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술식도, 움직임도 없이 산들바람을 일으키며 서 있는 소녀.
─꿀꺽.
그렇지만 맞서는 기사단장은 바짝 굳어 있었다.
그도 별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살펴봐도 검을 대충 든 소녀─모습을 한 원로─의 자연체는 틈이 전혀 없었다. 어떠한 카리스마마저 있다.
저 자세에서 뿜어지는 절기를 잘 아는 사람은 더 그렇지 않을까.
〈……새치기.〉
그래서였을까. 석상처럼 굳어버린 둘 사이에서 네페르티티만 중얼거렸다.
〈응?〉
원로, 천검제후 아우렐리우스는 한 발짝 느리게 토라진 그녀에게 반응했다.
〈……아, 갑자기 끼어든 거라면 미안해. 제자가 벽에 부딪힌 듯 해서 그만. 사과가 되진 않겠지만, 뭣하면 너도 같이 겨뤄보겠어?〉
〈같이? ……요?〉
〈둘이 동시에.〉
전사의 호승심과 흥미를 동시에 자극하는 말.
냉정한 네페르티티라도 넘어가지 않으려기에는 ‘대련’이라는 말이 풍기는 유혹이 컸다. 나보다 더 강한 달인에게 져도 죽을 일이 없는 싸움을 걸 수 있다니? 나라도 못 놓치지.
〈그래도 돼…… 요?〉
〈편하게 말해. 군인도 아니면서. 딱딱한 말투만 쓰다 보면 머리까지 굳어지지.〉
〈응.〉
황제한테 ‘님 도랐음?’하고 박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변경백에게 쿨하게 OK라고 대꾸해주는 우리 사차원 아가씨. 그래 뭐, 문제가 되면 내가 책임져 주면 되지.
함께 덤비라는 선언을 기점으로, 네페르티티와 기사단장은 위치를 조정했다.
기술은 제대로 몰라도 기사단장이 움직이는 건 봤다. 네페르티티는 그에게 선수를 양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훈련용 채찍이 공기를 찢었다.
─팡!!!
평범한 가죽 채찍. 나랑 훈련하려고 구한 네페르티티의 물건이었는데, 바람을 찢으며 몸을 노리는 채찍은 절대 훈련 중의 공격으론 안 보였다.
급소를 피했지만 확실히 살벌한 공격.
증가한 마나를 살린 채찍의 첨단이 흐릿해지며 변경백의 어깨를 쳤다.
─텅!
하지만 변경백은 피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채찍 끝을 정확하게 맞받아쳤다.
우신의 가죽으로 만든 채찍이라면 몰라도, 저런 평범한 채찍은 그녀들의 힘을 견딜 방법이 없다. 허망하게 튕겨나오는 채찍.
《사막의 뱀과 같이(r-Hr.i ir.kwi mi sA-tA n smt).》
네페르티티가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읊조렸다.
─츠팟! 바닥을 기던 채찍이 다시 뿜어졌다.
상하좌우로 합계 4번.
저 번뜩이는 속도와 위력을 세상 누가 채찍질이라고 여길까.
─투투투퉁!!
변경백은 침착하게 튕겨냈다. 집채만한 바위를 절구에서 마늘 빻듯이 박살낼 공격을 나무로 만든 칼로 침착하게 받아치는 솜씨는 경외할 만 했다.
하지만 네페르티티도 멈추지 않았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오러는 띄지 않았지만 늘어난 마나는 본인조차 간신히 통제하는 수준에서 채찍의 잔상으로 넓은 연무장의 절반을 뒤덮었다.
마치 연무장에 채찍을 꽂은 믹서기가 초당 수십 바퀴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보이는 놈 거수?〉
〈내일부터 눈깔은 장식으로 들고 다니려고.〉
〈그걸 이제 눈치챘냐? 병신. 나는 옛적에 포기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음.〉
〈느리구나. 깨닫는 것조차.〉
구경하러 온 기사들은 다시 야무치 행이다.
끊임없는 맹공. 수작을 부리게 냅두면 뭘 할지 모르는 흑마법사들에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 절기의 연속이었다.
나랑 같이 싸울 땐 주로 후방 견제를 맡아주는 네페르티티지만, 그 본질은 흑마법사 사냥꾼이다. 마법사의 간격보다 가깝고 전사의 간격보다는 먼 거리에서 채찍이 날뛰었다.
혼자 싸울 때가 더 많은 그녀가 자기 마음 가는대로 싸울 때, 그 결과는 복수심과 분노에서 나온 격렬한 맹공이었다.
땀을 닦던 프랑도 수건을 놓칠 뻔 했다가 입을 벌렸다.
“노르. 네페르티티 씨, 더 강해졌어?”
“마나량이 늘었으니까.”
당연한 계산이었다. 다나는 거슬리는 듯 갑옷을 벗어던지며 중얼거렸다.
“1방 1방의 위력은 늘…… 어나진 않았나?”
“어. 우신 토벌 때랑 큰 차이 없어.”
우리 눈나도 은근 안목이 늘었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페르티티도 달인이야. 마나가 늘어난 정도로 새삼 기술이 강해지진 않지.”
마나량 좀 늘렸다고 위력이 갑자기 늘어난다?
원래부터 ‘기술에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었다’는 소리다.
기술이 완성되어 있지 않았었단 말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지.’
오러를 깨우친 달인에게 미숙함이란 말은 연이 멀다.
나처럼 우물을 여러 개 판 놈도 아니잖나.
평생 한 우물만 파던 그녀의 기술은 이미 완성 상태다. 게임으로 치면 레벨 10. 스킬 경험치 바가 0/0으로 고정되서 더 강력해질 여지가 적다.
‘마나를 넣은 만큼 강해지는 마법이랑은 본질이 다르거든.’
이렇게 보면 우리 수준의 전사에게 마나량은 별 의미가 없는 듯도 보인다.
하지만 그건 단락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차이는 있지. 마나를 아끼려고 못 쓰던 절기를 막 쏴댈 수 있다는 거.”
그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마나량 상승이 장점이 되는 이유.
‘이세계의 기술에는 쿨타임이 없어.’
선딜 후딜, 주문과 반동의 개념은 있어도 많은 무술은 연발이 가능하다.
프랑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치만 큰 기술을 그렇게 연발하면……”
“마나가 금방 바닥나지. 그러니까 보통은 못 해. 마나를 최대치의 20%씩 처먹는 기술을 어떻게 막 쏴갈겨? 2번 쓰면 남은 마나가 반토막 나는데.”
마나는 강함의 근간이자 연료통이고, 생명선이다.
타고 있는 게 전차면 뭐해? 연료가 없으면 그냥 벙커인데.
심지어 인간은 마나가 빠지면 방어력도 내려가.
갑옷? 까짓거 걍 벗기고 후비면 뒤져요.
달인끼리 싸울 때의 승리 플랜이 ‘내 기술로 저 새끼 대가리 뚜껑 따기’나 ‘마나를 바닥나게 해서 못 싸우게 하고 뚜껑 따기’로 요약되는 이유였다.
저번의 그 99대대의 전략이 후자의 예시다.
‘달인도 마나가 오링나면 킹반인이지 뭐.’
마스터 클래스도 마나가 바닥나면 빛 좋은 개살구요, 발기부전 30cm 쥬지다.
UFC 챔피언도 풀 마라톤을 3번 4번 뛰면 아마추어한테 못 이길걸.
단지, 이 상식에는 예외가 있다.
내가 99대대 놈들을 해치울 수 있었던 이유가.
〈으응?〉
공격을 쳐내던 변경백의 눈이 커졌다.
처음에는 물불 안 가리고 자기를 상대로 과격한 맹공을 시험해보나 싶던 네페르티티가 전혀 마나 퍼포먼스를 떨어트리지 않고 있어서가 아닐까.
〈너, 마나가 엄청 많네?〉
〈……애아빠한테 이것저것 얻어먹어서.〉
애아빠라니, 내 얘긴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수준의 전사가 마나량이 급증하면 어떻게 되는가?
‘뭘 당연한 걸 물어? 딜량이 훅 뛰는 거지.’
마나량이 3배 오르면 딜량도 3~4배 오른다.
평타 짬짬이 스킬 섞어 쓰는 새끼하고 데미지 쎈 스킬만 계속 쏴댄 새끼랑 딜량 결과값이 같을 수가 있나. 네페르티티는 달인이니까 격차는 더 커진다.
주문을 외우는 등의 선후딜도 없이 고위마법에 꿀릴 것 없는 절기를 남발한다.
적이 내 마나를 낭비시켜?
좆까. 내가 니들보다 마나 많아.
마나가 바닥나면 진다고?
그럼 바닥이 안 나면 되겠네?
이게 내가 마스터 클래스 몬스터마저 잡았다는 99대대 집행관들을 이긴 방법이다.
여기 +α로 오딘의 눈의 예측이랑 라리루라의 CC 서포트도 있었고.
‘미네랄이랑 가스가 훨씬 많고 맵핵까지 켰는데 못 이기는 게 븅딱이지.’
갈고닦은 절기. 방대한 마나.
경우에 따라선 마나가 적은 마스터 클래스보다 뛰어날지도 모를 힘이다.
어떤 의미로는 미스릴 클래스가 도달할 수 있는 강함의 정점.
〈가이우스는 구경하러 나왔니?〉
그러면, 그 강함을 유유하게 흘러넘기는 이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풍압만으로 연무장이 쩍쩍 갈라지는 연타를 칼 끝으로 쳐내면서, 아우렐리우스 변경백은 맹공을 지켜보던 기사단장에게 말을 걸었다.
〈……………….〉
네페르티티는 뭐라고 말하지도, 기술을 더 퍼붓지도 않았다.
그럴 수밖에. 건성으로 싸운 게 아닌데 어떻게 더 빨라지겠나.
〈……부족한 실력으로 한 수 배우겠습니다.〉
기사단장은 검을 상단세로 세웠다.
그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네페르티티의 기술을 보고 협력할 각을 찾은 것이었다. 네페르티티는 그 채찍을 되돌리면서 공격 방식을 바꿨다.
〈합!!〉
그 찰나 치고 들어오는 변경백에게 기사단장의 비검이 뿜어졌다.
─휙! 나는 팔에 괘고 있던 턱을 들었다.
‘바람의 마나?’
참격을 날리는 아르마알스 기사단의 검술!
거기에 농밀한 바람이 섞여 있었다. 내가 몇 달 전에 제시한 방향성을 완전히 검술에 녹여낸 것이었다. 그 무재(武才). 과연 달인이라고 감탄할 만 했다.
〈흐음?〉
그래서인지 변경백도 콧소리를 냈다.
─타탓! 참격을 피하면서 접근하는 그녀.
‘공세로 나왔나.’
눈을 찡그린 네페르티티는 견제로 돌아갔다. 저 변경백이 변태도 아니고, 공격을 봉인하고 방어만 해서 그녀의 맹공을 받아낸 괴물이다.
그 기술이 공격으로 전환되면 자기는 버티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건 맞지. 채찍은 원래부터 방어용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더 적의 기술을 아는 상대가 방어에 적합하다.
〈검을 겨루는 건 오랜만이지?〉
〈원로님의 기대, 부응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사단장의 몫이었다.
돌진하던 변경백의 팔이 흐릿해졌다. 쏜살 같은 찌르기를 패링하고서 그대로 반격으로 들어가는 기사단장. 검끼리 싸워서인지 기술이 더 정교했다.
〈자꾸 그렇게 부를래? 혹시 내 이름 잊었니?〉
─챙!!
당연하게도 그녀와 숙련도를 겨루면 불리하다. 기사단장의 반격은 가뿐하게 뒤집혔고, 검이 뒤엉키며 목검 뒷날이 그의 허벅지를 찌르려 들었다.
〈흡!!〉
그때였다. 목검에 품은 바람이 정해진 방향대로 불면서 밀착한 거리를 벌렸다.
딱 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한 간격!
반격기의 반격기인가? 새로 만든 기술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숙련도로 내보낸 칼날은 바람에 밀려버린 적의 쇄골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텁.
그리고 차올린 발끝에 너무나 쉽게 튕겨나갔다.
〈역시, 검격이 꽤 무거워졌구나.〉
─빙글. 옆구르기 하듯 구르면서 검을 걷어찼던 변경백의 말이었다.
“……빗나갔어? 우연이야? 야, 설명 좀 해 봐.”
다나는 신경이 쓰여서 미치겠다는 듯이 내 팔을 흔들어댔다.
“빗나가긴. 막은 거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우연히 발끝에 맞아서 튕겨나간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전부 읽히고 있다는 뜻이다.
〈……후우, 후우.〉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기사단장은 온몸에서 땀을 흘렸다. 그만큼 진심을 다한 교전이었던 건 내가 봐도 확실했다. 첫 수에 승부를 가를 생각이었겠지.
그럴 만도 했다.
저 실력을 잘 안다면 오래 끌어봤자 못 이긴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 실력 좀 볼까~ 하고 가벼운 방심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승산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했다.
〈네 검술은 내게 기초를 배우고, 이 가문에서 완성한 거였지.〉
─스륵. 높이 든 검을 세로로 겨누는 변경백.
〈아르마알스의 비검이 너한텐 잘 맞았지. 저기 뒤에 서 있는 음흉한 놈도 젊었을 적에는 마음이 내키는대로 여행하던 자유분방한 녀석이었다니까.〉
〈자유의 맛을 알아야만 부자유의 가치도 아는 법일세.〉
나는 연무장 뒤에 서 있는 어르신의 존재를 눈치챘다. 집중하느라 몰랐네, 씨바.
어르신의 옆에는 애를 안은 프리모르도 있었다.
─흥. 변경백은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아르마알스의 비검은 가벼워야 해.〉
〈……………….〉
〈‘바람이 흐르는대로, 마음이 시키는대로’. 널 미스릴 클래스로 만들어준 네 본질이었지. 이 집 녀석들은 다 그래. 자기 하고 싶은 걸 하기 바쁜 멍청이들이잖아?〉
기사단장이 오러를 깨우친 깨달음일까?
프리모르의 행적을 떠올렸던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르신이 날 줘패거나 후원을 하거나, 티르시를 돕는 것도 그랬지 않았나.
좋건 나쁘건 아르마알스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지키는 기사단장도 거기에 영향을 받은 듯 했다.
〈사람에게는 각자 맞는 풍토가 있어. 너는 그 경쾌한 검을 바람으로 만들어야 했어. 바보처럼 정말로 검 안에다가 바람을 불어넣는 게 아니라.〉
…뜨끔.
등을 돌리고 있는 변경백한테서 눈을 피하는 나.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절로 그렇게 되더라.
‘미안합니다. 헛된 바람을 불어넣어서.’
아무래도 내가 헛바람을 불어넣은 게 원인으로 기사단장의 검이 더 무뎌진 모양.
그치만 저런 검술을 만들려고 한 건 본인이니까 제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요?
〈바람은 멈춰버리면 여분의 무게에 불과해.〉
변경백이 쏘아붙였다. 프랑을 칭찬했을 때랑은 다르게 엄혹한 설평이었다.
〈아무리 가벼워도 군살은 군살이지. 검을 바람으로 만들진 못할망정 그 정반대로 행하다니, 꽤 오만해졌네. 자연을 검 한 자루에 담을 수 있을 성 싶었어?〉
〈……죄송합니다만, 스승님.〉
듣는 사람이 다 불편해지는 비난에도 기사단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는 이 방향이 옳다고 보았습니다. 저 스스로 정한 길입니다.〉
〈아, 그래.〉
연미복을 입은 소녀 변경백은 엄한 평가가 거짓말인 것처럼 쉽게 납득했다.
〈말한다고 들을 놈들이 달인이 될 리 없지.〉
아니면 처음부터 고집을 꺾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걸지도 몰랐다.
〈고집을 꺾을 수 없다면, 이번엔 내가 시험해 볼 차례야.〉
목검을 레이피어처럼 얼굴에 세운 그녀가 눈을 반개했다.
〈부러지지 않는 나무는 풍해에 뽑혀져 나가는 법이지. 부디 자존심만은 잃지 않게 주의하렴.〉
그 선언을 끝으로. 그녀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표현을 달리하면, 싸움이 끝났다.
─번뜩!!
틈을 찾던 네페르티티가 다른 절기를 펼쳤다.
연격이 안 통하자 단발 공격으로 바꾼 것이다.
〈빠르고 정교한 기술에는 단점이 있지.〉
거기에 응수하는 변경백은 채찍 끝에 검을 휘감았다.
〈가장 완벽한 경로는, 가장 뻔한 길이란 거야.〉
오딘의 눈을 켜고 있었고, 그렇게 빠른 기술도 아니었기에 내 눈에는 보였다.
검끝에 어른거린 마나가 채찍을 찢으며 바람에 뽑혀나간 민들레 씨앗처럼 갈아버리는 것을. 검을 꿰어넣자 칼날이 만개하듯 번뜩였다.
휘두르지 않아도 펼쳐지는 검격.
천검(千劍)의 권능.
상식을 무시하는 기적의 편린이었다.
〈원패턴 주의. 기억해두렴.〉
─퍼퍽!
네페르티티를 지나치면서 검 손잡이로 뒷덜미를 치는 퍽치기 변경백.
우리의 사차원 아가씨께선 골몰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가 스르르 눈이 풀렸다.
─풀썩. 온힘을 다해서 겨뤄본 그녀가 넘어졌을 때, 두 검사는 동시에 검을 뻗었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큭.〉
─텅그랑! 검을 놓친 기사단장이 신음했다.
전사가 가장 먼저 받는 훈련이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감지 않고, 무기를 놓치지 않는 훈련이랬나. 칼밥 먹는 사람한텐 기초 중의 기초일 것이다.
그러니까 완패라고밖엔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너한텐 조금 더 엄격해야 했을까.〉
그는 떨어트린 검에 손을 뻗었다가, 패배를 인정한 것처럼 멈췄다.
변경백은 검을 사뿐하게 털었다.
〈실컷 고민하렴. 고민할 여유가 있다는 건, 네 수준의 전사들의 특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