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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85화 (783/1,009)

“……음.”

나는 쓰러진 기사단장의 등을 쳐다보았다.

벽에 부딪히고, 거듭 노력해도 넘어서지 못한 채 삶을 끝마치는 달인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다른 이들이 보면 오러쟁이들의 배 부른 고민이겠지만 우리들에겐 진지한 문제이기도 했다.

자타공인의 달인, 미스릴 클래스는 희귀하다.

드물지만, 찾아보면 있다.

까놓고 말해서 많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순이냐고? 아니다. ‘희귀하지만 많다’는 얘긴 수학적으로도 말이 된다.

존나 인구 수를 10억으로 잡고 천만 명에 1명 꼴이어도 100명은 나오잖나.

실제 비율은 다르겠지만 천만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서 단 1명 꼴.

뒤지게 적은 게 맞지만, 순서대로 랭킹 100위를 매긴다 치자.

그럼 또 존나 많은 느낌 아닌가.

‘내가 이세계에서 2~3번 이상 만난 지인도 백 명은 안 될 건데.’

한국에서 파는 비엔나 소시지 종류도 100개는 못 채울걸?

당장 나도 앞뒤 분간도 못 하던 시절부터 웬 옆가슴이 뽀잉뽀잉하니 섹시한 미스릴 클래스가 고블린들을 갈아버리던 걸 목격하지 않았나.

존나 그로부터 1달도 안 되서 또 유니콘 미스릴 클래스랑 만났고.

그렇지만 그중 9할 9푼 9리의 달인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100명 중에 1명만 마스터 클래스가 된다 쳐도 쉽게 늙어죽지도 않는 소드마스터랑 대마법사들은 각국의 중추며 어디 동굴에 짱박혔다가 심심하다 싶으면 튀어나올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계적으로 마스터 클래스가 되는 놈들은 한 줌 뿐인 것이었다.

그럼 나는 어떨까.

나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낙관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내 타이틀이 오색찬란한 거랑은 다른 문제니까. 그냥 어디서 신좌 하나를 줍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를 일이고.

“……에휴, 시발.”

이런 걸로 고민해서 뭣하겠는가.

솔직히 마스터 클래스에 딱 오르고 나면 다음엔 ‘따흐흑 리즈 시절 오딘에 비하면 후달려용’하면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실감할 게 뻔한데.

─빙글.

아무튼 그렇게 승리하고 조언을 남긴 변경백은 고개를 돌렸다.

날 보고 계시네.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어요.

〈네가 노르드 폰 울프헤딘이니?〉

〈아마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없잖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의 공무원 화법.

강북호(은)는 중언부언(을)를 사용했다!

〈별난 대답이네. 아, 초콜릿이란 거 맛있더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들었을 때나 들지 않았을 때나 별 다를 바 없이 살갑게 키득거렸다.

〈너는 거기 앉아만 있어도 되겠어?〉

〈……이래봬도 미녀에게 춤추자는 권유를 받고 거절한 적은 없습니다.〉

진짜다. 권유한 게 아내들밖에 없었을 뿐.

‘마스터 클래스랑 싸워볼 기회자너.’

네페르티티도 만족하고 뻗은 것 봐라.

나랍시고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기절한 네페르티티를 밖에 눕혀놓고 손을 뻗었다.

‘만상천인.’

브류나크는 팔찌 모드지만 룬 지팡이를 흡수한 버프는 들어온다.

모자란 적성을 마나로 메꾸고, 라리루라가 창에 새겨준 〈꼭두극〉을 재현.

휘리리릭─! 척!

나는 연무장에 꽂힌 창을 허공섭물…… 이 아닌 〈꼭두극〉으로 당겼다.

어디 로마니아 변경에 사시는 후작님처럼.

변경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후후후! 아하하! 너, 보기보다 재밌구나?〉

〈타고난 위트가 있는 편이죠.〉

나는 창을 【게르튀르】에 맞춰서 겨눴다.

시험해 보고 싶었던 신 기술을 펼쳐볼 기회다.

제자를 망쳐놓은 씹새랍시고 패려 들지만 말길 바라자.

검에 가려저서 좌우로 나뉘어진 그녀가 웃었다.

〈미스릴 클래스의 끝자락에 선 녀석은 만나기 힘들지. 기대되네. 네 친구들처럼.〉

〈친구가 아니라 아내인데용.〉

〈……같이 있던 애들도? 설마 기절한 애까지 3명 다?〉

〈6명 다요.〉

다른 3명은 아직 뵌 적도 없으시겠지만.

변경백은 멍해졌다.

〈……가끔씩, 시대를 따라가기 힘들어지네.〉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 나는 픽 웃었다.

〈그보다, 저더러 미스릴 클래스 끝자락이라고 하셨습니까?〉

〈어? 아, 응. 맞아. 마스터 클래스라곤 하지만 형태는 여럿이니까. 몬스터의 위험성의 척도에 인간의 강함을 묘사하는 클래스 제도를 사용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흐흐. 이 방면에도 무척 박학하시군요?〉

〈그야 그렇겠지.〉

본인은 나타난 뒤로 1번도 자칭하지 않았지만, 세간에서 천검제후라고 불리는 소녀는 따로 놀랄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끄덕거렸다.

〈클래스 제도를 설립한 게 나니까.〉

……앗, 네.

뭐라 할 말이 궁해진 나는 잡념을 버리고, 궁극틀딱검사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나이를 물어보는 것만큼은 조심해야겠다.

‘야수회귀를 두를까?’

고민은 짧았다. 내 전법에서 이걸 봉인하는 건 차 떼고 포 뗀 장기 같은 것.

빡고수를 상대로 그런 걸 살필 여유가 어딨어. 나는 야수회귀를 전개했다. 오러는 삼갔지만 목제 창에 코팅을 두른 걸로 만족이다.

〈짐승 빙의? 그 갑옷 입었던 애, 역시 얼스터 인이었니?〉

〈설명하자면 깁니다!〉

야수회귀의 변종 마법을 알고 다나가 얼스터 인이란 것도 알아보는 건가.

─텅!!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힘도 쎄셔.

〈마스터 클래스의 안목은 무섭네요!〉

〈안목? 아아, 무슨 얘길 하나 했더니.〉

여러 의미를 담은 한탄이었는데 변경백은 바로 공세로 나왔다.

이런 씨발! ‘방어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때려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서 다 티나네! 난 오딘의 눈으로 움직임을 읽어냈다.

‘어깨!’

쿵─!! 창을 비틀어서 막았다.

그리고 0.1초 후,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봐라?

놀란 얼굴로 딱 그런 느낌의 표정을 지은 소녀 변경백.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다시 찌르기가 쏟아졌다. 1~2발로 그치지 않고 계속 퍼부어지는 개틀링건! 갸아악! 목검으로 펜싱하는 미친년이다!

‘쓰벌!! 왜 나한테만 바로 공격으로 들어와!!’

처음 몇 방 정도는 상대해 주는 거 아니었어? 왜 나한텐 3수 안 물려줘?

억울함에 코끝이 찡해진 나는 초식을 펼쳤다.

【게르튀르】 반격기 제 7품새.

계속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치는 장기전 특화의 초식으로 찌르기를 쳐냈다. 존나 물 흐르는 듯한 찌르기가 1초도 멈추지 않아서였다.

보통보다 10배는 빠른 테트리스 같다.

다음에 나오는 블록을 읽고, 쌓인 블록을 보고 실수 없이 꽂아넣지 않으면 처맞는다. 심지어 이 밸런스 똥망겜은 I자 블록도 안 나오는 것 같다.

어수룩한 방어, 미숙한 창술에 기인한 실수가 곧 데미지가 되는 격전!

‘졌다.’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발퀴리에랑 싸워보지 않았으면, 졌다.’

이 맹공을 막아낼 수 있어서 말이다.

〈아하? 아하하하하! 너 뭐니? 진짜 뭐니?〉

웃으면서 칼질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나는 검을 튕기다가 뺨끝을 스쳤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막자마자 바로 다음 방어 자세로 가야 했고, 그건 적의 움직임을 읽고 그에 따른 방어를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었다.

새 기술을 시험해 봐? 지랄, 엄두도 못 냈다.

내 뇌는 아드레날린에 푹 쩔어서 컴베이어 벨트처럼 쏟아지는 찌르기를, 똑같이 기계화된 동작을 펼치면서 받아내고 흘렸다.

〈같은 동작을 해도 오차가 없네. 원패턴이라도 뚫리지 않으면 철벽이지!〉

흥미로운 것처럼 공격하던 그녀가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반격의 기회가 아니다. ‘막을’ 기회였지.

‘존나 쎈 공격이 오는 징조다!!’

그럼 막아야지 씨발! 구신의 마나를 뿌리박았다.

【게르튀르】 반격기 제 4품새.

운동 에너지를 상쇄하는 반격기였다.

우리는 거의 완벽한 타이밍에 무기를 부딪혔다. 꽈앙─!!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상단으로 후린 두 무기가 부딪혔고, 당연히 튕겨나간 건 나였다.

씨발, 상쇄 못했다. 발동 직전에 읽힌 것이다.

“갸아아아악!!”

덱데구르르─! 뒹굴던 나는 얼른 일어났다. 등에 칼이 꽂힐까 무서워서였다.

〈특이해.〉

하지만 변경백은 쫓지 않고 검을 내렸다.

〈그만한 기술, 그만한 마나가 있는데 왜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지?〉

〈……자력으로 닿은 경지가 아니라서요?〉

말이 궁해져서 그냥 솔직하게 부는 나였다.

내 움직임에 오차가 없는 건 라리루라 덕분이다.

우리 후배님께서 알려준 크라운 크라운의 기술, 신체조율의 요령이지.

내가 공격을 예측한 건 오딘의 눈 덕분이다.

마스터 클래스의 공격도 어떻게든 읽어내주니까 막을 엄두가 난다.

‘그래도 계속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신체조율은 몸에 밴 방어동작이 아니라 집중을 짜내야 하는 기술이고, 오딘의 눈은 권능을 읽지 못한다. 변경백은 지금 권능을 쓰고 있지 않다.

권능을 쓰면? 못 읽고 처맞겠지.

남들보다 훨씬 많은 마나.

마법을 통한 높은 공격력.

마나 코팅으로 만든 방어력.

오딘의 눈과 기술의 정밀도를 올리는 신체조율.

나는 이상의 능력을 짜집기해서 태어난 누더기 마스터다.

진짜 마스터 클래스가 상대면 이렇게 조져진다.

〈미스릴보단 위. 그렇지만 마스터보단 아래. 그 정도일까.〉

변경백은 옛날 공부 노트를 본 사람처럼 탄식을 했다.

〈역시 좀 더 단계를 체계화할 걸 그랬나. 젊은 날의 치기네. 하지만.〉

중얼거리던 그녀는 나를 딱한 듯 보았다.

〈어설프게 완벽하면 부족하니만도 못하지. 그러니까 나는 마스터에 가까운 미스릴 같은 ‘애매한 중간 단계’는 만들지 않았어.〉

〈……실감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마스터가 되지 못했나?

마스터에 오를 만한 계기가 이렇게 많은데.

‘원인은 알고 있다.’

나는 발이 묶인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에 오르지 못하고── 미스릴에서 발이 묶여 있다.

‘내가 잘나서 반쯤 마스터에 발을 걸쳤다?’

지랄. 개소리도 이단 옆차기지.

미스릴 다음은 마스터다. ‘중간’ 같은 건 없다.

전사의 강함은 점수제가 아니다. 미스릴 클래스 평균 점수보다 2배 3배 높아도 그게 마스터 클래스의 합격점에 도착하지 못하면 유명무실이다.

마스터에 발을 걸쳐? 한자 1급이랑 2급 사이의 어딘가?

시발 그게 그냥 2급이지 뭔가.

이건 좆도 대단한 게 아니다.

아, 물론 이 나이에 마스터 클래스 직전이니까 따지자면 잘난 건 맞지.

99대대 때 봤듯이 미스릴 평균보다는 높고.

그러나 매번 말하지만, 아내를 많이 거느리고도 용서받는 건 내가 그만큼 엘리트한 인텔리 꼴마초라서다. 내가 잘난 건 필수전제니까 이제 와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남들은 도착하면 끝인 장소에 올라놓고 정작 마스터가 되진 못하다니?

‘전직 레벨을 채워놓고도 전직을 못하는 게 뭐가 대단하다는 것이지?’

치트 쓰다가 진행이 막힌 거지. 좆됐어 콩쥐야. 퀘스트가 진행이 안 돼.

아무튼 이렇듯 원인은 알겠다.

‘그 원인의 해결법을 모르겠을 뿐이지.’

이래선 마스터 클래스랑 붙으면 진다. 권능이랄 게 없으니까.

권능의 부재는 무기를 놓고 싸우는 거다. 레티티아나 에퀴녹스 때처럼 매번 폭주 모드를 컨트롤할 수도 없다. 편법에 의존하면 성장도 막힌다.

흑마법을 동원해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다른 수단이라도 일단 강구해 보려는 것이었다.

손에 있는 것들이라도 조합해 보고자.

‘쓰으읍……’

나는 한껏 집중하며 질문했다.

〈아직 연습 중인 미완성 기술이 있는데, 감히 변경백님께 보여드려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는지를 염치를 불구하고 양해를 구해도 될지를 여쭤──〉

〈해 보렴.〉

〈넵.〉

허락 나왔다. 하다가 처맞고 누울 일은 없겠네.

창을 한손에. 팔로 태극을 그린다.

휘이이이─. 마나가 몰아쳤다.

언어는 뜻을 전달하는 것. 룬은 수많은 의미가 담긴 추상적인 문자.

베로니카의 역강간 플레이가 알려준 내 창술의 궁극적인 도달점.

‘태초의 룬은 18개.’

【게르튀르】의 초식도 딱 18개.

이게 어떻게 우연이냐? 운명적인 만남인 거에요.

나는 태극을 펼치며 물공 마공의 새로운 하이브리드 스킬트리를 해금했다.

‘【게르튀르 푸타르크(Geirtýr ᚠᚢᚦᚨᚱᚴ)】.’

브류나크의 표면에 룬이 어른거렸다.

아지매, 깜찍한 허접 짬찌 후임 상대로 오러나 권능 같은 건 안 쓰시겠죠?

저어는 그거 빼고 다 쓸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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