어버린 황금 열쇠를 인간들이 만든 장치에 꽂았다.
그녀의 신좌가 깃든 열쇠는 히타이트의 유물이 만든 차원장벽을 내렸다.
─희번뜩!
그렇게 그녀의 존재를 감추는 방화벽의 수위를 낮추자, 기다렸다는 듯 2쌍의 눈동자가 마도구에 기댄 그녀를 찾아내고자 결계 주변을 후볐다.
하나는 그립기도 한 의형제, 헤니르의 시선.
둘은 한때 친구이자 동료였던 인간, 시구르드의 시선.
【……스토커 자식들. 눈치는 귀신 같다니까.】
로키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오딘 언니의 후계자…… 저 바보들보다는……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중얼거리던 여신은 잠든 것처럼 눈을 감았다.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히타이트의 왕성은 힘을 잃은 여신의 요람처럼, 차원과 차원 사이의 틈새에서 방문객을 기다렸다.
이차원에 잠든 왕성을 찾는 이가, 여신이 축복을 내릴 사람이길 기도하는 것처럼.
***
유적 근처는 혼파망 그 자체였다.
〈악! 이 애미 뒤진 경비병 새끼가 쳤어?! 이거 과실치사야, 새끼야!!〉
〈살짝 떠민 것 갖고 억지 부리지 마십쇼!!〉
저 존나 소란스러운 꼬라지 봐라. 여기가 시장통이지 유적 앞이냐? 몬스터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저 지랄들인지. 나는 조금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나, 남작님?!〉
〈그래…… 아, 아니. 그렇습니다. 예. 보다시피 제가 셀루스티아 남작입니다.〉
방금 족치고 온 남작으로 변신한 나는 애 쓰며 귀족 흉내에 몰입했다.
〈사정은 들었습니다. 자, 다들 물러가 주시죠.〉
〈어, 어어……〉
아무래도 트루 귀족 앞에서 배짱을 부리지는 못하는 것일까. 우리 명령에 따라서 몰려든 탐사단 + 용병단은 우물쭈물하며 망설였다.
그럴 줄 알았지. 나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니면 여러분의 대표를 불러주시겠습니까?〉
〈예?! 아, 아닙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이름이 플랑크톤인가 하던 금발 씹게이 새끼는 불한당들을 델꼬 빤스런을 쳤다.
이유는 별 거 없다. 나랑 우리 일행들은 유적을 털어야 하니, 만약 ‘대표 불러 씌바’하면서 귀족이 나타나면 그냥 사과하고 튀라고 전해뒀던 것이다.
‘딴 놈들은 우리가 유물을 홀라당 쌔비러 갔단 것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황 정리는 됐다. 나는 경비병들한테도 대충 복귀하라고 전했다.
〈보, 복귀 말입니까?〉
〈내부의 안전은 확인했으니 됐습니다. 후환이 있으면 제가 감당할 테니, 어서 물러가시기를. 별 문제 없을 겁니다. 다들 고생하셨군요.〉
대충 사람을 시켜서 보너스를 돌리자 병사들은 좋다고 물러났다.
집사인 듯한 남자만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꼴 뿐.
〈남작님 목소리가 평소랑 다른 듯한……〉
〈감기에 걸렸습니다. 며칠은 앓아눕겠군요.〉
〈예? 편찮으시면 신관을 부를까요?〉
〈됐습니다. 당신도 물러가시길.〉
반 강제로 사람들을 물리친 나는 다시 일행들을 눕혀놓은 곳으로 돌아갔다. 1명도 깨어나지 않은 걸 확신하고서 그들을 여관까지 데려가서 투척.
“푸우.”
그리고 인피면구를 벗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허접한 변신 마법이라서 들키는 줄 알았네.”
─휘리릭!
룬을 풀자 인피면구는 절세미녀로 되돌아갔다.
알다시피 내 변신 마법 적성은 물체에 작용하는 변신에만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론 상, 이 변장용 도구를 건드리면 어떤 얼굴이든 될 수 있다.
〈인신〉처럼 끗발 있는 놈들은 눈치챌 테니까 원형 이상으로는 못 건드렸지만, 지금처럼 셀루스티아 남작으로 변장할 뿐이라면 문제 없다.
‘남작은 뒤졌지만, 그걸 아는 건 우리 뿐이지.’
발퀴리에를 셀루스티아 남작으로 위장시켜 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신분으로는 결혼도 안 한 듯 하니, 남작가엔 가족이랄 사람도 없겠지.’
친척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회수한 영혼에서 정보를 뽑아내서 잘 끼워맞출 수 있다면, ‘부하들이 다 뒤지고 남작만 살아남은’ 상태를 위장하는 건 가능할 것이었다.
이 거짓말이 통할지는 해 봐야 알겠다만.
‘들키면 들키는대로 상관없고.’
아무튼 볼 장은 다 봤다. 옷의 변신도 해제시킨 나는 잠든 라리루라의 이마나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은 모양.
그래도 혹시 독 같은 거에 당했다간 큰일이다. 옷까지 싹 벗겨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 나는 다시 옷을 입혀주고 침대에 눕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근처에 와 있을 다나를 부를까.’
와서 라리루라 몸 상태를 좀 봐 달라고 하자.
한 번 니르바나의 변신을 풀었기에 나는 또다시 그 모습으로는 못 돌아간다. 나머지 절차는 직접 변신 가능한 라리루라가 ‘프리실라’로서 맡아줘야 한다.
─사각사각.
다시 효과를 되찾은 메달에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 나서 윈스턴과 티베리우스 남매가 찾은 유물들을 뒤적거리는 나.
‘다행히 별 건 없군.’
그럴 만도 했다. 중요해 보이는 건 나랑 라리루라가 싹 쓸어갔으니까.
자기가 뭘 챙겼는지는 기억할 테고, 나중에 이 메달을 돌려주면 불만은 없겠지. 돈이 될 법한 건 있어도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의 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수확은 이쪽이지.’
나는 남작과 그 수상쩍은 새끼들의 영혼을 담은 룬 스톤을 늘어놓았다.
─달그락.
그리고 남작의 룬 지팡이도 말이다.
나는 룬이 휘몰아치는 지팡이를 랜턴에 비췄다.
“새삼 신기하네.”
어떻게 무기에 이렇게 많은 룬을 넣을 수 있지?
‘룬 부여 마법은 보통 무기 1개에 문자 하나일 텐데.’
그 법칙을 무시하는 물건이라.
나중에 차분하게 봐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잘 챙겨두자.
‘그럼 어디, 나머지는……’
라리루라랑 같이 챙긴 유물을 오딘의 눈으로 좀 확인해 볼 차례인가.
‘……이젠 오딘의 눈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불편하게 눈을 쓰다듬는 나.
내가 아는 ‘오딘’과 ‘천공신 오딘’의 모순점.
그걸 아내들에게 설명해주는 건 이 개새끼들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해야 하나. 나는 간간히 라리루라를 돌아보면서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뎃?”
그러다가 발견했다.
라리루라가 아무 생각 없이 쓸어넣었을 유물들 사이에, 특징적인 마나를 새긴 뿌연 깃털이 있는 것을 말이다.
나는 다나가 〈공간 이동〉으로 날아올 때까지 그 깃털을 살펴보고, 눈치챘다.
“이건……”
이 눈으로 분석되지 않는 구조.
하지만 틀림없이 깃들어 있는 막대한 힘.
십중팔구, 공간을 관장하는 신의 권능이 깃들어 있는 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